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스카니아 넘버원 초고수 이의 있나?
방송을 시작한 지 고작 사흘.
성장세는 가파르다, 라는 단어로는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다.
―정환이 왔다!
―나 강림!
―환이루~
―드디어 방송 켰느냐ㅋㅋㅋㅋㅋ
방송을 켜자마자 몰려오는 시청자. 최소 200명까지는 가볍게 올라가며 피크 타임 때는 500명도 기록한 적이 있다.
‘첫날에 최고 시청자가 네 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런 출세가 따로 없지.’
심지어 한 명은 내 스마트폰이었다.
X발.
방송 중에 오른손으로 깔짝깔짝 채팅까지 쳤다고. 물론 방송 시간 자체가 한 시간이 채 안 됐다.
여러 세팅 테스트를 겸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비약적인 성장인 건 틀림없다.
『Maple) 오정환. 스카니아 넘버원 초고수 이의 있나?』
? 본방: 152 (PC: 98/ MOBILE: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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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개인 방송이 가진 특징.
BJ 본인이 유명하면 입소문이 나기 쉽다. 단풍잎스토리의 고레벨이라는 사실을 매개로 급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명확하다. 이 단기간에 오른 시청자 수. 결국 내가 아니라 내 캐릭터를 보러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님들 펑이조 대박 콘텐츠 진행 중! 6인텔 한대요!
―응 관심 없어
―느그 주인님에게로 ㄲㅈ
―진짜임? 6인 라테일이 가능함??
그 이상의 고수, 혹은 콘텐츠가 생긴다면? 시청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옮겨간다. 본래 인지도가 있는 스트리머라면 효과는 배가 된다.
채팅창 상황.
갑작스레 소란스러워진 이유가 무엇인지, 구태여 사정을 수소문해 볼 필요도 없이 뻔히 그려진다.
‘그래?’
어느 정도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게 당연하다. 자신의 장난감을 뺏기면 화를 내는 건 세 살배기 어린아이도 할 만한 반응이니까.
그리고 나쁘게 볼 일도 아니다. BJ들 간의 선의의 경쟁. 서로 콘텐츠 욕심을 내면 낼수록, 방송의 질은 올라가고 시청자들도 보다 흥미를 느낀다.
지금 단풍잎스토리를 보는 시청자의 수가 많아야 1~2천 명? 커뮤니티에 소문이 퍼지면 더 몰려올 것이다.
3~4천, 내지 만 명 이상까지 늘어난다면 거시적인 관점에서 좋은 현상이다.
―오정환환환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 님이 보기엔 6인 라테일이 가능해요?
“뭐, 못 할 건 없죠.”
―헐ㄷㄷ
―뻥카 치네
―그 괴물을 6명이 잡을 수 있다고?
―근데 왜 넌 안 함? 10명으로 하면서ㅋㅋㅋ
비교를 좋아한다. 특히 BJ들 간에는 더욱 말이다.
옆집 금송아지가 탐스럽다고 하니 벌써부터 야단이다. 여기에 경쟁 심리를 가진다? 아니라니까.
여론은 둘째 치고 냉정하게 가능한 일이 맞다.
‘순수하게 말하는 거야.’
RPG 게임의 레이드. 최초로 깼다든가, 인원수를 줄인다든가 여러 가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걸 좋아한다.
6인 라테일을 기획한 건 그래서일 것이다. 이 시절만 해도 쉽지 않았다. 반드시 많은 인원수를 필요로 했다.
정예 중의 정예만 꾸려 공략한다고 하니 관심이 끌릴 수밖에 없다.
“일단 오해가 있어서 말씀드리는데, 제가 원정대를 10인으로 운영하는 건 안정성과 수익성 때문이에요.”
―안정성?
―깨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수익성은 또 뭐야…….
―어차피 도전 기회 두 번인데 한 번만 깨면 되지ㅋㅋ
아니라니까. 고레벨 유저들은 레이드를 단순한 게임 내 콘텐츠로 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단풍잎스토리 존나 재미없잖아?’
괜히 노가다 게임의 대명사가 아니다. 이 게임을 하는 이유의 70% 정도는 친목질이고, 20% 정도가 바로 레이드 수익이다.
이게 생각보다 엄청 많이 나온다. 특히 라테일처럼 대규모 레이드는 진짜 웬만한 고수익 아르바이트 뺨치는 벌이가 된다.
그렇다. 고레벨 유저들이 레이드를 보는 관점은 진짜 아르바이트다.
“그래서 대타 같은 것도 있고 일하는 느낌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크 게이머의 숫자도 생각보다 엄청 많고요.”
―ㄹㅇ?
―단풍잎으로 먹고살다니ㅋㅋㅋ
―아니, 내가 아는 단풍잎스토리가 아닌데?
―순진무구한 초딩 게임 아니었냐고야!!
달빛조각사나 아크 같은 게임 소설에 나오는 단골 클리셰. 다크 게이머는 현실 RPG 게임에서 기인된 게 맞다.
실제로 있으니까 소설에도 나온 것이다. 웃겨 보일 수 있지만 단풍잎스토리에도 존재했다.
아이디 몇 개 돌려가면서 레이드를 뛰면 한 달에 300만 원 이상 충분히 당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리니지나 아이온 같은 게임에서는 당연한 건데 단풍잎이라고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물론 나는 아니다. 키우는 계정도 이거 하나다. 중요한 건, 고레벨 유저들이 그만큼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부분이다.
때문에 필요하다. 레이드를 성공시키는 확률을 올려야 한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일단 잡아야 아이템과 골드가 떨어진다.
―하일펑이조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펑이조는 돈 많아서 실패해도 상관없는데? ㅋㅋ
하지만 펑이조에 한해서는 예외였다는 이야기다. 콘텐츠로 삼을 수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마인드.
막말로 한 번만 제대로 성공해도.
‘목적은 이룬 셈일 테니까.’
채팅 창을 보고 있자니 자세한 내용도 알겠다. 성공하기 위해 금전적 투자를 아끼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게나 열심히 준비했다면 오히려 응원하고 싶은 마음까지 생긴다.
“비꼬는 거냐고요? 아니, 성공하면 전 서버 최초니까 같은 서버 유저로서 뿌듯하잖아요.”
―오 대인배!
―속으로는 부글부글할 듯ㅋㅋㅋㅋㅋㅋㅋ
―응 시청자 다 뺏기는 중~
―대세는 펑이조지
진짜로 진심이다. 내가 왜 시기를 해야 돼. 그것도 막 방송을 시작한 입장인 내가 말이다.
터무니없는 도전도 아니고 충분히 할 만하다. 괜히 가능하다고 했던 게 아니다.
하지만 역시 한 가지가 걸린다. 정석에서 벗어난 시도를 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상정하지 못한 상황이 반드시 나온다. 그러니까 내 말은 한마디로.
“인생은 실전이라는 거예요.”
* * *
6인의 정예 원정대. 그 한 명, 한 명이 손꼽히는 랭커라면?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는 자극적인 맛이 난다.
『Maple) 펑이조. ☞ “스공 1만 달성”(버그 아님) 6인텔 간다!』
? 본방: 1, 023 (PC: 510/ MOBILE: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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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 이거지.’
펑이조는 시청자 수를 흘깃 살피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오정환에게 뺏겼던 시청자들을 되찾았다.
아니, 그 이상의 쾌거를 거뒀다. 처음으로 2천 명을 돌파했다.
자금력과 인맥을 총동원한 보람이 차고 넘친다. 레이드를 성공한다면 이들은 고스란히 자신의 팬이 될 것이다.
“새로 오신 분들 추천, 즐찾 해주시고요~ 팬클럽 가입도 한 번씩 해주세요. 100원밖에 안 드는데~”
새로운 전설을 써 내리면 후발 주자와의 차이를 확실하게 벌릴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정도 사실은 펑이조도 모르지 않는다.
―메이플광팬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BJ님 스공 좀 보여줄 수 있어요? 진짜 1만 넘음?
“광팬님 100개~ 그럼요, 당연하죠. 당연히 보여드려야죠! 보시면 아시겠지만 버프 받으면 1만 넘습니다.”
―그럼요 당연하죠 네네치킨♪
―9500인데?
―버프 받으면이라고 ㅄ들아ㅋㅋㅋ
―왜 ㅄ이래;; 이 방 시청자들 무섭네.
성공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모름지기 RPG는 템빨.
이 당시 1만대의 공격력은 엄청났다. 랭커급 고수들도 높아야 8천대. 진짜 유명한 사람들도 9천이 겨우 넘는다.
값비싼 아이템들을 현금으로 사들여 가능케 했다.
‘물론 나 혼자만으로는 안 되지.’
펑이조도 인지하고 있다. 레이드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강함으로는 결국 한계에 부딪힌다.
그렇다면 팀을 꾸리면 될 일이다. 파프리카TV의 BJ라는 사실.
‘추종자’라고 할 수 있는 팬덤을 거느리고 있다.
펑룡인: 펑이 님의 뒤를 잇는 제2딜러 도착했습니다.
펑이World: 펑이 님의 노예 왔어요 핰핰
하일펑이조: My life for peong―i~!
실제 스카니아에서 활동하는 고레벨 유저들이다. 단순히 레벨만 높은 것도 아니다. 펑이조를 따라 현질을 엄청나게 질렀다.
―와 공대원들도 템 까리하네
―다 펑이조 직속 부하들이잖아ㅋㅋ
―펑이조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임?
―스카니아에서 펑이조 모르면 던공임!
안 그래도 말이다. 바로 어제, 펑이조는 직접 연락망을 돌려 닦달했다.
「형 이번 콘텐츠에 방송 인생 걸었다. 안 돕는 애들은 우리 패밀리 제명이야.」
「허걱…….」
「형 부탁이면 해야죠.」
「ㅋㅋㅋ 나 이번에 아빠한테 용돈 받은 거 다 꼴아 박아야지.」
아이템 세팅을 더 좋게 업그레이드해라.
무리한 요구지만 가능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들은 게임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좋아, 좋아! 이 정도면 충분히 가능해.’
펑이조는 시뮬레이션까지 마쳤다. 일반적인 2~3파티 원정대. 딜러진의 공격력 총합은 5만 전후다.
그런데 자신이 1만. 나머지 팀원들도 그에 준한다. 4만대를 넘겼으니 충분히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헤네일찐펑이조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방어력까지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딜 더 박히는 거 아님?
“바로 그거죠~ 게임 보는 눈이 있으시네!”
―입단풍잎 쩌네ㄷㄷ
―그런 것도 계산하면서 함?
―고수들은 하겠지ㅋㅋㅋㅋ
―이만한 랭커들이 모였는데 이미 깬 거나 다름없어!
이 모든 것은 결국 방송을 위함이다. 시청자들의 열렬한 호응이 쏟아지자 흡족하다.
펑이조는 바로 원정대를 구성해 라테일에 입장한다.
펑룡인: 헐ㅋㅋ
하일펑이조: ?
펑룡인: 나 입장 퀘스트 까먹었다 ㅈㅅㅈㅅ
그런데 시작 단계부터 삐걱댄다. 레이드 입장부터 시간이 정체됨은 약과이고.
펑룡인: 야 격수가 먼저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아님?
디스코펑펑: 그런가? 뭐 어때ㅋㅋㅋ
라테일 원정의 기본적인 원칙도 모른다. 얼핏 별것 아닌 것 같은 실수.
어떤 나비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레이드가 시작된다.
―아니, 표도가 유혹이면 딜은 누가 하려고…….
―무조건 창기사가 먼저 입장해야 되는데.
―불편~
―펑이 님! 훈수 두는 불편충들 강퇴 좀요!
그리고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아비규환.
아무리 스펙이 좋아도 옛날 단풍잎스토리에는 한 가지 불문율이 있다.
1/1 맞으면 꼼짝 못 해! 체력과 마나를 단 한 방에 1로 만들어버리는 보스 몬스터의 패턴이다.
라테일 특유의 현란한 스킬까지 더해지자.
―라이드온펑이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스공이 1만이면 뭐 함? 컨트롤이 브론즌데
―메이플S2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진짜 더럽게 못한다…….
―오늘도OTZ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베라 서버 공대장인데 보다가 화병 나서 별풍 첫 결제함 ㅅㅂ…
…
몸만 큰 아기. 금수저지만 게임 실력은 금수만도 못했다.
오합지졸이 격파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보스 몹이 아니었다는 사실만 재확인한다.
‘…….’
처참한 실패를 맛본다. 펑이조의 머릿속은 도화지처럼 새하얘진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멘탈을 부여잡고 리트라이를 하려 했는데.
자리삽니다[CH 08]: 금일 두 시부터 일곱 시까지 물망초 길드텔 시간입니다. 안 나오시면 길드 단위 척살 들어가요.
붉은색 글씨. 고성능 확성기가 울려온다. 정중하지만 뼈가 있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경고 메시지다.
―자리삽니다ㄷㄷ
―물망초면 스카니아 2위 길드잖아?
―펑이조 님 자리삽니다랑도 친하다면서요!
―아니ㅋㅋ 친한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겠냐고.
거짓된 친분이다. 입으로 떠든 것만큼 돈독한 사이가 아니다. 부랴부랴 채널을 탈주하며 어색하게 머리를 긁적인다.
“아, 제가 최초 시도잖아요~ 이거 원래 못 깨는 거예요. 시청자님들을 위해서 준비해 봤는데 역시 빡셌어.”
이미 실패한 마당이다. 어떻게든 수습이라도 해봐야 한다. 그리고 이는 아주 안 먹힐 변명도 아니다.
―하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지!
―부족한 점이 많긴 했음.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아무도 깨지 못했다.
첫 시도가 실패했을 뿐이잖아? 고정 시청자들의 호응이 더해지며 민심 관리에 성공한다.
“이건 절대 못 깨겠네요. 너무 인원도 적고, 부활도 부족하고 안 돼, 안 돼!”
혹시 모를 반박을 방지할 콘크리트까지 끼얹는다. 레벨이 낮은 대다수의 시청자들은 그런 가보다, 납득하는 분위기로 가려던 찰나.
―헤네일찐펑이조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속보) 오정환 6인텔 멤버 결성 중!
팩트 폭격이 엄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