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29화 (29/846)

29화

단풍잎스토리 커뮤니티.

작금의 사태는 야단이 났다,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진짜 더럽다ㅋㅋㅋㅋㅋㅋ 단풍잎 역사에 남을 사건 하나 추가요!

―존나 살 떨면서 봤는데 배신감 모야 ㅡㅡ

―? 깨, 깨겠는데? 막아야겠다!!

본방만 해도 4천 명 이상.

커뮤니티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정보를 전달받은 이는 만 단위에 해당한다. 그만큼 카오스 라테일의 최초 격파를 고대하던 유저들이 많았다.

아니, 그냥 즐겁다. 일반 유저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딴 세상 이야기를 모니터 화면으로나마 체험한다.

그 작은 기회조차 무산시킨 것이다. 그것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게 아닌 시스템 이상. 차라리 버그였다면 돈슨이 그럼 그렇지 정도로 넘어갔을지 모른다.

―단풍잎스토리 전역이 통탄에 빠졌습니다.

친애하는 플레이포럼 여러분.

우리가 이 게임에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을 바쳐온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돈 때문일까요? 아니면 명예욕?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콘텐츠를 즐겨보고 싶다는 욕구 그 하나입니다.

게이머에게 응당 줘야 할 그 권리가 침해당한 것입니다. 이번 사태에 격분해야 할 이유는 그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옳소! 옳소!

└이 자식들 구현도 안 해놓고 뻥카 친 거였어?

└어쩐지 존나게 어렵더라ㅋㅋㅋㅋㅋㅋ

└허허, 단풍잎이 옛날 같지 않더니만 결국 이런 사건이 일어나네요

플레이포럼.

사이트의 규모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이른바 ‘네임드’급 유저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물론 소수 고레벨들의 불만이라면 큰 문제가 안 된다. 어차피 그들은 이제 와서 게임을 접기에도 늦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폐인이 되어버린 몸이다.

―돈슨은 정말 유저들을 개돼지로밖에 안 보네

카오스 라테일 난이도? 이제 보니 패턴이 아니고 깨지 말란 거였음ㅋㅋㅋ그걸 뚫고 깰 거라고 생각을 안 했으니 그따구로 만들어놨지 └일하기 존나 싫었나 보네ㅋㅋㅋㅋㅋ

└오정환 아니었으면 평생 몰랐다

└이 기회에 단풍잎을 접든가 해야지 원

글쓴이―ㄹㅇㅋㅋ 개돼지겜 왜 함?

대다수의 유저들이 이용하는 인소야닷컴.

이곳도 화제글이 점철되며 반쯤 폭동이 일어났다. 최상단의 베스트 코멘트 하나가 성난 민심을 대변해 준다.

[Best Comment]―카텔 죽으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냐? 드롭 아이템에 운영자 섹스 비디오라도 있음? 아니면 돈슨 직원 월급이라도 저장해 둠? 살다 살다 X발 진짜 乃1892└띵언

└ㅈ됐네. 돈슨 운영자 월급 다 날아감ㅋㅋ

└진짜 다 날아갔으면 좋겠다…….

단어의 사용이 저급함에도 추천수가 너무 많이 박히자 커뮤니티 관리자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다.

그대로 캡처되어 온갖 커뮤니티로 퍼 날라진다. 게임뿐만 아니라 일반 커뮤니티에도 말이다.

이종격투기―「(단풍잎스토리) 최초 격파 도전한 BJ의 눈물」

樂 SOCCER―「신규 보스 격파 막아 놓은 돈슨의 만행」

도탁스(DOTAX)―「보스 몹 드롭템이 운영자 섹X 비디오?」

여러 커뮤니티에서 인기 게시글에 오른다. 그것도 가볍게.

돈슨 게임에 치를 떠는 사람은 현재 게임을 하는 유저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슨 언제 한번 사고 칠 줄 알았음ㅋㅋㅋㅋ

이 새끼들 패치 개X대로 하잖아. 유저들 개돼지로 보고.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못 깨는 보스 몹을 내놓겠어?

└그러게 왜 그런 거임?

글쓴이―패턴 뻔하지. 사기 캐시템 팔아먹으려고

└그런 거였누ㅋㅋㅋㅋ

└돈잘알ㄷㄷㄷ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자란 10대, 20대들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돈슨 게임을 무조건 경험하게 돼있다.

그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은 경우? 솔직하게 거의 없다.

『강퇴반사에 의해 퇴장당하셨습니다. 슈퍼방장 아이템이 있으면 강퇴반사를 가지고 있는 유저도 강퇴시킬 수 있습니다. 상점에서 확인해 보세요^^』

현질의 힘이 무엇인지. 학창 시절에 한번 당해보면 뒤통수가 얼얼하다. 과금 유도의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보니 반감이 쌓이게 된다.

[Best Comment]―돈슨이 ‘돈슨’했네

[Best Comment]―아직도 돈슨 게임 하는 흑우 없제?

[Best Comment]―운영자 섹스 비디오는 킹정이짘ㅋㅋㅋㅋㅋㅋㅋ

간만에 찰진 샌드백이 하나 입고된 셈이다. 작정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건수를 제공하고 말았다.

수십만의 조회 수, 수만 개의 댓글이 달리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있다.

물론 예삿일이다. 적어도 하루 이틀 일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 돈슨을 좋아하는 사람이 거의 없음에도 기업 자체는 잘나간다.

잘 만드니까. 그리고 잘 팔리니까.

이번 사태를 돈슨에서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속보) 단저씨들도 개빡침

「k970**** 님의 댓글」―1시간 전

아놔~쓰발……. 네이버에 대문짝만 하게 나왔다!! 이게 무슨 개망신이고~ 전 국민이 조롱거리로 쳐다볼 것이다. 중국산 핸드폰 게임만도 못하구나, 돈슨!!

└휴먼 아재체 보소;;

└그의 목에 쥐어지는 합격 목걸이

└이건 주작일 수가 없지ㅋㅋㅋㅋㅋㅋ

└아재요…….

잘 만든 것도 아니었네. 잘 팔아줄 이유가 없겠네. 이른바 지갑 전사라고 불리는 연령대 높은 유저들의 심기까지 건드린 것이다.

네이버,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 기사로까지 올라온다. 사방에 적밖에 없다. 뻔뻔한 돈슨도 이번만큼은 꼬리를 마는 것이 최선이다.

“문제가 없다고 하지 않았었나?”

“이, 이게 깰 수가 없는 게 맞는데…….”

장연수는 연신 손가락을 꼬며 고개를 숙이는 와중에도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왜? 어째서?

깨려야 깰 수 없는 난이도로 적당히 잘 출시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듯한 희망 고문. 어쩌면 그것이 문제였을지 모른다.

‘어떻게 패턴을 다 꿰고 있지? 아니, 안다고 해도… 안전장치를 한두 개 걸어놓은 게 아닌데.’

그 저지선을 벗어나 버렸다. 희망 고문이 정말로 희망이 되고 말았다. 단 1분을 남겨두고 2시간 29분에 격파를 성공시켰다.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내는 것도 이다음이다. 지금은 총괄 디렉터에게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다.

“됐고, 업데이트는 당장 추가할 수 있겠지?”

“그… 말씀드린 대로 3개월 후의 일정에 맞춰뒀거든요?”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해!!”

카드 돌려 막기식 업데이트의 폐해다. 미리 뻥카를 치고 알맹이는 나중에 채워 넣는 방식. 만약 격파만 되지 않았다면 충분히 유효했을 것이다.

이렇듯 격파가 되자 상황이 180도 달라진다. 단순히 ‘실수했습니다, 고멘네!’로 끝나지 않는다. 커뮤니티는 물론, 경쟁사에서도 물 들어올 때 노 젓고 있다.

“넷마블, 엔씨, 그 외 알 만한 기업들은 전부 이벤트 추진 중이야. 점유율 한번 뺏기면 답 없다는 걸 그 직급 달고도 몰라?!”

“죄, 죄송합니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 게임 업계에서는 그다지 드물지도 않다.

어느 한 곳이 병크를 터트리면 다른 쪽이 수혜를 입는다. 빨리 진압하지 않으면 줄줄 샌다.

매스컴에도 알려져 치명상을 입을지 모른다. 모름지기 일은 저지른 당사자가 처리해야 하는 법이다.

“이틀 줄 테니 없었던 일처럼 만들어놔.”

“어, 어떻게…….”

“그걸 찾는 것이 자네의 일이지.”

결국 한 명밖에 없다.

* * *

걸려온 전화. 발신인은 다름이 아니었다.

‘똥줄이 많이 타시나 보네.’

돈슨의 운영자다. 보이스 피싱일 수도 있는데 어째서 확신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나의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안녕하세요, 오정환 님! 돈슨 단풍잎스토리 마케팅팀 팀장 김미영입니다.>

“아, 네.”

<일전에 가이드북 관련해서 저와 통화 나눈 적 있으시죠?>

한번 전화를 했었다. 일개 유저가 운영자와? 그렇게 선을 긋기에는 과거의 나도 제법 인지도가 있었다.

‘별건 아니야.’

단풍잎스토리. 유저 수만 따지면 한국에서 가장 핫하다. 특히 잼민이와 급식충들이 좋아 죽는 대환장 게임이다.

매년 새로이 출간하는 단풍잎스토리 가이드북은 농담이 아니고 베스트셀러다. 판매 부수 최상위권에 항상 이름을 올린다.

인터넷에 제대로 된 공략이 올라오지 않던 시절이기에 일반 유저들도 성화였다.

<해적과 궁수 부분을 맡아주셨으면 했는데 그때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스케줄이 안 나셨죠?>

“본론만 얘기하시죠.”

<그게… 예! 그 실례인 건 알지만 오정환 님이 하시는 개인 방송에서…….>

이게 어제 일어난 일이다. 방송 도중, 그것도 카오스 라테일을 격파한 직후.

돈슨 운영자들이 대단히 관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하도 정신이 없던 때라 몰랐는데 부재중 전화가 대여섯 통씩 걸려와 있었다.

벨소리―「꽃이 언제 피는지 그딴 게 뭐가 중요한데~♬」

그리고 오늘.

꼭 직접 만나 뵙고 싶다며 근처까지 와서 대기 중이다. 나의 의사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거든.’

개인적인 사정 말이다. 약속을 잡고 싶으면 최소 1주일 전에 육하원칙에 의거한 사유서를 작성해 와야지.

이렇게 갑자기 만나고 싶다고 만나줄 만큼 내가 친절한 사람이 아니다.

딩동―♪

실제로 일이 있기도 하다.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다. 삐걱거리는 철문을 열어젖히자 한 마리의 피식자가 눈앞을 서성인다.

“오빠, 봄이에요 봄이! 봄이가 왔다고요!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봄이가 왔.”

“그래?”

“꾸웨엑…….”

쫀득한 두피 사이로 치아가 파고든다. 그 씹는 맛. 몸에 좋은진 몰라도 맛은 확실히 있다.

“그렇게 덥석 물어뜯으면 너무 아파요…….”

“몸에 좋고 맛도 좋다며?”

“그건, 그건……! 봄과 뱀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걸 이용한 언어유희였어요!”

유명한 노래의 한 소절일 것이다. 언어유희든, 언어유희왕이든 아무튼 난 물어뜯었으니 됐다.

‘은근히 중독성 있단 말이야.’

식감도 그렇고 한입에 꽉 깨무는 포만감이 장난이 아니다.

세렝게티 초원에 서식하는 늠름한 사자들이 어째서 귀엽고 깜찍한 톰슨가젤의 담당 일진을 자처하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근 한 달 만이다. 봄이가 오랜만에 집에 놀러 왔다. 사복을 차려입은 앙증맞은 모습을 보니 정말 애새끼가 따로 없다.

“오빠, 저 뭐 달라진 거 없어요?”

“응?”

하지만 꼴에 성별이 XX다. 한창 자랄 나이이며, 꾸미고 싶을 연령이다. 보자마자 대뜸 세계에서 제일 어려운 난제를 던져왔다.

‘연인 사이에 잘못 대답하면 거의 일주일은 그 표정 예약이지.’

스무고개 끝에 ‘오빠는 나한테 관심이 없지?’라는 정해진 대답으로 귀결된다. 그 결말을 맞고 싶지 않다면 짱구를 잘 굴려야 한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이래 봬도 제법 잘 아는 입장이다. 하물며 이 나이대면 세세하게 따지지도 않을 테니.

“그래, 많이 이뻐졌…….”

“저 강력해졌어요!”

“…….”

똘망똘망한 눈으로 내 예상을 가볍게 회피한다. 어쩌면 나이대를 너무 올려 잡았을지 모른다.

“무슨 운동이라도 했니? 피트니스? 헬스?”

“줄넘기했어요. 체육 시간에 제가 제일 잘해요. 다섯 번 연속도 성공한 적 있어요!”

아 줄넘기는 ㅇㅈ이지. 봄이가 작고 가벼워서 줄넘기를 잘할 신체 조건이긴 하다.

특히 학창 시절에는 줄넘기 잘하는 게 자랑이다. 체육 수행 평가에 그대로 반영이 된다. 그 자신감이 자만으로 넘쳐흘렀다.

“최근에 무슨 드라마 봤어?”

“힘쎈여자 도봉순이요.”

“그래, 그럴 거 같았어.”

“지금이라면 오빠를 이길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달라진 자신.

폐관 수련을 마치고 나온 듯 흥분에 가득 차있다.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한 가지 내기와 함께 팔씨름을 하기로 했다.

“저의 강력함에 전율하게 될 거예요!”

“그렇구나.”

희대의 대결이 잠깐 막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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