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일명 ‘카오스’ 시리즈.
노말 보스 몬스터의 상위종이다. 그 시발점인 카오스 라테일은 정말 X발 소리 절로 나오는 여러 가지 신규 패턴들을 들고 나왔다.
? 언데드화=힐에 대미지 입음, 물약 효율 절반으로 감소? 물약 봉인=물약을 쓸 수 없음.
? 방향키 반대=방향키가 반대로 움직임.
? 어둠의 그림자=움직이지 않으면 지속적인 피해를 입음.
? 공격 반사=플레이어의 대미지를 반사함.
? 스킬 해제=유저의 모든 스킬을 해제시킴.
? 유혹=모든 행동을 할 수 없음.
일일이 세기도 버거울 정도다. 이 모든 것이 신규 패턴이니 토가 나온다. 그렇다고 기존 보스보다 만만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 외에 1/1이라든지 각종 이뮨과 디버프는 기본적으로 걸죠.”
―기본ㄷㄷ
―카쿰은 그 기본 때문에 힘든데
―난이도 미쳤네…….
―방향키 반대 같은 건 할 만하지 않음?
카오스 라테일이 거는 패턴들의 일람.
유혹을 빼면 생각보다 별거 없어 보이지만 막상 겪어보면 사람 환장하게 만든다. 한 번에 하나씩 걸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언데드+물약 봉인.
힐도 못 받고, 물약도 못 빨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방향키 전환 같은 것도 의외로 성가셔.’
몸박이라 해서 보스 몬스터의 몸통에 부딪히면 안 되는 건 국룰이다.
버티기 힘든 수준의 대미지가 한 방에 훅 들어온다. 그러면 실수를 하기 쉬워지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종유석도 피하기 힘들어진다.
“그래서 굳이 유혹이나 공반 같은 대형 패턴을 제외해도 상당히 많이 죽어요. 여기서 부활 소모되는 게 뼈아프거든요.”
―실수를 안 하면 되잖아?
―그게 쉽냐ㅋㅋ
―6인텔은 안 하던데
―빡집중해서 최대한 안 죽어봐야지…….
일반 라테일은 경험도 많고, 패턴도 한정되어 개별 대응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20인이나 되는 공대원 중에 실수하는 사람은 나올 수밖에 없고.
오정환: 부활 빠진 사람은 예비조랑 교환해요.
프로: 알겠습니다.
오정환: ㅂㅂ
중요한 건 그 대처다.
부활의 쿨타임은 30분. 극한의 효율성을 추구하여 활용하는 것이 공략의 열쇠다.
―‘프로’ 님이 파티에서 강퇴당하셨습니다!
―‘MC청년’ 님이 파티에 가입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이다.
부활 셔틀조에서 성직자를 빌려온다. 파티원에게만 쓸 수 있기에 수고스러운 작업이 필요하다.
―오!
―4조를 괜히 넣은 게 아니구나
―ㄹㅇ 부활 셔틀
―이거 때문에 성직자를 더 꼈누ㅋㅋ
실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 실수가 생긴다는 전제하에 계획을 짜면 된다. 물론 겨우 그 하나의 이유 때문에 인원을 늘린 건 아니다.
‘한 번 깨고 말 거면 여섯 명 꽉꽉 채워 넣었겠지.’
레이드는 안정성과 수익성이 관건이다. 억지로 깨면 결국 한 번 격파한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 두 명이라는 숫자는 확실한 이유가 있는 발탁이다.
―유혹에 걸려 움직임을 제어당합니다.
유혹, 그것도 단체 유혹.
원정대 전원이 자유 의지를 잃고 라테일에게 조종당한다. 이 경우 한 가지 대처법이 있다.
『영웅의 의지』
정신을 집중하여 상태 이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잠시 동안 상태 이상에 면역이 됩니다.
재사용 대기 시간 300초
간단하다. 키보드 한 번 누르면 즉시 컨트롤러를 되찾을 수 있다.
‘이 간단함에 빠지는 게 함정이야.’
그렇게 한 번 탈출하고 나면 다음은? 카오스 라테일이 난공불락으로 일컬어지는 가장 큰 이유다.
단체 유혹이 또 안 떨어지길 ‘돈슨은 다람쥐를 뿌려라’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보단.
―‘MC청년’ 님이 파티에서 강퇴당하셨습니다!
―‘창들의혼령’ 님이 파티에서 강퇴당하셨습니다!
성직자와 유혹 순번의 창기사가 파티를 탈퇴한다. 부활 셔틀조인 4조에 순간 편입해 힐을 받는다.
“그리고 나머지 인원은 의지를 쓰고 물약을 빨면서 각자 생존을 도모합니다.”
―와…….
―님 천재임?
―그 와중에 강퇴하는 거 웃기네ㅋㅋㅋ
―IQ200의 카텔 공략법ㄷㄷ
효율을 위함이다. 겨우 그런 걸로 마음 상할 멍청이는 선두 그룹의 공대에 들어오지 못한다.
채팅창 반응이 폭발적이다. 그리 띄워주면 무안하다. 나라고 처음부터 안 건 아니니까.
‘까놓고 말해 치트잖아.’
회귀를 했다는 사실. 일반적인 공략법을 알고 있고, 보다 최적화하여 현재 시점에 맞게 적용했을 뿐이다.
―유혹에 걸려 움직임을 제어당합니다.
연이어 오는 단체 유혹은 이 역순이다. 성직자가 의지를 쓰고, 나머지 파티원들을 살려낸다.
언데드화가 걸린 일부 인원은 죽고 말지만 부활이 넉넉하기 때문에 괜찮다.
―메이플1년차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역대급 재앙이라며……?
“100개 감사합니다. 운이 좋았네요.”
―미션 건 사람들 어쩌누ㅋㅋㅋ
―한 번에 깨네…….
―솔직히 ㅇㅈ
―이렇게 깨면 쏠 맛 나지~
그리고 사소한 요행.
공대원이 실수를 연발해서 부활이 부족할 수도 있었고, 스킬의 확률이 십중팔구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꼬리 떼기 전에 유혹 순번이 스탠스 풀리고 저 끝까지 걸어가면 난리 나거든.’
대미지 2, 3만이 뻥뻥 떨어지는데 한 대 맞으면 체력이 개꿀잼 상태가 돼버린다.
성직자도 살리러 갔다가 떼 몰살당해 망하는 케이스가 일반 라테일에서도 심심치 않다.
―카오스 라테일의 날개를 격파했습니다!
―카오스 라테일의 왼손을 격파했습니다!
이제는 그럴 위험 부담이 사라졌다. 까다로운 물약 봉인과 유혹을 사용하던 부위가 잘린다.
남은 것은 반쯤 샌드백이 되어버린 머리들을 떼어내는 수작업이다.
* * *
미격파 보스 몬스터.
그 장대한 도전은 모든 단풍잎스토리 커뮤니티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다.
―어, 이거 깨겠는데?
―응, 단유 오면 전멸함~
―어림도 없지! “통솔력 500배”
―단풍잎 레이드 수준 미쳤눜ㅋㅋㅋㅋㅋㅋㅋ
…
…
발록 한 번 보고 싶어서 신전에 숨어 들어가던 시절이다. 날록 한 번 보고 싶어서 하늘배 밖을 뛰쳐나와 죽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대부분의 일반 유저들은 꿈도 꿀 수 없다. 간간이 올라오는 영상 자료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런 그들의 눈앞에 최상위 0.001%에게만 허락된 광경이 펼쳐진다.
―오정환인지 뭔지 펑이조 같은 놈인 줄 알고 안 봤는데 얘는 진짜네…….
라테일도 아니고 카오스 라테일을 실시간으로 볼 줄을 상상도 못 했네;; 진짜 돈 주고 봐야 할 퀄리틴데?
└그걸 이제 앎?
글쓴이―인생의 절반 손해 봤어어!
└아직 몰라
└아모른직다… 내 미션 제발
커뮤니티의 반응이 무섭게 상승할 만하다. 직접은 고사하고, 영상 자료도 찾아볼 수 없다. 단 한 번도 무릎 꿇지 않은 보스 몬스터이니 당연한 일이다.
“지금부터 5초 안에 공반이 오거든요? 5, 4… 생각보다 조금 빨리 왔네요.”
―미친;;
―이걸 어떻게 알아?
―갓정환! 갓정환! 갓정환! 갓정환! 갓정환!
―오우 연필 좀 굴려본 놈인가
그런 카오스 라테일을 덤덤하게 잡아내는 광경. 그것도 구성원이 아닌 공대장의 입장에서 말이다. 키보드 한 번만 잘못 눌러도 훅 가는 상황에서 줄타기를 해낸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라테일이 학살 중입니다!
하지만 그 훌륭한 지휘도 만능인 것은 아니다. 일부는 오더를 따르지 않고 실수를 저지른다. 그리고 그 실수는 치명적인 결과를 야기한다.
오정환: 2조 부활이 3분 정도 남았으니까 반성하면서 기다리고 계세요밝은달의사신: ㅇㅋ…….
―손 들고 서있어!
―ㅋㅋㅋㅋㅋㅋ
―저런 걸 어떻게 다 기억하지?
―고작 단풍잎에 게임 재능을 느낄 줄이야ㄷㄷ
부활의 쿨타임은 30분. 비석으로 박혀있을 수 있는 시간은 10분. 이를 계산해 최대한 효율적으로 원정대의 생사를 컨트롤한다.
꾸웨에엑―!
물론 한 손으로 열 손 못 막는다. 미처 메우지 못한 구멍들이 여기저기 뚫려있다.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익룡들, 그중에서도 검은 익룡은 눈엣가시다.
스킬 해제를 걸기 때문이다. 다른 공격과 연계되면 평범한 공격도 치명상이 된다. 누군가 한 명이 처리를 도맡아 주면 딱 좋은데.
―성기사가 빙결 스킬도 갖고 있음? [3]
―오우 처음인데 팀워크가 왜캐 좋아 +1
―오늘부터 전 서버 성기사 떡상각이겠네 [15] +23
…
…
자신이 해야 할 일임을 스스로 인지한다. 빙결의 힘을 실은 칼질로 얼리고 안정적으로 처리한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 잊지 않고 외치는 위협은 카오스 라테일의 괴랄한 대미지를 잊게 만든다. 그렇게 생생히 보이는 격파 과정은 시청자들을 열광하게 만든다.
과연 오정환 원정대가 최초 격파 팀이 될 수 있을지. 본방 사수가 관철되고 있다.
‘아니, 이게 아닌데…….’
베르사유의 길드장.
그녀도 본의 아니게 본방을 사수하는 중이다. 진짜로 카오스 라테일이 단 한 번의 시도에 격파될 위기에 놓였다.
물론 안전장치는 있다. 오정환의 공대에 스파이를 숨겨두었다. ‘트로이의 목마’ 작전을 진행한 자신의 꾀에 안도의 한숨을 깊이 내쉰다.
REAL꼬마법샤: 조금만 더 정보를 뽑고 아슬아슬할 때 빠지라고 할게요.
올비핫세: 어머, 준비 잘했네.
연순니: 그 야바리 없는 놈 드디어 정의구현 당하겠다 꺄르르~
라프레 마을의 촌장집.
이번 사태를 꾸민 비선 실세가 보고를 받고 있다. 아싸비와 핫세팸을 비롯한 스카니아 최대 파벌이다.
이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스카니아의 모든 길드가 하나의 뜻 아래 대통합. 이외 세세한 작전도 힘과 대의명분으로 밀어붙였다.
REAL꼬마법샤: 근데 언니들 이거 잘못하면 우리 욕먹을 수도 있어요. 아시죠?
올비핫세: 우리가 왜?
쫌노는뇬s: 대가리 없는 시청자들이 꼬장 부려서 그런가 봐~
하지만 그것은 고레벨 유저들에게다. 일반 시청자들의 민심이 어디에 향해있는지 그걸 모를 정도로 아싸비는 어리숙한 인간이 아니다.
‘저 잡놈이 ㅈ되는 꼴만 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
그조차 상관이 없다. 그래 봤자 일반 유저들 주제에 어쩔 건데? 스카니아의 실세를 쥐고 있는 것은 고레벨들이다.
그조차 상관이 없다. 어차피 자신은 레이드도 뭐도 뛰지 않는다. 그저 오정환이 한사코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다소의 논란? 충분한 무마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아싸비는 자신의 위치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잘 이용했다.
아싸비: 재밌네. 진행시켜!
연순니: 그래야죠, 언니!
올비핫세: 인소야 라디오 같은 데서 잘 말해줄 거야
REAL꼬마법샤: 네…….
시청자들을 거느린 건 오정환만의 특권이 아니다. 인소야닷컴이라는 커뮤니티 내 라디오 방송. 급식충들의 우상답게 적게는 수천 명, 많게는 수만 명까지 듣는다.
그리고 그들은 아싸비의 광적인 팬이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느 쪽 편을 들지 자명하다. 다소의 논란은 무마할 수 있다는 건 괜한 자존심이 아니다.
아싸비[스카니아―10]<< 오빠
아싸비[스카니아―10]<< 그 공대 곧 폭파될 거거든요?
아싸비[스카니아―10]<< 오빠도 얼른 나오세요. 헛고생하지 말고.
자존심. 한 끗만 엇나가도 교만이 된다.
오랜 길드원을 신경 쓴다고 귓속말을 보낸 아싸비와 준식의 생각은 조금 엇갈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