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31화 (31/846)

31화

눈앞의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정도로 내가 어리숙하게 BJ 생활을 해오진 않았다.

‘딱히 드문 이야기도 아니야.’

현재는 몰라도 차후에는 말이다. 게임 업계에서 BJ의 영향이 엄청나게 강해진다.

오죽하면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게임 광고는 게임 스트리머에게’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정환 님이 단풍잎스토리 방송하시잖아요.”

“네.”

“저희와 함께 공식적인 이벤트를 진행하시면 방송 성장에도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스트리머 마케팅이 본격화되는 것이다.

이른바 ‘숙제’.

게임사가 스트리머에게 돈을 주고 자사의 게임을 홍보해 달라고 부탁한다.

‘효과가 생각보다 대단하거든.’

세상에 게임은 많다. 그리고 매년 쏟아져 나온다. 유저들 입장에서는 솔직히 뭘 해도 다 비슷한 느낌이다.

그럼 무슨 게임을 할까? 십중팔구는 남들이 하는 거랑, 유명한 거다. 이 두 가지 여건을 만들기 좋은 게 바로 스트리머라는 직업이다.

대표적인 게임이 로스트아크. 스트리머들에게 수십억의 거금을 뿌렸다. 그 전략이 고스란히 먹혀 엄청난 초반 흥행에 성공한다.

“이번 사태는 저희도 유감스럽고, 내부 개선을 해나갈 거지만 게임이 흥해야 오정환 님의 방송도 잘되지 않겠습니까?”

“그런가요?”

“당연히 그렇죠~! 막말로 오정환 님도 단풍잎 덕을 봤는데 이런 불미스러운 사태는 힘을 합쳐 빨리 종식시켜야죠!”

물론 대부분은 신작 게임의 홍보에 한정된다. 하지만 기존작도 욕심이 날 만큼 효과가 뛰어나다. 즉,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너희만 잘난 게 아니라고요.’

엄밀히 따지면 덕을 본 건 맞다. 회귀한 직후, 빠른 시청자 유입을 위해 전문 게임 방송을 괜히 선택한 게 아니다.

근데 그만큼 게임사에서도 이득을 본다. 적어도 생색을 낼 입장은 아니라는 소리다. 스트리머와 게임사의 관계는 일방통행이 아닌 상부상조에 가깝다.

“저한테 뭘 원하시는 거죠?”

“원한다니 그런 세속적인 건 아니고~ 그저 이번 사태가 빠르게 끝나길 바라는 건 한마음이지 않을까 해서…….”

장연수 씨.

자신의 말에 심취한 듯 침을 튀기며 쏟아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은 조금 많이 다르다.

그냥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망했으면 좋겠다. 솔직히 돈슨? 게임 산업에 이바지하고, 한국 유저들의 추억이 되었던 것도 딱 2010년까지다.

이후로는 변변한 신작 게임 하나 히트 못 시키고, 추억팔이 하면서 과금 유도 정책으로 유저들이나 벗겨 먹는 그렇고 그런 이류 게임사에 불과해진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년 후의 미래다.

‘지금은 그나마 봐줄 만하지.’

그렇기에 작은 후회.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청춘을 바친 게임이다. 돈슨은 몰라도, 단풍잎스토리에 대해서는 애착이 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다른 길을 들었더라면 진심으로 사랑받는 게임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단순히 돈X랄 하면 끝인 RPG 조무사가 아닌 말이다. 이는 약간의 트러블 정도로 바로잡히지 않는다.

돈슨 특유의 꼬리 자르기. 사건이 일어나도 논점 흐리기. 그 지독한 수법을 알고 있기에 먹는 마음이다.

“시청자들에게 좋은 쪽으로 입장을 전해 달라는 거군요.”

“예, 그래만 주신다면… 더할 나위가 없죠. 부탁드려도 될까요?”

“노력은 해보겠습니다.”

“노력해 보시는 정도로는 좀 부족한데~ 그걸 어떻게든 더…….”

손을 잡는다. 작은 후회를 바로잡기 위해.

* * *

보스 몬스터다. 그것도 HP가 까도 까도 안 줄어들 만큼 엄청나게 거대한.

―돈슨 이 새끼들도 뇌정지 온 거지 [37] +128

깨겠는데? 어떡하지?

서버 정지를 시킬 순 없으니까 에라 모르겠다 전화 걸어버리기~└바로 이거였누ㅋㅋㅋㅋㅋ

└내부 유출ㅋㅋㅋㅋㅋㅋ

└?: 여, 여보세요? 게임 오류가 나서 전화드렸거든요?

└운영자도 전화 걸고 당황했을 듯

돈슨은 한국에서 손꼽히는 거대 게임사다. 단순 점유율만 따지면 그 어느 기업도 못 따라올 정도다.

스타크래프트가 승부 조작 사건으로 한풀 꺾인 이후로는 아예 절대적이다.

하지만 기업 이미지는 그에 반비례할 정도로 엄청나게 나쁘다. 이번 사태는 쌓이고 쌓인 불만을 터트리기에 충분한 기폭제였다.

―돈슨 게임에 현질해 주면 안 되는. EU [50] +122

―부화기 확률 주작 개토나오네ㅋㅋㅋㅋㅋㅋ [77] +159―언제부턴가 단풍잎이 옛날 같지 않아지긴 했음 [202] +307…

단풍잎스토리 커뮤니티에서는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다. 그렇게 하루 종일 까도 딜량이 아쉽다. 카오스 라테일 이상으로 깔 거리가 무지하게 많기 때문이다.

―게시판에 뿔난 애들 엄청 많은데

지금 화내도 어차피 또 할 거 아님? 개돼지처럼 돈슨 게임 계속할 거면서 왜 화내냐.

└빡치지만 솔직히 맞는 소리

└어쩔 수 없는 게 대체할 게임이 없잖아.

└리그 오브 레전드나 배틀 그라운드, 혹은 오버워치 같은 이름의 게임이 출시되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글쓴이―이름만 들어도 핵노잼인데? 그딴 거 누가 함

하지만 그것도 결국 한때. 지금까지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한~창 까고 속이 좀 시원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도로 아미타불이다.

달리 할 게임이 없다. 그 많은 사건 사고에도 돈슨의 입지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렇기에 이번 사태는 의미가 있다.

―[기사] 돈슨과 비교되는 영혼노동자 운영자 클라스……. Real Q. 캐시템 반값, 물약값 지원 등 엄청난 혜자 이벤트를 진행하고 계신데요. 안 그래도 타 게임에 비해 저렴한 걸로 아는데 이렇게 퍼주면 뭐가 남죠?

A. 여러분들이 남습니다.

└크~

└사장이 노 저을 줄 아네ㅋㅋ

└게임 이름부터 합격!

└이참에 단풍잎스토리 말고 저걸로 갈아탈까?

그동안 억눌려 있던 경쟁 업체들이 차별성을 제시한 것이다. 돈슨 유저, 비돈슨 유저 가리지 않고 열렬한 호응을 자아낸다.

이 기세가 계속된다면 여러 돈슨에 유효한 타격이 갈 수 있었는데.

“일단 오해부터 풀게요. 제가 일전에 단풍잎 가이드북 관련해서 운영자님과 통화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담당자분에게 연락처가 남아있었다고 합니다.”

―개인정보 유출은 아니었네

―가이드북ㄷㄷ

―정환 님 혹시 가이드북도 쓰셨어요?

―그런 거였구만

당사자가 해명을 한다. BJ오정환의 방송.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운영자와 직접 이야기를 나눴다.

그 내용.

아주 터무니없는 추측은 아니었지만, 일부 오해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예민했던 분위기가 다소 누그러진다.

「[금주의 게임세상] 떨어진 단풍잎… 대신에 트리가? Merry Christmas!」

「[돈슨 열일] 단풍잎스토리도 ‘크리스마스’ 분위기 후끈… 이색 이벤트」

「[게임 레시피] “솔로들이여 PC 앞으로!” 돈슨 온라인 게임 15종, 성탄절 이벤트 화제」

그리고 한 가지 더.

대형 이벤트가 앞당겨 진행된다. 주요 포털 사이트에 광고와 기사가 올라오며 유저들의 기대감을 자극한다.

돈슨은 비슷한 사태를 몇 번이나 경험해 왔다. 회사 내에 매뉴얼까지 존재할 정도다. 이렇듯 대형 이벤트와 업데이트로 사람들의 관심을 돌린다.

“오는 주말에 경험치, 드롭템 두 배 이벤트 진행해.”

“경험치는 상관이 없는데… 드롭템 같은 경우는 이벤트와 신규 퀘스트템 물량이 너무 풀리면 문제될 소지가 있지 않을까요?”

이를 위해 장연수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직계 부서인 기획팀에 추가 업무를 하달한다. 팀장인 박아연은 게임 내 밸런스를 이유로 거절하려 했지만.

“아니, 원투 타임 일해? 적당히 1.3배 정도로 설정해 두면 될 거 아니야!”

“예… 알겠습니다.”

강제로 밀어붙인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그 논리가 합당하다기보다는 기획팀이 개발부 산하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홍보하고, 예산을 허락하는 건 각각 다른 부서의 관할이다. 한쪽이 아무리 원해도 현실적이지 않다며 반려하면 말짱 도루묵이다.

끼익―

장연수는 이를 추진할 힘이 있다. 사장에게 받는 절대적인 신임이 가능케 만든다. 근 이틀 만에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강구하고 당당히 디렉터 앞에 선다.

“보고드리러 왔습니다.”

“…그래.”

창우도 솔직하게 별 기대는 안 했다. 만에 하나 오정환이 협력하지 않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2플랜, 제3플랜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런 사고 하나하나에 게임 업계의 공룡인 돈슨이 흔들린다면, 그건 그거대로 우스운 일이다. 때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이상하게 텁텁하다.

‘공기청정기 필터를 갈 때가 됐나.’

잡생각을 하며 보고서에 사인을 한다. 총괄 디렉터인 자신이 최종 결정권자다. 그 직급이 무색하게도 실권은 장연수의 손에 달렸다.

―님들 크리스마스 이벤트 대박임ㅋㅋㅋㅋㅋ

―돈슨은 싫어도 이건 얻어야지~

―오정환도 괜찮다는데 니들이 왜?

아슬아슬한 시점에 잘 진압했다. 이번 사태까지 종결시킨 이상 그의 평가는 더더욱 올라간다. 비슷한 사고가 터져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소리니까.

“설득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뭐 어려울 거 있나요~ 아, 디렉터님은 BJ 잘 모르시죠? 걔네들은 그냥 우리 피 빨아먹는 기생충이에요.”

단풍잎스토리가 없으면 자기도 방송을 못 한다. 기분만 조금 맞춰준 후, 그 사실을 인지시켜 주면 교섭은 간단하다.

‘BJ라…….’

나이가 나이인지 실제로 잘 모르기에 창우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상사 입장에서 부하보다 모르는 게 있다는 것은 대놓고 말하기 껄끄럽다.

하지만 눈치는 있다. 자신이 본 오정환이라는 남자. 그렇게 뚝심 없이 얄팍한 성격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근데 성격이 어떻든 간에 어쩔 수가 없다니까요?”

“그 정돈가?”

“아참… 제가 보여드릴게요. 이 새끼가 방송을 어떻게 하는지.”

노트북을 딸칵거리자 크롬 창에 화면이 나타난다. 이미 즐겨찾기를 해둔 듯 신속하다. 오정환의 개인 방송국.

『Maple) 오정환. 해명 이후 솔쿰 진행합니다』

『Maple) 오정환. 카오스 라테일 전섭 최초 격파 中(깨면 별풍선 1만 개)』

『Maple) 오정환. 스카니아 넘버원 초고수 이의 있나?』

영상 목록이 날짜별로 주르륵 뜬다. 제목은 제각각이지만 그 내용. 결국은 단풍잎스토리를 플레이하고 있다.

“단풍잎 없으면 이 자식도 방송 못 해요. 자기가 누구 덕분에 별풍선 쪼가리 받으며 먹고살 수 있나 인지해야죠~”

“음…….”

확실히 그러하다. 틀린 말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같은 광경에도 창우는 느끼는 게 조금 달랐다.

‘솔쿰도 했어? 6인텔도?’

아무래도 자리가 자리. 총괄 디렉터를 맡게 된 이후로는 게임 내 세부적인 실황은 알기가 힘들다. 알 시간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썩어도 개발자다. 자신이 만든 게임을 즐겨준다. 그 이상을 넘어 공략을 확립하고, 불가능에 도전한다. 자신이 아는 오정환은 그런 유저였다.

썸네일과 제목만으로 모든 걸 알 수는 없지만 얼핏 보기에는 영상의 내용도 제법 알차 보였다.

“맞죠? 기생충이에요 기생충. 우리 손아귀에 쥐고 홍보 카드로만 적절히 활용하면 됩니다.”

비웃는 장연수의 말을 긍정하지 못한다. 그것과 전혀 상관없이 프로젝트는 진행된다. 오정환의 입장이 그러하다면,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텐데.

공지―『Spring comes back』

그녀가 다시 찾아옵니다.

SEE 2011. 12. 24. PM 05:00

오정환의 방송국.

실시간으로 뜬 공지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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