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눈에는
“하하하!”
일이 끝나고 회식 자리.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고막을 찌른다. 강요는 아니지만 아르바이트인 나도 오게 되었다.
‘개꿀이거든.’
회식에 가면 막 끌려다니고, 귀찮을 것 같고 그런 이미지가 있지만 나에 한해서는 괜찮다.
치이익……!!
공짜 밥을 먹을 수 있으니까. 돼지갈비가 아름답게 구워지고 있다. 그 광경을 아름답다 말고 표현할 단어가 있을까?
“너무 타는 거 아니야?”
“직접 구울래요?”
“아니, 내가 굽겠다는 건 아니고~”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아르바이트생은 회식비를 안 내도 되는 대신 잡무가 이어진다.
원래 한국 사회는 어린 사람이 굽는 거라 억울하진 않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
여직원 하나가 투덜댄다. 고기의 굽는 정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다가 숟가락으로 맞아봐야 정신 차리지.’
고깃집에서 가위 든 사람한테 토 다는 거 아니다. 국룰이야.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굽는 방식에 타협은 없다.
‘돼지갈비는 자주 뒤집으면 안 돼.’
육즙도 빠지고 불향도 안 배서 무슨 찜처럼 돼버리거든.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적절하게 익었다 싶을 때 서걱! 서걱! 호쾌하게 자른다. 절단면을 타고 먹음직스럽게 떨어지는 육즙이 이 돼지갈비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먹자! 먹자!”
“맛있게 잘 익었네~”
직원들이 게걸스럽게 달려든다. 나의 작품을 음미하는 것이다. 풋고추랑 밑반찬만 주워 먹다 고기를 먹게 되니 정신 못 차리지.
집게랑 가위를 채 내려두기도 전에 벌써 반이 사라져있다. 자기 접시로 다 가져간 것이다. 애써 구운 입장에서 힘 빠지는 광경이지만.
‘괜찮아.’
진짜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뼈 부분.
먹기 힘들기도 하고 살점도 별로 없어서 소외된다. 게다가 타있어.
내 머릿속에서는 이미 숟가락으로 한 대 때린 여직원처럼 깔끔 떠는 애들은 안 먹는다. 부족한 식견 때문에 인생의 절반을 손해 보고 만다.
‘가위로 탁탁! 자르면서 먹으면 어?’
고기도 적당히 먹었겠다. 이 레스토랑의 메인에 손을 댈 시간이다. 간만의 돼지갈비는 아무리 나라도 들뜰 수밖에 없었는데.
“오~ 뼈가 잘 익었네.”
“…….”
“요즘 애들은 깔끔 떤다고 이 맛있는 걸 안 먹어. 가죽을 벗기듯이 이렇게 이로 크하~!”
그 부장이 가로채서 미식가 행세를 해댄다.
X발.
입천장까지 홀랑 다 데서 고기 한 점도 더 못 먹었으면 좋겠다.
‘괜찮아.’
공짜 밥? 돼지갈비? 그런 게 고팠던 것도 과거의 나다. 왜냐면 당시에는 배고픈 학생이었다.
밥 사준대. 그것도 고기 사준대! 환장하지 그냥.
지금의 나는 그러려니 한다. 어제만 해도 초밥을 배 터지게 먹었다. 그 어제가 9년 후라서 문제지.
작금의 현실을 깨닫는다. 확실히 젊은 육체는 고기를 필요로 한다.
“우리 막내 잘 먹네!”
“한 잔 적셔, 한 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도 모르게 포식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권해 받는 신의 음료. 3 대 7의 황금빛 소맥으로 위장을 적신다.
위이잉~!
그리고 어느새 택시. 윙윙거리는 바퀴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
나도 모르게 즐기고 말았다. 회식 자리가 생각보다 재밌었다. 술이 들어가다 보니 그런 감도 있다.
“맥주가 죽기 전에 남긴 말이 뭔지 아나? 유언비어라네, 허허허!”
“하…….”
그렇게 취해도 이 아저씨의 개그는 하나도 재밌지 않다. 택시에 동석한 사람은 안타깝게도 그 부장이었다. 가는 길이 겹쳤기 때문이다.
맨투맨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반응을 안 해도 술기운에 신났는지 계속 떠들어댄다.
“깔깔깔! 부장님 넘모~ 웃깁니다. 저어도 유머를 좋아하는데 한번 해봐도 되겠습니까?”
“좋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스스로는 안 멈춘다면 맞불을 놔드려야지.
“사자가 죽으면 뭔지 아십니까?”
“라이온? 데스? 하, 모르겠네~”
“저승사자입니다.”
“허허허!”
굉장히 흐뭇해하신다. 아주 취향을 저격해 버린 모양이다. 이어서 진짜로 꼭 드리고 싶었던 말을 전달한다.
“그럼 부장님이 죽으면 뭔지 아십니까?”
“뭘까? 뭐지? 항복! 항복!”
한 10초. 골똘히 고민하더니 항복하신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고한다.
“알고 싶지 않으면 앞으로 말조심하십시오.”
“…….”
회사에서 개그 치기 전에 아드님께 꼭 해보고 반응 좋으면 하라고. 일까지 많이 시키는 상사가 말도 많으면 직원들 노이로제 걸리니까.
직원들 입장에서는 할 수가 없었던 말. 나로서도 반드시 알려주고 싶었던 말. 잊히지 않도록 뇌리에 박아준다.
덜컥―!
술 깨고, 정신 차리면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뭐 어쩌라고? 어차피 더 볼 일도 없는 사람이다.
택시의 문을 닫고 나온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다.
* * *
BJ. 다른 말로 스트리머. 용어는 달라도 결국 인터넷 개인 방송을 하는 방송인의 통칭이다.
‘정확히는 조금 구분되는 요소가 있긴 한데.’
시작 단계에서는 비슷하다.
그 시작. 나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쌓아나가야만 한다.
어째서? 따질 것도 없이 당연하다. 그동안 쌓아온 수익은 물론 팔로워와 고정 시청자들이.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X발, 사라졌으니까.
사실 스트리머 입장에서 과거로 돌아온 건 이점만이 아니다. 특히 나처럼 팬이 많은 BJ에게는.
한때였다고는 해도 전성기가 있었다. 수십만에 달하던 팔로워가 증발한 셈이다.
RPG 게임으로 따지면 캐삭을 당했다. 그것도 잘 키우던 높은 레벨 캐릭이 말이다. 다시 시작할 의욕을 잃게 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재밌어.’
그럼에도 지금 내 입가는 흥에 겨워있다. 부장님에게 한 방 먹여서? 그런 건 그 자리에서 이미 훌훌 털어낸 지 오래다.
세상은 게임이 아니다. 레벨에 한계치도 없으며, 성장에 왕도도 없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은 식었던 열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딸칵, 딸칵!
방송 장비를 세팅한다. 어제 아르바이트 장소에 다녀온 진짜 이유이기도 하다. 빠르게 돈을 받아야 했으니까.
‘BJ를 하려면 최소한의 장비는 있어야 하거든.’
아침 일찍 용산 상가에 들러 사왔다.
컴퓨터, 마이크, 그리고 캠.
BJ의 장비라는 게 작정하고 맞추면 정말 얼마를 쏟아부어도 부족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그렇게 많이 들진 않는다.
‘그 기본적인 것도 한두 푼은 아니라서 문제지.’
마이크와 캠 정도는 타협이 가능하다. 문제는 컴퓨터.
물론 학생 시절의 나도 컴퓨터 정도는 있었다. 그것이 구형이라서?
그래도 웬만한 게임은 잘 돌아간다. 성능이 아주 나쁘다고 볼 수준은 아니다.
‘방송을 하려면 아슬아슬한 수준으로는 안 돼.’
상위 스펙으로의 업그레이드가 필수불가결하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비 대부분을 쏟아부었다. 덕분에 그럭저럭 구색을 갖추었다.
『방송을 시작하시겠습니까? Yes / No』
방송은 방송국>방송 다시보기에 자동 업로드됩니다.
지체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세팅도 마쳐놓았고 이대로 누르기만 해도 방송 시작이다. 바로 이렇게 말이다.
『대화방이 개설되었습니다. 즐거운 채팅 되시길 바랍니다.』
대화방. 채팅 창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다. 내 첫 방송의 채팅이 열리게 된 숭고한 순간이다.
‘물론 이것으로는 부족해.’
당연히 부족하다. 대화방이 개설되면 뭐 해. 그 대화를 할 사람이 나 혼자뿐인데. 혼잣말로 채팅 창에 전세라도 낼까?
그렇다. 정신 나간 소리 같지만 BJ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이게 진담이라는 걸 알 것이다. 방송을 켠다고 사람들이 줄 서서 와주는 게 아니다.
마치 식당과도 같다. 파리만 날리는 식당? 들어갈 엄두 자체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친척이나 지인 불러서 개업식 열잖아.’
마찬가지인 일이다. 친구한테 부탁하거나 그게 안 되면 스스로 한다. 다른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시청자 행세를 하는 것이다.
새로이 방송을 시작하게 된 현재. 나는 찬물, 더운물 가릴 입장이 아니다. 그렇게라도 방송을 본궤도에 올려놓는 게 맞지만.
‘다른 방법도 있지.’
일반적이지 않은 방법. 어떤 일이든 지름길은 존재한다. 보다 빠르게 시청자 수를 확보할 수 있는 꼼수 말이다.
바로 전문성이다. 시청자들이 이 방송을 보는 이유를 보다 명확히 한다. 정의를 하자면 그렇다는 느낌이고.
‘그냥 롤 방송, 배그 방송, 시계 방송 이런 거.’
한마디로 게임 잘하는 방송. 이 사람이 누군진 모르지만 게임을 잘한다고 하니 봐야지!
이래 봬도 미래에서 돌아왔다. 게임도 상당히 잘하는 편이다. 작정하고 하면 전문 게임 방송도 못 할 것은 없다.
『LOL 한국 서버 Open ― 2011년 12월 4일』
『오버워치 출시일 ― 2016년 5월 24일』
『배틀 그라운드 출시일 ― 2017년 3월 23일』
한 가지 사소한 문제가 있을 뿐. 게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X발!’
그나마 LOL은 지금도 있기는 하지만 한국 서버가 오픈하기 전이라 국내 인기가 바닥이다. 즉, 대중적이지 않다.
2011년의 10월이라는 날짜. 시계태엽을 돌려도 너무 돌렸다. 그렇게 창고를 뒤지듯 옛날 기억을 되짚다 보면.
『PC방 점유율 종합 게임 순위』
1. 아이온 RPG
2. 단풍잎스토리 RPG
3. 서든어텐 FPS △1
4. 던전앤파이팅 RPG ▼1
5. 피파온라인2 Sports
이따금 생각지도 못한 보물을 발견하기도 한다. 2011년 10월의 게임 순위. 낯익은 게임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실 당연하긴 해.’
순위에 있는 게임 대부분이 9년 후까지 운영이 되니까. 피파온라인2가 4가 되고, 서든어텐2가 있었는데 없어진 정도다.
하지만 두 가지만큼은 크게 다르다. 1, 2위. 그중에서도 내가 눈여겨보는 것은 2위인 단풍잎스토리다.
‘아이온은 어차피 방송용으로는 부적합해서.’
게임이 무겁다. 보는 맛도 애매하다. 그러한 이유 탓인지 아이온으로 성공한 BJ는 없다.
반대로 단풍잎스토리와 던전앤파이팅. 가벼우며 편한 접근성 덕에 이 두 게임으로 성공한 BJ가 많다.
구독자 400만 명의 ‘보황’이나 팔로워 50만 명의 ‘펑이조’. 어느 쪽이든 딱히 부럽거나 하진 않다.
개인 방송인은 각자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그 사람이 그 게임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건 결코 아니다.
‘실제로 나중에는 다른 콘텐츠를 더 메인으로 삼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건 있다. 그 방송인의 근본이자 지지 기반. 여차할 때 힘이 되어주는 탄탄한 고정 팬층 말이다.
나는 솔직히 어쩌다 보니 방송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뜨게 됐고, 흘러가듯 마음대로 하다 보니 방송인 오정환으로서의 근본은 까놓고 없었다.
두 번째 사는 인생. 대들보부터 단단하게 세워볼 생각이다. 던전앤파이팅은 양보하더라도 단풍잎스토리는 욕심이 있다.
‘욕심이라기보단 후회에 가깝지.’
펑이조는 스카니아 서버의 고레벨 유저다. 이를 기반으로 방송을 빠르게 성장시켰다.
그 기회는 사실 나에게 주어져야 했다. 나 또한 스카니아의 고레벨 유저. 당시에는 BJ가 아니었다 보니 할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
고작 그런 시기 같은 이유로?
‘아니.’
내가 곧 스카니아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