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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27화 (27/846)

27화

'돈슨'

카오스 라테일.

그 출시 당시 유저들이 가장 놀랐던 건 따로 있다.

―아니, 이거 깨라고 내놓은 거임?

체력 133억이 말이 되나ㅋㅋㅋㅋ

서버 지존들이 몰려가도 잡는데 한 세월 걸리겠네

└기존 라테일보다 패턴도 빡셀 텐데…….

└심지어 제한 시간도 있음ㅋㅋㅋ

글쓴이―운영자가 미쳤어요!

└유저들 상향 평준화되니까 보스 몹도 미친놈으로 만든 거지

어마어마한 체력. 대놓고 샌드백이라 하더라도, 어쭙잖은 유저들은 체력을 깔 엄두도 못 낸다.

그것이 두 달 전이다. 그사이 유저들의 수준은 향상되었다. 이를 감안해도 잡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두두두두두―!

파바바박―!

표창과 총알, 그리고 무수한 칼질이 엄청난 기세로 박히고 있다. 그럼에도 최상단의 체력 바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실전이기 때문이다. 무저항의 샌드백을 때리는 게 아니다. 아무리 잘 공략을 해도 일반적인 상황보다 배 이상 딜로스가 생긴다.

아싸비[스카니아―10]<< 오빠가 안 나와도 어차피 못 깨요아싸비[스카니아―10]<< 오기 부리지 말고 그냥 나와요

베르사유도 그 사실을 안다. 알고 있기에 30인이라는 대인원을 동원했던 것이다. 고작 20인으로는 결국 화력이란 한계점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두 시간 30분의 제한 시간을 맞출 수 있을지. 정말 마지막까지 해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아슬아슬하다.

사소한 변수 한두 개만 껴도 불가능이 성큼 고개를 들이민다.

알사탕k[스카니아―15]>> 너 변했다

아싸비[스카니아―10]<< 네?

그런 건 중요치 않다. 준식은 오랜 기간 함께해 온 동료들과 무엇이 엇나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 게임의 왕이 아니야.’

그냥 단풍잎스토리를 즐기는 유저 중 하나지.

그것이 맞다. 분명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전 서버에서 칭송받는 제1서버 스카니아의 최고 길드.

그리고 아싸비라는 범네임드 격의 존재가 되어버린 인지도. 이 두 가지가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위치를 착각하게 만들었다.

『Naver 지식iN』

「Q」―단풍잎스토리 아싸비는? 운.영. 자? >ㅁ<

아싸비 님은 레벨이 155나 됨미다

레벨 올리는 게 진짜 힘든데

어떻게 그렇게 올렸을까요…….

역시 운영자가 맞는 걸까요?

「A」―bell**** 님의 답변

소문을 들었는데요. 아싸비는 운영자의 친척이라고 하더라고요~「A」―vlff**** 님의 답변아싸비 님 운영자 맞습니다 따지시려면 게임으로 해주세요. 제 아이디는 최강어쌔신w<입니당

실제로 많은 유저들이 착각하고 있다. 정말 운영자나 다름없는 위치에 있기도 하다. 직통으로 연락이 되며, 발언의 파급력은 실제 운영자 이상이다.

마치 왕 같은 존재가 되자 게임 내 모든 콘텐츠가 우스워진 것이다. 그녀는 더 이상 단풍잎스토리를 즐기지 않게 됐다. 대신 자신의 위치를 즐기고 있다.

스카니아 최대 파벌을 형성한 것도. 이번 사태를 관망하듯 조종하려 했던 것도.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위치를 오인한 데서 기인했다.

아싸비[스카니아―10]<< 장난 그만하고

아싸비[스카니아―10]<< 그 빌어먹을 놈팽이 반드시 족쳐야 한단 말이야!! ㅡㅡ

빌어먹을 놈팽이일 수도 있다. 아싸비를 제외하고도 오정환을 싫어하는 길드원들은 많다.

직접 만나보니 괜찮은 놈이더라, 그런 시답잖은 개인 평을 늘어놓고 싶은 게 아니다.

알사탕k[스카니아―15]>> 너

아싸비[스카니아―10]<< ?

알사탕k[스카니아―15]>> 단풍잎스토리가 재밌어?

아싸비[스카니아―10]<< 그게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ㅡㅡ

역시 잊고 있다. 과거와는 너무도 달라졌다. 준식은 그녀의 마음속에서 사라진 소중한 것을 떠올리게 해주고 싶었다.

알사탕k[스카니아―15]>> 내 대답은 이거야.

성기사.

카오스 라테일의 공략 과정에서 획기적인 활약을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직업의 광명을 되찾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때문에 진정 하려는 건 따로 있다. 그의 대검이 땅을 무겁게 내려친다. ‘성기사’가 아닌 단풍잎스토리의 ‘만렙’으로서 부리는 위용이다.

―‘알사탕k’ 님이 용사의 메아리를 시전했습니다!

―따스한 빛이 주위의 모든 전사를 감쌉니다.

200LV 전용 스킬.

아무리 타락파워전사가 첫길을 뚫고, 시간이 제법 지났다 한들 여전히 극소수다.

하루에 한 번만 쓸 수 있는 페널티까지 달려있다. 스킬을 쓴다는 소문이 들리면 전 채널에서 사람이 모여 북적거릴 정도다. 이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프로: 오오!

Love자리: 꿀맛 같다

총쏘고포쏘고: 굳

밝은달의사신: 만렙 버프 캬ㅋㅋㅋㅋ

큰 페널티만큼이나 효과도 탁월하다. 자신과 파티원은 물론 맵 전체에 있는 이들의 공격력과 마력을 크게 상승시킨다.

지속 시간은 40분. 남은 카오스 라테일의 도전 시간과도 맞아떨어진다.

아싸비[스카니아―10]<< 오빠가 안 나가도 결과는 변하지 않아.

알사탕k[스카니아―15]>> 글쎄. 그건 내가 선택할 일이 아니지.

자신이 옳다는 입장에서 훈계하고 싶은 게 아니다. 준식도 솔직하게 확신이 안 선다. 단순히 올드 유저로서의 꼬장일 수도 있는 노릇이다.

때문에 판단을 내리는 건 전원, 지금 이 고양을 함께 맛보는 이들이다. 베르사유에서 스파이로 파견된 네 명은 생각이 복잡하다.

‘이러면 확실히 깨겠는데?’

‘내가 굳이 쟤네 말을 따라야 되나…….’

‘3조에 짱박아 둔 것도 그렇고 이미 들켰어.’

‘오정환한테 샤바샤바해서 한 자리 얻고 말지ㅋㅋㅋㅋㅋ’

준식이 쏘아 올린 작은 공. 용사의 메아리는 의미가 있었다. 흔들리던 그들의 마음에 결정타로 작용했다.

희생을 강요하던 레이드에서 쌓여가던 불만. 오정환이 보여준 공대장으로서의 능력. 무게추가 이제는 기울어진다.

REAL꼬마법샤[스카니아―10]<< 빨리 안 나오고 뭐해요밝은달의사신[스카니아―15]>> 다른 애들 나가면 저도 나갈게요ㅋㅋㅋ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정신이 없다. 간신히 템포를 따라왔을 뿐이다.

카오스 라테일을 어떻게 깼는지. 부속품에 불과했던 자신들은 모른다. 다시 해보라고 하면 솔직하게 깰 자신이 없다.

하나하나 루빅스 큐브를 맞춰가듯 섬세했다. 그 비결을 배워가고 싶은 욕심이 든다. 설사 리스크를 짊어진다 하더라도.

REAL꼬마법샤: 쟤네 왜 말을 안 듣는 거야!

쫌노는뇬s: 근데 어차피 못 깬다고 하지 않았어?

연순니: 왜 깨고 있는 곤데 ㅡㅅㅡ

스카니아 최대 파벌.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현장에 없고, 입으로만 떠들고 있다.

아싸비: 누가 유출한 거 아니야?

아싸비: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쉽게 깰 수 있어?

쫌노는뇬s: 그런 거였네!!

올비핫세: 누가 배신한 거야. 빨리 색출해!

REAL꼬마법샤: 아 몰랑! 언니들은 맨날 나한테만 맡기고 아싸비: 어머, 지금 너 언니한테 화내니?

일이 풀리지 않자 탁상공론의 당사자들끼리 싸운다. 그렇게 발을 동동 굴리는 사이.

―카오스 라테일의 왼쪽 머리를 격파했습니다!

―카오스 라테일의 가운데 머리를 격파했습니다!

라테일의 웅장한 삼두(三頭)가 잘려나간다.

* * *

베르사유를 중심으로 형성된 적폐 파벌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결국 자신들이 이끄는 게 아니라, 뒤에서 조종하는 자들의 한계지.’

솔선수범하지 않는 리더를 누가 따르겠냐고. 그 시기가 조금 앞당겨질 모양이다.

밝은달의사신: 화력 보니까 시간 맞추겠다!

S2여리: 이거 고정 파티 하는 게 어때요?

l슈l: 띱

real퓨리: 나도…….

소속이 다른 고레벨 유저들이 베르사유를 지지하는 건 자신들의 실리를 위해서다. 어디까지나 명분과 이해타산. 그조차 이제는 기울어졌다.

“김칫국 마시는 분들이 많네요.”

―공대장은 입도 뻥긋 안 하는데ㅋㅋㅋㅋ

―단풍잎도 취직 경쟁 빡세네

―빨아야겠지?

―웃긴 게 깨려고 하니까 애들 태도가 달라짐

마지막 오른쪽 머리만을 남겨두었다. 용사의 메아리로 전체 화력이 상승한 덕분에 여유 시간까지 생겼다.

‘물론 방심은 금물이지.’

오른쪽 머리도 공격 반사 등 까다로운 패턴을 사용한다. 넋 놓고 있다가 떼죽음이라도 당하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공격 반사가 일정 체력 이하로 내려가면 쓰는 거거든요. 그래서 그 체력이 되었을 즈음부터 살살 치면 돼요.”

―ㄹㅇ 총알도 살살 맞으면 안 아프지

―그런 거였구나.

―근데 체력이 낮아진 건 어떻게 앎?

―인간 알파고냐고ㅋㅋㅋ

회귀를 한 덕분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안다고 해도 쉽지 않다. 각 부위별 체력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근데 불가능한 건 또 아니야.’

약간 추잡하긴 하지만 직접 고안한 잡기술이 있다. 모니터 화면에 포스트잇으로 체크하는 것이다. 레이드 시작에 앞서 미리 해두었고.

밝은달의사신: 정지~

l슈l: 공대장 님이 딜 중지하시랍니다!

S2여리: 오우 조금씩 치다가 죽을 뻔

공대원들이 말을 잘 들으며 더 쉬워졌다. 콜만 잘 들으면 죽을 일이 없지. 20인의 공대가 한마음 한뜻이 되고 있다.

“부활도 여유가 있고 이제 거의 끝까지 왔습니다. 미션 거신 분들 슬슬 충전하고 계시면 될 것 같은데요?”

―ㅋㅋㅋㅋㅋㅋㅋ

―이걸 다 땡기네

―근데 너무 잘해서 ㅆㅇㅈ

―이렇게 잘하면 받아야지 솔직힠ㅋㅋㅋㅋ

솔직하게 빠듯했다. 아무리 나라도 첫 트라이에서 깬다? 그 정도로 금빛 상상을 하고 임하지는 않았다.

첫 번째로 감을 잡고, 두 번째 도전에 깰 거라고 생각했는데 운이 상당히 좋았다. 중간에 애매할 뻔했던 딜도 용사의 메아리 덕에 확실해졌다.

운수 좋은 날. 이런 날일수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마지막까지 방심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강형욱도5점준보신탕집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500개 미션 걸었는데 만에 하나 제발 ㅠㅠ

“킹림도 없죠. 집중 1, 000배.”

―도망가기만 해봐ㅋㅋㅋ

―앞으로 갓정환 방송을 못 보게 된다고……?

―저는 충전해 뒀습니다, 형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오정환!

카오스 라테일. 미격파 보스 몬스터.

최초로, 그것도 방송을 켜고 진행한 대장정이 유종의 미를 거둔다. 본래의 역사보다 3개월가량 빠르다.

마지막 공격 반사도 고도의 집중력으로 흘려내며 격파 시간 1분을 남기고 잡아낸다.

“그렇게 만에 하나가 아닌, 만에 9999가 되었습니… 어?”

분명 잡았다. 라테일의 마지막 머리가 피가 철철 흐르며 떨어졌다.

―강형욱도5점준보신탕집 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환환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커닝일찐 님, 별풍선 200개 감사합니다!

무수한 별풍선 세례 또한. 그것도 짤짤이가 아닌 후한 인심이다. 다소 먹튀가 있기는 하겠지만 상관이 없을 정도로 벅찬 감동이다.

파프리카TV의 명언 중 하나인 ‘별풍은 흐름이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채팅 창이 풍족해진다. 사실 이보다 큰 건 장기적인 효과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별풍선도 한 번 쏴보면 그다음부터는 지갑이 쉽게 열린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방송 수익의 증대를 기대할 수 있다. 여러모로 특별한 하루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FAIL』

그조차 작은 이벤트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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