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3단계 시작을 다리부터 해야 합니다.”
시간이 정해지고 멤버가 결정됐다. 지체할 이유가 1도 없다. 바로 시작한 레이드는.
―다리?
―다리 내려찍으면 원거리 전멸할 텐데ㄷㄷ
―아직 1, 2단계도 못 깼는데 벌써?
―이 새끼 입단풍잎 세게 하누ㅋㅋㅋ
할 만하다. 최고의 서버 스카니아에서 최고의 랭커들로 꾸렸다. 이론상으로나 지껄일 망상을 꿈꾸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 목표다.
“그러니까 입롤… 아니 입단풍잎을 해보는 게 맞아요.”
흔히 말하는 입게임.
이론적인 망상을 현실화시킨다. 어떤 분야든 선구자들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다.
라테일의 본체는 여러 부위로 나뉘어져 있다. 한 부위씩 나눠서 공략해야 하고, 여기에는 일반적인 순서가 존재한다.
‘원딜러는 꼬리, 근접 딜러는 다리부터지.’
이유는 체력 때문이다. 다리 부위의 공격력은 최대 1만. 빈약한 원딜러가 버틸 수 있는 대미지가 아니다.
그래서 꼬리부터 공략한다. 딜을 박기가 힘들며, CC기의 위협에도 쉽게 노출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일반적으로는 그러하다. 하지만 정예 멤버인 이들은 버틸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실제 6인텔의 해답이 된다.
프로: 딜러진들 다리 딜 버틸 수 있어요?
미들마치: 난 됨.
q샤키노p: 어.
Love자리: 가능합니다.
방법을 안다. 걸맞은 공대원도 구했다. 그렇다면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물론 인생은 실전. 아무리 완벽하게 계획과 준비를 해도 변수는 항상 따라온다.
* * *
라테일은 크게 3단계로 나뉘어져 있다. 형식적으로는 말이다. 앞의 1, 2단계는 사실 몸을 푸는 것이나 다름없다.
―TF블붕이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여기가 1단계부터 비석 박았다는 펑이조 님 방송 맞나요? ㅋㅋ
“나가 이 새끼야!”
―유료 욕인데?
―돈 주고 강퇴당하네ㅋㅋㅋ
―팩트 밴입니다.
―근데 진짜 오합지졸이긴 하더라.
그런 몸풀기 단계에서 죽는다? 이는 단순한 실수로 끝날 일이 아니다.
2011년도의 단풍잎스토리는 캐시템이 적다. 차후처럼 돈X랄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데스 카운트 같은 친절한 시스템도 존재하지 않는다. 부활 방법은 성직자가 가진 스킬뿐.
쿨타임이 무려 30분에 달하기 때문에 신중히 사용해야만 한다.
“진짜 X발 새끼들 아니냐? 유혹 순서도 안 지키고, 물약도 제때 안 빨아서 1단계에서 부활 빠지는 건 개에바잖아!”
―죄송합니다 ㅠㅠ
―그래도 충신들인데…….
―오늘 펑이 빡쳤다 건들지 마라
―아 억빠의 날인가요? ㅋㅋ
BJ 펑이조의 방송.
심혈을 기울인 6인텔을 실패했다. 그 이유에 대해 초조하게 피드백하고 있다.
‘젠장.’
오정환이 자신과 똑같은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성공한다면? 망신 정도로 끝날 일이 아니다.
빼앗기고 만다. 기껏 쌓아온 시청자란 이름의 공든 탑을 말이다.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시선은 채팅 창에 쏠리고 있다.
―오정환 멤버 개쩜!
―지금 시뮬레이션 돌리고 있는데 디테일 장난 아니네 ―보고하는 새끼들은 뭐임?
―어쩌라고ㅋㅋㅋ 니네 주인님 방송 가라고
실시간으로 정보가 전달된다. 일부 시청자가 간첩처럼 알려온다. 그것이 펑이조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든다.
‘안 되는데, 안 되는데…….’
부디 허무한 시도로 끝나길. 진심으로 빌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저쪽도 실패한다면 자신의 실패도 덮어진다.
최초 시도라는 타이틀만 가져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리는 듯한 소식이 자꾸 터져 나온다.
―단풍잎폐인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 공대 1단계 9분대 클리어ㅋㅋㅋㅋㅋㅋㅋ
“자꾸 X랄이네! 이 새끼들 저쪽에서 보낸 첩자야?”
―첩자네
―어휴, 펑이 시기하는 것 봐
―방송 시작 나흘밖에 안 된 뉴비가 ㅉㅉ
―방송 시작 나흘 만에 시청자 수 앞질렀는데?
1단계부터 실수가 터져 나온 자신들과는 달랐다. 레이드의 베테랑. 그 명성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여유롭게 깨고 있다.
‘X발…….’
펑이조의 속이 타들어 간다. 오정환이 결속한 원정대원들. 그 한 명, 한 명이 어느 정도의 유저들인지 안다.
스카니아의 고레벨 유저라면 모를 수가 없다. 그만큼 정예 중의 정예로 이루어졌다.
이런 이들이 6인텔을 도전하고 있다. 가능성을 낮게 점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1, 2단계를 무난하게 통과한다면? 안 그래도 불안한 확률이 치솟을 수밖에 없었는데.
―얼타는바보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좋은 속보! 방금 창기사 유혹 맞고 죽음ㅋㅋㅋㅋ
“어, 어? 진짜??”
―관심 없다며?
―당황해서 진짜 ㅇㅈㄹㅋㅋㅋㅋ
―본심 나왔누
―나도 실패했는데 쟤도 실패해야지~
다행인 일이다. 동시에 의아한 일이다. 소문난 정예 멤버가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르다니?
프로: ㅈㅅㅈㅅ 1/1이 걸려버려서;;
미들마치: 어쩔 수 없음. 천재지변임.
창들의혼령: 괜차녀~
궁금함이 턱밑까지 차오르던 차, 한 시청자가 영상 후원을 올린다. 관심 없는 척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까맣게 잊고 집중해서 감상한다.
‘키킼, 이 새끼들 운 어지간히 없었네.’
유혹은 유저의 컨트롤러를 완전히 빼앗는다. 이를 살리려면 성직자가 따라가서 힐을 줘야 한다. 그런데 정말 타이밍 안 좋게도 라테일의 공격이 겹쳤다.
체력과 마나를 1/1로 만드는 광역기. 성직자는 자기 생존을 위해 힐을 끊어버린다. 창기사는 다음 공격에 어쩔 수 없이 죽고 만다.
“운이 안 좋긴 했네. 근데 뭐 어쩌겠어? 운도 실력이지.”
―운도 실력 ㅇㅈ
―그래서 님도?
―자학 타임인가요ㅋㅋ
―펑이도 운이 있었다면 까비~
열 판 하면 한 판쯤 있을까 말까 한 불운이다. 라테일 레이드를 뛰는 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
‘어찌 됐건 실패 확률이 치솟았다는 게 중요하지.’
물론 성직자의 부활이 있다. 하지만 부활의 쿨타임은 30분. 본방인 3단계 공략에 큰 지장이 생길 수밖에 없다.
웬만큼 숙련된 공대도 한 번은 죽기 때문이다. 이는 펑이조에게 엄청난 기회다, 흐트러진 민심을 되찾아올.
―헤네일찐펑이조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아까 1단계부터 비석 박았다고 비꼬던 새끼 어디 감?
“아 우리 충신 100개 너무 고맙고~ 비꼬는 새끼들 때문에 시도도 못 하겠어. 이런 대형 콘텐츠 겁나서 또 하겠어?”
―오정환 공대도 실패하면 말 다 했지.
―아직 실패 안 했는데?
―2단계 실패한 공대가 잘 굴러가겠음? ㅋ
―ㄹㅇ 추한 건 펑이조 따라 하다가 실패하는 그 새끼지.
민심. 시청자들의 여론.
펑이조는 이를 조절하는 데 도가 텄다. 상황만 받쳐준다면 말이다.
조금 등을 떠밀어 주면 간단한 일이다. 1년 가까이 쌓인 방송 경력과 타고난 센스가 이를 가능케 만든다.
‘실패…하겠지?’
물론 한 가지 대전제가 깔린다. 오정환이 레이드를 실패해야 한다. 천운이 따라준다면 만에 하나 클리어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정환환환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쟤네 급조된 멤버라 팀워크가 절대 안 맞을 듯ㅋㅋ
“그렇지. 라테일은 3단계부터 시작인데 벌써부터 삐걱거리고 그러면… 흠흠! 오정환 님도 힘드시겠네.”
―신나게 까다가 걱정해 주는 척ㅋㅋㅋ
―이게 바로 정치다
―펑이조 롤 하면 존나 잘할 듯
―뭐야 그 듣보겜은?
그 확률이 현저히 낮다. 잔뜩 다운됐던 펑이조의 심기와 입꼬리가 올라간다.
하지만 몰랐다. 방송을 직접 보진 않았으니까. 오정환이 전혀 동요한 기색이 없었다는 사실을.
* * *
예상치 못한 사고. 그럼에도 단 하나의 당황도 찾아볼 수 없다.
q샤키노p: 부활 몇 초?
프로: 25분요 ㅈㅅ
q샤키노p: 기다리지 뭐
창들의혼령: 천천히 혀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을 한두 번 겪어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텔을 몇 마리 잡아봤겠어.’
100마리 업적은 기본으로 딴 베테랑 of 베테랑들이다. 어지간한 변수들은 오후의 티타임처럼 가볍게 넘겨버린다.
―왜 시작 안 함?
―부활쿨 기다리나 봐
―저런 잡기술이 있었네
―와 3단계 시작을 안 하고 뻐기는구나ㅋㅋㅋ
쿨타임이 30분? 그러면 30분 기다리면 된다.
각 단계가 따로 시작하기에 가능한 편법이다.
‘물론 필연적인 부작용은 생기지.’
라테일 시간은 곧 돈이다. 괜히 시간별로 소유권자가 나뉜 게 아니다. 격파가 늦어지면 아예 클리어 시간 자체가 부족해질 수 있다.
q샤키노p: 이거 일곱 시까지는 깨겠지?
Love자리: 1, 2단계 격파 속도 보니까 그쯤 나올 것 같아요.
미들마치: 불상사만 없으면
q샤키노p: 너나 잘해
그조차 예측이 가능하다. 수많은 경험을 토대로 말이다. 중요한 건, 이를 내가 말하지 않아도 개개인이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정환환환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아무리 정예라도 급조된 멤버인데 실수가 나오지 않을까요?
―팀워크 안 맞을 거 같은데
―그게 문제…….
―펑이도 그걸로 걸고넘어지더라ㅋㅋ
―걔는 왜 남 방송에 훈수 둠?
시청자들의 걱정해 준다. 방송에 몰입해 주는 게 고맙기는 하지만 기우에 불과하다.
‘그런 건 팀 게임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착각이야.’
만화책이나 드라마 같은 데서 본 거지. 우정, 성장, 노력, 청춘 이런 키워드.
당연하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팀워크,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는 건 프로 레벨의 이야기다.
아마추어 레벨에서는 기초적인 실수를 안 하는 게 거의 전부다.
‘예술로 승화시킨다고 해야 하나? 그 정도는 해야 프로잖아.’
보는 입장에서 와… Amazing!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수준 말이다.
근데 일반 유저들이 거기까지 할 필요가 있겠냐고. 심지어 고작 RPG 게임에서.
“두고 보시면 알아요. 팀워크라는 건요. 한 마디로… 허상이에요.”
―팀워크가 필요 없다고? 레이드인데?
―뭐징 ㄷㄷ
―아군이 다 ㅈ밥이라 괜찮다는 건가?
―바로 그거였누ㅋㅋㅋ
아니, 그런 게 아니다. 글자 그대로의 이야기다. 이윽고 3단계를 시작할 시간이 온다.
크롸라라라―!
라테일의 본체가 울부짖는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자리를 잡는다.
정예라는 건 단순히 스펙이 높은 걸 의미하는 게 아니다. 공대원 하나하나가 공대장급 경력의 소유자다.
라테일의 공략법을 완벽하게 숙지하고 있다. 이렇듯 각자가 역할을 이해하고 최적의 플레이를 펼친다면.
―라테일의 다리를 격파했습니다!
실수가 나올 일이 없다. 실수라는 건 기본적으로 구멍이 있기에 생기는 것이다.
‘반대로 구멍이 없으면 실수가 생길 확률도 현저히 낮아지지.’
실수 없이 자신의 역할을 소화해 낸다. 그 모습이 제3자의 시선에서는 다르게 비춰질 수 있다.
샥!
샥!
창기사가 유혹에 걸린다. 성직자는 1초의 지체도 없이 판단한다. 텔레포트로 재빠르게 따라가 힐을 넣어 살리는 것이다.
―와 바로 살리네ㄷㄷ
―진짜 1초만 늦었어도 죽었는데
―처음인데 합이 왜캐 잘 맞아?
―방송 전에 연습한 거 아님?
딜러들은 성직자가 빠진 걸 인지하고 알아서 포션을 빨며 생존한다. 일련의 상황 판단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이들은 팀워크를 맞추고 있는 게 아니다. 그저 각자의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오정환환환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다리랑 꼬리가 제일 어려운데 신기할 정도로 아무도 실수 안 하네ㄷㄷ
“신기하죠? 근데 신기한 게 아니에요. 제가 말했잖아요. 팀워크까진 필요도 없다고.”
팀워크라는 건 플레이 과정에서 따라오는 거지, 팀워크를 중점으로 게임을 한다? 그런 애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팀 게임 못한다.
‘롤 같은 것만 봐도 성격 쓰레기인 애들이 더 잘하잖아.’
올 차단하고 자기 할 거 하는 애들이 오히려 점수 잘 올린다. 그 진리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그나마 롤은 운영의 과정이 복잡하기라도 하지. 겨우 RPG 게임이다. 요구되는 플레이의 수준은 높다고 보기 힘들다.
미들마치: 꼬리 깼다, X발!
프로: 휴… 이제 한숨 돌리겠네
오정환: 그럼 제네로 소환수 잡아주세요
프로: 힝…….
―성직자 개빡세게 부려먹네
―3D 잡부였누ㅋㅋㅋ
―6인텔 첨이라면 저런 판단이 어케 되지?
―‘짬’
다리와 꼬리가 격파된다. 가장 변수가 생기기 쉬운 부위다. 이를 무난하게 넘겼다는 건 사실상 격파한 것이나 다름없다.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실수를 하지 않는 정예 of 정예 멤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