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2단계도 별거 없습니다. 그냥 똑같은 샌드백이에요.”
카오스 라테일의 원정은 착착 진행된다. 아직까지는 맛보기. 특별할 것이 없어야 하지만.
오정환: 2단계는 얼음 속성입니다.
알사탕k: ㅇㅋ
단 한 명만큼은 예외다. 단순한 공격조차 머리를 잘 굴려가면서 때려야 하는 골치 아픈 특성을 가졌다.
―안 그래도 노딜인데 속성까지 신경 써서 때려야 되네 ―ㄹㅇ 병신 직업ㅋㅋ―님들 말 좀 예쁘게 하세요;;
―병신이라 하지 말고 모자라다고 합시다!
그거나 저거나.
우러러 보이는 수많은 랭커들 중 유독 눈에 띄는 한 명이 끊임없이 거론된다.
‘근데 진짜 병신 직업 맞아.’
내가 사전 정보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버프를 하나하나 바꿔가면 이 녀석을 뭘로 때려야 그나마 잘 박히나… 연구를 해야 됐을 것이다.
그 고생을 거쳐도 다른 딜러의 반의반이 겨우 박힌다. 처참하다. 비슷한 다른 전사군은 대미지도 속성을 안 타고, 광역딜이라 레이드도 사냥도 준수하다.
정말 유일하게 성기사만이 단일딜인 데다 속성도 타고, 사냥 속도도 안 좋아 장점이랄 것이 하나도 주어지지 않았다.
―메이플1년차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상향을 안 해준 돈슨도 ㅄ이긴 한데 저걸 만렙까지 키운 저 사람도 정상은 아닌 듯;;
“희귀한 직업이죠. 그래서 자부심이 있는 거고.”
―내 똥도 희소함
―똥믈리에ㅋㅋㅋㅋ
―보통은 직업 갈아탈 텐데
―성기사 탈출은 지능 순…….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레벨 업이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
아시안느가 꼴랑 120레벨 찍고, 타락파워전사가 200 한 번 찍었다고 칭송받은 이유가 있었다.
‘190 이후부터는 한 시간에 0.1%씩 오르던 시절이야.’
1%가 아니라 0.1%. 그것도 풀파티로 기계처럼 개빡겜 했을 때 기준이다.
이 형이 타락파워전사는 아니지만 그에 준할 정도로 레벨이 높았다. 그렇게 애정이 깃든 캐릭을 어떻게 버려?
아무리 못해도 마저 만렙은 찍어야지. 만렙 찍고 나면 부캐 키울 엄두가 안 나지.
현 상황에 오게 된 과정이란 것이다. 이 형도 나름대로 웃지 못할 사정이 있다. 그것이 남들 눈에는 개그콘서트로 보일 뿐.
오정환: 고생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짜 고생의 시작인데요…….
사쿠라카츠미: ㅋㅋㅋㅋ
미들마치: ㄹㅇㅅㅂ
밝은달의사신: 다시 설명 좀요!
1, 2단계가 끝이 났다. 그리고 3단계의 코앞에 서있다.
그 시작에 앞서 짤막한 설명에 들어간다. 앞서 설명하긴 했다. 까먹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애써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오정환: 꼬리는 독이고, 다리는, 전기고, 날개는 왼쪽이 불 오른쪽이 얼음이고, 팔은 그 반대고요, 머리는 왼쪽부터 불·전기·얼음 순입니다
알사탕k: ㅇㅋ 저장해 둠
―으악ㅋㅋㅋㅋㅋ
―저걸 다 외워야 하누
―ㄹㅇ ㅈ병신 직업ㅋㅋㅋ
―혼자 하드코어 모드 즐기는 중ㅋㅋㅋㅋㅋㅋㅋ
여러 부위로 나뉜 탓이다. 각 부위에 맞춰 무기의 속성을 달리해야 한다. 그렇게 공격 순서를 암기해도, 다른 직업의 발끝에도 못 따라간다.
‘대단해 아주.’
이런 말을 하긴 좀 그렇지만 이 정도로 병신인 직업은 성기사밖에 없다.
아무리 돈슨이 돈슨 소리 들어도 게임 밸런스는 나름대로 신경을 쓴다. 정말 게임사가 존재를 잊고 있다는 소문이 나올 만도 하다.
『동굴이 흔들리며 카오스 라테일이 나타났습니다!』
그렇기에 생기는 맹점도 있다.
3단계의 시작. 이제부터 진짜라고 할 수 있는 본격적인 카오스 라테일 공략이다.
“저희는 다리부터 때립니다.”
―다리?
―6인텔 할 때처럼 한다는 거네
―헐 그럼 안 되는데
―카텔은 다리 대미지 정신 나가요!
일반 라테일이 최강의 보스로 군림하던 시절, 3단계의 꼬리는 고레벨의 무덤이라 불리었다.
‘스치면 사망이거든.’
방사 대미지 6~8천, 직격 대미지 2~3만. 맞으면 딜러고, 전사고 가리지 않고 사망이다. 원거리 딜러가 점프로 피하며 잡는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혁신적이었다. 지난 6인텔 당시 다리부터 공략했던 건. 하지만 이를 재현하기에는 한 가지 난관이 붙는다.
밝은달의사신: 다리 맥댐 만 5천 넘는데?
도적캘런: 너 잘 아네?
밝은달의사신: 들은 게 좀 있어서ㅋㅋㅋㅋㅋㅋ
정예 of 정예이기에 1만 대미지를 버텨냈다. 그들도 1만 5천은 조금 아니올시다. 그 사실을 아주 잘 아는 모양이다.
‘왜 아는진 모르겠지만.’
그걸 나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시도하는 이유가 있다. 한 가지 믿고 있는 맹점이 있기 때문이다.
콰직!
라테일의 다리가 땅을 구른다. 일반 RPG 게임이었다면 탱커가 앞에서 막아주고, 딜러들은 거리를 벌려 피하고 그랬겠지만.
‘그런 거는 우리한테 있을 수가 없어.’
그냥 무조건 다 맞는다. 단풍잎스토리의 레이드가 난해한 점이다. 체력이 낮은 격수들은 떼 몰살을 당하는 게 수순이다.
―안 죽네
―별로 안 세잖아ㅋㅋㅋㅋㅋ
―뭔 만 오천이라고 약을 팔아
―만 오천은 너무 나갔지~
실제로 들어오는 건 1만 전후. 딜러진들도 아프긴 하지만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다.
그 이유.
크왕―!
성기사가 울부짖는다. 처음 보는 낯선 스킬의 이펙트에 방송 채팅 창은 물론, 원정대 채팅 창까지 술렁인다.
S2여리: 저게 뭐임?
쪼77r이쁜걸s: 모야
사쿠라카츠미: 성기사 고유 스킬이던가…….
비주류 삼대장 성·불·신의 말석. 석궁을 쓰는 궁사인 사쿠라카츠미 님은 알고 있다.
‘동병상련 같은 건가 보네.’
사실 나도 몰랐다. 미래에서 겪어보기 전에는 말이다. 성기사 자체가 워낙 희소한 데다, 보통은 쓸 일이 없는 2차 전직 스킬이다.
『위협』
80초간 적들의 공격력, 방어력 -30%, 8초간 명중치 -30%
어차피 한 방 아니면 두 방인 단풍잎스토리에서는 존재 가치가 없다. 분명 그랬지만, 공격력이 무식하게 강한 카오스 라테일에게는 달랐다.
알사탕k: 위협 몰라?
무적그리고: 모르지;;
첬첬: 오~ 이거 좋네요
미들마치: 그래서 체력템 안 껴도 된다고 했구나ㅋㅋ
카오스 라테일은 꼬리부터 시작해도 방사 대미지가 1만 2천. 정예 of 정예들도 그 정도로 체력이 높지는 않다.
때문에 체력 아이템을 껴야 하고, 필연적으로 딜로스가 발생한다.
―카오스 라테일의 다리를 격파했습니다!
그럴 필요가 사라졌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프리딜을 넣을 수 있다.
첫 번째 난관인 라테일의 다리가 허무할 정도로 쉽게 격파된다. 꼬리도 반대편에서 쉽게 뗀다.
원거리 딜러가 점프하며 애를 쓸 필요가 없으니 실제 격파 시간도 유의미하게 줄어든다.
―쇠주매니아 님, 별풍선 200개 감사합니다!
갓정환 큰 그림ㄷㄷ
“200개 감사합니다. 지금 집중하고 있어서 별다른 리액션은 못 해드려요.”
―이래서 성기사를 꼈구나
―왜 끼나 했는데…….
―병신 직업이라던 애들 어디 감?
―이 정도면 카텔 필수 직업 수준인데
사람들이 비주류 직업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바로 떡상각이다.
* * *
한 번도 쓰러지지 않은 미격파 보스 몬스터를 향한 도전. 그 진지한 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한 사람은 커뮤니티에서도 화제였다.
―성기사 그거 키우는 사람도 있었음?
심지어 만렙까지. 진짜 변태가 따로 없네…….
└ㄹㅇ 개쓰레기 직업
└레이드에서 법사만큼 쓰레기 아닌가?
└법사는 소환수라도 처리하지ㅋㅋ
└윗놈 최소 썬콜 120렙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직업이다. 심지어 만렙, 레이드에 참여하자 화제가 되는 것은 필연에 가까웠다.
도대체 왜 넣었냐? 깍두기도 유분수지. 일련의 비난이 쏙 들어가는 광경이다.
―성기사 갓직업이었네ㅋㅋㅋㅋ [7] +2
―카텔 필수캐 등극ㄷㄷ [5]
―위협 보스한테도 효과가 있나 봅니다. jpg [71] +122…
…
성기사의 존재 하나가 윤활유가 된다. 분명 난해해야 할 카오스 라테일의 공략이 원활하다. 가장 변수가 생기기 쉬운 다리와 꼬리가 쉽게 떨어진다.
―카오스 라테일의 꼬리를 격파했습니다!
본래는 3만에 육박하는 미친 직격 피해를 똥꼬쇼로 피하며 잡아야 한다. 다리를 먼저 격파하자 반대편에서 안정적인 공략이 가능하다.
i즐꺼려i[스카니아―11]>> 라는데요?
REAL꼬마법샤[스카니아―08]<< …….
보고를 받은 베르사유의 길드장은 벙찔 수밖에 없었다. 저런 공략 방법이 있었다니?
터무니없는 맹점이라 아예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더 놀란 건 사람이다.
알사탕k.
그는 베르사유의 창단부터 함께한 원로 멤버이자, 자신과도 벌써 몇 년이나 연락한 친한 오빠다. 물론 그런 이가 한둘은 아니다.
오정환의 공대에는 몇 명이나 되는 스파이가 잠입해 있다. ‘트로이의 목마’ 작전을 위해 철두철미하게 비밀을 지켜 이루어낸 일인데.
‘준식 오빠는 무슨 생각인 거야?’
언질조차 듣지 못했다. 애초에 그는 아무것도 모를 것이다. 레이드와 동떨어진 직업인 탓에 말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REAL꼬마법샤[스카니아―08]<< 너 혹시 준식 오빠한테 말한 거 있니?
i즐꺼려i[스카니아―11]>> 아뇨
i즐꺼려i[스카니아―11]>> 혹시 모르니 다른 애들한테도 물어볼게요
최근 길드 내 일이 워낙 바빴다. 이렇다 할 이야기를 아무것도 주고받지 않았다. 그렇기에 확신을 하면서도 설마 하는 일.
만에 하나 알아도 문제는 아니다. 워낙 말도 적고, 입도 무거운 사람이다. 무엇보다 알고 지낸 지 하루 이틀 된 게 아닌 인연이다.
‘아무튼 좋아…….’
오정환의 공대에 자신 쪽 사람이 많다면 여차할 때 통제하기 편하다. 이렇듯 카오스 라테일 공략에 핵심적인 중추가 된다면 더더욱.
REAL꼬마법샤: 준식 오빠만 추가하면 격파할 수 있는 거겠죠?
돈뜯긴악마: 글쎄염;;
n시프1: 다리와 꼬리를 쉽게 깨면 부활을 아낄 수 있지만 우리도 초반에 사고가 없었던 적은 있어요
자신들도 대략적인 기틀은 닦아두었다. 위협이 있다면 공략이 크게 진척될 것이다.
지금은 오정환의 공대에서 뛰고 있지만 상관없다. 초반에 사고가 안 났다고 끝이 아니다.
우연으로 같은 상황에 도달한 적이 있다. 그래 봤자 결국 실패로 귀결되어서 문제지.
카오스 라테일의 진면목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역대급 재앙이라 일컬어지는 ‘단체 유혹’. 그리고 딜러진을 떼죽음 시키는 ‘공격 반사’.
‘이걸 단순한 운만으로 넘어서는 건 불가능해.’
이미 숱하게 경험해 봤다. 직접 공대장을 맡았던 그녀는 알고 있다. 카오스 라테일은 호락호락할 수가 없는 난적이다.
끔찍하다. 동시에 괴롭다.
길드 단위 투자와 노력이 고작 데이터 쪼가리를 굴복시키지 못한다는 것이.
‘네 녀석도 카텔은 별수 없을 거야.’
도저히 깨라고 만든 보스 몬스터가 아니다. 실제로 카쿰은 격파되는 데 2년, 라테일은 1년 반의 시간이 소요됐다.
고작 두 달밖에 지나지 않은 카오스 라테일은 격파하지 못하는 것이 정상이다. 무언가 혁신적인 패치가 있어야만 한다.
카쿰의 경우 운영자 두 명이 무한 부활을 지원해 주었다. 라테일은 4차 전직이 열리며 화력과 스킬 구성이 파격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n시프1: 카텔도 대격변급 패치 전에는 못 깨요
REAL꼬마법샤: 그렇겠죠……?
i즐꺼려i: ㄹㅇ 빅뱅이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어림없죠ㅋㅋ
단풍잎스토리의 역사를 직접 경험해 왔다. 그 중심에는 항상 베르사유가 있었다.
때문에 카오스 라테일도 자신의 예상대로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라테일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감시하고 있는 오정환의 방송.
역시나 놈도 고전을 면치 못한다. 쉬지 않고 떨어지는 비석은 실패가 눈앞에 드리웠음을 예고한다.
‘이제 슬슬 떼 몰살을 당해야… 어?’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역사의 쳇바퀴가 멈추지 않고 굴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