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12화 (12/846)

12화

보이는 라디오

계획은 완벽하다. 준비도 물샐 틈 없다.

“아~ 오늘은 무조건 성공한다니까?”

펑이조가 거만한 손짓으로 확언한다. 허세가 아닌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유명한 고레벨 랭커들을 영입했다.

―펑이의알덩이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ㄹㅇ 펑이조 클라스가 있는데 방법만 알면 그냥 깨지ㅋㅋㅋ

“100개 감사합니다! 한 번 실수한 거야. 시도는 내가 먼저 했어. 그걸 기억하라고!”

―펑이조 텐션 왜 이럼?

―정신 차렸나

―요즘 슬럼프였던 거지ㅇㅇ 단풍잎스토리 하면 펑이조잖아~―그런가

6인 라테일. 이미 성공자가 있다. 오정환에 의해 격파된 지 오래다. 하지만 최초 시도는 펑이조였던 것도 사실이다.

최근 주가가 떨어졌다고 한들 팬들의 관심은 아직 남아있다.

―단풍잎내린다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최강전사강해효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별풍넣을게 님, 별풍선 30개 감사합니다!

혹시 모른다는 기대. 익숙한 맛에 대한 그리움. 연어처럼 되돌아온 시청자들이 줄을 잇는다.

―메이플아재 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그래, 파이팅

“아재 님 저쪽 방에는 만 개씩 쏜다면서… 제가 성공하고 아재 님 지갑 열 테니까 각오하십쇼.”

단골집이라는 게 아무리 실망을 해도 가끔 발길이 향할 때가 생긴다. 그때 잘한다면?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는 일이다. 즉, 성공만 하면 된다.

고레벨 랭커를 영입한 이유다. 라테일 공략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창기사와 성직자.

곰승민: 이거 들어가는 순번 아시죠?

펑룡인: 미끼 들어가고 가면 되는 거 아님?

태민전사: 허허

곰승민: 미끼가 아니고 유혹;; 그리고 격수들도 순번 있어요

레이드 경험이 매우 풍부하다. 라테일을 어떻게 공략해야 하는지,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펑이조 공대에게 구체적으로 지시를 해준다.

“아~ 이게 창기사 들어가고 막 들어가는 게 아니라 표도부터 입장하라고?”

―왜?

―표도가 회피율 쩔잖아

―만에 하나를 위한 거네

―펑이는 왜 몰랐음?

라테일의 유혹은 입장한 순서대로 걸린다. 때문에 체력이 많은 창기사, 회피율이 좋은 표도, 회피율이 낮은 궁수, 마지막으로 힐을 줘야 하는 성직자.

곰승민: 이런 순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안에 들어가서도 지시 따라주셔야 클리어가 되거든요?

펑이조: ㅇㅋㅇㅋ

디스코펑펑: 니가 뭔데 지시함?

펑룡인: 잘난 척 ㅈㄴ 심하네ㅋㅋㅋ

곰승민: …….

그 외에도 산처럼 있다. 커뮤니티를 뒤져본 한두 개씩 나오는 공략법이 아닌 경험에 의해 쌓여진 노하우 말이다.

‘아, 그런 게 있었네. 치사한 자식들.’

이런 사소한 부분들. 공대장급이 아니고서야 모른다. 존재 자체를 알지 못했던 펑이조로서는 아차 싶다.

그리고 괘씸하다. 알았다면 최초 6인텔 격파자는 자신이었다. 기세를 몰아 솔로쿰이든 뭐든 해냈을 것이다.

―라테일의 오른쪽 머리를 격파했습니다!

―라테일의 왼쪽 머리를 격파했습니다!

그럴 수 있는 화력이 되니까.

펑이조와 휘하의 추종자들은 강력하다. 아이템만큼은 고레벨 랭커들 뺨을 칠 정도로 호화찬란하게 둘렀다.

―와 화력 봐 ㄷㄷ

―빠른데? 할 만한데?

―이 속도면 씹가능이지

―읍읍처럼 2단계에서 죽지도 않음ㅋㅋㅋ

지난번과 같은 실수도 없다. 라테일 시간에 대한 문제도 확실하게 해결해 두었다. 물론 돈으로.

‘세상에 돈으로 안 되는 게 어딨어?’

부르주아다. 급식충들이 펑이조를 좋아하는 이유다.

레이드가 성공할 기세가 되자 채팅창도 무르익는다.

―님들 펑이 6인텔 성공 직전임ㄷㄷ

1, 2단계 노 데스로 격파 완료! 3단계 남았는데 이 기세면 무조건 깸└왕의 귀환인가?

└돌아오셨군요, 폐하

└펑이가 클라스가 있는데 두 번은 실패 안 하지

└펑이 다시 초심 찾을 줄 알고 있었음 ㅇㅇ

커뮤니티에서도 호응을 한다. 자연스레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커닝파퀘고수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유튜브에 6인텔 썸네일 올리면 대박 나겠다!

“100개 선입금 좋고! 이미 깼어. 유튜브에도 다 정리해서 올릴 거니까 걱정하지들 마.”

―좋아요 무조건 누름!

―지리겠다

―나도 반 친구들 다 보게 해야지ㅋㅋ

―펑이조! 펑이조! 펑이조! 펑이조! 펑이조!

그러나 이 사진이 썸네일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 1, 2단계와의 사투에 모든 힘을 쏟아낸 공대는 이어지는 3단계에서 거짓말처럼 참패를 당했다.

* * *

게임이라는 것도 하나의 작은 사회다. 그들만의 규칙이 있고, 예의라는 게 있다. RPG 게임에서는 딱히 드문 개념도 아니다.

펑이의오른팔[스카니아―20]>> 아재 서요? 방송감이 없네 율천고일짱[스카니아―20]>> 야 존 말할 때 펑이 형님 말씀 들어라…….

해강고전사[스카니아―20]>> 틀딱 새끼 미끼 주제에 자꾸 힐러 데려가네ㅋㅋㅋ

이를 알 리가 없다. 한창 자유분방한 나이대다. 하물며 시청자는 BJ를 닮는 법이다.

평소 개념과 동떨어진 생활을 해오던 펑이조. 그 추종자와 애청자도 평판이 좋지 않다. 빠가 까를 만드는 것이다.

곰승민: 하;; 빡치네

태민전사: 자꾸 이상한 귓말 온다

곰승민: 삼촌한테도 시비 귓 와요? ㅋㅋ 안 되겠네

그 피해자.

도와주러 왔다가 별별 말을 다 듣는다. 물론 방송의 특성상 어그로가 끌리는 부분도 있다. BJ랑 같이하는데 당연한 거 아님?

그 사실을 모른다. 방송 자체가 보편적이지 않은 시기다. 설명도 못 들었다. 이해해 줄 만큼 친하지도 않다. 평소 아니꼽게 보던 인간이었다면 더더욱이다.

곰승민: 삼촌, 이거 딜러진 하자 있어서 어차피 못 깰 것 같거든요?

곰승민: 제가 튕긴 척할 테니 적당히 나오세요

태민전사: 내가 나가도 되는디

곰승민: ㄴㄴㄴ 친창도 욕하던 애라 제가 맥여주는 편이 속 편해요

어느 RPG 게임이든 마찬가지다. 고레벨 세계는 인맥. 이를 무시하고 행동하면 언젠가 대가를 치른다.

열심히 도와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럴 가치가 없는 사람이야. 그런 판단을 내리는 건 자유지만 한 가지 난감하게 된 건.

“음… 친구 채팅에 쓰면 나도 보여버리는데.”

―ㅋㅋㅋㅋㅋㅋㅋ

―뒷담 까이고 있네

―근데 ㅈㄴ 무례하긴 했음

―인맥이 너무 좋다 보니까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딱히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냥 내 할 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듯 실시간으로 드라마가 진행되니 시청자들도 나도 눈길이 향한다.

‘그러게 평소에 잘 좀 하지.’

솔직히 알고 있었다. 2011년의 단풍잎스토리.

고레벨 유저들은 굉장히 폐쇄적이다. 비단 단풍잎스토리만의 문제가 아니고, 대부분의 RPG 게임이 그러했다. 리니지에 있다는 척살령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아니, 거긴 현실 척살령인가?’

아무튼 간에 소문이 안 좋다. 이 이야기를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오해의 씨앗이 싹터 버린 마당에 발을 빼는 것은 양심 없는 행위다.

“말하기에 앞서 이건 제 생각이 아니라 제 친창, 딱 봐도 유명 랭커들이 많잖아요? 그런 이들의 의견을 제가 감히 종합해 본 거예요.”

BJ 펑이조. 물론 유명하고, 이전 생에서는 더욱 유명했다. 그런데 그 유명하다는 건 어디까지나 시청자들 시선에서다.

랭커들 입장에서는 듣보잡A다. 자신들보다 아는 것도 없고, 해낸 것도 없다. 심지어 해낸 것도 현질이 99%다.

‘벼락부자 무시받는 건 게임에서도 똑같아.’

자신들이 고생해서 걸어온 길. 겨우 현질 몇 푼으로 따라잡는다? 어림도 없지! 하는 게 박힌 돌의 심정이란 것이다.

타 BJ 비하 발언 같아서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펑이조는 사실 스카니아에서 왕따나 다름없다. 적어도 고레벨들은 그렇게 여기고 있다.

―오정환환환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펑이 말로만 인맥 좋다고 하고 정작 추종자 중에 랭커 없는 게 그래서?

“아무래도 그렇지. 평판이 안 좋은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불이익이 생길 수 있거든.”

시청자들도 바보가 아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눈치를 챈다. 말로는 번지르르한데 실상 까보니 뭣도 없어.

‘그리고 그게 고레벨 유저들이 폐쇄적이어서 그런 것만도 아니야.’

펑이조가 콘텐츠를 진행한다? 시청자들은 좋겠지만, 일반 유저들 입장에서는 그냥 민폐다.

렉도 엄청 걸리고, 시끄럽고, 잼민이들이 떼거지로 몰려와서 개념 없는 짓 벌이고.

―오정환의충신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단풍잎스토리가 원래 급식 게임 아님?

“그건 맞는데 고레벨 중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많아요. 이건 원래 모든 돈슨 게임들이 다 그래요.”

―ㄹㅇ루다가ㅋㅋㅋ

―납득 완료!

―돈잘알

―학생들은 학교 가야 되는데 시간 때문에 못 키우지

한마디로 무례한 사람이다.

펑이조가 자극적인 콘텐츠를 벌이면서 스카니아 서버를 제집 안방 쓰듯이 할수록 고레벨 유저들 사이에서는 평판이 바닥을 뚫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민폐를 끼치면 최소한 사과라도 해야 한다. 아니면 시청자들을 잘 통제라도 해주거나. 그걸 안 하니까 업보가 고스란히 쌓인다.

“그래서 스카니아 고레벨들이 저분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해요. 제가 펑이조 님을 까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알아줬으면 해서 그런 거예요. 같은 BJ로서 안타까워서.”

이것도 그나마 순화해서 말하는 거지.

스카니아 서버에 있을 온갖 비매너, 막장, 무개념 유저들 다 제쳐두고 고레벨 유저들이 가장 치워버리고 싶은 쓰레기 중 하나가 바로 펑이조였다.

그 외에도 몇몇 있다. 포션노가다, 아싸비, 그런 대외적으로 유명하고 좋은 이미지를 가진 유명인들이 정작 게임 내에서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고 평판도 정반대라는 슬픈 현실 말이다.

그냥 팩트다 팩트. The Real Fact.

아무리 그래도 동종업자인데 저 사람을 공격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겠냐고.

“이러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니까 승민이 쟤가 탈주했다고 너무 욕하지 말고 양쪽의 입장을 잘 살펴주셨으면 합니다.”

―흠…….

―펑이조팬인데도 좀 공감된다

―나도 펑이조 방송 보기 전에는 뭐 하는 새끼들이지? 짜증 난 적 있긴 함―펑이 인맥 쓰레기였네ㅋㅋ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내가 엎지른 물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어시스트를 해버렸다.

이런 실드도 필요하다.

‘어떤 일이든 상부상조해야 돼.’

입 꾹 닫고 있으면 나는 편하겠지. 하지만 곰승민은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무시를 하려고 해도 불편하고 속도 상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그 칼날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쟤랑 친하게 지내면 채팅도 마음대로 못 쓰네? 시청자들도 자꾸 귀찮게 귓으로 뭐라고 하네?

펑이조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레이드 뛸 때 인심을 쓴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다.

* * *

『Maple) 오정환. 스카니아 넘버원 초고수 이의 있나?』

? 본방: 512 (PC: 280/ MOBILE: 232)

? 중계방: 798

? 누적 시청자 수: 11, 658

BJ 오정환의 방송.

하루가 다르게 성장 중이다. 재능의 벽이라 불리는 1천 명까지 통과했다.

“봐봐. 내가 말했잖아. 아직 클 인재라고.”

“그래 봤자 고정 1천이 아니고 피크 1천이잖아?”

“얘 방송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됐어!”

BJ의 방송 또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철꾸라지 엔터테인먼트. 말이 그렇다는 거지 사실상 BJ들의 모임이나 다름없다.

“말도 잘하고, 이미지도 좋고……. 우리도 이런 인텔리한 인재가 필요하다니까?”

“하긴 다 X발 ㅈ같이 방송하잖아ㅋㅋ”

“굳이 그런 게 아니어도 게임 쪽 커넥션은 필요하긴 해.”

그렇기에 의미를 가진다. 파프리카TV의 방송은 인맥 영향이 크다. 그리고 철꾸라지 엔터테인먼트는 가장 큰 파벌 중 하나다.

오정환을 영입하면 어떨까? 그 논의를 위해 모여 노가리를 까는 중이다. 그의 성장 속도와 방송 재능이 탐나서도 있지만.

“그래, 필요하지. 대외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캐릭터가 말이야.”

결정적인 이유. 철꾸라지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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