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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99)화 (99/112)

#99

고민에 빠진 베이론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진다. 재차 중얼거리며 이상하다. 왜 그렇지 중얼거리더니 딱딱하게 굳은 얼굴을 들었다.

“……형.”

잔뜩 긴장된 목소리를 뱉은 베이론은 한 글자씩 씹어내듯 꺼냈다.

“그 두 사람. 거의 비슷해.”

정답이다. 반테온은 자신의 추리가 맞아떨어진 순간 잘 쌓은 서류를 내팽개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말기를 들어 빠르게 사람 하나를 불러 달라 지시했다. 드물게 성급한 반테온의 행동에 베이론이 덩달아 일어났다.

“어디 가게?”

“델로즈…… 아니 페턴을 만나야겠어.”

처음부터 이딴 자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거였다. 답은 바로 옆에 있었다.

반테온의 호출을 받고 부리나케 달려온 페턴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재에 들어섰다. 공용 공간과 다르게 온갖 사치스러운 가구와 소품으로 가득한 사방을 홀린 듯 돌아봤다.

델로즈와 함께 용병으로 지내다가 함께 입소했다고 하였던가. 왕국에 봉사할 의무가 없는 D급 에스퍼이기에 등록만 해놓고 용병으로 활동했다 들었다.

센터에서 지낸 지 제법 오래된 것 같은데, 처음부터 당당하던 델로즈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도 아니다. 용병이라면 평민 중에서도 험한 곳만 돌아다녔을 것이다. 조난당했을 때 반테온이 들렀던 산속 마을을 떠올리면 이런 환경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겠지.

“갑자기 저를 급하게 부르셨다고…….”

“일단 앉으시겠습니까?”

테이블 위에는 방금 준비해 김이 오르는 두 개의 찻잔과 간단한 다과가 차려져 있다. 이런 예법에 익숙하지 않은 페턴은 쭈뼛거리며 앉아 허리를 빳빳하게 펴고 무릎 위에 주먹을 얹었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아뇨. 제가 이런 쪽은 전혀 몰라서 말입니다.”

“별것 없습니다. 그냥 음료인걸요.”

반테온이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시자 페턴도 덩달아 잔을 들어 마신다. 어색하게 입 안에 머금고 올라오는 쌉싸름한 향에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입맛에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늘은 델로즈에 관해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저희 대장이요?”

“함께 용병 생활을 하셨다고 들어서요.”

지금껏 어색한 표정과 다르게 곤란해진 얼굴로 페턴이 씁쓸하게 웃었다.

“그건 맞습니다만, 사실 저도 아는 건 많이 없습니다.”

지금껏 델로즈의 측근으로 곁에 있던 페턴의 말은 의외였다. 어떤 질문이 나오기도 전에 아는 것이 적다고 못 박아 두다니. 혹시 반테온을 경계하는 것일까 하는 마음에 눈이 가늘어지는데, 바로 페턴의 말이 이어졌다.

“여기 오기 전에 7년 정도 함께했는데 워낙 말수가 적은 분이라….”

“제가 듣기론 델로즈는 에스퍼로 발현하기 전 기억이 없다고 하더군요.”

“네. 네. 맞습니다.”

“그럼 아는 이야기라도 괜찮습니다. 델로즈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거, 제 이야기가 도움이 될……진 모르겠습니다.”

페턴은 천천히 과거를 이야기했다. 주로 델로즈와 용병 일을 하면서 있었던 과거 이야기였다. 어떤 의뢰를 받았으며,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일을 성공시킨 일. 용병대가 커지고 왕국 전체를 돌아다니며 활약했던 이야기들이었다.

건질 것 없는 그 이야기를 반테온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쭉 경청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놓친 구석이 있지 않은가 하나하나 짚어가며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그러니까 처음 서쪽에서 만났을 때 비하면 정말 지금은 정상적인…….”

“두 분이 서쪽에서 만나셨습니까?”

“네. 왕국 서쪽 제일 끝에서 만났습니다. 사람도 없던 깊은 숲 안이었죠.”

델로즈는 흘러가는 말로 기억을 잃고 떠돌던 중 페턴을 만나 용병대를 꾸렸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적이 없던 깊은 숲에서 기억을 잃었다는 이야기인데, 대체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처음 봤을 땐 뭐 저렇게 이상한 놈이 다 있지 했습니다.”

“아주 특이했나 봅니다.”

“기억이 없는 것도 그렇고…… 아니, 대장은 아예 사람을 처음 보는 것처럼 행동했거든요. 제가 숟가락 쓰는 것부터 가르쳐줘야 할 정도였어요. 탁자랑 의자도 얼마나 많이 부쉈는지….”

“……그런 기본적인 것부터 말입니까?”

“뭐, 발현의 후유증 중에 그런 것도 있다니까 그런가 보다 했죠. 지금까지 기억이 돌아오지 않은 건 좀 특이하지만요.”

페턴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발현 직후에 힘을 조절하지 못해서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주변을 파괴하는 일도 있으니까요. 대장은 SS급이니 더 심했던 거겠죠.”

그 말에 이야기를 듣던 반테온이 멈칫했다. 발현 후유증으로 기억 상실을 겪는 경우는 흔하나, 기억에 한정된 이야기다. 숟가락 쓰는 것처럼 기능에 관련하여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워낙 현명한 분이라 잠시 고생하고 곧바로 적응하더라고요. 그 뒤에 대장에게 반한 사람도 늘고 용병대도 커지고…….”

“혹시 델로즈와 만난 곳 주변에 마을이 있습니까?”

“마을이요?”

오래된 기억이라 떠올리기 힘들다며 한참을 되짚어보던 페턴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거기 귀한 약초가 있다는 말에 제법 큰 돈을 받고 들어갔는데, 야영만 3일 넘게 해야 하는 깊은 숲이었습니다.”

“흠…….”

낯선 마을도 아니고 인적이 드문 곳에 델로즈는 왜 갔던 것일까.

“그럼 델로즈를 발견했을 때 주변에 부서진 흔적이 있었습니까? 나무라든가, 흙이 팬 흔적이라든가.”

계속되는 반테온의 질문에 영문을 모르는 패턴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주변은 멀쩡했습니다. 저도 명색이 용병이라 주변을 살피는 건 몸에 배어있어서 기억합니다. 조금 이상하긴 하네요.”

페턴과 합류한 후에도 식기를 다루는 데 어려웠다고 했는데, 그 전에 마주쳤을 때 주변 나무 하나 부수지 않았다니. 하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페턴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다.

그가 거짓을 말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자기가 뱉은 말에 모순을 느끼며 의아해하고 있으니까.

“그렇군요. 오늘 갑작스러우셨을 텐데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대장이 반테온 님 말이라면 다 들어주라고 하셨거든요. 다음에 혹시 물어보면 최대한 협조했다고 말 좀 잘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재차 고개를 꾸벅이며 마지막까지 방을 둘러보던 페턴이 떠났다. 서재에 덩그러니 홀로 남은 반테온은 소파 깊숙이 등을 묻었다.

오랜만에 시가를 꺼내 물었다. 캡을 잘라내고 불을 붙이자 싸한 연기가 코를 맴돈다. 처음 들은 페턴의 이야기에는 예상치도 못한 사실이 가득했다.

델로즈와 비슷한 압박감을 보유한 로한의 존재. 그리고 인적이 없던 곳에서 갓 태어난 것처럼 행동했던 델로즈. 인간과 철저하게 분리하여 본인을 설명하던 로한의 태도. 이것들이 모두 무엇을 의미할까.

로한은 왕국 사람들, 더 나아가 인간 자체를 하찮게 표현했었다. 마치 자신과는 다르다는 듯 미물처럼 여겼었다. 만약 로한과 델로즈가 같다면. 그렇다면…….

“하… 하하하…….”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실성한 듯 웃었다.

페턴 본인도 무슨 의미인지 모른 채 펼쳐놓은 과거에서 조각 하나하나를 줍자 반테온의 예상과 떨어지는 거대한 그림 하나가 완성되었다.

왜 몰랐지? 이렇게 증거가 많았는데. 멍청하게 고서나 뒤지고 금서까지 구해와서 헛짓거리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머리가 좋다 보면 알기 싫어도 아는 것이 생긴단 말입니다. 과연 에스퍼는 어떻게 생기는 것일까. S급만 되어도 그들의 한계는 알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SS급이라…… 과연 똑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요?’

언젠가 수수께끼처럼 남겼던 센터장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정답은 ‘아니오’다.

***

햇빛에 닿은 눈이 따갑다. 충격에 벗어나지 못한 반테온은 새벽까지 서재에 남아 다른 조사를 했다. 해가 뜨는 걸 보고 겨우 쪽잠을 청한 몸은 늘어지게 피곤했다. 과연 수면 부족으로 힘든 것인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시달린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반테온은 어디서부터 누구에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판단되지 않는 머릿속을 정리했다.

사실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왜 에스퍼가 유전으로만 발현할까. 그 이유는 왜 지금까지 몰랐는지 의문일 정도로 확실하다.

‘에스퍼란 존재 자체가 인간과 다른 종이었으니까.’

그들은 인간의 외형을 했으나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들의 핏줄을 이은 후손 중에서만 격세 유전으로 에스퍼가 발현했다. 혼혈처럼 말이다.

로한과 델로즈가 없었다면 영원히 물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사실이었다.

그들은 사람의 태를 빌려 태어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역사에 기록된 모든 자연 발생 에스퍼는 평민 중 발견하였다는 기록이 있을 뿐, 어디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었다. 모두 델로즈와 페턴이 만났을 때처럼 어디선가 나타났다. 이미 성체의 형태를 한 채로.

공통점은 그뿐이 아니다. 어제 새벽까지 생각을 곱씹으면서 다른 기시감을 느꼈다. 에스퍼들의 탄생이 그러하다면, 죽음은? 과연 자연 발생 에스퍼들도 인간과 같이 늙어서 죽는 것일까. 그들의 수명도 인간과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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