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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91)화 (91/112)

#91

나름 비싼 몸인데 제값은 받아야 하지 않겠어? 되묻는 조롱에 대답하지 않았다. 델로즈는 어깨를 으쓱이고 입꼬리를 길게 올린다. 손목을 뻐근하게 돌리며 갑갑한 소매를 풀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넌 억울할 것 같단 말이지.”

“……무슨 소리야?”

“기억 한 톨 없는 밤에 비싼 값을 치르다니. 너무 손해 보는 장사 아니겠어?”

델로즈는 단정하게 잠긴 목 단추를 손가락으로 잡아 뜯고 그대로 상의를 벗어 던졌다. 고급스러운 카펫 위에 넝마가 된 셔츠가 굴러떨어진다. 느긋한 말투와 다르게 그의 근육 하나하나가 짐승처럼 팽팽하게 당겨졌다.

“너도 알겠지만, 내가 원하는 건 하나밖에 없어.”

“…….”

델로즈는 옷깃 사이로 드러난 반테온의 쇄골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반테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자 델로즈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전에 일어난 일이 단순한 사고라면, 네 말대로 이것도 단순한 거래라고 생각해.”

반테온의 등이 순식간에 매트리스에 닿았다. 한 손으로 반테온의 어깨를 눌러 고정한 델로즈는 도망치려는 두 다리 사이에 두꺼운 허벅지를 깊게 끼워 넣었다.

두꺼운 근육이 반테온의 아래쪽을 노골적으로 눌렀다.

“난 원하는 사례를 받아서 좋고. 너도 값을 치른 기억을 챙겨가니 두 사람 다 좋은 결과잖아?”

손을 뻗어 올리는 반테온의 손목이 잡혔다. 부드럽지만 강한 손가락은 다정하게 반테온의 팔을 잡아당기고, 그대로 손목 위에 키스한다. 뜨거운 혓바닥이 반테온의 손목부터 손바닥, 손가락 사이를 핥는다.

“이왕 거래할 거 즐겁게 하자고.”

델로즈가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흉포하게 웃었다.

***

“아…….”

몸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몸 안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존재감에 이를 악물었다. 강하게 허리를 잡고 내리찍는 행동에 두꺼운 성기가 전립선을 짓이긴다. 뒤이어 내벽을 가차 없이 휘젓자 겨우 버티던 허리가 덜덜 떨리며 무너진다. 꽉 감은 눈꺼풀 안쪽이 하얗게 번쩍였다.

“……!”

악다문 입 대신 아래쪽에서 질척이는 소리를 내며 접합부에서 넘친 것들이 바닥에 쏟아진다. 몇 번이나 절정에 달한 아랫도리는 이미 물 같은 애액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목 잡아.”

으르렁거리며 내뱉는 델로즈의 말에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감은 눈 너머로 사납게 찌푸려진 미간이 보이는 듯하다. 반테온의 거절에 쑤셔 박은 살덩이가 더 흉포해졌다. 약 기운 없이 받아들인 흉기에 전신이 조여들며 힘이 들어갔다.

안쪽을 짓이기며 깊은 곳이 억지로 비집어 열리는 감각에 이미 축축한 눈가가 짓무른다. 흐으, 아흐윽…… 숨소리에 섞여 숨길 수 없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과격한 움직임을 필사적으로 따라가려 해도 결국 버티지 못한 허벅지가 애처롭게 벌벌 떨렸다.

단순한 거래라고. 원하는 사례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한 번쯤은 그의 억지에 맞춰주리라. 어차피 이 행위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냥 이번만 버티자. 그런 생각에 예민해진 몸을 괴롭히는 자극에 괴로워하면서도 꽉 다문 입과 눈을 열지 않았다.

반테온의 고집이 세질수록 델로즈의 행동도 난폭해졌다. 무식한 크기를 맘껏 밀어 넣고 도망가지 못하게 꽉 끌어안으며 눌렀다. 전보다 더 깊이, 닿아본 적 없는 곳까지 비틀어 박아넣는 행위에 고개를 젖힌 채 턱이 뒤로 꺾였다.

눈가에 흐르는 눈물이 베갯잇을 축축하게 적셨다. 고통보다 강한 자극에 막을 새 없이 흘러넘친다. 젖은 살이 부딪히고 예민한 내벽을 무자비하게 휘젓는다. 아래쪽 감각이 없는 것 같다고 생각하다가도 전립선을 누르는 행동에 허리가 무너졌다. 꽉 다문 입술이 바들바들 떨리고 숨을 삼켰다. 소리내기 싫어 일그러트린 입술이 예민한 내벽을 사정없이 내리찍는 행위에 결국 무너졌다.

“흐…! 으! …!… 아!”

몰려오는 절정에 몸부림쳐도 미동 없는 상대 대신, 발끝으로 미친 듯이 시트를 밀어냈다. 형편없이 구겨지는 시트만큼 자극당한 머릿속이 진탕 일그러졌다. 이미 물처럼 흐르는 정액이 쏟아지며 힘이 잔뜩 들어간 배꼽 아래가 통제할 수 없이 경련했다.

“후…….”

델로즈가 억누른 신음을 뱉으며 땀과 타액에 젖어 엉망이 된 반테온의 등 아래로 손을 넣었다. 자비 없는 손이 상냥하게 척추를 쓰다듬었다. 펄떡이는 몸을 진정시키듯 어루만지던 그의 손바닥에 힘이 들어가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행동에 델로즈의 의도를 깨달은 반테온의 몸이 튀었다.

“안…돼, 안 돼!”

방금 절정에 달한 몸은 예민하기 그지없었다. 지금은 안 돼. 내뻗은 팔이 델로즈의 가슴을 밀어내기도 전에, 시야가 뒤집히고 무너진 허리가 강제로 들렸다. 위를 향해 들린 몸은 그대로 델로즈의 무릎 위에 주저앉히듯 처박혔다.

“……!”

아… 말이 되지 않는 소리가 잔뜩 벌어진 입에서 터진다. 하늘을 향해 확 꺾인 고개가 부들부들 떨렸다. 자극, 쾌감, 절정. 온갖 감각의 소용돌이가 홍수처럼 전신을 덮치고 발가락 끝까지 발발 떨며 눈앞에 상대에게 매달렸다.

비명도 나오지 않을 절정에 눈앞이 까맣게 질렸다가 다시 하얗게 밀려온다. 몸속에 터지는 질척한 감각에 마지막 남은 신경까지 타들어 갔다. 흐물흐물 녹았던 내벽이 다시 경련하며 내부를 쪼았다. 미간을 찌푸리는 델로즈가 숨을 내쉬며 반테온의 몸을 들어 깊은 곳까지 한 번 더 내려찍었다. 연이은 자극에 꽉 감은 눈 사이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흐으… 숨소리에 섞여 나오는 신음이 나가지 않도록 입을 꽉 다무는 것을 마지막으로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끝까지… 넌 그렇게…….”

낮게 읊조리는 델로즈의 목소리가 들린다. 거칠게 당하는 건 반테온인데, 상처 입은 것처럼 보이는 건 델로즈였다. 반테온의 기억 속 마지막 남은 모습은 괴롭게 일그러진 델로즈의 눈빛과 새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뿐이었다.

***

형형색색의 고운 상자들이 종류에 따라 정렬된다. 천장에 닿을 듯 쌓인 선물 탑이 하나씩 하나씩 인부의 손으로 옮겨졌다. 한 남자가 그 앞을 설레는 발걸음으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조심해! 하나라도 떨어지면 너희 일 년 치 연봉이란 말이다. 아니지. 10년을 모아도 부족해!”

잡일을 하는 사람 하나까지 신원이 보증된 사람으로 데려왔다. 당연히 주머니도 없는 옷과 신발 밑창까지 철저하게 세트로 맞춘 복장이다. 완벽한 보안을 자랑하는 일꾼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산처럼 쌓인 물건들을 옮겼다. 저택 한 채는 꽉 채우고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물건 양에 고개를 저었다.

“이건 동대륙에서 온 비단이군요. 이건 향료…… 오, 판테즘 유리 공방 작품이군요. 얼마 전에 시녀장이 회관에 올려놓을 장식품을 고민했는데 거기 써도 되겠습니까?”

“마음대로 해.”

“좋습니다. 좋네요. 카타온 가문이라. 오랜만에 듣는데 기억해둬야겠군요.”

저택에서 한 달음 센터로 달려온 재정관은 작성되는 목록을 살피며 눈을 빛냈다. 새로운 재산명부를 만들어야 할 만큼 많은 양의 선물에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였다. 입가에는 연신 행복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돈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뭘 그리 기뻐해.”

“모르셔서 그럽니다. 돈은 많을수록 좋지요. 물론 에슬란테 가문이 왕국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이라 하지만, 관리가 소홀하면 기우는 건 순식간이지요.”

역사상 이름을 알린 가문은 많았고 그만큼 반짝이고 사라진 곳도 셀 수 없이 많았다. 그걸 알기에 재정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으나, 누가 보면 에슬란테에서 급여라도 밀린 줄 알겠다.

“반테온 님의 개인 자산은 제가 관리하지 않지만, 잘 챙기고 계시겠죠?”

“알면서 뭘 물어. 얼마 전에 월말 보고서 확인했잖아.”

“하하하. 그랬지요. 요즘 워낙 신문에 실리는 기부액이 커서 괜찮으실까 했는데 끄떡없더군요. 역시 재정 관리 잘하시는 것도 전 가주님을 닮으셔서…….”

“입에 발린 칭찬 그만하고. 언제쯤 끝날 것 같아?”

“밤을 새워서라도 오늘 안에 끝내야지요. 괜히 어수선한 상태로 날이 지나면 보안만 허술해집니다.”

가문 내부에 있는 보관 창고라면 몰라도 이곳은 수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센터였다. 아무리 경비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저택 안으로 옮기는 것보단 못할 테니 쉬지 않고 옮기는 것이 맞다. 이 속도라면 새벽까지 바쁘게 움직여야 할 테지만.

시큰둥하게 앉아서 움직이는 인부를 바라봤다. 바쁘게 움직이는 활력 넘치는 모습에 흥미가 일기는커녕 머릿속은 다른 일로 복잡하게 굴러갔다.

델로즈와 그 일이 있고 나서 벌써 보름이 흘렀다. 그사이 가이딩 후유증으로 떨어졌던 생체 수치도 정상 범주로 돌아왔다. 그동안 숱하게 드나들던 델로즈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원망스러운 시선과 반테온의 몸을 살피며 떨어지던 떨리는 손가락. 물에 젖은 휴지처럼 질척하게 들러붙어 있는 마지막 델로즈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르자, 머리를 흔들어 생각을 털어냈다.

‘이걸로 된 거야.’

진작에 이렇게 돼야 했었다. 몸이 불편하다는 핑계로, 호의가 담긴 그 눈빛에 못 이기는 척 곁에 두는 게 아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옳은 선택이다. 반테온이 델로즈를 받아주지 못한다면 일말의 배려도 받지 않고 멀어졌어야 했다.

어릴 적, 센터의 교육을 모두 수료했음에도 곁에 남아 반테온을 지키겠다던 테아로트도 이렇게 잘랐어야 했다. 그랬다면 껍질뿐인 관계라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처럼 서로를 피하고, 결국 한쪽이 수도를 떠나야 할 지경에 처하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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