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RPG 게임이다. 그리고 돈슨 게임이다. 업데이트 주기가 꽤 잦은 편이고, 개중에는 굵직한 대형 패치도 포함된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카오스 카쿰을 물리친 원정대여! 그대들이 진정한 설원의 수호자다!』
평소와 같은 알림. 하지만 조금 다르다. 배경의 분위기부터 그 진중함을 대변해 준다.
―와…….
―6인 카오스 카쿰
―화력이 되니까 이걸 잡네
―역시 오정환!
어두침침한 배경. 긴장을 잔뜩 잡아먹게 만든다. 그 긴장이 무색하게도 6인 공대로 가볍게 클리어한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카오스 카쿰은 이미 두 달 전에 클리어했어요. 그때는 공대원이 좀 더 많긴 했지만.”
카쿰의 상위종인 카오스 카쿰이다. 국산 RPG 게임에 흔히 있는 색깔 놀이.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난이도가 사뭇 다르다.
카쿰과는 아예 비교가 안 된다. 라테일을 웃도는 체력을 자랑한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운 패턴이 추가되어 여간 까다롭다.
“유혹은 물론이고, 언데드화, 물약 봉인, 방향키 반대 같은 까다로운 패턴을 사용하긴 하는데…….”
―지금은 제 점심이죠
―깨고 말하니까 멋있다ㄷㄷ
―아니, 저게 다 얼마야
―최초 격파자도 정환이 아니었음??
그렇다. 방송을 하기 전에 말이다. 그리고 회귀가 이뤄지기 이전의 나.
‘근데 뭐 별건 아니야.’
까다로운 거지, 대응이 안 되는 건 아니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어? 싶지만 막상 해보면 ‘올ㅋ.’ 어찌저찌할 만하다.
? 언데드화=힐에 대미지 입음, 물약 효율 절반으로 감소? 물약 봉인=물약을 쓸 수 없음.
? 방향키 반대=방향키가 반대로 움직임.
기존 레이드로 충실히 경험을 쌓은 이라면 몇 차례의 시행착오로 어렵지 않게 대응할 수 있다.
카오스 라테일은 달랐다는 이야기다.
“사실 카오스 카쿰은 제가 아니었어도 금방 격파가 됐을 거예요. 문제는 이번에 도전하려는 카오스 라테일이죠.”
출시된 지는 두 달이 지났다. 그럼에도 여전히 격파가 감감무소식이다. 혹시 보상이 안 좋아서 유저들의 흥미를 못 끌었나?
그런 것도 아니다. 데이터 유출에 의하면 드롭템 목록이 화려하다. 무엇보다 탐나는 건 고유 보상인 카오스 라테일의 목걸이.
『카오스 라테일의 목걸이』
STR: +25
DEX: +25
INT: +25
LUX: +25
MaxHP: +10%
MaxMP: +10%
공격력: +2
마력: +2
물리 방어력: +500
마법 방어력: +500
회피치: +180
일반 아이템들과는 단위 수가 다른 능력치를 주렁주렁 달고 있다. 주렁주렁 말이다. 얻고 싶어 안달이 날 수밖에 없는 유니크 아이템이다.
―오정환환환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근데 왜 격파를 못 하는 거임??
“카오스 카쿰은 그냥 패턴이 추가된 느낌이라면, 카오스 라테일은 공대원들 간에 합이 안 맞으면 대응도 안 되는 수준이지.”
―오…….
―진짜 레이드네
―ㄹㅇ 레이드는 이런 느낌이어야지!
―그래서 아무도 못 깼구나
마치 최초 격파 이전의 카쿰, 라테일처럼 벽이 느껴졌다. 아무도 깰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공략법을 알고 있고.’
이전 생에서의 시행착오. 고스란히까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뭐 아인슈타인이나 폰 노이만도 아니고.
하지만 대략적인 느낌은 기억난다. 이미 걸었던 길을 되짚는 것이니만큼 어려울 것도 없다.
그때보다 여건도 좋다. 이렇듯 높은 인지도와 돈까지 있다. 강도 높은 투자가 없어도 격파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서는데.
q샤키노p[스카니아―20]>> 안 될 거 같다
프로[스카니아―20]>> 안 되는 건 아닌데 좀
자리삽니다[스카니아―20]>> 흠… 나중에 말씀드림
그 영입에 차질이 생긴다.
6인텔을 함께했던 멤버들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내봤지만 퇴짜를 맞았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아직 격파되지 않은 보스다. 안정성과 수익성 면에서 애매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첬첬[스카니아―20]>> 방송 켬?
오정환[스카니아―15]<< ㅇ
첬첬[스카니아―20]>> 아ㅋㅋ 끄면 말해줌. ㅈㄴ 웃김
―뭐지?
―같이 좀 알자고!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궁금하게 만드네
그 이유.
자연적인 것은 아닌 모양이다.
* * *
레이드의 최초 격파.
해당 보스 몬스터의 드롭템을 처음으로 얻을 수 있다. 그 금전적 가치도 엄청나며, 무엇보다 명예로운 일이다.
게임 내에서 인정받고, 대외적으로도 이름을 떨친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REAL꼬마법샤: 우리가 스카니아의 질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베르사유 길드의 내부 회의. 수십 명의 길드원들이 모여있다. 아니, 그 외의 참석자도 눈에 띈다.
첬첬: 어캐여
프로: ㅋㅋ
MISSHA둥이l: 투구랑 목걸이 시세만 올릴 수 있다면야…….
각 길드의 수장들이다. 혹은 네임드급 유저와 공대장. 즉, 스카니아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이들이 다 모였다.
그 이유, 바로 레이드의 질적인 관리를 하기 위해서다. ‘어중이떠중이’가 더 이상 설치지 못하도록 만들겠다.
REAL꼬마법샤: 최근 카쿰의 투구도, 라테일의 목걸이도 시세가 많이 떨어졌죠? 옛날과 달리 개나 소나 착용하게 되었고요.
최초 격파자가 가지는 진짜 힘. 그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향력이다. 그다음 격파자들은 필연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전리품의 분배, 그리고 취급 방식. 앞선 선례를 무심코 따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 질서가 성립되면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
언덕위의달: 확실히 그런 감은 있죠
yuyugu: 오정환이 물량을 하도 풀어서ㅋㅋ
MISSHA둥이l: 그러니까 우리가 시세를 통제하자는 건가요??
때문에 오정환의 존재는 거슬린다. 대형 길드에 속하지 않고 레이드에 몰두하는 괴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자신들이 독점해야 할 이권을 멋대로 가로챈다.
‘카오스 카쿰도 단단히 해먹을 수 있었는데.’
기존 질서의 중심에 있던 게 바로 베르사유다. 스카니아 1위 길드로서 카쿰/라테일 시간과 분쟁을 조정하는 중재 역할을 자처한다.
얼핏 고생스러운 일 같지만 진짜는 그 이면이다. 말이 중재지, 밉보이면 빼앗거나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싸움이 일어났을 때 한쪽 편을 들어주는 식으로 말이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이권을 얻는다.
새로 나오는 보스 몬스터들도 그래야만 했다. 이를 거스르는 오정환의 존재는 위협일 수밖에 없다.
REAL꼬마법샤: 저희 베르사유 길드는 카오스 라테일 공략에 총력을 다할 것이니 각 길드는 적극적인 협조 부탁 바랍니다.
지금까지는 그러했다. 뺏겼던 고삐를 자신들이 되찾겠다. 카오스 라테일을 최초로 격파하고, 스카니아의 질서를 새로이 정리할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영향력 있는 유저들을 모은 이유다. 비율로 따지면 전체의 0.01%도 안 되지만, 그 소수의 고레벨이 스카니아 서버를 주무른다.
왕거지아빠: 구체적인 방법은?
REAL꼬마법샤: 각 길드의 랭커들을 최우선으로 지원해 주세요. 다른 공대에는 최대한 지양해 주시고요
언덕위의달: 그 정도쯤이라면…….
MISSHA둥이l: 우리는 하겠습니다!
얼핏 의아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게 가능해? 싶다.
하지만 인터넷에 제대로 된 정보가 올라오지 않던 시절이며, 고레벨 랭커의 육성은 매우 어렵고 힘들었다.
어차피 일반 유저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상위 보스 몬스터를 잡을 수 없고, 잡을 방법도 알 도리가 없다. 어쩌다 몇 번 격파해도 대세에는 큰 지장을 주지 않는다.
단 한 명만 훼방을 놓지 않는다면.
‘뭐, 돈만 된다면야.’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아니, 솔직히… 옛날보다 수입이 줄어들긴 했어.’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 * *
여차저차 이야기는 들었다. 과거의 경험과는 달라진 흐름이다.
‘뭐,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은 있지.’
베르사유 길드와는 사이가 매우 안 좋다. 이전의 사건이 아니어도 원래부터 말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흥미있고, 재미있는 것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거슬렸다는 것이다. 훼방이나 뒷담은 세기도 귀찮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처럼 본격적이었던 경우까지는 없었다.
‘아마 속도의 차이일 거야.’
RPG 게임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상위권의 랭커. 큰일을 벌리면 다른 유저들도 영향을 받는다.
그 속도가 조금 빨랐다. 방송적 콘텐츠로 이용했던 탓이다. 일부 상위권 유저들이 탐탁지 않아 할 만도 하다.
마치 펑이조처럼 말이다. 신경을 쓰지 않으면 대가를 치른다. 신경을 쓴다고 썼음에도, 전부 아우를 수는 없었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에요.”
첬첬에게 이야기를 듣고 다시 방송을 켰다.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주고 싶어서. 그 이전에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S2파워표도S2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베르사유 길드한테 찍혀서 그런 거임? ㄷㄷ
“조금 달라요. 아무리 베르사유가 1위 길드라고 해도, 스카니아 전체를 쥐었다 폈다 할 수는 없죠.”
무슨 게임 소설에나 나올 법한 초거대 길드도 아니고. PK도 안 되는 단풍잎스토리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맹점 때문에 생기는 카르텔도 존재한다. 바로 레이드.
오직 고레벨 유저들만이 격파가 가능하다. 드롭 아이템의 시세를 담합하는 것은 물론, 저레벨 유저의 통제도 된다.
“저번에 말했던 갑질을 그래서 하는 거예요. 너가 ㅈ대로 하면 나중에 고렙 돼도 레이드 안 껴준다는 식의 협박.”
―ㄹㅇ
―유명 길드들 무서움 ㅠㅠ
―난 걍 무시하는데
―근데 저거 실제로 당하면 무서워…….
차후에야 200레벨 찍는 데 많이 걸려도 며칠이다. 하지만 현재는 피똥을 싸도 한 시간에 경험치가 10% 오르고, 더 레벨이 올라가면 5%도 안 오르는 이런 시기다.
열심히 키운 아이디가 낙인이 찍힌다? 가진 자일수록 잃는 게 더 두렵기 마련이다. 유명 길드들은 그런 방식으로 유저 통제가 가능하다.
‘근데 나한테는 그게 안 되지.’
이미 커버릴 대로 커버렸다. 오히려 레이드에 한하면 자기들보다 전문가다. 그런 나를 통제하기 위해 베르사유가 움직였다는 소리다.
물론 걔네들이랑 안 놀아도 난 상관없다. 새로운 보스 몬스터에 대한 정보? 안 가르쳐줘도 알아서 잘 먹고 잘 살 자신이 있다.
―메이플Love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베르사유가 다른 길드랑 뭉쳐서 정환이 왕따시키는 거네!
“…정리 감사합니다. 근데 그렇게 다이렉트로 말하면 상처 입어요.”
―팩폭 밴입니다
―그거였네ㅋㅋㅋㅋ
―스카니아 왕따가 돼버렸누
―거의 펑이조 신세인데?
펑이조와는 다르다. 어디까지나 명분과 이해타산.
소속이 다른 고레벨 유저들이 베르사유의 입장을 지지하는 건 자신들의 실리를 위해서다.
카오스 라테일의 공략. 그 외의 부분에 있어서는 이미 선두 주자인 나와 함께하는 게 낫다. 이런 구구절절한 이야기까지 당사자들에게 들어서 나는 이미 이해했지만.
―vV힘센전nrVv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차피 고레벨들 싸움 아님?
시청자들에게는 조금 복잡한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살짝 거슬러 올라가려고 한다. 지금 이 이야기가 어째서 일반 유저들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와닿게 말씀드리자면, 지금 여러분들이 당연하게 쓰고 있는 카쿰의 투구는 얼마 전까지 고레벨들의 전유물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