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J로 산다는 것
1화
프롤로그
“아, 지선하트 님 별풍선 100개 후원 감사해요.”
나는 BJ다. 파프리카TV에서 종합 게임 방송을 하고 있다.
―선택지 2번으로 혹시 가능할까요? 궁금해서
―겨우 그거 때문에 100개 ㄷㄷ
―정환이 착해서 10개면 해줘요!
―제가 평소에 이 방송 좋아해서요ㅎㅎ
시청자 수 2~300명.
간신히 하꼬는 벗어난 그럭저럭한 중소기업이다. 그래도 방송 연수가 차서 대부분 고정 시청자다.
―철꾸라지UP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정환이 너 방송 느낌 있던데 왜 보라 안 하냐? ㅋㅋ
하지만 간혹 유입도 있다. 아이디부터 대기업 BJ의 팬. 편견을 갖지 않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해 왔다.
―요즘 종겜비 수금 말랐는데 왜 함? 보라 하면 큰손들이 1, 000개 단위로 떵떵 넣어주는데~―뭐지 저 새끼;;
―즈그 주인 욕 먹이고 있네
―물 흐리지 말고 니 좋아하는 보라로 꺼져라
채팅 창에서 싸움이 난다. 딱 봐도 주제에 안 맞는 이야기를 혼자 떠들고 있으니 당연하다.
―그냥 여캠이랑 합방해서 주물주물하면 된다니까? 입 좀 털고 스토리 만들면 돈방석인데 난 도저히 이해를 못 하겠다 ―나도 니 이해를 못 하겠음;;
―좀 꺼지라고
―정환아 쟤 밴 좀 해주면 안 될까 ㅠㅠ
사실 저 시청자의 말도 틀리진 않다. 파프리카TV에서 종합 게임 방송이라니? 인터넷 방송을 조금만 알아도 미스 매치라는 걸 깨닫는다.
대부분은 토이치TV 쪽으로 이적했으니까. 방송을 보는 팬덤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했다 보니 남아있다. 이렇게 고정 시청자가 있기도 하고.
그리고 솔직하게 미련 또한 남아있고. 쓴웃음을 지으며 소란을 진화하려던 찰나.
―리멤버로드킹 님, 별풍선 1, 000개 감사합니다!
아니, 로드킹 오정환을 모름? 몇만 명씩 보던 보라킹을?? 개씹 유입 새끼가 지 주인 닮아서 채팅 창 흐리고 있네
열혈 형 한 분이 화가 단단히 나셨다. 아무래도 하루 이틀 방송한 게 아니다 보니 예전에는 다른 콘텐츠도 자주 진행했다.
―뭔 개소리야. 보라킹은 철꾸라지지ㅋㅋㅋㅋ
―와 X발 혈압
―열혈 형님 참으세요;;; 정환이가 강퇴할 거임
―그때는 니 주인이 정환이 똥받이였던 건 아냐??
옛날이 무슨 소용인가? 결국 지금이 중요한 거지. 잠시 도네를 끄고 시청자들의 싸움을 제지한다.
“창수 형 1, 000개 너무 고마워요. 저도 형 마음 아니까 노여움 푸시고요. 100개 쏴주신 철꾸라지 팬분은 저보다는 그분 방송 가는 게 맞을 것 같아요.”
―역시 킹정환!
―저런 악질도 잘 다루네ㄷㄷ
―근데 열혈 형님이 너무 멋있다
―풍으로 싸움 나면 BJ만 개이득ㅋㅋㅋ
돈도 벌고, 소란도 제지하고 일석이조. 그렇게 생각을 하기에는 나도 열정이 많이 식었다.
‘돈 벌려고 방송하던 시기는 지났지.’
그냥 하나의 직업이다. 동시에 망령. 아쉬움을 채 털어내지 못하고 붙어있는 지박령 말이다.
그렇다. 아직도 파프리카TV에서 방송을 하는 건 미련 탓이다. 과거처럼 되고 싶어서? 그건 절대로 아니다.
―정환아… 근데 너 진짜 보라는 다시 안 하냐?
―이걸 열혈이?
―2차전ㅋㅋㅋㅋ
―그때 얼마나 좋았는지 하;; 됐다. 미안해. 내가 술 마셔서
열혈 팬임과 동시에 내 방송을 정말 오랫동안 봐준 애청자이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된 것이다. 그의 아쉬움도 백분 이해한다.
‘나에게 조금만 더 힘이 있었다면…….’
나라고 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 너무 더러워졌다. 다시 발을 담그기에는 밑바닥도 안 보일 구정물이 되고 말았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로 생긴 폐해. 보라 쪽 콘텐츠를 자신들의 인맥으로 장악했다. 여러 가지 어른들의 사정까지 얽히자 구역질이 나왔다.
스스로 하지 않게 됐다. 그럼에도 BJ는 해야 했기에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그냥 한마디로 말하자면.
‘퇴물이지.’
방송이 끝나고 지친 몸을 털썩 침대 위에 눕힌다. 몸도 나이가 들었는지 이불솜에 젖어든다.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기에는―
‘늦었기도 하고.’
누구나 한 가지 정도는 있을 것이다. 후회. 내가 만약 ~했더라면. 그런 시답잖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쿡쿡 찌른다. 그 마음이 남들보다 조금 더 강할 뿐.
잠이 들기 전이면 항상 생각한다. 다시 한번 인생을 살 수 있다면… ‘반드시 다를 텐데.’라고.
* * *
따르릉♪
갑작스러운 전화. 눈이 번쩍 떠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여보세요?”
잠이 덜 깬 탓에 목소리가 잠겼다. 그럼에도 평소보다 높은 톤. 그 시점에서 깨달아야 했을지도 모른다.
<어, 나네. 오늘은 30분 더 일찍 오라고.>
“네?”
<어제 내가 봤는데… 용품이 텅텅 비었어~! A4 용지, 호치키스 심, 커피까지! 일찍 와서 그런 거라도 채워놓으란 말이야!>
대체 무슨 말인지. 발신자는 자기 할 말만 마치더니 전화를 끊었다.
‘뭐야, 이 아저씨는.’
그리고 대체 누구인지. 굳은 머리로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모르겠다. 이 정도로 일상 회화를 주고받을 만한 인간이 최근에는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나이가 어느새 서른이 넘었다. BJ라는 일반적이지 않은 직종에서 내내 일해 왔다.
A4 용지라든지, 호치키스라든지 그런 사무적인 단어를 마지막으로 들었던 건.
‘군대를 전역하고 아르바이트를 뛰었을 때… 어?’
눈앞에 보이는 스마트폰. 그래, 스마트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물론 기종은 조금씩 다를 것이다. 내가 쓰던 건 갤럭시 S10. 그런데 지금 내 손에 들린 건 아이폰4.
‘오? 오오?’
한 손에 쏙 감기는 특유의 그립감. 손으로 탈칵 누를 수 있는 홈 버튼.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유산이라 불리던 그 아이폰4가 맞다.
신기한 일이다. 오랜만에 만지니 존나 재밌다! 하지만 지금은 ios 지원이 끊겨 카카오톡조차 안 될 텐데.
「간 김에」
「내가 항상 피우던 것도 두 갑」
‘…….’
아까 그 아저씨인가?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는 것을 보니 따끈따끈한 신상 카톡이 맞을 것이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상황. 하지만 한 가지 전제하에서라면 모든 퍼즐이 맞춰진다.
「2011년 10월 12일 화요일」
혹시나 해서 조금 올려보자 있다. 카톡을 보내온 날짜. 스마트폰의 현재 날짜도 같은 날을 가리킨다.
‘과거로 돌아왔다고?’
잠이 들기 전이면 항상 생각하던 꿈이다. 막상 현실로 닥쳐오자 어안이 벙벙하다.
조금 정신을 차릴 시간을 갖는다. 잠이 덜 깼으니까. 인간의 뇌는 원래 보고 싶은 걸 보고, 듣고 싶은 걸 듣는다. 비몽사몽한 탓에 헛것을 보는 걸지도 모른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세수를 하고 집 안을 구석구석 살피며 확신할 수 있었다.
‘X발!’
인간의 희로애락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만능의 단어. 그 한 마디가 내 심정을 대변해 준다.
여덟 평 남짓한 화장실 딸린 작은 원룸. 그 안에 있는 건 최소한의 생활 가구. 내가 한창 학생으로 살던 시절의 모습이다.
‘그리고 2011년의 10월.’
정말이지 식은땀이 흐르는 상황이다. 과거로 되돌아온다? 그런 상상을 해도 한 가지만큼은 저울질한다.
제발, 전역 후로 해달라고! 무슨 싸이도 아니고 군대를 두 번이나 가. 그러면서도 갈 만하나… 하는 생각도 동시에 떠오른다.
다행히 안 가도 된다. 2011년의 10월은 내가 막 전역했던 직후다.
연장선상에서 생각하자 걸려왔던 전화도 이해가 간다. 사무직 아르바이트.
아무래도 한창 돈이 필요하던 시기다. 복학까지 시간도 죽일 겸 했었던 것이 기억난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 삼키는 걸 잊었다. 난데없이 떨어진 기회. 하지만 분명한 현실이고 마음만 먹으면 큰 기회가 된다. 그것도 엄청난.
그럴 만한 능력이 있으며 방법 또한 안다. 어떻게 해야 최고의 BJ가 될 수 있는지 그 길을 말이다. 사실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솎아내는 거지.’
이전 생에서의 후회. 다시 사는 생에서는 결단코 남기고 싶지 않다. 당장 실천에 옮기고 싶은 것부터 하나 떠오른다.
‘아르바이트 시절 꼰대 부장님.’
제발 한마디 먹여주고 싶었다.
* * *
사무직 아르바이트.
과거의 내가 용돈을 벌기 위해 알바천국을 통해 찾은 이름 모를 중소기업이다.
타닥, 타다닥닥!
하는 일은 딱히 별거 없다. 서류 정리와 기타 등등. 한 마디로 정의하면 그냥 잡일이다.
“정환 씨, 바빠?”
“예, 아직 시간 좀 걸립니다.”
“그러면 그거 끝나고라도 괜찮으니까… 정수기 물 좀 채워줘. 괜찮지?”
“네, 알겠습니다.”
사무실 옆옆 자리. 미래의 나보다도 나이가 있으신 듯한 누님분이 말을 걸어온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받아주면 될 것이다. 9년 전의 과거. 일일이 기억이 난다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다. 위치도 알바천국에 남아있는 덕에 겨우 찾았다.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일하고 있다. 어색한 티가 나지 않도록 말이다.
“오, 정환이~”
그럼에도 뇌리에 선명하다. 사람의 두뇌란 원래 나쁜 기억이 더 오래 남는다. 그러니까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은.
“부탁한 건?”
“A4 용지, 호치키스 심, 맥심 모카골드, 포스트잇 등 다 채워놨고 담배는 부장님 책상 위에 올려두었습니다.”
“크~ 우리 정환이 일 잘해.”
나쁜 기억의 표본이다. 내가 일하던 부서의 부서장. 남이 편하게 있는 걸 절대로 못 보는 부류다.
‘전화를 하셨던 분이기도 하지.’
원하는 대로 모든 걸 다 채워두었다. 꼬투리 잡힐 일 자체를 남겨두지 않았다.
물론 담배는 뭘 피우는지 몰라 난감했다. 근데 어차피 에쎄다. 틀딱들이 피우는 게 그거지. 적당히 샀고, 적당히 잘 맞은 모양이다.
“그래, 일 열심히 하고. 돈도 받아가고! 사회가 그런 거야.”
“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뺀질뺀질하더니 말이야~”
“…….”
물론 당시의 생각이다. 나이가 들고 보니 다른 생각도 인다. 직급도 있는데 열정적으로 일을 하시네?
모르긴 몰라도 회사 입장에서는 바람직하다. 그런 것 가지고 원한을 갖진 않는다. 다만 한 가지가 너무 트라우마였다.
“열심히 한 정환이한테 상을 줘야지.”
“아, 괜찮습니다.”
“뭐가 좋을까…….”
“정말 괜찮습니다.”
“옳지! 김밥이 감옥에 간 이유를 아나? 참기름이 고소해서라네, 허허허!”
“…….”
평생 들을 아재 개그를 스물세 살의 어린 나이에 전부 들었다. 그것도 네이티브한테.
‘X발!’
네거티브한 X발이다. 일만 곱게 시키지 귀까지 고문을 해. 그때는 뭐라 하지도 못하고 같이 웃어주기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정색하고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그럼에도 전혀 개의치 않고 한 건 했다는 듯 웃음을 흘린다.
그럼 그렇지. 그 정도로 깨달을 수 있을 만큼 눈치가 있으면 아재 개그도 치지 않았을 것이다.
‘방법은 하나뿐이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두 번 다시 아재 개그를 입에 담지 못할 몸으로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