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봄이에요. 봄이! 싱싱한 봄이가 왔어요!”
“그래?”
“꾸웨엑…….”
샴푸를 바꿨는지 달콤함 냄새가 짙게 풍긴다. 딱히 조미료는 아니지만, 모름지기 음식은 향만 좋아도 180도 다른 느낌이 든다.
“너무 아파요. 요즘 자꾸 물어뜯기는 것 같아요.”
“기분 탓이야.”
“그런 거예요?”
먹을 게 아니어서 문제지. 맞을 짓을 한다는 소리처럼, 얘는 먹힐 짓을 한다.
‘니가 싱싱하다며.’
무심코 머리를 깨문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 잘못이 있다면 선도를 측정한 것이 전부다. 그리고 이게 다 친하기 때문에 하는 애정 표현이다.
“봄이야.”
“네!”
“오빠 볼에 뽀뽀!”
고개를 살짝 숙이자 깡총 발을 들어 올린 봄이의 입술이 닿는다.
살짝.
그것만으로도 살아있다는 희열을 느낀다.
‘이건 행복이란 두 글자로 설명할 수 없어.’
볼 뽀뽀 정도로 설렐 나이가 아닌데 이게 뭐라 해야 하지? 립밤이나 립스틱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촉촉함이 피부에 스며든다.
처음에는 설마.
그냥 장난치는 느낌으로 부탁해 보았다. 딸아이의 애교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으로 말이다.
충분히 킹만 한 게 기억이 났다. 내가 여러 가지 교육을 잘 시켜뒀다. 봄이와 처음 만난 10여 년 전부터 차근차근.
“오빠.”
“응?”
“저 맛있는 거 먹고 싶어요~”
당연히 사줘야지. 집 팔아서라도 사줘야지.
과거의 나는 그 보람을 잊고 살았지만, 지금의 나는 한껏 수확하며 행복을 맛본다.
“저도 맛있는 거 먹고, 오빠도 맛있는 거 먹으면 개이득이에요!”
“그런 거야?”
“우리 지금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거예요~”
“너만 수지타산 맞는 거 아니야?”
“조금 그래요.”
부탁도 이렇게 귀엽게 하는데 어떻게 거절해. 시험이 끝난 이후, 봄이는 내 집에 뻔질나게 들락거리며 맛있는 것을 많이 얻어먹었다.
딩동―♪
그 자체는 좋아. 애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돈 몇 푼을 아끼겠어.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오빠는 여자의 마음을 너무 몰라요.”
“…….”
“여자는요~ 가끔은 다른 떡볶이를 먹고 싶은 거예요!”
‘맛있는 거’라는 음식의 대상이 떡볶이 하나로 한정된다. 본인의 주장에 의하면 각 브랜드마다 차별성이 존재한다고 하지만.
“떡볶이라는 프레임 안에서 벗어나면 안 돼?”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난 있을 수 있어!”
“꾸웨엑―!”
맞을 짓과 먹힐 짓을 동시에 하였다. 이빨 자국이 남을 정도로 옆통수를 꽉 깨물어 응징해 준다.
‘내가 얘 때문에 요즘 떡볶이만 봐도 신물이 올라와.’
어떻게 1인분만 시켜. 내 것도 같이 시켜서 식사 대용으로 먹게 되지. 그것이 일주일에 서너 번씩 반복되자 고추장에서 비린내가 날 지경이다.
“죄송해요… 오빠가 떡볶이 싫어하는지 몰랐어요.”
“싫어하진 않아.”
내가 무슨 교이쿠 상도 아니고. 물론 안다. 남자들은 은근히 모르는 사실이지만, 여자들은 떡볶이를 섭취하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려있다.
실제 의학적으로 검증이 된 사실로, 녹서스 의과대학 유전공학과의 미드 탈론 교수는 의학저널 란셋과의 인터뷰에서 ‘떡볶이와 닭발을 장기간 미섭취한 한국 여성이 흉포해졌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리집 누나랑 동생 꼬락서니를 보면 분명 맞는 연구일 것이다.
“무엇이든 적당한 게 좋은 거지. 아무리 맛있는 거라도 맨날 먹으면 맛있겠어?”
“그치만 떡볶이는 맨날 먹어도 맛있어요.”
“그래.”
“꾸웨엑…….”
나도 네 대가리는 맨날 깨물어도 맛있더라.
귀엽다고 오냐오냐 해줬더니 하늘 높은 줄을 모른다.
‘그냥 떡볶이 못 먹어서 환장한 귀신이야.’
아무리 귀여워도, 볼 때마다 ‘떡볶이! 떡볶이! 떡볶이! 떡볶이!’만 외치면 떡볶이로밖에 안 보이지. 과거의 내가 어째서 이 녀석을 애새끼 취급했는지 알 것 같다.
“떡볶이를 그렇게 좋아하면 집에서도 많이 먹을 텐데 안 질리니?”
“집에서는 못 먹어요.”
“왜?”
“엄마가 떡볶이를 못 먹게 해요…….”
참된 부모네.
굉장히 시무룩한 얼굴로 말하니 측은지심이 든다. 평소의 한을 나에게 와서 푸는 거라면 약간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그래, 한창 자랄 때인데 얼마나 먹고 싶은 게 많겠어?’
그 먹고 싶은 것이 신전 떡볶이, 엽기 떡볶이, 시장 떡볶이, 편의점 떡볶이 등으로 한정된다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이해 자체는 못 할 것이 없다는 소리다.
즉,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스스로 사먹으면 된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는 잡는 법을 가르쳐라. 곧 겨울 방학을 맞이하는 심심한 봄이에게 퀘스트를 하나 하달하게 된 연유다.
“저번에 한 번 해봤잖아?”
“힝…….”
“네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면 돼.”
“배고파요.”
“으허허헝.”
울고 싶다. 이번에도 조금 고되리란 전망이다.
* * *
단풍잎스토리 커뮤니티.
일주일 전, 뜨겁게 달아오른 게 거짓말일 정도로 사그라들었다.
크리스마스 캐시옷 월드당 1회임? [3]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메생역전각 떴냐? [17] +1
이번 클마 이벤트도 설마 히든보상 있나요 [8] +2
…
…
대신 크리스마스 관련 화제로 떠들썩하다. 모종의 이유로 크리스마스 이벤트 시기가 앞당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인이 보내는 크리스마스가 아닌, 단풍잎스토리 유저로서의 크리스마스다.
행복한 마을과 코―크 타운.
겨울에만 열리는 특별 맵이다. 여러 가지 성대한 이벤트가 유저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올해는 반드시 루돌프 코 대작 만들어야지
진짜 시간 지나면 너무 비싸져서 살 엄두가 안 남
└아~ 그 공격력 올려주는 거?
└고렙 필수템이지
└그거 시간제한 있던데 왜 사는 거야
글쓴이―하루에 100원씩 내면 연장 가능함ㅋㅋㅋ
정확히는 보상 아이템.
이 시기에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특히 얼굴 장식 중 유일하게 공격력을 올려주는 ‘루돌프의 빨간 코’는 시간이 지나면 웃돈을 주고도 구하기가 힘들다.
사는 쪽도, 파는 쪽도 돈이 된다. 물론 가장 돈을 버는 건 돈슨이지만 그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할 만큼 취해있다. 모름지기 이벤트란 그런 것이다.
―님들 이번 주 주말 대박임ㅋㅋㅋㅋ
6시부터 10시까지 경험치, 드롭률 두 배
사냥을 하든 이벤트템을 모으든 이때 하면 될 듯
└오! 드롭률 두 배야?
└돈슨이 웬일……. 정신 차렸나
└또 인기 사냥터들 간판이 점령하겠네
└난 나만의 명당에서 꿀빨아야지~ (안 갈쳐줌ㅎ)
하물며 크리스마스를 겸한 오는 주말의 이벤트는 구미가 당긴다. 단풍잎 유저들에게 경험치 두 배 이벤트는 소중하다. 특히 현재 시점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경험치가 극악으로 안 올랐다. 말이 사냥이지, 거의 노가다에 가까웠다. 때문에 이런 두 배 이벤트 때 빡세게 경험치를 당기는 게 트렌드였다.
“어때, 잘될 것 같아?”
“지금 커뮤니티 여론과 현재 접속자 수를 생각해 보면… 동접 20만 정도? 평소 수준의 회복은 어렵지 않을 것 같습니다.”
돈슨 코리아 5층의 직원 휴게실.
장연수의 물음에 운영팀 팀장 박숙이 자판기 커피를 한 모금 넘기며 대답한다.
요 며칠, 정말 지옥 같이 바빴다. 그 성과를 확인하고, 보너스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크리스마스 이벤트다.
그렇다. 유저들에게만 뜻깊은 게 아니다. 돈슨 직원들도 이번 사태만 잘 마무리되면 연말의 휴가를 두 다리 쭉 뻗고 보낼 수 있다.
“근데 부장님이 어쩐 일로…….”
“내가 요즘 좀 민감하잖아. 이해 좀 해줘.”
평소에는 잘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래도 부서별로 하는 일이 다르다 보니, 마인드도 상당히 다르다.
개발부: 우리는 업데이트 잘했어. 운영이 문제지!
사업부: 업데이트를 잘해 놔야 운영도 잘되는 거지!
탓을 했으면 탓을 했지 정답게 물어보는 경우는 보통 없다. 하지만 최근 연수는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다. 신경이 곤두서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뭐, 이제 와서 큰 걱정은 없지만.’
당사자에게서 확언을 받아냈다. 커뮤니티와 유저들의 여론도 가라앉았다. 다소의 여진이 남아있다곤 하나, 이벤트 진행과 함께 자연스레 종식될 것이다.
원래 유저들이 그러하다. 관심을 갖는 것은 한 번에 하나. 보다 재밌는 장난감을 던져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까맣게 잊는다.
“여하튼 제 선에서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그게 전부입니다. 변수가 있다면 경쟁 게임들 이벤트 정도?”
“그건 됐어. 보니까 별거 없더라고.”
게임 업계는 심플하다. 규모가 곧 게임의 퀄리티다. 유저 입장에서 당연해 보이는 것 하나하나가 개발자를 갈아 넣어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쟁 게임? 그런 것도 급이 맞을 때의 이야기야.’
즉, 규모가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인 돈슨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에 준하게 손꼽히는 회사? 두어 개쯤 있지만 노리는 유저층이 크게 겹치지 않아서 상관이 없다.
대한민국의 게임 업계. 가끔씩 신규 게임이 치고 올라와도 게임사는 항상 같은 이유다. 유저들이 아무리 개돼지다 뭐다 따져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크리스마스 시즌 솔로족 특집” 혼자가 더 편한 게임은?」
「당신이 크리스마스에 단풍잎스토리를 즐겨야 하는 3가지 이유!」
「돈슨 ‘산타클로스’ 되다. 단풍잎 스토리 경험치&드롭률 2배 이벤트!」
이렇듯 홍보까지.
돈슨에 친화적인 몇몇 기자들에게 부탁해 기사를 올리면 직빵이다. 이벤트 시기며, 내용이며 ‘솔로들을 위한’이라는 홍보 문구도 완벽하다.
‘이제 곧 동시 접속자 20만 명의 기사가 올라올 테지.’
12월 24일의 오후 6시.
퇴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연수는 사무실에 앉아있다. 지금 퇴근하는 것보다 결과를 보고받고 가는 것이 속 편하다. 그 결과가 좋으리란 것에도 자신이 넘친다.
내일은 최고의 크리스마스가 될 것이다. 확신을 했던 연수의 판단은 분명 틀린 게 아니다. 경쟁 게임들의 흥행은 미미하다.
커뮤니티의 여론도 진정되어 있다. 한 가지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치고 올라왔을 뿐이다.
“박 팀장 나야. 퇴근 안 했네?”
<아, 네……. 좀 바빠서.>
“일 다 끝난 거 아니었어? 다름이 아니고 이제 슬슬 결과가 나올 때가 된 것 같아서.”
이 정도면 꽤 기다렸다. 그럼에도 기사도, 보고도 올라오지 않는다. 직접 전화를 걸자 휴게실에서와 달리 뚱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하아… 지금 15만이 조금.>
“아, 15만? 그럼 피크 때는 대충 20만 이상 가볍게 찍겠네?”
<그러면 저도 마음 놓고 퇴근할 수 있겠죠. 피크 기준으로 15만 간신히 되겠네요.>
“…….”
말이 15만, 평소의 3/4이지.
사태 수습을 위해 쏟은 예산과 크리스마스라는 특수를 생각하면 처참한 결과다. 퇴근이고 나발이고, 그 이유에 대한 분석과 시말서를 생각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대체 왜?’
자신의 인맥으로 여러 회사의 사정을 알아봐도 특별히 대박이 난 곳은 없다. 변수가 없는 이상 성공이란 결과로 귀결돼야 한다.
허겁지겁 다시 커뮤니티의 동태를 파악하다 찾아낸 의문의 글 하나.
―갓정환 방송 켰다ㄷㄷ
『Maple) 오정환. 당신의 크리스마스에도 봄은 옵니다_Spring, My Christmas』
감성 퍄퍄…….
그렇다. 게임 때문은 아니었다. 고작해야 기생충에 불과할 한 방송 때문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