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오빠, 봄이에요 봄이! 싱싱한 봄이가 왔어요!”
최근 자주 쏘다니고 있다. 근처에 사는 천연기념물. 한 10년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전설의 여중생이다.
텐션이 무척 높다. 올 때마다 특이한 인사를 건넨다. 굴러다니는 낙엽도 웃길 나이라서 이해는 한다.
‘어렸을 때는 다 그래.’
나도 분명 그랬을 거야. 나이가 든 지금은 기억이 안 날 뿐. 하지만 한 가지 궁금증만큼은 참을 수 없다.
“정말 싱싱해?”
“정말 싱싱해요!”
“정말 싱싱한지 볼까?”
“꾸웨엑…….”
머리를 아삭―! 깨무니 싱그러운 향내가 코끝을 자극한다. 샴푸나 린스 냄새 외에도 확실히 파릇파릇하구나. 미각과 후각을 통해 전해진다.
“저 깜짝 놀랐어요. 깨물면 안 되는 거예요!”
“귀여워서 깨물어주고 싶다는 말 있잖아?”
“들어본 적 있어요.”
“봄이가 너무 귀여워서 그래.”
“그런 거예요?”
내 실제 나이가 서른이 넘는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여중생이 얼마나 귀엽겠어. 진짜 세대 차이, 젊음이라는 게 무엇인지 느껴질 정도다.
‘근데 그걸 감안해도 진짜 귀여워.’
얘가 아담하다. 머리도 깨물기 딱 좋게 엄청 작다. 나올 곳은 아직 애석하지만 앞으로의 성장이 기대된다.
솔직히 내가 여자 보는 눈이 더럽게 높은 편이다. 타고났다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직업병에서 기인한다.
‘BJ잖아.’
주변에 여캠이 얼마나 많겠냐고. 한두서너 명이 아니야 그냥.
인스타 존예녀? 그런 정도는 아예 눈길도 가지 않는다. 그 엄격한 심사 기준을 통과했다는 소리다.
내 주변에 이렇게 귀여운 애가 있었다니. 어째서 모르고 살았는지 알 것 같다.
“오늘 급식 엄청 맛있었어요.”
“그래?”
“돈가스에 칼칼한 콩나물김칫국까지 나왔어요~”
“아, 칼칼했어?”
“그리고 후식은 무려 두구두구두― 푸딩!”
푸딩같이 생겨 가지고. 아빠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어려도, 너무 어리기 때문일 것이다. 말투도 참 연애 대상과는 거리가 심각히 멀다.
‘그냥 동네 꼬맹이지.’
심지어 코흘리개 시절부터 봐왔다. 기저귀는 안 갈아줬어도, 코 정도는 백 번도 넘게 풀어줬다.
무엇보다 이 당시에는 내가 좀 시크했다. 누구에게나 잠깐은 있을 법한 질풍노도의 시기. 그것이 나에게는 20대 초반이었다. 한창 쿨병에 걸렸던 때다.
“커피 싫어? 콜라 줄까?”
“아뇨, 괜찮아요.”
“그래?”
“오빠가 저번에 인생은 커피보다 더 쓰다고 했어요.”
“…….”
“그래서 익숙해져야 돼요. 저도 아메리카노 마시려고 노력 중이에요~”
X발! 애 데리고 아주 쇼를 했구만.
회귀 전의 나도 아주 재밌게 놀았던 모양이다. 별 생각 없이 내려준 커피.
인상 잔뜩 쓰면서 열심히 먹길래 왜 그러나 했다. 중학생한테 아주 좋은 걸 가르쳤다.
‘후회는 없어.’
사람이 드립을 치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드립이 성공했다면 보람은 충분하다. 하지만 이 녀석이 나를 따르는 이유는 그 하나가 아니다.
힐끔힐끔.
내가 시선을 돌렸을 때마다 쳐다본다. 처음에는 기분 탓인가 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됐다.
“야.”
“저 아무것도 안 했어요.”
“아니야. 귀여워서.”
“깨물지 마요.”
딱히 별건 아니다. 자연스럽게 있는 현상이다. 중학생 꼬맹이 주위에 성인 남성이 있을까?
‘없지.’
남자가 연하를 좋아하듯, 여자는 연상에게 끌린다. 무조건은 아니지만 보편적인 취향이다.
나에게도 비슷한 것을 느낀 것이다. 물론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동경에 가까운 감정이라고 본다. 어느 쪽이든 내 주장을 펼치기엔 좋은 여건이다.
“오빠, 오빠.”
“왜?”
“컵이 엄청 예뻐요. 산 거예요?”
자랑 말이다. 슬슬 눈치챌 거라 생각했다. 손수 내린 커피를 마시고 있는 이 잔.
‘수려하잖아.’
흔한 도자기잔 같지만 그 안에 담긴 매력은 아는 사람 눈에는 보인다.
짙은 검은색. 빛이 반사되지 않는 묘한 재질. 이 잔에 커피를 마시면 마치 커피를 씹어 먹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래서 좋아하는 잔 중 하나다. 이 진가를 알아본다면.
“저기 있는 잔들은 어때?”
“우와! 언제 산 거예요? 저번에 왔을 땐 없었어요.”
역시 어린아이답게 기억력이 좋다. 회장님이 쏴준 별풍선 1만 개. 그것이 환전이 된 다음에 바로 산 거다.
그걸로 미래를 위한 투자 안 함?? 지금 뭐뭐 사면 대박인데!
내 회귀 사실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멍청하고 띨빵한 수전노지.’
100만 원 벌고 땡 칠 거 아니잖아. 아무리 투자를 한다고 해도 밑천이 많아야 싸움도 된다.
이것도 다 미래를 위한 투자다. BJ는 멘탈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아니, 그게 거의 전부라고 해도 될 정도다.
결국 머리로 하는 일이라, 머리가 안 돌아가면 일도 안 된다.
“어때?”
“헐~ 엄청 예뻐요. 만져봐도 돼요?”
“하하, 마음껏 만져. 닳는 것도 아니고.”
손때 묻은 것 정도는 닦으면 된다. 원래 수집가는 수집품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것에 가장 기쁨을 느낀다.
‘내 힐링 아이템이야.’
여덟 평 남짓한 화장실 딸린 작은 원룸. 그 안에 있는 건 최소한의 생활 가구.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삭막하기만 하던 집구석이다. 이제는 럭셔리한 인테리어로 가득 차있다.
벽걸이 선반 위, 아기자기한 식기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족해진다.
방송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인다. BJ도 일종의 서비스직이기 때문이다. 사람 상대하는 직업이 으레 그렇다.
이렇듯 아무 말도 못 하는 그릇. 대신, 바라만 봐도 아름다운 그릇. 이런 무기질의 예술품은 치유가 된다.
“오빠! 엄청 특이한 모양의 잔을 발견했어요. 이거 보세요. 모자로도 쓸 수 있어요!”
“머리에 쓰는 거 아니야~”
그런 예쁜 잔을, 예쁜 애가 가지고 논다. 잔이 큰 것도 아닌데 대가리가 작으니까 쏙 들어간다. 그 동심 어린 광경을 보고 있자니 정말.
“히히!”
“하하.”
쨍그랑!
“헐.”
“…야.”
깨물어 씹어버리고 싶네!
* * *
인천시 주안동.
4층짜리 낡은 상가 건물의 4층은 얼마 전까지 집이었다. 집. 한 남자가 사는 장소. 이 남자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
―스타광팬 님, 별풍선 109개 감사합니다!
우리 STX 설거지해 주시던 철꾸라지 님 맞죠? 반갑습니다!
굉장히 정상적이었다. 오히려 존경과 존중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게 당시만 해도 프로게이머 BJ가 거의 없었으니까.
“으아아아아아아악! 형니이이이임~!! 109개 나이쑤! 앙 기모띠! 월월! 왈왈!”
―리액션 보소ㅋㅋ
―???
―이게 철꾸라지지~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하지만 2년 만에 급변했다. 그리고 방송은 급성장했다. 현재 남자는 미친 짓을 골라 하는 엽기 BJ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간장맨철꾸 님, 별풍선 1, 009개 감사합니다!
빨아야겠지?
“우어어어어억! 철꾸라지개! 형님 미치도록 달려보겠습니다. 끼에에에엑~!!”
―미친놈앜ㅋㅋㅋㅋ
―진짜 미쳐버리네
―저 간장 어떻게 치워?
―철꾸라지만큼 리액션 찰지게 하는 BJ 없음 ㄹㅇ
온몸에 간장을 뿌리며 미친 괴성과 함께 날뛰고 있다. 유쾌하기를 넘어 기괴하기까지 한 연출. 그렇기에 자극적이다.
어디 가서 못 볼 광경이다. 이런 미친 짓을 누가 하겠어? 돈을 주니 좋다고 하니까, 시청자가 모이게 된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물론 그 뒤처리가 감당이 안 된다. 방 구석구석 풀풀 풍기는 간장 냄새. 여기저기 새하얗게 끼얹어진 밀가루.
치우려면 보통 고생이 아니다. 남자가 이 집에 살았을 때는 말이다. 돈을 충분히 번 현재는 스튜디오로 쓰고 있다.
“오늘도 철와대 으아아아악~! 뭔 냄샌데?!”
“보고만 있지 말고 와서 치워.”
“내가 네 시다바리가?”
통칭 철와대라 불린다. 철꾸라지와 청와대의 합성어.
남자는 철꾸라지라는 닉네임을 쓰며 파프리카TV의 대통령을 자칭한다. 그리고 실제 그만한 위상을 자랑한다.
방송을 켜면 수천 명의 시청자가 몰려온다. 그렇게 본인이 유명할뿐더러, 인맥 또한 탄탄하다.
“일단 청소 아줌마 불렀다.”
“돈은?”
“네가 내야지, 이 슈밤바야! 개념도 밥 말아문나?”
철와대라는 건 단순한 별명만이 아니다. 영향력 있는 수많은 인기 BJ들이 왕래한다. 그리고 그들이 뭉쳐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철꾸라지 엔터테인먼트. 그 진상은 하나의 파벌에 가깝다. 철꾸라지와 휘하의 친위대라는 느낌이다.
“이러다가 또~ 정지 먹어야 정신 차리지.”
“마아아!! 내가 남수기릿이랑 어떤 사인데?”
“그래도 선이라는 게 있잖아. 조심 좀 해.”
한 명이면 모를까. 수십 명이 뭉친다면 파프리카TV 측에서도 무시할 수가 없다.
온갖 기행을 펼치면서 방송이 존속될 수 있는 이유다. 그럼에도 아슬아슬하다. 워낙 별의별 짓을 다 하기 때문이다.
철꾸라지는 자신의 방송 생명을 위해 파벌을 더욱 늘리고 있다.
‘오정환 같은 녀석을 몇 명 더 영입하면 나는 안전해.’
최근 눈독을 들이고 있는 한 BJ. 자신들과는 다른 색채를 지녔다. 콘텐츠가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다.
이미지가 굉장히 좋은 편이다. 그렇기에 보다 설득력을 가진다. 파프리카TV에서 입지를 공고히 할 수 있었는데.
―RE: 안녕하세요. 철꾸라지 엔터테인먼트에서 연락드립니다^^매력적인 제안 정말 감사드립니다. BJ로서 철꾸라지 님의 이야기 정말 차고 넘치게 들어왔죠.
…
…
공손한 첫 마디.
며칠 만에 돌아온 답장은 긍정적인 것이었다. 그 내용 또한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우리 크루에 속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아?’
하꼬 BJ들은 약속도 없이 찾아 철와대의 대문을 두드릴 정도다. 자기 방송 좀 제발 살려달라고. 그런 기회를 거저 준 셈이다.
“싸게 싸게 튀어 오라 그래! 내가 친히 면접을 봐줄 테니까.”
“어? 아직은 생각 없다는데?”
“…….”
그것을 마다한다. 철꾸라지의 눈썹이 말려 올라간다. 기분이 불쾌해진다.
‘감히?’
파프리카TV는 자신의 나와바리다. 그런 곳에서 장사를 하면서 자신의 제안을 거부한다?
몹시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열등감이다.
철꾸라지는 분명 인기 BJ. 수많은 시청자들은 물론, 크루의 세력이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은 전혀 다르다. 어디 가서 철꾸라지? 귀싸대기 안 맞으면 다행일 수준의 인간 말종 취급이다.
어쩔 수 없다.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나와바리인 파프리카TV에서만큼은 분노 조절이 안 된다.
“얘 말로는 아직 잘 모르겠대.”
“대체 뭘? 나를?”
“아니, 방송 시작한 지 한 달밖에 안 됐잖아.”
“…….”
한 달이 조금 넘었다. 그럼에도 엄청난 성장세. 오정환을 자신의 엔터에 영입하려는 이유다.
‘방송에 대한 생각이 정리가 안 될 시기긴 하지…….’
그 정도로 영향력 있는 크루를 운영한다. 자신도 방송 경력이 상당히 긴 편이다.
그런 만큼 신입들의 생각을 꿰고 있다. 분에 넘치는 성공일 것이다. 그것이 이어질지 확신이 안 선다.
전업 BJ에 대한 생각을 안 해봤을 만도 하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본인이 욕심이 없다면 더더욱. 철꾸라지는 구겼던 인상을 바로 편다.
“어차피 게임만 하는 애고 좀 더 두고 보자.”
“아직 몰라.”
“방송이라는 게 못해도 1, 2년은 해봐야 아는 거지~”
크루의 다른 BJ들도 생각이 비슷하다. 위협이 된다면 모를까. 경쟁 상대로 볼 수 없는, 전혀 다른 콘텐츠를 하는 BJ다.
‘그래 봤자 겨우 시청자 천 명짜리고.’
철꾸라지를 포함한 크루 내 BJ들은 보라와 먹방을 한다. 전체 파이, 시청자 수가 월등하게 많다.
작은 물인 게임에 만족한다면 됐다. 어디까지나 성장 가능성을 보고 영입하려 했던 것이다.
욕심이 없다면 클 때까지 신경 안 써도 된다. 분명 그래야만 했는데.
“형… 얘 갑자기 2천을 찍었는데?”
“뭐 또 초딩 게임 보스 하나 잡나 보지.”
“아니야. 중딩이야!”
오정환이 보라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