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메이플 스토리?
기회.
그것은 예고도 없이 뚝―! 떨어진다. 하지만 이를 잡는 건 철저한 실력이다. 아무리 좋은 기회라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리고 나는.
―헤네일찐펑이조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님이 그래서 펑이조보다 나은 게 뭐임? ㅋㅋ 펑이조는 일비 10줄씩 쓰는 초갑부야
그 준비가 차고 넘치게 되어있다.
새로이 시작하는 방송. 당연하게도 환영하는 이들만 있는 건 아니다.
‘굴러 들어온 돌의 신세는 어딜 가든 비슷해.’
밉보는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어떻게 대처를 하느냐. 어그로 취급하며 철퇴를 때리는 건 하책(下策)이다.
“그럼 제가 반대로 물어볼게요. 제 친창에 일비 열 줄 없는 표도가 몇 명이나 있을 것 같아요?”
상책(上策)은 증명이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잘난 척이 아닌 선에서 우리 집도 금송아지 정도는 있다고 가르쳐준다.
[친구 관리]―온라인
첬첬―LV185 표도
프로―LV197 성직자
알사탕k―LV200 성기사
핫개―LV200 히로
미들마치―LV185 표도
q샤키노p―LV191 표도
…
…
소위 친창이라 불리는 그것이다. 친분이 있는 유저들을 이렇듯 등록해 둘 수 있다. 그 한 명 한 명이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컬처 쇼크다.
―ㅁㅊ 다 네임드네;;
―첬첬도 있어!
―흑백 길드 길마 아님? 나 거기 가고 싶은데
―흑백 2기도 최소 4차 전직 이상…….
일비는 굉장히 비싼 표창이다. 대충 하나에 현금으로 2~3만 원.
이때만 해도 현질이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었고, 물가도 훨씬 낮았다는 걸 고려하면 터무니없이 비싼 아이템이다.
‘그게 최소 여섯 줄은 있어야 사냥이나 레이드를 아슬아슬하게 할 수 있으니까.’
한 줄에 네 개. 즉, 여섯 줄이면 스물네 개고, 열 줄이면 40개다.
심지어 아이템은 아이템대로 맞춰야 되기 때문에 표창 값의 부담은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생긴 문화다. 표창을 어떤 걸 쓰느냐? 그것이 해당 유저가 얼마나 돈이 많은지 재는 척도 역할을 했다.
“레이드 뛰는 표도들은 기본적으로 일비 열 줄은 갖춰요. 그냥 기본이에요, 기본.”
―기본 ㄷㄷ
―기본이 100만 원임?
―아이템도 개당 100만 원 넘지 않나;;
―개쩐다. 진짜 다른 세상 맞네
상위권 유저들에게는 당연한 일. 일반 유저들에게는 놀라움의 대상일 수 있다.
각을 잡고 진지하게 말하니 내가 다 무안하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기껏해야 RPG 게임의 고레벨이다. 사실 시간과 돈만 투자하면 누구라도 가능하다.
“얘네들처럼 단풍잎에 인생 ㅈ박으면 쉬운 일이에요.”
―ㅈ박아서ㅋㅋㅋㅋ
―필터링 안 거치는 거 보소
―이 집 재밌네 ㅎㅎ
―환피셜) 펑이조는 단풍잎에 인생 ㅈ박았을 뿐이다
아니, 뭐 진짜로.
냉정하게 말하면 이게 현실이다. RPG 게임의 고수라는 건 필연적으로 겜창 인생일 수밖에 없다.
AOS나 FPS처럼 엄청난 피지컬 컨트롤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니까. 투자한 시간만큼 정직하게 강해지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나로23세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아니, 말 싸가지 없게 하네……. 첬첬 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인데
물론 개인 방송.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다. 그중에는 소위 말하는 ‘불편충’도 섞여있다.
한 후원 메시지를 기점으로 채팅 창이 시끄러워진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는 일부 시청자들이 난리를 피워댄다.
‘개인 방송이 힘든 이유지.’
식당에서 손님들이 컴플레인 걸어오는 게 골칫거리이듯 말이다.
여러 사람들의 입맛을 전부 만족시켜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어렵지도 않은 일이다.
오정환[스카니아―15]<< 님아 왜 공부 안 하고 단풍잎에 인생 ㅈ박음?
첬첬[스카니아―20]>> ??
첬첬[스카니아―20]>> 닥쳐 X발ㅋㅋㅋㅋ
―이걸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빠꾸가 없네
―빡친 거 아님?
―이러다 친삭 당하면 어쩌려고;;
날로 베테랑 BJ가 된 게 아니니까. 매콤하게 볶아주면 웬만한 사람들은 다 좋아한다.
‘이전의 미적지근한 맛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본인에게 직접 물어본다. 이보다 더 확실한 해명은 없을 것이다. 기분이 상할 수 있다는 사소한 문제가 생기긴 하겠지만.
오정환[스카니아―15]<< 나 파프리카TV 방송 중인데 시청자들한테 인사해 줘첬첬[스카니아―20]>> X발ㅋㅋ첬첬[스카니아―20]>> 시청자한테 나 파는 거?
첬첬[스카니아―20]>> ㅇㅋㅇㅋ 시청자님들 정환이 방송 재밌게 봐주세요
―대박…….
―첬첬 님이 저런 면도 있네ㄷㄷ
―스카니아 길드 랭킹 3위 길마랑ㅋㅋㅋㅋㅋ
―진짜 클라스가 다르긴 하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으레 그렇듯 친한 사이에서는 괜찮다. 원래 친구라는 게 뭔발 뭔랄 하면서 지내는 거지.
시청자들 시선에서는 재밌다. 우러러보던 고레벨들의 장난스러운 대화가 말이다. 이런 사소한 행위까지 콘텐츠가 된다.
‘이래서 시기라는 게 중요한 거야.’
기회. 준비된 자만이 잡을 수 있다고 하지만 애초에 기회라는 걸 모르면 도로 아미타불이다. 때문에 적절한 시기에 주저하지 않고 잡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절만 해도 흔치 않았다. 단풍잎스토리의 고레벨 랭커. 학생 시절 플러스 상근 복무 때 심심해서 했던 게임이 쏠쏠한 기회로 수확되고 있다.
―보라팡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펑이조 시청자 다 빨렸네ㅋㅋㅋㅋ
물론 어떤 이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 * *
마이웨이만 걷던 독특한 랭커, 오정환이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일련의 소식은 커뮤니티를 타고 일파만파 퍼져 나간다.
―오정환 진짜 방송하는데?
―그래서 오정환이 누구야!
―오정환 모르면 4차 전직도 못 한 뉴비 ㅅㄱ
…
…
특별한 홍보나 트러블 없이 자연스럽게 말이다. 단풍잎스토리를 하는 BJ의 수가 극단적으로 적다.
하물며 ‘인정’받는 랭커는 없다시피 하다. 여느 RPG 게임이 그러하듯 마찬가지다.
고레벨 유저들은 자부심이 엄청나게 세다. 웬만한 수준으로는 오히려 트집만 잡힐 정도인데.
―진짜로 오정환 님 방송하나요?
혹시 레이드도 하시나
보고 배우고 싶은데…….
└헐 오늘도OTZ 님;;
└베라 서버 공대장 아니신가
글쓴이―저도 공대장이긴 한데 부족한 점이 많아서요
└와… 이분 같은 초고수도 한 수 접고 들어가네
오정환에 한해서는 이견이 안 갈린다. 일반 유저들보다 고수 층에게 더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게 스카니아는 단풍잎스토리의 근본과도 같다.
『카쿰… 드디어 쓰러졌다. 전설을 써 내린 스카니아 24인 원정대!』
『난공불락 라테일! 스카니아 30인 원정대 16인 희생 끝에 격파』
『카오스 카쿰 출시 1개월 만에? 최초 격파 팀 ‘오정환’ 원정대』
가장 많은 유저 수. 오래된 역사에서 기반된 전력. 새로운 보스 몬스터가 나올 때마다 가장 빠르게 격파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항상 있었다, 오정환이라는 유저가. 처음에는 공대원이었지만 어느샌가 가장 유명한 공대를 이끌고 있다.
―고레벨 유저 관점에서 오정환 님이 대단한 게, 최초 격파 그런 것도 그런 거지만 사실 진짜는 공대 관리 능력이죠~└그분이 처음으로 라테일 원정대 2파티로 줄이지 않음?
글쓴이―ㅇㅇ 그러면서 성공률 유지하는 게 엄청남
└지금은 10인으로 한다던데…….
└친창 말로는 1주일에 최소 10억은 떨어진다고 ㄷㄷ
1, 000만 골드에 4~5000원 하던 시절. 레이드로 벌어들이는 금액은 용돈 수준이 아니다.
고레벨 유저들의 상급 공대에 대한 갈망은 필사적일 정도다. 그 공대를 가장 잘 이끌기로 유명한 오정환이 방송을 한다?
다른 서버 유저들도 비결을 배우고 싶어 줄을 선다. 필연적으로 엄청난 이목이 쏠린다.
까득!
커뮤니티의 상황을 지켜보던 펑이조는 손톱을 물어뜯는다. 도저히 상상도 안 해본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아니,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스카니아의 유일한 고레벨 방송. 펑이조는 그 블루 오션의 최대 수혜자다. 경쟁자의 등장에 가장 손해를 보는 BJ이기도 하다.
하루 만에 시청자 수가 거의 반토막이 났다. 베일에 쌓여있던 오정환이라는 랭커, 그가 방송을 시작해 버린 여파다.
‘이 새끼 방송 처음 하는 거 맞아?’
물론 방송은 레벨이 전부가 아니다. 진행 능력이 부족하면 결국 한계가 온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오정환의 입담은.
―오정환 방송 개웃기네ㅋㅋㅋㅋ
시청자가 흑백 길마한테 말 싸가지 없게 한다고 따졌더니 귓으로 진짜 쌍욕 때려버림ㅋㅋㅋㅋㅋㅋㅋ└흑백 길마? 첬첬한테?
글쓴이―ㅇㅇ
└친삭 당하면 방송 사고겠네…….
└그만큼 친하니까 가능한 거지ㅋ 진짜가 나타났다!
자신도 보다가 어이가 없어 피식 했을 정도다. 무리수가 될 수 있는 줄타기를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경험이 있는 건지, 천부적인 건지는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대로는 위험해.’
펑이조의 방송이 단기간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풍잎스토리 고레벨과 스카니아 서버라는 이 두 가지 키워드가 절반 이상이다.
콘텐츠가 겹치며 심지어 상위 호환인 BJ가 생긴다? 앞으로의 방송 성장에 심각한 차질이 불가피하다.
전문 게임 방송이 가지는 크나큰 약점이다. 시청자들이 BJ보다는 게임 그 자체를 보려고 오는 경우가 많아 충성도가 낮다.
“듣도 보도 못했는데요?”
설마 하던 사태는 이미 일어나고 있다. 오정환의 발언.
자신에 대해 전혀 모른다는 듯 일갈했다. 시청자들이 갑자기 이탈하게 된 원인이기도 하다.
―펑이조 이 새끼 구라 친 거였네ㅋㅋ
오정환이 레이드 스승??
오정환 본인은 아이디도 듣도 보도 못했댄다
└입열구
└근본 없는 BJ들이 원래 그렇지
└걔 원래 방송 어그로 끌려고 죄다 친한 척하고 댕김글쓴이―나도 아는데 그냥 웃겨서ㅋㅋ
거짓말이 맞다. 정말 모를 수도 있는 노릇이다.
무안함보다 앞서는 건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다.
‘초대형 콘텐츠를 진행해야 돼.’
오정환의 방송은 분명 느낌이 있다. 펑이조도 그 정도 사실은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뒤진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쟁점은 게임 내 이슈. 녀석의 인지도는 레이드 실력에 의한 것이다. 자신이 이를 앞선다면 시청자들의 관심도 되찾게 된다.
‘아니, 그 이상이겠지.’
불어난 화제를 독식할 수 있다. 그 방법은…….
펑이조도 단풍잎스토리를 하루 이틀 해온 유저가 아니다. 방송적 콘텐츠 이전에 인생 게임으로 여긴다.
커뮤니티의 정보도 항상 주시하고 있다. 즉, 어떤 걸 해야 할지 알고 있다.
―라테일 6인 파티로는 격파 못 하나?
진짜 정예 중의 정예만 뽑아서 말이야
스공 1만 근접하는 초고수들로!
└입으로 게임하냐?
└네가 그런 랭커 모아보든가ㅋㅋㅋㅋㅋ
글쓴이―그냥 해보면 어떻냐는 소리지
└한 서버에 그만한 유저가 손가락에 꼽히고, 성직자 부활 부족해서 불가능함
마침 자신이 생각하던 방향과 비슷한 글이 보인다. 터무니없지만 못 할 것도 없다. 자신은 스카니아에서 제일가는 핵과금 유저니까.
‘오정환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자금력은 나한테 못 미쳐.’
방송인으로서의 수입. 부모님에게 받는 지원. 만에 하나 그 또한 금수저라고 해도 자신만큼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는 자신에게 한정되는 이야기도 아니다.
1년 이상 방송을 해오며 탄탄한 고정 팬층이 쌓였다. 그들의 지원을 받으면 불가능도 가능케 만들 수 있다.
이상적인 계획이 세워졌다면 남은 것은 실천뿐이다. 펑이조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