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RPG를 하는 이유
소문은 빠르게 퍼진다. 안 그래도 좁은 판이기도 하거니와.
―와 오정환 카텔 미션풍 대박이네ㅋㅋㅋㅋ
회장님이 또 만 개 걺!
심지어 원트클 하면 따블로 ㄷㄷㄷ
└원트클은 쌉에바지ㅋㅋㅋㅋㅋㅋ
└1만 개만 해도 어디냐…….
└1만 개면 얼마임? 1만 원?
글쓴이―니가 무슨 여중생쨩이니?
그 규모.
오정환은 더 이상 하꼬도, 신인도 아니다. 데뷔 시기는 짧을지언정 세간의 취급은 거물에 가깝다.
하물며 단풍잎스토리다. 랭커로서의 존재감은 비교를 불허한다. 그런 유명인이 카오스 라테일의 최초 격파를 노리고 있다.
『Maple) 오정환. 카오스 라테일 전섭 최초 격파 中(깨면 별풍선 1만 개)』
? 본방: 528 (PC: 248/ MOBILE: 280)
? 중계방: 1, 732
? 누적 시청자 수: 21, 247
평소와는 앞자리가 달라진 시청자로 북적거린다. 단풍잎스토리 유저라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는 화두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격파 못 한 보스를 처음으로 공략한다는 기대. 별풍선 1만 개라는 차원이 다른 열혈의 후원.
사실 그 진가는 시청자의 참여에 있다.
―Maple초보자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100개도 되나? 오늘 안에 성공하면!
“100개도 당연히 되죠. 미션 받았습니다.”
―100개도 됨?
―그 Boom이었으면 그냥 내놔! 했을 텐데ㅋㅋ
―역시 갓정환!
―오, 그럼 나도 해볼까?
방송인에게 후원을 한다.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익숙하지 않다. 게임을 왜 돈 주고 하냐? 그런 시선이 아직 남아있던 시기다.
캐시 아이템조차 남지 않는 후원에는 더욱 까다롭다. 게임 방송의 풍력이 낮은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가지 전제가 깔리며 특별한 이벤트가 연출된다.
―정환이 카텔 하는데 미션 걸어볼까?
뭘로 걸어야 안전하지?
추천 좀ㅋㅋ
└나도 하나 걸었음!
└그냥 성공에 걸면 안전 자산이야
글쓴이―달러급 안전 자산임?
└ㄴㄴ 엔화급
이런 재밌어 보이는 사태.
회장님처럼 펑펑! 쏠 수는 없어도 만 원, 2만 원 정도는 누구나 여유가 있다. 게다가 반드시 쏘는 것도 아니다. 미션이란 이름의 퀘스트를 성공해야 한다.
자신이 방송을 일부 이끌고 있다는 몰입감에 빠져든다.
―근데 현실적으로 카텔을 깰 수가 있나?
플레이포럼 눈팅 해보면 거의 못 깬다는 분위기가 중론이던데 └틀딱포럼ㄷㄷ
└거기가 고레벨 많아서 신뢰도 높긴 함
└오정환이니까 또 모르지
└깨면 안 됨! 나 200개 미션 걸었음
물론 그냥 지르고 보는 시청자도 많다.
솔직히 못 깰 것 같은데? 지난번 6인텔 때와는 난이도가 사뭇 다르다. 라테일은 동네북이 된 지 오래다.
숱한 경험으로 인원수를 줄인 정도다. 아무도 깨지 못한 카오스 라테일은 그 경험조차 없다.
―카텔 깨면 평생 오정환 빤다ㅋㅋㅋ [7] +1
―메창 30명이 한 달은 공략해야 할걸? [3]
―이 기회에 오정환 거품 좀 빠져야 돼 (미션 제발) [13] +2…
…
내기. 사람을 들뜨게 만드는 두 글자. 커뮤니티 내에서도 오정환의 카오스 라테일 원정은 화제가 되고 있다.
과연 단풍잎스토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을지. 최초 격파자라는 타이틀은 확실히 두근댄다.
그 영광스러운 자리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아니 공대에 성기사도 있네ㅋㅋㅋㅋ
개쓰레기 직업 아닌가? 대체 왜 낀 거지?
└만렙이라?
└만렙도 150 표도보다 약할 텐데…….
└베르사유(?)인가 걔네랑 싸워서 인원이 부족한가 봐글쓴이―ㅇㅎ
단풍잎스토리 최악의 직업으로 손꼽히는 성·불·신. 그중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쓰레기라 자타공인 인정을 받았다.
나머지 직업은 사냥이라도 잘한다. 아니면 3차 전직 시절에 전성기가 존재했다든가.
성기사는 게임사가 존재를 잊고 있다는 소문이 진지하게 나돈다. 레이드에서 정말 하등 쓸모가 없다.
인원수를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넣었다 등등의 말이 나온다. 안타까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시청자들에게는 기회다.
―엔화급 안전 자산이었네ㅋㅋㅋㅋ
└공짜 미션 걸어야지~
└방금 500개 미션 검!
└미션 풍년이라 도망도 못 감~
후원을 하는 척 생색을 낼 수 있는! 그리고 BJ가 이 힘든 미션을 포기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족쇄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 * *
―미션하러옴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안 죽고 깨면 1, 000개ㅋㅋ
―설마깨겠어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오늘 안에 깨면 500개 ㅋㄷ
―커닝일찐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저는 현실적으로 1, 2단계 안 죽으면 200개 걸겠습니다ㅎㅎ…
…
카오스 라테일의 최초 격파 도전. 회장님을 따라 미션을 거는 시청자들이 부쩍 늘어났다.
“커닝일찐, bts1004님 미션 받았습니다. 여기 메모해 둘게요.”
하나하나 기억하기는 힘들다. 인간의 기억력 한계를 벗어나는 일이다. 때문에 정성껏 메모장에 써서 저장하고 있다.
‘내가 먹튀를 한두 번 당해본 게 아닌데.’
그 대처법을 모를 리 있을까? 닉네임뿐만 아니라 아이디까지 저장해 놔야 미션을 건 시청자가 위협을 느낀다.
BJ와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면 대가를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그렇게 해도 먹튀 할 놈은 먹튀 한다. 어디까지나 방편 중 하나. 가장 좋은 대처법은 마음에서 우러나와 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길고 길었다. 카오스 라테일, 그 도전을 위한 20인의 원정대가 꾸려졌다.
모을 수 있는 인맥을 카톡과 전화까지 활용하며 총동원한 결과다.
『1조』
성직자―프로
창기사―창들의혼령
활마스터―Love자리
딜러―오정환, 미들마치, 알사탕k
『2조』
성직자―곰승민
창기사―무적그리고
활마스터―사쿠라카츠미
딜러―총쏘고포쏘고, 첬첬, 도적캘런
『3조』
성직자―T없E해맑은Lr
창기사―real퓨리
활마스터―S2여리
딜러―밝은달의사신, l슈l, 벤츠
『4조』
성직자―MC청년
성직자―쪼77r이쁜걸s
그 한 명 한 명이 어지간한 이들이 아니다. 평균 레벨 195의 초월급 랭커들. 위상을 단적으로 설정하자면.
“카쿰을 10분 컷 낼 수 있는 괴물급 파티 세 팀과 혹시 모를 부활 셔틀입니다.”
―부활 셔틀ㅋㅋㅋㅋㅋㅋ
―4팀은 왜 있나 했네
―너무 적지 않나? 더 넣지
―분배 때문에 그렇겠지~
카오스 라테일은 최대 30명의 원정대를 꾸릴 수 있다. 인원을 꽉꽉 채우지 않은 건 돈 때문이라기보다는.
‘너무 많으면 너무 많은 대로 또 그래.’
혼란 상황에서 통제가 안 된다. 카오스 라테일, 그 명칭대로 패닉에 빠지는 상황이 반드시 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조차 많은 것은 사실이다.
―와우고인물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아니, 단풍잎 레이드라고 해봤자 소꿉장난이겠지 하고 왔는데 와우급이네ㄷㄷ
“10개 팬 가입 감사합니다. 카쿰이나 파풀처럼 간단한 건 혼자서도 잡는데 어려운 건 난이도가 꽤 있습니다.”
―혼자는 님이나 잡지ㅋㅋㅋ
―속지 마세요! 카쿰 혼자서 못 잡음 읍읍
―꽤(미격파)
―ㄹㅇ 와우급이긴 하네
거의 와우 신화급 공대다. 난이도도 정말 그에 못지않다. 흔히 단풍잎스토리 하면 캐주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고렙존은 고렙존 나름대로 ㅈ빠져.’
일반적인 RPG 게임의 레이드. 즉사 패턴 피하고, 간단한 건 맞으면서 물약 빨고, 여기저기 바쁘게 움직이면서 탱커, 딜러, 힐러가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근데 단풍잎은… 게임이 간단한 만큼 뭐 같은 게 많아요.”
―1/1 맞으면 꼼짝 못 하자너ㅋㅋㅋ
―이 게임은 탱커가 없어…….
―다 한 방 아니면 두 방인 ㅈ망겜!
―물약만 광클 하면 사는 거 아님?
상위 보스들은 그 광클을 못 하게 하기 위해 온갖 거지 같은 패턴들이 추가된다. 그중에서도 카오스 라테일은 악랄하다. 도전이 무모해 보일 만도 하다.
『깊은 동굴 속에서 거대한 생물체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1단계.
텅 빈 동굴 오른편에서 뿔이 달린 용의 머리가 불쑥 고개를 내민다. 카오스 라테일의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밝은달의사신: 이거 패턴이 뭔가요?
도적캘런: 아까 말했는데
밝은달의사신: 기억이 안 나서ㅋㅋ
원정대 채팅 창에 3조 딜러의 물음이 올라온다. 시작 전에 대략적인 설명을 했지만 까먹을 수도 있는 노릇이다.
‘저 사람은 해봤다고 하지 않았나?’
베르사유의 카텔 원정대에서. 뭐, 기억력이 금붕어라면 정말로 모를 수도 있다. 1단계는 딱히 별게 없기 때문에 설명도 그리 어렵지 않다.
“김이 빠질 수도 있지만, 그냥 라테일이랑 똑같아요. 체력만 좀 무식하게 많을 뿐이지. 대충 16억 정도?”
―16억 ㄷㄷ
―머리 하나가 그냥 라테일 반이네
―존~나 질긴 샌드백
―웬만한 파티는 하루 종일 패야 되겠다ㅋㅋㅋㅋ
딜러들의 스탯 공격력이 높아도 1만. 일반 몬스터 기준으로 한 방에 10만 정도 나오면 잘 나오던 시절이다.
풀버프를 받고, 아이템에 돈을 떡칠해도 20만을 넘는 게 불가능에 가까웠다.
‘보스 몬스터 특유의 방어력까지 감안하면 잡는데 진짜 한세월 걸리지.’
정말 웬만한 파티는 샌드백에 불과한 이 1단계에서 화력 부족의 좌절을 맛봐야 한다. 카오스 라테일은 두 시간 30분의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저희는 화력이 충분한 듯하네요.”
―반피 깎는 데 10분도 안 걸리네
―크~
―화력 엄청 세다
―진짜 다 정예라 가능함ㅋㅋㅋ
정예 of 정예다. 그런 이들을 스무 명이나 모으는 것도 웬만한 중노동 뺨쳤다.
‘이전부터 연락망을 만들어두어서 망정이지.’
단톡방 말이다. 과거의 내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비상 연락망을 잘 구축해 두었다. 이를 최대한 활용하고, 도움까지 받아 거의 짜내듯이 모았다.
―팔불신왜함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성기사는 대체 왜 넣음? 딜 진짜 쥐꼬리만 한데
“성기사 좋습니다. 친한 형이니까 너무 그러지 마세요.”
―인맥 전형ㅋㅋㅋㅋㅋㅋ
―진짜 왜 넣었지?
―그냥 자리 남아서 넣은 듯
―적폐 사유 때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하다. 특히 아이템 세팅이 완비된 딜러는 일반 라테일에서도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퍽! 퍽!
하늘의 별 따기인 이유가 있다. 성기사의 칼질. 후원 메시지 때문인지 시청자들이 성기사의 딜량만 유심히 본다.
―한 방에 2만…….
―상상 그 이상으로 약하다;;
―심지어 공격 속도도 느려!
―진짜 왜 낌? 인맥이라고 특별 대우함?
묵직한 칼질을 열심히 욱여넣어도 다른 딜러진이 설렁설렁 친 한 대보다 못하다. 아이템이 안 좋아서? 레벨이 낮아서?
‘아니야.’
무려 만렙. 아이템도 다른 고인물들 뺨을 친다. 직업적인 한계가 솔직하게 있기도 하거니와.
오정환: 전기 속성이라 대미지 반감돼요.
알사탕k: 그래?
무기에 속성을 싣는다는 마검사 같은 특색을 지녔다. 설명만 놓고 보면 좋아 보이지만, 같은 속성으로 때리면 대미지가 반감되기도 한다.
물론 다른 속성으로 바꾸면 해결되는 문제다.
―와 이제 3만 박히네ㅋ
―…….
―불쌍해서 뭐라 하기도 뭣하다
―나 140 서민 궁수인데 내가 더 셈 ㅅㄱ
직업을 바꾸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 비주류 직업의 애환. 별 X랄 똥꼬쇼를 다 해도 주류 직업의 절반을 따라가기 힘들다.
‘대체 왜 끼냐는 채팅이 올라올 만도 해.’
평소의 내 게임 스타일과 상반되기도 하다. 비효율적이잖아? 차라리 그 자리에 적당한 딜러를 꼈으면 1분이라도 더 빨리 깨겠다.
그 말도 분명 틀리지 않다. 난이도가 낮은 1, 2단계에서는 말이다.
성기사를 낀 이유가 무엇인지, 남자는 말이 많을 필요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