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101)화 (101/112)

#101

“그 녀석이지? 델로즈 그놈이 이런 거지?”

“아니야.”

“아니면 누가이랬어! 너 몸에 자국 남기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잖아. 그 무례한 녀석이 아니면 이럴 사람이 어디 있어.”

반테온의 성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지적에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그 개자식이 결국…….”

“그냥 사고야.”

“사고? 사고로 이런 짓을 해?”

“테아로트. 진정해.”

당장이라도 델로즈에게 뛰어갈 것 같은 그의 팔을 잡았다.

“이미 끝난 이야기야. 네가 나설 필요 없어.”

“내가 가만히 있게 생겼어? 그놈과 널 둘이 남겨 놓고 떠나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데.”

“가이딩 하다가 생긴 사고일 뿐이야. 이제 이런 일 없을 테니까…….”

“내가 그걸 어떻게 믿어? 이제 난 여기 없을 텐데.”

흥분하여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태세에 거짓으로 테아로트를 진정시켰다. 가이딩 때문은 아니었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거라는 말은 진실이었다.

반테온은 울듯이 일그러지는 테아로트를 달래며 등을 토닥였다.

“너도 알잖아. 나와 델로즈는 정반대라는 거. 그냥 가이드와 에스퍼의 관계일 뿐이야.”

“그래서 더 싫은 거야.”

두 발현자의 관계가 얼마나 끊을 수 없이 엉키는지 알기에 더 떠나기 싫은 거라고. 테아로트가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반테…….”

어깨를 쥔 손에 힘이 빠진다. 반테온의 가슴팍에 고개를 묻고 매달리듯 기댔다.

“끝까지 의연한 척 떠나려고 했는데 너무 힘들다.”

“…….”

들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반테온과 델로즈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테아로트에게만은 들키기 싫었다. 미련한 녀석이 반테온보다 더 상처받을 걸 알기에 숨기고 싶었다.

“내가 잘 정리할 거야. 신경 쓰지 마.”

“……역시 안 되겠어.”

자신의 감정에 복받쳐 괴로워하던 테아로트의 상체가 흔들린다.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행동이다. 조금 전 조용하던 행동이 거짓인 양 급변한 태도였다. 위아래로 움직이는 등을 토닥였다.

“너무 불공평해.”

“테아로트. 갑자기 왜 이래.”

“나만 안 된다니. 이건 불공평하잖아.”

테아로트는 낮게 읊조리며 반테온의 옷깃을 쥔 손에 힘이 줬다. 테아로트를 밀어내려 해도 꽉 잡은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와 가장 가까운 건 나였는데 인제 와서 포기하고 다른 놈이랑 붙어먹는 걸 지켜보라고? 그럴 순 없어.”

테아로트가 숙였던 얼굴을 들었다. 불꽃이 튀듯 강한 시선이 반테온과 마주쳤다. 울먹이던 그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씁쓸하던 얼굴에 씨익 미소가 지어졌다.

“네 옆에 있을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밖에 없어.”

“…….”

“그러니까 같이 가자.”

테아로트의 태도가 갑작스럽게 변하자, 반테온이 그를 피하기 위해 몸을 뒤로 뺐다. 반대편으로 돌아서서 달리려는 순간, 테아로트가 손으로 반테온의 목덜미를 강하게 잡았다. 밀쳐내려고 팔을 들자 따끔한 감각이 살갗을 뚫고 들어왔다.

얼음처럼 차가운 감각이 목덜미부터 퍼져 순식간에 뇌를 관통한다. 힘이 풀려 꺾이는 몸을 테아로트가 받아 들었다.

“미안해 반테. 잠시만 자고 있어.”

“너…….”

“우린 언제나 함께였잖아. 지금이랑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 아무것도.”

서서히 감기는 눈꺼풀 너머로 먼 곳을 바라보는 테아로트의 시선이 보였다. 분명 이 공간엔 단둘만 있을 텐데, 마치 다가오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듯 눈동자를 움직이던 테아로트가 작게 입을 열었다.

반테온을 대할 때와 다르게 사무적이고 딱딱하게 굳은 말투였다.

“준비는 끝났어.”

“겨우 마음을 먹었나 보군.”

“그 개새끼는 네가 막을 수 있다는 말 확실하겠지?”

“물론이지.”

익숙한 목소리에 반테온은 억지로 고개를 돌리려 했다. 왜 지하 감옥 가장 깊은 곳에 있어야 할 사람의 목소리가 지금 들리는 것일까.

센터 정보를 빼돌린 사람이 테아로트였던 것일까. 부족한 것 없이 살아온 테아로트가 대체 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돌아보려 해도 고개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희미해지는 정신 속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단말기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힘을 잃고 바닥을 향한 시선에 단말기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가 보였다.

[알겠다.]

짧고 간결한 답변. 델로즈에게 내일 만나자고 보냈던 쪽지의 답이었다. 그 화면을 마지막으로 반테온의 세상은 까맣게 물들었다.

***

마물은 무엇을 위해 태어나고, 무엇을 위해 죽을까. 그들은 왜 무차별적으로 인간을 공격하고 침입하는가. 오랜 시간 진행된 연구에도 그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 타고난 공격성에 따른다고 잠정적으로 판단할 뿐, 아무도 그 이유를 몰랐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인간이 닿지 못할 깊숙한 곳에서 꾸준히 마물을 낳는 던전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던전 가장 깊은 곳에 핵 역할을 하는 게이트는 어느 날 마물이 아닌 ‘괴물’을 낳았다.

지금껏 탄생시킨 수많은 마물보다 강력하고 확실하게 인간을 멸망시킬 수 있는 강력한 괴물은 불행히도 마물보다 강한 자아를 가지고 태어났다.

괴물은 자신과 확연히 다른 모습의 마물을 보며 고민했다. 자신은 누구인가, 왜 태어났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태어날 때부터 온몸을 괴롭히는 고통 속에서 무언가 갈구하며 해결책을 찾아 떠났다.

깊숙한 던전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그 괴물은 자신과 닮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에. 마물인 줄 알고 공격할 뻔했잖아요!”

괴물은 그곳에서 처음으로 인간을 만났다.

지금껏 함께하던 마물과 다르게 말이 통하고 자아가 있는 생명체. 자신과 같은 팔다리를 가지고 무리를 이루는 그들을 보며 괴물은 안도했다. 내가 인간이었구나. 그러나 그 시간도 잠시였다. 시간이 지나자 알 수 있었다.

이들 역시 자신과 달랐다.

무딘 나무 조각에 스쳐도 상처 입고, 수명이라곤 채 60년도 되지 않는 약한 인간들 사이에서 괴물은 구부러진 못처럼 튀어나왔다.

처음엔 강하다며 따르던 인간들은 늙지도 않고, 다치지도 않는 괴물에게 돌을 던지고 비난을 퍼부었다. 공포에 떨며 그 주변의 사람까지 한패라 매도하여 죽였다.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잠이 들던 친우들이 죽을 때도 괴물은 어떤 감정도 들지 않았다. 비명 지르고 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어제까지 함께했던 사람들의 사체를 밟으며 생각했다. 나는 그들의 말대로 정말 괴물이구나.

처음 정착했던 마을을 멸망시키고 그다음 거처를 발견했을 때 괴물은 인간들과 교류하기를 거부했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것 대신, 그들을 바보로 만들기로 했다. 로한의 존재에 의심하지 못하도록, 그를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왜곡하여 안락한 삶을 누리길 선택했다.

그렇게 괴물은 대륙 중앙에 자신만의 나라를 만들었다.

성벽을 쌓아 올리고 그 중앙에서 왕으로 군림하였다.

그러는 중에도 원죄처럼 자신을 괴롭히는 고통은 점차 강해졌다.

숨쉬기도 괴로워질 무렵 괴물은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다. 흔해 빠진 인간 중에 드물게 그의 고통을 줄여주는 개체가 있었다. 성별도 나이도 상관없었다. 괴물은 자신이 끌리는 모든 사람을 잡아 와 가뒀다.

그들은 괴물의 곁에서 천천히 말라 갔다. 상관없었다. 괴물에게 인간은 부리기 쉬운 소모품. 딱 그 정도의 가치였다. 고통이 무뎌질 때까지 곁에 두다가 낙엽처럼 말라 시들시들해지면 새로운 개체를 수급했다. 괴물의 도시 밖에선 그를 사람 잡아먹는 왕이라며 손가락질했으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느 날 괴물의 세상을 바꿀 한 소년을 만났다.

여느 인간과 다를 바 없었다. 푸석한 갈색 머리에 빼빼 마른 소년은 괴물의 뜻대로 다룰 수 없었다. 그는 시간이 지나도 괴물의 금발을 정확히 기억하였다. 특이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곁에 있으면 평생 해소되지 않던 갈증이 채워진다. 누구와 함께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던 고통이 소멸한다. 어떤 괴로움도 없는 현실에 괴물은 금세 중독되어 버렸다.

“왕님도 참 외로운 사람 같네요.”

소년은 양손에 닭 다리를 쥐고 말했다.

“제가 친구가 돼 줄까요? 어차피 하는 일도 없어서 한가해요.”

“못생긴 게 시끄럽다.”

“아니 이 정도면 잘난 얼굴이라니까요? 진짜 억울하다!”

왜 이 소년만 다를까. 어떻게 괴물의 고통을 없앨 수 있을까. 나쁜 영향을 받지 않을까. 경계하면서도 괴물은 그 곁을 떠나지 못했다.

“더 먹기나 해. 못난아.”

“배 터지겠어요. 먹어도 안 찌는 걸 어떻게 해요.”

괴물은 소년을 위해 온갖 산해진미와 보석을 모았다. 다른 인간처럼 금세 죽어버리면 곤란했다. 하지만 몸에 좋다는 약과 치료사를 불러도 소용없었다. 소년도 지금껏 괴물을 거친 사람들처럼 점차 야위고 시들어갔다.

이 소년이 죽으면 그다음엔 어떻게 하지? 그런 걱정을 해소하기 위해 괴물은 종종 궁을 떠나 세상을 떠돌았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생겼다. 괴물이 소년의 곁을 오래 비우면 소년은 건강해진다. 비루먹은 팔이 통통해지고 뺨에 생기가 돌았다.

그걸 알게 된 괴물은 소년의 곁에 머무는 시간을 줄였다.

“옆에 있어 주면 안 돼요? 왕님이 없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굴어요.”

다른 사람을 곁에 두었다가 도저히 버티기 힘들면 소년을 찾아와 부족한 잠을 청한다. 그리고 다시 다른 사람 곁에 가서 버틸만한 고통 속에 살다가 다시 소년을 찾았다. 사람의 수명은 짧았다. 괴물은 소년이 죽은 후 혼자 남을 자신의 미래가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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