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별풍선 100개에 100원 맞죠?
위이잉~!
청소기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유리잔이 박살 난 바닥. 확실하게 청소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니까 내려올 때 슬리퍼 신어.”
“넹…….”
잔뜩 풀 죽은 목소리와 표정으로 침대 위에 올라가 다람쥐처럼 앉아있다. 원룸이다 보니 피신할 수 있는 장소가 한정된 탓이다.
일단 안 다쳐서 다행이다. 엄마 친구 딸내미인데 다치면 어떡해. 놀랐을까 청심환도 하나 먹이고 뒤처리는 잘하긴 했지만.
“봄이야, 오빠가 취미가 별로 없어.”
“네!”
“유일한 취미가 잔 수집이랑 혼술 하는 거거든?”
깨진 유리잔이 돌아오는 건 아니다. 아끼던 잔이었다. 그걸 모자로 쓰다가 깨버렸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네.’
딱히 화가 나진 않는다.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이다. 어렸을 때는 나도 사고 많이 치고 다녔다.
그리고 잔 수집가라서 아는 것도 있다. 소모품은 언젠가 깨질 운명이라는 걸 말이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는 건데!”
“죄송해용……. 비싼 거예요?”
난 비싼 건 안 깼다고! 가격대가 좀 나가긴 한다. 10만 원대. 현재의 물가를 감안하면 상당히 크게 마음먹고 산 거다.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 진정 신경이 곤두선 부분은 따로 있다. 다른 사람이 소중히 하는 물건을 조심히 만졌어야지.
“왜 하필 비싼 잔을 깨는 거야!”
“돈이 문제가 아니라면서요!”
“어우, 진짜!”
“꾸웨엑―!”
이걸 한 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머리를 깨물어 먹는다.
‘비싼 것도 비싼 건데, 좋은 잔들은 재고가 별로 없단 말이야.’
해외에서 오기 때문에 받으려면 시간이 엄청 걸린다. 게다가 수제품이라서 같은 물건이라도 조금씩 다르다.
받자마자 내가 환호성을 질렀다고. 이건 잘 뽑혔다. 특히 모자로 썼던 잔은 마티니 잔이라서 받침이랑 목 부분이 잘 나오기 힘들다.
곡선이 아주 조금만 어긋나도 싼티 난다. 단순 변심으로는 환불도 안 돼서 복권 같은 거다. 그런 것일수록 잘 나왔을 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이 엄청나다.
“오빠, 화났어요?”
“안 났어.”
“화난 거 같아요. 여자의 감이에요!”
“추리 퀴즈 하니?”
이를 한순간에 앗아갔다. 실수라고 봐주기에는 내가 그렇게 마음씨가 넓은 사람이 아니다.
타닥, 탁!
타인의 사유 재산에 손해를 입혔으면 이를 갚으면 될 일이다.
중학생이 무슨 돈이 있어서? 그것이 가능한 방법이 있다.
―지각
―30분 늦었습니다, 생선님^^
―오정환 초심 잃었네
―해명해! 해명해! 해명해! 해명해!
본래라면 한창 일을 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방송을 켜자 별별 소리가 다 올라온다.
‘이것도 다 자리를 잡은 방증이지.’
기대가 있기에 실망도 하는 법이다. 이런 쓴소리를 듣는 것도 나쁜 기분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변명을 가지고 있다.
“오늘은 게스트가 있습니다. 그것도 여성 게스트예요.”
―게스트?
―게임 안 하고?
―게임 게스트겠지ㅋㅋㅋ
―단풍잎스토리 여친이라도 사귐? ㅋㅋ
단풍잎스토리는 은근히 라이트한 콘텐츠가 많다. 그것도 디테일이 상당히 괜찮은 퀄리티다. 아니, 오히려 메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야 뭐 하드 유저라서 안 하는 것뿐이지.’
오히려 대다수의 유저는 그것 때문에 단풍잎을 한다. 친목 관련 시스템 하나는 인정할 만한 수준이다.
채팅창에서 언급된 여친도 존재한다. 그 이상의 결혼식까지 열릴 정도다.
쓸 만한 옵션이 달린 반지도 나눠 받는다. 안타깝게도 헌법상 결혼이 허락되는 나이가 아니다.
“봄이 퍼뜩 와봐.”
“왔어요!”
“슬리퍼 신으랬지?”
“힝…….”
―뭐임??
―헐
―여자다!
―실화냐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자다! 같은 소리 하네. 하지만 개인 방송에서는 지극히 일반적인 반응이다.
‘특히 게임 방송에서는.’
고추 냄새가 풀풀 풍긴다. 절대 다수의 시청자가 남자다. 전문 용어로 ‘물소’라는 것들이 매우 많이 산재해 있다.
―사랑의사자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캠 좀 켜라고!
“100개 감사합니다. 근데 캠은 못 켜요. 얘가 일반인이기도 하고 매우 어려요.”
―어린애랑 사귄다고?
―ㅓㅜㅑ
―여고생이죠? 그런 거죠??
―아청법 준수하라고야ㅋㅋㅋㅋ
그렇기에 어림도 없는 소리다. 아니, 그 이전의 이야기다. 봄이가 뒤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댕청한 표정으로 서있다.
‘마리텔도 방영하기 이전이니까.’
백종원도 듣보잡이던 시절이다. 일반인들에게는 개인 방송이란 개념 자체가 어색하다. 즉, 무리하게 방송을 시켜봤자 역효과만 난다.
그렇다. 내가 봄이에게 하려는 것. 바로 개인 방송을 통해 금전적 손해를 메꾸게 하려는 것이다.
“여고생 아닙니다. 중학생이에요.”
―여중생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여중생쨩은 ㅇㅈ이지
―군필 아니면 환영
―사탄: 아 이건 좀;;
설마 그런 짓을 하겠냐고. 보다 큰 그림이다. 나는 봄이에게 방송의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한 직감인데.’
베테랑 BJ의 직감이다. 지금껏 틀린 적이 없었다. 내가 찍은 인재는 방송적 성장을 반드시 해냈다.
물론 재능이 있다고 반드시 개화하는 건 아니다. 하물며 BJ. 방송을 아무리 잘해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꽃 피우지 못한 인재를 수없이 봐왔다. 하지만 난 꽃 피울 수 있는 길을 알고 있다. 기초부터 몸소 지도할 작정이다.
“여기 채팅 창에 오빠, 언니들이 엄청 많이 있어.”
“단풍잎처럼요?”
“그래, 게임에서 채팅창만 떼어왔다고 보면 돼.”
“알 것 같은 기분이에요!”
―언니도 있음?
―오빠만 있는데요ㅋㅋㅋㅋㅋ
―와 목소리 너무 커엽다
―무조건 존예임!
차근차근 알려준다. 친숙한 부분부터 적응시킨다. 그것이 오래오래 뜯어먹을 수 있는 비결.
‘같은 생각을 할 리가 없잖아.’
BJ는 굉장히 유망한 직종이다. 그리고 천박한 직종도 아니다. 길만 잘못 들지 않으면 충분히.
그 길을 내가 인도해 준다. 이 믿음직스러운 오빠가 말이다. 방송이 무엇인지 첫 경험을 시킨다.
“오늘은 봄이가 저를 대신해 방송을 할 거예요. 그 이유가 뭐냐면…….”
―ㄹㅇ?
―환영이긴 한데
―빨리 꺼져
―이상한 남자 좀 빨리 치워주세요
이유가 뭔지 말을 하기도 전부터 성화다. 이렇듯 호응이 좋다면 분명 가능할 것이다.
“제가 아끼는 10만 원 상당의 유리잔을 깨뜨렸습니다.”
“죄송해용…….”
“때문에 저 대신 일을 해서 벌충을 할 예정입니다.”
―여중생을 부려먹누ㅋㅋㅋㅋ
―야 이 쓰레기야!
―사탄: 흠터레스팅;;
―여캠 데뷔하나요? ㅎㅎ
일이라고 해봤자 별게 아니다.
단풍잎스토리. 봄이도 게임을 하고 있고, 이를 내 방송을 통해 내보낼 뿐이다.
금전적 손해? 사실 그건 그냥 핑계다. 언제 한번 시키고 싶어서 각을 보고 있었고 때마침 기회가 왔다.
10만 원은 바라지도 않는다. 한두 시간 방송이 무엇인지 경험한다. 그렇게 맛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려 했는데.
―Maple큰손님, 별풍선 1, 000개 감사합니다!
갚았쥬?
“…….”
조금 자극적일 예정이다. 봄이가 의자에 앉은 지 단 7초 만의 일이었다. 열혈 중 한 명이 조금 짓궂은 장난을 쳐왔다.
“오빠 벌써 천 원 벌었어요. 개이득!”
“그래, 이 기세로 10만 원만 벌면 돼.”
“저 열심히 노력할게요.”
―미친놈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 천 원이 아니라 읍읍
―어림도 없지 환율 100배!
―애한테 천만 원을 벌게 하려고…….
예정에 없던 상황이다. 하지만 이조차 방송. 방송은 BJ 혼자 만들어나가는 게 아니다.
시청자들의 호응도 포함된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뽕을 뽑을 수 있고, 아니 그 이전에 후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시청자분이 돈을 줬잖아.”
“네.”
“그러면 저 시청자 입장에서 생각해 봐.”
방송이라는 건 어려운 게 아니다. 개인 방송의 요지는 결국 소통이고, 그 소통을 잘한다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
‘봄이가 화술의 재능이 있어.’
재밌고, 귀엽고, 앙증맞게 말을 할 줄 안다. 그리고 그냥 예쁘게 생겼다. 솔직히 여캠은 외모가 9할이라서 딱히 방송을 못해도 상관은 없다.
하지만 그런 식이면 곤란하다. 내가 키우려고 하는 방송인은 선정적이고, 헐벗은 한물간 텐프로 같은 인종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듀라한. 얼굴을 내세우지 않고 시작한다. 내면의 마음씨만으로도 충분히 시청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재다.
“돈을 받았으면 어떻게 해야 될까?”
“감사합니다?”
“그래,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고맙습니다?”
“…….”
―인사성 밝은 거 보소
―잘 자랐어
―애가 착하네
―착하면 됐지 암ㅋㅋㅋㅋㅋ
그 길이 조금 고되리란 전망이다.
* * *
단풍잎스토리 커뮤니티.
흘러가는 떡밥은 평소와 조금 많이 달랐다.
―오정환 오늘 레전드네ㅋㅋㅋㅋㅋ
―여중생 게스트 하앜하앜
―ㄹㅇ 파프리카TV는 이거지!
…
…
게임이 아닌, 다른 것에 눈이 돌아갔다.
그 이유는 가장 인지도 있으며, 영향력까지 넘치는 오정환이 새로운 콘텐츠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용은 별거 없다. 초보 유저인 게스트가 게임을 한다. 그것이 신선해서? 초보 시절이 기억나서? 정말 반은 맞다.
―와 여중생쨩 실화냐ㅋㅋㅋㅋ
나랑 띠동갑이야 띠동갑. 중학생 때 반 여학생들도 저렇게 풋풋했을까?
└아재요…….
└아재도 단풍잎함?
글쓴이―20대 후반이 왜 아재야 ㅅㅂ
└응 군대 갔다 오면 아재
정말 신선하다. 정말 파릇파릇할 수밖에 없는 나이대다. 하물며 정반대의 성별은 뭇 남성들을 설레게 만든다.
이슈가 된다. 아주 크게. 그 효과는 단풍잎스토리가 아닌, 일반 시청자들에게까지 와닿는다.
―지나가던큰손 님, 별풍선 1, 000개 감사합니다!
여기 천 원^^
“헐 지나가던큰손 오빠 천 원 감사합니다. 저 이제 8만 8천 원만 모으면 해방될 수 있어요!”
―헐!
―해방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졸라 귀여워
―천 원인데 10만 원어치 같은 혜자 리액션!
현재의 파프리카TV.
게임 방송은 오히려 비주류다. 보라와 먹방, 그리고 여캠이 가장 주를 이룬다.
즉, 시청자 수의 단위가 다르다. 평소의 두 배 이상으로 흥행하고 있다. 물론 그러다 보니 생기는 부작용도 있다.
―스피드웨건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별풍선 1개에 100원인데;;
“헐! 그런 거예요?”
―찐
―쟤 분탕이에요
―눈치 존나 없네
―10만 원이라는 어그로들 쳐내!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분탕들. 반장난이라고는 하지만 속이는 쪽도 보람이 있다. 혹시라도 눈치챌까 애가 탄다.
“그치만, 그치만! 한 개에 100원이면, 1, 000개에 10만 원이에요. 그러면 너무 많아요. 저는 속지 않아요~”
―코건 맞지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걸 안 속네ㅋㅋㅋㅋㅋㅋ
―세속에 물들지 않았어 ㅠㅠ
―여중생쨩에게 10만 원은 너무 많다구!
위기도 있었다. 쉬운 길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BJ 본인이 방송에 익숙지 않다. 하지만 방송은 BJ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수많은 시청자들. 그리고 큰손들.
―강남건물주 님, 별풍선 2, 000개 감사합니다!
2천 원 추가요!
“헉! 강남건물주 오빠 2천 원 너무 감사해요. 제가 루디브리엄 파티 퀘스트 빨리 깨는 법 알려드릴게요. 저 엄청 잘해요~!”
―파퀘ㅋㅋㅋㅋㅋㅋ
―말하는 거 너무 귀엽다
―겨우 2천 원에 파퀘 비법을!
―사실 그걸로 떡볶이 한 판은 사먹을 수 있는 읍읍
그렇게 전설을 써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