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별풍선 1만 개
블루 오션(Blue Ocean).
새로이 탄생한, 그래서 경쟁자가 별로 없는 시장을 의미하는 단어다. 2011년의 BJ 업계는 실로 그러한 형편이다.
하지만 별로 없는 거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안의 물고기가 적은 만큼 더더욱 눈에 띈다. 즉, 두 마리의 상어가 격돌하는 사건은 놓칠 수 없는 구경거리다.
―오정환환환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 그는 신인가? 오정환 그는 신인가? 오정환 그는 신인가?
―만렙찐따 님, 별풍선 1개 감사합니다!
1개 팬 가입 ㅈㅅ
―일반인시청자 님, 별풍선 50개 감사합니다!
약간 길가메시 상대하는 에미야 시로 느낌 나네 ㅈㄴ 멋있었다 …
…
그리고 방금 승부가 결착 났다. 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판정하는지.
구구절절한 설명을 생략해 버리는 알림이다.
『수많은 도전 끝에 라테일을 격파한 원정대여! 그대들이 진정한 라프레의 영웅이다!』
보스 몬스터 라테일.
격파 시 한 줄의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채팅 창에 띄워진다. 스카니아 서버의 모든 유저들에게 말이다.
생방송을 했다 보니 소문도 은근하게 퍼져있었다.
REAL꼬마법샤: 저걸 깼네
레몬맛라떼: 6인이었다고 하던데…….
짱쎈전사S2: 와 라테일도 카쿰처럼 허벌되는 거야?
서면초짱z: 진짜 나는 한 번만 잡아봐도 소원이 없을 텐데!
전율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라테일은 현존하는 최강의 보스 몬스터 중 하나.
대다수의 유저들은 레이드는커녕 구경조차 할 수 없다. 그걸 고작 여섯 명이서 깼다고?
그 믿기지 않는 소식이 리얼 참 True다. 부정을 하고 싶어도 레이드 과정이 무려 생방송이었다.
자연스럽게 일파만파 소문이 퍼진다. 커뮤니티에서는 더더욱. 방송을 했다는 건 올릴 자료도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오피셜) 오정환 원정대 6인텔 최초 성공
공대장―오정환
공대원―프로, 창들의혼령, Love자리, 미들마치, q샤키노p 영광스러운 첫 6인텔 시도를 성공한 오정환 공대에 박수를 보냅니다.
―단풍잎스토리 커뮤니티 일동―
└이걸 성공했어?
└첫트 성공은 상상도 못 했는데ㄷㄷ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우리는 오정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고작 몇 분 사이에 수십 개의 추천이 다다다닥 박히며 화제 글에 등극한다.
아니, 겨우 BJ들 치다꺼리에?
그렇게 볼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정환은 고레벨들도 인정하는 네임드 유저다.
자신의 인지도가 어째서 높은지 증명했다. 그에 반해 경쟁 상대인 펑이조는.
―캐릭터로 따지면 펑이조가 길가메시지!
금수저라서 돈이랑 템 떡칠했잖아
하지만 어림도 없지 ‘무한의 검제’
오정환이 에미야 시로처럼 떡발라 버림ㅋㅋㅋㅋ
└그게 뭔데 씹덕아
└진짜 목 조르고 싶다 ㅂㄷㅂㄷ
└뭔지 모르는데 이해가 돼서 더 짜증 나네
└ㄴㄷ^^
핵과금 유저.
정공이라고 볼 수는 있어도, 정공법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내심 천대하는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펑이조와 격의 차이를 과시했다. 진짜 ‘랭커’가 무엇인지. 믿고 따라도 될 길잡이가 어떤 것인지.
―정말로 6인텔을 성공하셨네…….
아무리 오정환 님이라도 힘들 거라 봤는데
진짜 성공하니 어안이 벙벙하네요
└공대장 시선에서도 힘들어요?
글쓴이―아무래도 힐이랑 부활이 적으니까 한 번만 삐끗해도 게임 끝이죠└나중에 공략 영상 올려준대요!
└오정환 같은 랭커가 길 닦아주면 편하고 좋지
잼민이와 급식충들의 공통된 화제다. 반에서 누군가 한 명은 반드시 단풍잎 가이드북 사 와서 반 전체가 돌려보던 시절이다.
네임드의 인지도는 프로게이머에 준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유저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이른바 ‘근본’이란 무엇인지 입증해 낸다. BJ를 시작한 지 불과 나흘 만에 올린 성과였다.
* * *
6인 라테일.
성공의 감회에 젖을 시간도 없다. 바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메이플아재 님, 별풍선 10, 000개 감사합니다!
메이플아재 님이 열혈 팬이 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ㅋㅋ
―와 개쿨하게 ㅋㅋ
―ㅋㅋ이래ㅋㅋㅋ
―이게 말로만 듣던 큰손인가?
―100만 원을 진짜 쏴버리네 지렸다…….
그러고 보니 미션이 걸려있었다. 시작하게 된 이유조차 까먹을 정도로 집중하고 있던 탓에 깜짝 놀랐다.
‘솔직히 먹튀 가능성도 고려했고.’
어느 정도 BJ 짬밥이 있는 사람들은 다 경험해 본다.
먹튀.
미션이 성공해도 후원하지 않고 튀는 시청자들 말이다. 처음 몇 번 경험할 때는 화가 난다. 솔직히 사람인 이상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르면 집착하지 않게 된다. 콘텐츠는 콘텐츠대로 진행해야지, 별풍선에 너무 휘둘리는 건 좋지 않다.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이 정도로 받으면 사람이.
“메이플아재 님, 저보다 나이 위실 것 같은데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아재 형님 콘텐츠 아이디어와 후원 정말 감사하고, 저의 첫 회장 등극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와 만 개를 받고도 안색이 안 바뀌네
―돈 보고 방송하는 게 아닌 거지
―나 같으면 몸에 간장 뿌리고 쇼했을 텐데ㅋㅋ
―철꾸라지처럼?
그런 저질스러운 말종과는 비교하지 않았으면 싶다. 이래 봬도 나도 상당히 오래 해먹었다. 나만의 방송 철학이라는 게 있다.
‘열혈 상대하는 것도 BJ 능력이야.’
사람마다 케바케가 적용된다. 나이 많으신 분들은 공손한 걸 좋아한다. 존중과 존경, 그리고 고마움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방송 내적으로 너무 난리법석을 떤다?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 리액션이 정답일 것이다.
―메이플아재 님, 별풍선 1, 000개 감사합니다!
허허 도움이 됐다면 다행이네
―아재…….
―회장님이 만든 게 맞지
―ㄹㅇ 회장님 아니었으면 시작도 못 했음
―아재좌가 쏘아 올린 작은 공!
그리고 자신이 방송에 기여한다는 충족감.
이 방송을 보지 않으면, 후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몸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악당 같잖아.’
그냥 알고 있기 때문이다. 큰손. 그들이 별풍선을 펑펑 쏘는 이유는 생각보다 별거 없다.
한마디로 심심해서다. 나이가 들면 어릴 때처럼 친구를 쉽게 못 사귄다. 어디 놀러 다니는 것도 어색해진다.
‘그러다가 파프리카TV라는 자극적인 장소를 만난 거지.’
별풍선만 쏘면 대단한 사람처럼 취급해 준다. 그 뽕맛에 취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쏘는 액수를 늘리다 패가망신하는 경우 또한. 그렇게 되는 것보다는 내가 적당한 선에서 어?
나도 솔직하게 선인은 아니다. 방송이라는 것도 결국 비즈니스고, 콘텐츠의 질을 위해서라도 돈은 필요하다.
미들마치: 템 대박인데?
Love자리: 6인텔이라 분배 엄청나겠다
창들의혼령: 허허
물론 이는 공대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결코 맨입으로 도와주는 게 아니다.
RPG 게임의 고레벨 인맥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레이드는 안정성과 수익성. 즉, 이해타산을 원칙으로 한다.
실패 확률을 감안하더라도 해볼 만한 계산이 섰다는 소리다.
오정환: 저 빼고 다섯이서 나눠도 될 것 같아요
미들마치: ㄹㅇ? 용사 30 떴는데?
오정환: 난 그보다 더한 게 떠서 괜찮음
미들마치: ㅅㅂ 별창 다 됐네ㅋㅋㅋ
―저 친구 빠꾸 없네ㅋㅋ
―별창 ㅇㅈㄹ
―용사 30 존나 비싸지 않음?
―스카니아 시세 20억임…….
현금으로 80만 원을 호가한다. 라테일의 로또라 불리는 아이템. 그만큼 뜰 확률이 낮지만 뜨기만 하면 대박이다.
보통은 10~20명이 나눠 가진다. 그걸 겨우 다섯 명이? 레이드에서 인원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그런 의미다.
‘장기적인 투자야.’
당연히 아깝다. 나라고 돈 아까운 걸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안목에서 봤을 때 투자가 된다.
단풍잎스토리 BJ로서의 콘텐츠.
혼자 진행하는 것은 빠듯할 수밖에 없다.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하고, 이는 친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민폐가 되면 불협화음이 생긴다. 과거 펑이조가 밟았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된다.
여러모로 양보할 건 하면서 Give & Take를 이루어야 한다.
미들마치: 고정 팟 짜면 나 불러라
q샤키노p: 나도. 안 부르면 죽임
오정환: 안 그래도 기존 공대를 개편할 예정인데 지금 설명을 좀 할게요
이전까지는 10인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조금 달랐다. 차별이라기보다는 공급과 수요, 형평성의 문제다.
‘성직자는 지원자가 많아.’
제네시스라는 사기급 스킬 때문이다. 레벨 업이 워낙 쉬워서 만렙 유저가 서버에 수천 명이 넘는다. 요구되는 아이템 수치도 낮다.
딜러진처럼 단풍잎에 인생 ㅈ박지 않아도 할 만하다. 그런 만큼 아이템 분배에서 차등이 있다.
이제부터는 달라진다. 6인텔에서 성직자의 활약. 빡세게 굴리는 대신 보상 또한 평등하게 나눈다.
―오정환환환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고생한 프로 님 껴주는 거 맞죠??
“본인이 희망하면 1순위죠.”
―개고생했자너~
―유혹 살리고 제네시스 계속 쏘고ㅋㅋ
―사실상 격수보다 더 힘들게 뛰었지
―캬 솔로몬이네ㅋㅋ
그리고 이는 형평성에 의한 판단만이 아니다. 시청자들의 민심도 고려 대상이다.
‘BJ는 반드시 살펴야 돼.’
아무리 잘나고, 재능 있는 BJ라도 방송은 혼자 할 수 없다. 독불장군처럼 막 나가서는 안 된다. 소수의 의견도 수용해야 한다.
마치 그런 것처럼 적당히 포장하면서 자신의 의사대로 이끄는 것. 그것이 일류 BJ가 가져야 하는 덕목이다.
‘한마디로 방송 ㅈ대로 하는 법이지.’
하다 보면 자연스레 익는다. 재능만으로는 안 되고, 경험이 쌓여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는 딱히 어렵지도 않은 일이지만.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심력 소모는 별개의 이야기다. 피곤하다. BJ에게만 느껴지는 묘한 압박감이 있어서 방송을 마치고 나면 생각 이상으로 고되다.
‘여러 가지 신경 쓸 게 많긴 해.’
굳이 정리해서 말하면 열혈 관리, 민심 관리, 콘텐츠 생각, 떠들기 기타 등등.
자연스럽게 해내면 좋겠지만 너무 자연스러운 것만 믿다 보면 가끔 말실수할 때가 생긴다.
‘BJ들 왜 이렇게 사고 많이 침?’
그 이유 중 하나가 생각이 많아서다. 눈으로 보이는 것만큼 쉬운 직업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물론 보람 또한 있지.’
피로는 피로여도, 기분 좋은 피로다. 방송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나면 충족감이 장난 아니다. 그것에 취해 BJ라는 직업을 계속해 나가는 걸지도 모른다.
두 번째 인생.
상정한 바 이상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내가 처음 별풍선 1만 개를 받을 정도로 성장할 때까지 1년 넘게 걸렸던 걸로 기억한다.
BJ들에게 별풍선 1만 개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단순한 금전적 가치를 논하는 게 아니다.
내가 그래도 BJ로서 인정을 받았고,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의 능력이 있구나. 이 같은 자부심을 느끼게 만든다.
비록 요행이 섞인 특수한 이벤트라 할지라도 이루었다는 게 중요하다. 이 단기간에 말이다.
앞으로 걸어 나갈 길에 자신감이 실린다.
‘그래, 나 오정환이야.’
마음먹으면 안 되는 게 뭐가 있겠어.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불안했던 것도 잠시였다.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이루어나갈 목표로 벅차오른다. 오늘은 분명 꿀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조금 얕봤던 걸지도 모른다.
딩동―♪
과거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잊고 있던 현실과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했다.
“누구세요?”
끼익―! 경첩에 녹이 슬어 쇳소리가 울리는 두꺼운 철문을 열어젖히며 생각한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있나? 택배 기사? 그런 거 시킨 적이 없는데.
‘올 거면 여자나 좀 오지.’
그냥 하는 생각이다. 당연히 이루어질 리가 만무하다. 그래야만 했지만, 이곳은 내가 살았던 미래가 아니다.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과거의 인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