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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급 에스퍼를 피하는 방법 (102)화 (102/112)

#102

괴물이 소년을 아꼈냐고 물으면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정작 소년이 바라는 것은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편의를 위해 아끼는 쿠키를 베어 먹듯 조금씩 즐길 뿐이었다.

소년을 대체할 사람을 찾기 위해 또 궁을 비우려던 날, 소년이 괴물에게 찾아와 부탁했다.

“이번엔 저도 데려가 줘요.”

“방해돼.”

“딱 한 번만 데려가 줘요. 한 번이면 돼요.”

물에 닿으면 녹을 것 같은 사탕을 쥐고 떠날 멍청이가 어디 있겠는가. 괴물은 소년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했다. 축 처진 어깨를 땅에 닿을 듯 늘어트리고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미련 없이 궁을 벗어났다.

그 외출의 성과는 좋았다. 평소보다 끌리는 인간도 많이 구했고, 흥이 오른 괴물은 평소보다 더 먼 곳까지 다녀왔다.

사람을 채운 마차를 끌고 왕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디선가 매캐한 탄내가 괴물의 후각을 괴롭혔다. 냄새가 날아오는 방향은 그의 도시가 있는 쪽이었다.

괴물은 정신없이 달렸다. 숲의 전경이 실타래처럼 옆을 스치고 움직일 리 없는 달이 가까워진다고 생각할 때 벌겋게 불타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진 틈에 괴물의 왕국 밖에 살던 인간들이 괴물의 도시를 습격한 것이다.

이럴 수는 없다. 괴물은 소년을 찾아 달렸다. 어서 찾아야 한다. 어서.

괴물은 무너진 성벽 사이를 달리며 자신의 보물을 찾았다. 까맣게 그슬린 대리석과 산산조각이 난 왕좌를 치우며 입을 벌렸다.

“……!”

크게 벌린 괴물에 입에선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소년을 부르려 해도 부를 수 없었다. 괴물은 소년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으니까.

“괴물이다!”

“죽여라! 저기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이 있다!”

위협도 안 될 침입자를 친히 잡아 팔다리를 부러트렸다. 소년이 있는 곳을 캐묻고, 모르는 이를 모두 죽였다. 수백 명이 죽고, 마지막 남은 침입자의 입에서 겨우 소년의 위치를 알아내었다.

하지만 그땐 이미 늦었다. 이미 소년은 괴물의 동료란 이유로 습격받고, 상처 입은 뒤였다.

만신창이가 되어 벽난로 속에 숨은 소년을 찾은 괴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걸 살아있다고 표현해도 될 것인가. 이미 끔찍하게 다친 소년의 몸에 손도 대지 못한 채 괴물은 처음으로 하얗게 질리는 공포심에 젖었다. 이건 영원히 해소하지 못할 고통 속에 남을 자신을 향한 두려움일까. 그게 아니라면…….

“……왜 이리 늦었어요.”

“…….”

갈라져 알아듣기도 힘든 목소리로 소년은 이야기했다.

“왕님도 표정이 있네요.”

“치료를…… 아니…….”

이미 불탄 도시에서 어떻게 치유사를 찾아 구한단 말인가. 치료사를 구해도 소년을 살릴 수 있을까. 닿으면 바스러질 것 같은 모습에 괴물은 석상처럼 멍하니 섰다. 소년은 그런 괴물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턱을 덜덜 떨며 겨우 입꼬리를 올렸다.

“다음 생에는 말이에요…… 좀 잘생긴 놈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왕님이 못생겼다고 놀리지 못할 정도로.”

“…….”

“이럴 땐 지금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거예요.”

괴물은 사람을 위로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자신의 감정이 공포와 슬픔이라는 감정조차 알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

“넌…….”

점차 눈이 감기는 소년을 깨우기 위해 입을 연 괴물은 그에게 다른 걸 물었다.

“네 이름이 뭐지?”

“……하… 하……하”

소년은 이제야 이름을 묻냐고 너무 늦은 것 아니냐고 따지고 싶었으나 시간이 많지 않았다. 전신의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다. 격하게 요동치던 가슴팍 울림이 천천히 잦아들고 있다. 소년은 오랜 시간 불리지 못한 자신의 이름을 뱉었다.

“제 이름은 로……한이에요. 저 같은 못난이랑…… 안 어울리죠?”

“……아냐.”

어설펐지만, 소년이 요구한 대로 바로 위로를 덧붙여주는 행동에 소년은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미소 지었다.

“저 이제 졸려요…….”

“눈 감지 마.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줘.”

애원은 항상 소년이 괴물에게 하던 것이다. 그런 소년의 부탁을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던 업보일까. 소년은 괴물의 부탁이 무색하게도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말라붙은 핏자국과 창백한 얼굴 위로 까만 재가 떨어진다. 그제야 괴물은 소년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작은 생명이 천천히 꺼지고 있었다. 희미한 심장 소리가 점점 느려졌다.

아직 늦지 않았다.

소년의 시간이 멈추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유지해야 했다. 괴물은 자신의 힘을 방출했다. 자신의 힘이 소년에게 닿으면 그 남은 불씨를 꺼버릴 것을 알기에 소년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모든 힘을 세상에 풀었다.

통제를 잃은 불타버린 그의 도시부터 주변의 산맥, 커다란 강과 숲까지. 모든 걸 태우고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화려한 대리석 기둥도, 소년에게 선물했던 보석도 모두 가루가 되어 휘날릴 때까지 힘을 방출했다.

완전히 빈손이 된 후에야 괴물은 평범한 손으로 소년을 만질 수 있었다.

괴물은 그제야 알았다. 자신이 두려워했던 것은 소년이 죽은 후 홀로 고통 속에 남겨질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 아이를 잃는 것. 못생겼다 놀리면 볼을 부풀리고 항의하는 행동, 소년의 동그란 눈동자를 보지 못할 미래가 끔찍하게 두려웠다.

괴물은 마지막 남은 생명력으로 자신과 소년의 시간을 멈췄다. 가장 번화했던 중앙 대륙은 그렇게 모래로 변하여 괴물과 가이드의 거대한 안식처가 되었다.

***

“콜록. 콜록.”

“여기 물 마셔.”

눈앞에 건넨 물병을 손으로 쳐냈다. 투명한 통이 귀한 물을 쏟으며 바닥을 나뒹군다. 거절당한 테아로트가 애처로운 표정을 짓는 걸 노려봤다.

“이제 와서 챙기는 척하지 마.”

“그러지 마. 몸이 못 버텨.”

센터가 있는 수도는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이었다. 그런데 지금 반테온이 있는 곳은 수도와 반대로 땀이 흐를 정도로 날씨가 더운 사막 한가운데였다. 반테온은 벗어둔 재킷을 들어 흐르는 땀을 닦았다. 눈앞에는 끊임없는 모래의 바다가 보인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금빛 물결. 내리쬐는 태양에 이글거리는 사막을 찌푸린 눈으로 바라봤다. 왜 사막 중앙에 쓰러져가는 신전 같은 건물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그 폐허 그늘에 기대어 앉았다.

기억이 끊기기 전 마지막으로 목소리가 떠오른다. 감옥에서 탈출한 로한의 말과 그것에 응하는 테아로트의 이야기. 누군지 모를 센터의 내통자가 테아로트라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 어렵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한심하다는 듯 건넨 질문에 테아로트는 눈을 휘며 웃었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는 듯 당당한 미소다. 지금껏 반테온이 알던 테아로트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건 너답지 않잖아.”

“나 다운 게 뭔데?”

테아로트는 앉아있는 반테온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모래바람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반테. 로한은 왕국을 무너트릴 거야. 왕족부터 귀족까지 모조리 없애고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고 했어.”

반테온이 고개를 들었다. 로한이 현 왕조에 불만이 있는 건 알았으나 테아로트가 동조할 이유는 없다. 그 역시 현 체계의 혜택을 받으며 자라온 귀족이다.

“새로운 세상에선 아무도 우릴 비난하지 않을 거야.”

“뭐?”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네가 미쳤구나.”

혈족 간 가이딩 금지라는 법률을 없애기 위해 왕국을 멸망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말도 안 되는 짓거리에 속에서 절로 욕설이 올라온다. 찌푸린 얼굴로 테아로트를 비난해도, 그는 반테온의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웃었다.

후끈한 열기에 흐르는 땀을 닦고 넝마가 되어가는 재킷을 테아로트에게 신경질적으로 던졌다. 여유롭게 받아 든 테아로트는 재킷을 반테온이 몸을 기댄 기둥에 걸어 그늘을 만들었다. 신경 써주는 태도는 전혀 고맙지 않다.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와 충격적인 사건에 머리가 어지럽다. 미쳐가는 테아로트의 꼴도 보기 싫고, 버적거리는 모래 가루도 거추장스럽다.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았다.

“…….”

지금쯤 반테온이 납치된 사실을 센터에서도 알고 있겠지. 로한의 탈옥도 파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왕국에선 어떤 반응을 보일까. 구조팀을 꾸린다면 얼마나 걸릴까. 그리고…….

델로즈는 어떻게 반응할까.

눈꺼풀 너머로도 열기가 느껴지는 더위 속에서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델로즈와 만나자고 약속한 시간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겠지.

만약 이렇게 끌려간다면 이전의 만남이 마지막일 것이다. 이런 순간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 녀석이 생각나다니. 가시처럼 박혀 떨어지지 않더니 어느새 뽑지도 못할 만큼 깊숙이 들어와 버렸다.

델로즈는 반테온을 구하러 올 것이다. 그는 아직 반테온을 좋아하고 있으니까. 공적인 관계로 돌아가겠다고 약속하면서도 끝까지 반테온을 향하던 시선을 모를 리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은 잘해줄 걸 그랬나. 후회란 언제 해도 늦은 행위란 걸 알면서도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은 눈 위로 그림자가 진다. 뜨거운 열기로 데워진 뺨 위에 불 같은 온기가 닿았다.

“……!”

눈을 뜨자 시야를 가리는 테아로트의 팔이 보인다. 뺨을 쓸어내리는 행동에 놀라서 팔을 쳐냈다.

“뭐 하는 짓이야.”

“기댈래?”

“허락 없이 닿지 마. 징그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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