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BJ의 세계
최근의 일상은 바쁘다. 아니, 강제로 바빠졌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아, 네. 네. 너무 네만 하는 거 아니냐고요? 제가 네네치킨 창업 준비 중이라, 하하.”
연락이 시도 때도 없이 온다. 처음에는 철꾸라지 하나였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니 점점 좀비 떼처럼 불어난다.
그 상대를 해주는 것이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BJ들 중에 열등감에 찌든 애들이 워낙 많아서.’
적당히 상대하다가는 나중에 텃세에 휘말릴 수 있다. 심하면 뒷담 내지 해코지를 하기도 한다.
업계 사정을 알고 있기에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는다. 대체 왜 그런 건지. 나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결국 나온 결론은 방송이 저질이라 그렇다.
‘가끔 오래된 소설 같은데 그런 내용 있잖아.’
3D 업종의 종사자. 돈을 크게 벌고 성공하여 처음 양복을 맞춘다. 그리고 부자들만 가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첫 식사를 한다.
뿌듯한 성취감. 나이프와 포크를 손에 쥔 자신. 하지만 그의 눈에 비친 건 아름다운 식기도 맛있는 요리도 아닌 두 손이었다.
갈라지고 때가 끼어 볼품없다. 도저히 이 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니다.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그렇게 느낀 것이다.
‘물론 직업에 귀천은 없어.’
정말 옛날 소설에서나 나올 내용이다. 그것을 현대에서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아니, 느끼지 않으면 정말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놈이다.
몸에 간장 뿌리고, 누구 속이고, 몸 팔고 이런 식으로 돈 벌면서 떳떳하면 정신 병원 한번 가봐야지.
걔네들도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 안다. 그러니까 더 신경을 쓴다. 그런 저질스러운 행위를 콘텐츠라고 자기 최면을 거는 건 양반이다.
유흥업소나 클럽 같은 데서 돈을 뿌리며 자존감을 채운다. 그리고 가장 나쁜 케이스인 갑질.
“네, 네. 제가 방송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걔도 학업에 몰두할 나이라서…….”
<이러고서 딴 데 가는 거 아니지?>
“아, 안 가죠~ 네, 알겠습니다.”
금일 일곱 번째 걸려온 전화를 끊는다. 전형적인 열등감에 시달리는 부류의 인간이다.
‘김군 이 자식 이번 생에는 군대 한번 가야 되는데.’
정말 안 나가는 개그맨 출신으로, 꼴에 연예인이라고 목에 힘 주고 다니는 망나니다. 성격이 얼마나 더럽고 좀팽이인지.
안타깝게도 지난 생에는 친했다. BJ 간의 파벌이라는 게 한 번 섞이면 못 헤어 나온다.
취향이 비슷해서 친해졌는데 후회하고 있다. 알면 알수록 쓰레기가 뭔지 처음 느꼈다.
여하튼 거절이다. 싹 다.
오는 제의라는 제의는 전부 반려하고 있다. 뭔가 꿍꿍이가 있다기보다는 애초부터 그럴 생각이었다.
‘아직은 그 난장판에 끼면 안 돼.’
아무리 피지컬이 좋아도 체급 차이에 장사 없는 법이다. 빈손으로 껴도 될 만큼 만만한 업계가 아니다. 지금은 힘을 길러야 할 시기다.
개인 방송에 집중한다. 매일 방송을 켜는 오후 두 시. 방송을 켜자마자 시청자가 몰려오며 채팅 창이 주르륵 올라간다.
―환이루
―오늘 또 늦었네 ㅡㅡ
―여중생쨩 오면 봐줌
―봄이! 봄이! 봄이! 봄이!
최근 방송은 잘나간다. 구태여 봄이가 아니라도 말이다. 그냥 하던 방송만 해도 성장은 시간문제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그도 그럴 게 너무 엄청난 화제다. 연락이 시도 때도 없이 오는 원인이기도 하다.
―사랑의사자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여중생쨩 방송하면 대박 날 텐데 왜 안 함?
“오자마자 100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봄이 때문에 연락이 하도 와서 늦었어요.”
내 시청자들도 성화다. 기존 시청자는 물론이고, 유입 시청자도 엄청나게 많다. 전자, 후자 가리지 않고 듣는 소리.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는 거지.’
틀린 말은 아니다. 기회라는 게 아무리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고 해도, 올 때 제대로 안 잡으면 결국 말짱 도루묵이다.
일련의 사실을 아주 잘 아는 입장이다. 바로 그래서다. 이건 기회가 아니다. 사과는 사과이되 독이 든 사과다.
“제가 오늘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더는 다른 말 나오지 않게.”
예쁜 겉모습만 보고 베어 물면 큰일 난다. Beginner's luck(초심자의 행운).
봄이의 성공은 우연이다. 콘텐츠를 진행한 나도 이 정도로 대박이 날 거라고 상정을 안 했다.
그것이 실력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BJ는 결코 만만한 직업이 아니다.
“제가 당시 방송 때도 말했지만 봄이는 일반인이에요. 그리고 학업에 몰두해야 할 나이입니다. 본인을 위해서라도 이 시간부로 이야기 꺼내지 말아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헐
―BJ 하면 떼돈 벌 텐데 왜 ㅠㅠ
―진짜 이해가 안 되네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버는 거 모르나??
세상은 돈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것도 분명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돈에 인생을 먹혀버린 사람을 나는 수없이 봐왔다.
‘뭐, 그것도 이유라면 이유인데.’
사실 그보다 큰 건 그냥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
* * *
엄청난 소란이다.
파프리카TV가 뒤집혀 버렸을 정도다. 세간에서도 그 여중생 BJ의 향방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데.
“언급하지 마세요. 제가 웬만하면 이런 말씀 안 드리는데 블랙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당사자가 욕심이 없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의 방송을 진행한다. 자신의 주요 콘텐츠이자 근본인 단풍잎스토리 말이다.
―비숍마스터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드디어 다시 카쿰의 투구 나눔 하시나요!
“예, 한동안 바빠서 못했는데 오늘부터 다시 합니다.”
―왜…….
―여중생쨩은 ㅠㅠ
―유입들 존나 징징대네
―여기 원래 단풍잎 방송이라고!
민심을 거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유입된 시청자들은 마음이 상하면 나가는 건 당연하고, 분탕의 소지도 있다. 그조차 감수를 한다.
대수롭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성공을 마다하고 소박한 방송을 이어나가는 이유.
‘어, 이 자식 진짜 욕심 없네?’
‘전화로 했던 말이 사실이었나…….’
‘돈다발이 굴러 들어오는데 미친놈 아니야!’
한국 사회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 하나는 빠르게 달아오른다는 점이다. 둘은 따라 하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일련의 사태를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철꾸라지를 포함한 인기 BJ의 크루들. 오정환에게 관심을 가진 이유는 하나가 아니다.
‘여중생쨩이 복귀를 안 한단 말이지?’
‘나중에 다시 한다고 해도 늦었어.’
‘이건 기회야. 그전에 우리가 싹 접수하면 돼!’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건지. 아니면 정말 진심을 말한 건지. 그건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여중생쨩의 복귀가 불투명하다. 그리고 세간의 화제는 여전하다. 그렇다면 이것은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띨빵한철꾸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와! 여중생쨩이다!
“띨빵 형님 100개 앙 기모띠!”
몇몇 크루들이 야심차게 준비한다. 솔직히 별거 없잖아. 그냥 어린 여캠이 순수한 콘셉트로 방송하는 거잖아.
그렇다. 한국에서 무언가가 떴을 때, 이를 따라 하려는 무리가 우후죽순 벌 떼처럼 솟아난다.
‘그냥 목소리 귀여운 애 세우면 되는 거 아니야?’
‘별풍선 잘 모르는 척만 하면 돼.’
‘캠까지 켜면 더 잘 먹히겠지?’
별 투자나 콘텐츠도 없이 별풍선 10만 개를 꿀꺽했다. 이를 더 화려하게 준비한다면?
그 이상의 노다지가 될 수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그 가치를 눈치챈 크루들이 달려든다. 각자의 방법으로 ‘여중생 콘셉트’의 여캠을 데뷔시킨다.
―띨빵한철꾸 님, 별풍선 1, 000개 감사합니다!
여기 천 원^^
“어머 띨빵한 오빠 천 원 고마워요. 그걸로 붕어빵 사먹어야지~!”
―붕어빵 맛있지
―그걸로 100개는 더 사먹을 수 있어!
―띨빵한 오빠래ㅋㅋㅋㅋ
―너무 작위적인데;;
―지나가던행인 님이 강제 퇴장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혹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정말? 여중생쨩이 다시 방송을 한다고? 그 본인은 아니지만 뭐 어때.
소비자들은 신경을 잘 안 쓴다. 한국에 카피캣이 유독 활발한 이유이기도 하다.
밥버거, 생과일주스, 버블티 등.
유행을 타면 비슷한 음식점이 흥행한다. 하지만 여중생은 음식점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파프리카TV 갔다가 토할 뻔했네ㅋㅋㅋㅋ
업소에서 일할 것 같은 년이 오빠들 저 별풍선이 뭔지 몰라요~ 이 X랄 하는 것 보고 1초 만에 껐음└반응 속도 레전드└프로게이머 해도 되겠는데?
└ㄹㅇ 컨셉 티 존나 남
└애초에 대기업 끼고 방송하는데 모를 수가 있냐ㅋㅋ
오히려 욕만 바가지로 먹게 된다. 비슷한 콘셉트, 비슷한 콘텐츠. 그럼에도 세간의 반응은 싸늘하다.
신규 시청자 유입? 천 원처럼 터지는 별풍선? 대박은 고사하고 쪽박신세를 면치 못한다.
―여중생쨩 따라 하는 여캠들이 경멸스러운. EU
원래 파프리카TV가 별창들 천지라는 건 누구나 앎. 그래서 순진한 BJ가 나오니까 열광했던 거임그걸 작위적으로 따라 한다? 시청자가 ㅈ으로 보이냐?
└이게 맏따
└개추
└어딜 아줌마들이 여중생쨩을 흉내내려고
└진흙 속에 핀 꽃을 이렇게 꺾어버리네 ㄹㅇ
그 이유.
큰손들이 지갑을 선뜻 열고,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건 순수함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쁘고, 귀여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즉, 콘셉트도 콘텐츠도 아니다.
그 여중생의 매력에 흠뻑 빠졌던 것이다. 음식점과 달리 레시피도 없고, 따라 한다고 잘될 리도 없다.
“여중생 힘들다고 해서 여고생 시켜줬더니 그거 하나 똑바로 연기를 못 해?”
“오쪼라구~ 믿는 놈이 등신이지.”
“오빠만 믿으면 성공한다며!”
“닥쳐, 이년아.”
카피캣 산업은 그래도 돈이 되니까 하지. 인터넷 방송은 민심이 곧 수익과 직결된다.
유입 시청자는 하나도 못 잡고, 고정 시청자들은 평소의 자극적인 맛이 더 익숙하다.
결국 며칠 만에 현실을 직시한다. 더 해봤자 먹을 건 욕밖에 없다는 걸. 하지만 그런다고 싸지른 똥이 사라지진 않는다.
이종격투기―『자본주의가 낳은 파프리카 여캠 현 상황. jpg』
樂 SOCCER―『삐슝빠슝! 자신이 여고생이라 믿는 20대 여성이 있다?』
도탁스(DOTAX)―『사탄 경악… 여중생한테 별풍 장사시키는 인터넷 방송』
…
…
괜스레 긁어 부스럼.
음식점과 달리 방송은 신상이 노출된다. 어설프게 따라 한 크루들과 여캠은 박제가 되며 놀림 받는 신세다.
[Best Comment]―파프리카TV ㅈ도 관심 없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어떤 곳인지 잘 알아감└ㄹㅇㅋㅋㅋ
└개돼지들이나 보는 곳이지
└돈독 오른 BJ와 개돼지의 결합 ㅗㅜㅑ
└여중생쨩이 방송 안 해서 다행이다. 이 꼬라지 봤으면 트라우마 남았을 듯
파프리카TV의 이미지 또한.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크다. 조명받는 화제에 찬물을 끼얹은 대가를 치른다.
단기간에 주가가 5% 급상승. 냉철하게 말하면 거품이 끼었다. 자리 잡지 못하면 그대로 사라질 거품 말이다.
“대표님, 보고드리겠습니다.”
“그래.”
“좀 많이 떨어졌습니다.”
“화제 전으로 되돌아갔다는 거겠지?”
“그게 그때보다 5% 더…….”
“오정환 당장 불러!”
단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