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97)화 (97/112)

#97

“오랜만에 얻은 귀한 연구 대상이니, 시간은 좀 걸릴 겁니다.”

“관리만 조심해 주십시오.”

“물론이죠.”

“외부 경비는 어떻게 됩니까?”

“주변엔 차단파를 둘러놨습니다. 24시간 교대로 경비를 서고, 기기로도 검사도 할 겁니다.”

듣기엔 그럴듯한 말임에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델로즈가 나타났을 때 로한의 반응이다.

‘이런 정보는 없었는데. 이왕 온 거 인사라도 할까?’

마치 델로즈가 이번에 동행하지 않은 걸 아는 듯한 말투. 확신이 섞인 말이었다.

베이론과 추가로 잠복한 에스퍼들의 존재를 몰랐는데 델로즈의 행동은 파악하고 있다라.

이번 작전은 철저하게 기밀로 붙이기 위해 센터에 대기 중인 에스퍼 대신 베이론이 소속되어 있는 파견 에스퍼들을 동원하여 시행했다. 그러니 센터 내부에서 정보가 샌 것이다.

저번 침입 이후 센터의 고급 정보를 관리하는 모든 이의 사적인 연락과 외출 기록을 모두 검사했다. 피해자인 반테온의 정보까지 열람하면서 예외 없이 조사를 진행했지만 미심쩍은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다. 이 말은 아직 아직 정보를 얻을만한 첩자가 센터에 숨어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은 완전히 배제하는 방법은 없겠죠?”

“사실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아시다시피 기기만 이용하는 건 효율이 떨어지지 않습니까. 왜 그러십니까?”

왕국의 과학과 기술보다 에스퍼의 힘에 의해 발전해왔다. 무력과 경계는 모두 에스퍼들이 담당했다. 기술이 발달한 곳은 에스퍼의 힘을 뒷받침하기 위한 의료, 측정, 통계 분야 정도였다. 이런 중요한 일에 사용할 보안 시설을 단기간에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델로즈가 이번 작전에 포함되지 않은 걸 아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흠…….”

센터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 철저하게 조사했는데도…….”

“가능한 사람의 개입이 적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이야기인지 충분히 알겠습니다.”

반테온은 고개를 끄덕이는 센터장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필요한 비용이 있다면 지원할 테니, 신경 쓰지 마시고 철저하게 부탁드립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매번 에슬란테의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어도 결과가 나오는 기간을 앞당길 수 있을 테지. 감사를 표하는 상대에게 의례적으로 웃으며 응답하며 로한을 바라봤다. 그의 능력이라면 차단을 하였다 해도 이 대화를 들을지 모르지. 허나 무슨 생각인지 미동조차 없었다.

“조심해서 다루십시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요”

“걱정 마십시오. 오랜만에 얻은 좋은 연구감이니까요.”

매번 초승달 모양으로 가늘게 웃고 있던 센터장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위험도보다 희귀성에 관심을 보이는 반응이 조금 못 미더우나 이 이상은 반테온의 소관이 아니다. 센터 내부에 수감하였으니 센터장도 책임을 지기 싫으면 최선을 다해서 지키겠지.

로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센터장과 그 주변인들을 두고 반테온은 홀로 밖으로 걸어 나왔다. 로한이 잡힌 걸 실제로 확인하고 나오는 길임에도 괜스레 발목이 무거운 기분이다.

위로 올라갈수록 습기가 줄고 건조하고 딱딱한 돌바닥이 나왔다. 한참을 걸어 올라가자 창가로 들어온 환한 햇살이 보이며 눈이 부셨다.

***

보안을 위해 감옥이 있는 건물 주변은 관계자 외 출입을 금지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복도 끝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가 가까워진다.

“그래서 뭐라고 부르면 돼요?”

“…….”

“답 없으면 제 마음대로 하죠. 뭐. 보자…… 그럼 형부라고 부릅니다?”

“…….”

“이 정도 치댔으면 한마디는 해줄 만하지 않아요?”

이 넓은 센터에서도 드물게 촐싹거리는 목소리는 분명 베이론이었다. 반테온은 걸음을 멈췄다. 아직 두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지만, 대화의 내용으로 봐선 베이론의 상대편에 있는 건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반테온은 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이 걸어오는 반대편 복도를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몸을 숨기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자신이 이해 가지 않았다.

“훈련은 언제 해요? 한 번 함께…… 어?”

빠르게 숨었어도 반테온이 상대를 알아차릴 거리에서 에스퍼 두 명이 반테온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다. 코너 옆에 있는 반테온의 존재를 알아챈 베이론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고개를 내밀었다.

무표정한 얼굴을 빼꼼 내밀었던 베이론은 반테온을 보자마자 표정을 풀고 환하게 웃었다.

“형님! 감옥 다녀오는 길이구나.”

웃으며 반기는 그와 다르게 맞은편에 서 있을 델로즈는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켰다. 바닥에 얼핏 비친 그림자는 석상처럼 미동도 없이 굳었다.

“안 그래도 찾아가려고 했는데. 잠은 잘 잤어? 그 녀석 보고 오는 길이지? 꼴이 말이 아닐 텐데 어땠어?”

“센터에선 조용히 있기로 했잖아.”

“그건 교육받을 때 충분히 지켰잖아. 이제 알 사람은 내 성격 다 알걸.”

베이론의 성격은 어릴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센터에 교육을 들으러 가기 전에 가문의 이미지를 위해 조금만 자중해 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학생 땐 듣는 척이라도 했는데. 성인이 되어 외부로 파견 나간 순간부터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굴었다.

“사실 내가 좀 개판으로 군다고 해서 흠갈 가문도 아니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조금 바뀌려고 해.”

이대로 가다간 선조들이 수백 년간 열심히 지킨 가문의 이미지를 단기간에 박살 낼 것 같은 불길한 미래가 동생의 머리 위를 떠다닌다.

“뭐 가문의 위상은 내가 노력 안 해도 형님이 다 올리고 있잖아. 그렇죠?”

“……그래.”

“거봐, 거봐.”

지금껏 조용히 있던 델로즈가 베이론의 헛소리에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 어느 부분에서 공감하여 끄덕이는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지만, 가까이서 듣는 델로즈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가라앉았단 사실을 알아챘다.

어제 로한과 만났을 때부터 이런 목소리였던가.

다른 건 목소리만이 아니다. 델로즈의 주변에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고 있어 달라 보이나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센터에서 만난 델로즈는 그 전보다 피곤해 보였다. 살짝 야윈 듯한 모습에 한동안 단정하던 머리도 흐트러져 있었다.

야밤에 치른 전투가 힘들었던 것일까. 낯선 모습을 찬찬히 바라보니 델로즈의 미간이 움찔한다. 단단히 굳은 눈빛으로 반테온을 응시하는 델로즈의 모습을 힐끔거리던 베이론이 한 걸음 물러섰다.

“나는 이만 물러갈게! 아 맞아. 형부 잊지 마. 다음에 꼭 한 번 붙어 주기야.”

“…….”

경악스러운 호칭에 반박할 기회도 없이 베이론이 반대편으로 빠르게 사라진다. 넓은 복도에 덩그러니 둘만 남은 반테온과 델로즈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창문을 스치는 바람 소리가 크게 들리는 적막 속에서 호흡도 조심히 뱉을 긴장감이 감돌았다.

“동생이었군.”

작게 읊조리는 델로즈의 말투엔 깊은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베이론을 오해하여 반테온에게 연락 온 사실을 숨겼었지. 어차피 단순한 계약 관계로 돌아갔고 다시 그런 일이 없을 테니, 상관없는 일이었다.

반테온은 씁쓸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전해야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어젠 고마웠어.”

위기의 순간 델로즈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지금 어딘가 갇혀있는 사람은 로한이 아니라 반테온이었을 것이다.

로한의 연락이 온 순간부터 델로즈에게 협조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러나 홀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합리화하며 델로즈에게 숨긴 건 반테온의 선택이었다. 괜한 자존심과 어색함에 대안을 찾아 피했더니 위험에 처할 뻔했다. 그 실수에서 반테온을 델로즈가 구했다.

어색하게 건넨 감사 인사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델로즈의 미간이 더욱 찌푸려졌다.

홀로 위험한 곳에 간 것을 타박할까. 미끼가 되어 로한을 불러낸 것을 추궁하며 화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반테온이 위험한 위치에 서는 것에, 델로즈는 항상 불만을 표했다. 이번에야말로 큰소리가 떨어질 것에 대비하여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귓가에 들린 건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미안하다.”

영문 모를 말이 델로즈의 입술 사이에서 나온다. 대체 무엇을? 어떤 부분에서 사과하는지 파악하기 어려워 눈이 크게 뜨였다.

“마음대로 움직였으니까.”

“아…….”

그날. 다시 계약 관계로만 엮이기로 약속한 밤에 반테온이 했던 이야기다. 반테온이 요청한 것 외엔 서로 관여하지 말자는 협의를 내렸었지.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의 이야기에 다시금 델로즈를 응시하자 찌푸려진 눈매가 이내 더 깊어지며 시선을 피했다.

고지식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융통성이 없다고 해야 할까. 생색을 내며 반테온에게 무언가 요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먼저 꼬리를 내렸다.

세상 얽매이는 것 없이 마음대로 살던 델로즈라고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모습에선 느낄 수 없었던 의외에 모습에 멍하니 그의 옆모습만 바라봤다.

말이 막혀버리는, 쉽지 않은 경험에 입술을 물고 머뭇거리던 반테온이 겨우 입을 뗐다.

“예외적인 상황이잖아. 네가 없었으면 위험했을 테니, 그 부분은…….”

어렵게 꺼낸 말이 다시 막힌다. 여기서 뭐라고 말을 이어야 할까. 이번엔 괜찮다고? 책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봐도 반테온의 실수로 델로즈의 도움을 받은 상황에서 관용을 베풀 듯 대하는 것이 옳은 일인 것일까. 망설이던 반테온은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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