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경력 있는 신입
“안녕하살법!”
무거운 철문을 열어젖히자 보이는 아이. 입고 있는 교복에서 유추해 볼 때 학생이다.
‘코스프레가 아니라면.’
코스프레가 아닌 이상 볼 일이 적다 보니 이상한 추측부터 떠오른다.
솔직히 스트리머들이 나잇값 못 하고 많이 하거든. 하지만 본능이 말한다.
아담하고 여리여리한 체형. 좋게 포장하면 그렇다는 거고 현실적으로 말하면 꼬맹이다.
즉, 혼모노다.
“오빠, 빨리! 빨리! 빨리!”
“…….”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게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고 보면 초면에 뭐라고 하긴 했다.
‘알 것 같기도 해.’
학생들이 하는 인사법일 것이다. 요즘 애들은 참 별별 짓을 다 한다.
나도 BJ로서 유행을 따라가기 위해 공부한 적이 있다. 받아치는 인사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하는지. 일단 되는 대로 해본다.
“안녕하살법 후려치기.”
“꾸웩―!”
손등으로 꿀밤을 탁!
조금 세게 친 모양이다. 기묘한 울음소리를 내며 이마를 부여잡은 채 부들부들 떤다.
“후려치기 하면 안 돼요. 받아치기 해줘야 돼요.”
“그게 그거 아니야?”
“달라요! 그리고 아파요…….”
찔끔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이 초식 동물 같다. 세렝게티 초원에 살 법한 톰슨가젤. 아마 딱 이런 느낌이겠지.
생각보다 힘이 들어갔다. 이마를 아직도 부여잡고 있다. 미안하다고 빈말이라도 할까 고심하던 차.
“괜찮아요. 저 이 정도 아픔은 감내할 수 있어요.”
“그래?”
“오빠가 맛있는 걸 사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아요.”
“…….”
그래서 얘가 누구야? 나이 차가 한참은 나는 꼬맹이다. 이 시절의 나는 방송도 안 했으니 팬일 리도 없다.
‘아니.’
9년 전의 과거다. 이때는 이때의 인간관계가 있었다. 정확히는 그 이전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인연이다.
간신히 생각이 난다. 별거 아닌 이야기다. 누구나 한 명은 있을 법한 소꿉친구라는 존재다.
“엄마가요, 엄마가요. 오빠한테 이거 전해주라고 했어요.”
“뭔데, 반찬?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전 안 먹는 반찬이에요!”
“…….”
굳이 따지면 그렇다는 소리다. 그냥 엄마 친구의 딸내미. 어렸을 때부터 왕래가 있다 보니 친하게 지냈다.
그 인연이 이어진 것이다. 물론 평생 이어지진 않는다. 나이가 먹고 이사를 가다 보니 자연스레 끊겼다.
‘아… 그랬었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일임에도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어쩌다 보니 잊었다. 사는 게 바빠서, 그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솔직하게 변명이다.
받아 든 반찬통.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도 자취하는 입장에서 감사하다. 이렇게 챙겨주기까지 했는데 까먹다니 나도 참 나빴다.
“배고파? 맛있는 거 먹고 싶어?”
“맛있는 거! 맛있는 거!”
“뭐 먹고 싶은데?”
“저 떡볶이 먹고 싶어요~”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의미가 있는 두 번째 인생이다. 속죄라고 하긴 뭣해도 음식 정도는 흔쾌히 사준다.
‘여자들은 왜 그렇게 떡볶이를 좋아하는지 미스터리야.’
기왕이면 맛있는 거 사주고 싶은데.
본인이 비장하게 주장하니 바꾸기도 뭣하다. 음식이라는 게 원래 먹고 싶은 것이 가장 좋기도 하다.
타닥, 탁!
스마트폰을 두들긴다. 애석하게도 2011년. 간편한 배달 앱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직접 찾아야 한다.
하지만 그래서 좋은 점도 있다. 가격이 합리적이야. 오늘 대어도 물었겠다, 부담이 되진 않는다.
“오빠 뭐 하는 거예요?”
“떡볶이 시키잖아.”
“헐! 설마 배달이에요?”
“어.”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본다. 대체 뭐가 그렇게 의아한지.
‘가만히 입 다물고 있으니 이쁘장하네.’
ㅈ경, 아니 안경만 벗어도 확 달라질 상이다. 아직 자라나는 새싹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유망하다.
괜한 참견이다. BJ 생활을 하다 보니 생긴 직업병이다. 잘할 것 같은 인재를 보면 이쪽 세계로 꼬시고 싶다.
“신전 떡볶이! 완전 침 꼴깍꼴깍이에요~ 봄이 너무 행복해요.”
“…….”
그러기에는 너무 어린 것 같기도 하고. 이름이 봄이였던 것이 생각난다.
‘맞아, 봄이였어.’
이름처럼 파릇파릇하다. 여고생이라니? 그런 희귀 동물을 눈앞에서 보니 오금이 저린다. 실제로 무섭다.
차후에는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피해자의 눈물과 일관된 진술로 무죄 추정의 원칙을 무시할 수 있는 천룡 인격의 존재가 된다.
‘여고생이다. 도망쳐!’
‘하와와.’
‘끄아아아악~!!’
아포칼립스물을 연상케 하지만 현재 시점의 여고생은 그렇게 전투력이 높지 않다. 과거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깊은 안도를 표한다.
“사실 오늘 급식에 떡볶이 나왔어요.”
“근데 또 먹고 싶어?”
“잔뜩 불어 터졌어요! 떡볶이에 대한 모욕이었어요.”
“하긴 급식 떡볶이가 맛없긴 하지.”
“우리 중학교 급식은 다 좋은데 떡볶이가 문제예요~”
“…….”
여중생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지. 함부로 대했다간 내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다.
‘많이 어려 보이긴 하더라.’
차마 생각을 못 했다. 교복을 입는 건 고등학생만이 아닌데. 중학생은 아예 천연기념물 느낌이라 어찌 대해야 할지 난감하다.
‘아니야. 우리 분명 친했어.’
과거의 감각. 내가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자연스럽게 대한다면 크게 문제는 없을 것이다.
“오빠, 오빠.”
“왜?”
“갑자기 말투가 노땅이 된 거 같아요. 꾸엑―!”
“어떤 부분이?”
“아파요. 너무 아파요……. 여자의 감이에요.”
날카로운데? 아무래도 내가 나이대가 좀 있다. 20대 초반 시절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그 점이 느껴졌나 보다.
딩동―♪
그래 봤자 조금 정도다. 덧없는 잡담을 나누던 사이, 전화로 검색해 시켰던 프랜차이즈 떡볶이가 도착한다.
“포장마차 떡볶이도 감지덕지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포장마차 떡볶이도 무척 좋아해요.”
“그렇구나.”
“하지만 신전 떡볶이는 정말 없어서 못 먹어요!”
포장을 뜯자마자 신이 나서 먹어치운다. 복스럽게. 한창 때의 중생이라는 사실이 와닿는 광경이다.
나무 꼬챙이로 콕콕 집어 입 안에 쏙쏙 넣는다. 채 삼키기도 전에 다음 떡과 오뎅이 계속해서 들어간다.
‘내가 저녁으로 떡볶이 먹을 나이는 아니긴 한데.’
당연히 내 몫도 시켰다. 마침 저녁 시간이다 보니 배가 고프다. 떡볶이를 먹고 싶은 기분은 아니지만 같이 안 먹어주면 아무래도 섭섭하다.
사람 입맛이라는 게 나이가 들면 간식은 간식이고, 밥은 밥이 된다. 그래도 옆에서 너무 맛있게 먹고 있다.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
“너무 꿀맛이에요. 지친 몸에 스며들어요!”
“학교에서 힘들었어?”
“저 학원도 갔다 왔어요~ 학원 갔다 와서 엄마 심부름 온 거예요.”
대한민국의 급식충, 아니 중고등학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다 아는 입장이다. 학창 시절 누구나 경험을 해보는 것이니 말이다.
‘학교 갔다가, 학원 갔다가, 지쳐서 곯아떨어지면 일어나자마자 다시 학교 가고.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지.’
그것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지만 지나가기 전에는 그냥 개고생이다. 그 지친 일상에 힐링이 됐다면 나로서도 뿌듯하다.
“오빠 덕분에 저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었어요.”
“그, 그래?”
“엄마가 기지배 빨리 안 오고 뭐 하냐고 카톡 해서 가볼게요. 잘 먹었습니다.”
꾸벅― 예의 바르게 인사까지 하고 사라진다. 그 짧은 시간에 존재감이 대단한 아이였다.
‘말 참 개성 있게 하네.’
탐이 나는 인재다.
* * *
파프리카TV. 개인 방송의 공화국. 이곳에는 당신이 아는 것보다 다양한 인종이 살고 있다.
말 많은 인종, 발 빠른 인종, 잘 먹는 인종, 영리한 인종 등등.
―오정환 이 새끼 대단하네ㄷㄷ
방송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게임 방송 1, 2위를 다투고 있음
└걔가 누군데?
글쓴이―단풍잎스토리 BJ
└요즘 펑이조보다 잘나가잖아ㅋㅋ
└ㅇㅇ 완전히 자리 잡았더라. 반짝이 아니야
그중에서 게임 잘하는 인종의 왕이 정해졌다. 정확히는 한 부족, 단풍잎스토리라는 게임의 톱이 말이다.
그 의미는 결코 좌시할 수 없다. 단풍잎스토리는 최고 인기 게임 중 하나다. 그만큼 게임 방송 중에서는 알아주는 콘텐츠다.
―근데 그래 봤자 겜비는 한계가 있지
콘텐츠 잘 짜봤자 겨우 1, 000명 아님?
파프리카TV에서 크려면 보라나 먹방을 해야지 ㄹㅇ
└겜방은 풍력도 약하잖아ㅋㅋㅋ
글쓴이―시청자 수 대비 ㅈㄴ 안 터지지
└먹방은 고정 300명만 봐도 잘 범
└윾신의 먹쇼!
게임 방송 중에서는 그러하다. 하지만 파프리카TV 전체에서 봤을 때 비중이 작다.
롤이나 배그 등 방송용 게임이 없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RPG 게임.
즐기는 사람의 수는 한정돼 있다. 전문 게임 방송이 가지는 태생적인 한계이기도 한데.
―단풍잎 모르는데 오정환 방송 봄 ㅍㅌㅊ?
그냥 방송을 재밌게 해서 볼 만함. 막힘없이 술술 잡으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보고 있음└나도 펑이조 팰 때 유입됐는데 재밌긴 하더라
글쓴이―그때 타격감 오졌지ㅋㅋ
└다른 방송 해도 잘할 거 같던데
└글쎄? 보라 쪽은 워낙 어려워서 안 해보면 몰라
한계를 벗어나면 될 일이다.
개인 방송 갤러리. 커뮤니티에는 오정환에 대한 이야기가 스멀스멀 올라온다.
방송감이 살아있어. 더 크게 될 수 있는 BJ야.
어디까지나 일부 팬들의 찬사지만 의미는 있다. 여러 사람의 공통된 반응이라면 더더욱이다.
느낌적인 느낌이다. 시청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지녔다는 평가다.
―오정환 정도면 차기 칠무해 유망주 아님?
시청자 수도 피크 때는 꽤 되고, 방송도 재밌어서 앞으로 성장 가능성 충분한데 └결국 겜비라 한계 있음 ㅅㄱ
글쓴이―그래도 칠무해급은 가능함
└아직 칠무해는 오바고 초신성은 ㅇㅈ
└맞아 초신성 정도의 기대감은 있지!
파프리카TV BJ계의 서열 명칭.
시청자들이 임의로 나눈 비공식이다. 하지만 민심이 그러하듯 무시할 것은 아니다.
삼대장―시청자 수와 영향력이 가장 높은 BJ
칠무해―고정 시청자가 탄탄하며 특유의 콘텐츠가 있는 BJ 초신성―새롭게 뜨고 있는 BJ
초신성은 그중 말단. 그렇기에 더욱 주목받는다. 싹트기 시작했다는 건,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했다는 의미다.
―칠무해 후보 펑이조 아니었음?
며칠 못 본 사이에 겜비판에 지각 변동이 있었나
└오정환한테 참교육당했지
└한물갔고, 요즘은 오정환이 대세임
└그냥 격이 달라
└오정환 방송 켜면 펑이 하꼬 되잖아ㅋㄷ
삼대장과 칠무해는 거의 변동이 없다. 내려가면 내려갔지, 올라가는 일은 거의.
시청자는, 대중은 익숙한 맛에 대한 평가는 정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로운 맛이라면?
오정환은 현재 도마 위에 올랐다. 그가 가진 포텐셜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녔는지 관심을 가진다.
―오정환 때문에 단풍잎스토리 시청자 느는 건 맞음
단순히 레벨이 높은 게 아니라 방송감 자체가 ㅅㅌㅊ라 가능한 현상임. 무난하게 성장만 하면 칠무해급은 될 수 있다고 봄 └삼대장은 불가능?
└삼대장은 넘사인데 어떻게 돼ㅋㅋㅋ
└ㄹㅇ 철꾸라지 같은 재능이 있어야지
글쓴이―보라 감성에 눈 뜨지 않는 이상 삼대장은 힘들걸
한 가지 전제가 깔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