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갑작스러운 커밍아웃. 방송은 예상치 못한 난관을 맞이한다.
“너 중학교 3학년 맞잖아.”
“아닌데요오.”
“뭐가 아닌데?”
“저 예비 고등학생이에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닌데요오~
―아
―이건 킹정이지!
봄이를 보지 못했던 한 달. 그 짧은 시간 동안 심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던 모양이다.
‘떡볶이 처먹는 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있었다니.’
놀랄 노 자지만 딱히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그도 그럴게 나도 그랬다.
초등학교 6학년.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내년의 나는 엄청나게 달라지리란 상상에 젖어든다.
“중학생 될 때도 느꼈겠지만 1년 가지고 극적인 변화가 찾아오진 않아.”
“아닌데요오.”
“뭐가 또 아닌데?”
“저 가끔 선생님 심부름으로 1학년 교무실 가면 완존 애기들밖에 없어요.”
“…….”
―컄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애기가 애기한테
―미치겠다 고학년 부심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물론 있다. 나이 먹고 보면 다 비슷하지만, 학생 때는 1학년만 높아져도 특별해졌다는 기분이 생긴다.
‘하긴 뭐 군대 훈련소에서도 1, 2주 빨리 온 걸로 온갖 부심이란 부심은 다 부리는데.’
2년 차이면 애들로 보일 수도 있지. 그 애들도 너를 애로 볼 수도 있겠지만.
한 중학교의 최고 학년, 그것도 말년으로서의 자부심이 턱밑까지 차오른 모양이다.
“1학년 애들한테 복도에서 뛰지 말라고 한 적 있어요. 그때 조금 권력의 맛을 느꼈어요.”
“아우~!”
귀여워.
숨넘어갈 뻔했네. 여하튼 이것은 상당히 큰 문제다. 고학년 부심이야 그렇다 쳐도, 여중생쨩이 여중생쨩이 아니게 되면 정체성이 흔들린다.
―하와와여고생쨩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말세다 말세 여고생이 하와와를 하지 않는다니…….
그때.
마침 적절한 도네가 하나 떠오른다. 시청자의 참된 방송 참여란 이런 것을 일컫는 것이다.
“봄이, 너 그거 알아?”
“어떤 거요?”
“고등학생이 되면 여자애들은 ‘하와와’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녀.”
“……?”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전에는 순수해서, 그리고 댕청해서, 금전 감각이 꼬맹이라서 자연스럽게 속았지만 현재 상황은 다르다.
“그럴 리가 없어요.”
“진짜라니까?”
“제 친구들 중에 그런 애들이 없는 걸요.”
“걔네들은 중학생이잖아.”
이걸 어떻게 속여. 현실 세상에 하와와~ 이러고 다니는 정신 나간 인간이 옆 나라 말고는 존재할 리가 없다.
현실 세상이 아닌, 방송이라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Koogle』―검색 결과 약 129, 000개 (0.38초)
하와와 여고생: 네이버 블로그
하와와 여고생은 외울 게 많은 역사 과목은 싫은 거시에요 Jet Set.jct on Twitter 하와와… 여고생쨩 컬링 해본 거시야요!
…
…
구글 검색 결과.
하와와 여고생에 관련된 글들이 주르륵 떠오른다. 예비 여고생을 자처하는 봄이에게 보여준다.
“맞지?”
“이럴 리가 없어요…….”
“믿기지 않으면 네 폰으로 검색해 봐.”
“해볼게요.”
자신을 속이는 게 아닌지. 서둘러 스마트폰을 꺼내 직접 검색해 본다. 동공지진을 일으켜도, 눈을 부비부비 비벼보아도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당연하지.’
실제로 있는 거니까. 물론 냉정한 시선으로 살피면 알 수 있다. 단순한 인터넷 밈, 그리고 서브 컬처의 일종이라는 걸 말이다.
―아직 중딩이라 모르나 보네~
―고등학생 되면 바로 아는 건데
―ㄹㅇㅋㅋ
―하와와 군필 여고생쟝인 거시야요~
그런 걸 할 수 있는 정신머리가 없다. 절대 다수의 시청자들이 협조하고 있다. 냉정함을 잃은 순간 설득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요.”
“그건 네가 중학생이라 그래.”
“아니에요오!! 저 예비 고등학생이에요.”
“그러면 고등학생다운 언행을 익혀야 되는 거 아니야?”
“맞아요.”
맞대. 스스로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여고생으로 인정받기 위해 봄이는 어쩔 수 없이 결단을 내린다.
그리고 현재.
“하와와… 저는 봄이인 거시야요.”
“이제 좀 여고생 같네.”
―아 ㅇㅈㅇㅈ
―누가 봐도 여고생이네~
―말투 보고 딱 알음ㅋㅋ
―하와와 여고생쨩!
대한민국의 일부 여자 고등학생으로서 합당한 교육을 마쳤다.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고개를 갸웃하지만 나는 재밌으니 상관없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아무리 내가 보라에 잔뼈가 굵었다고 한들 현재 상황에서, 이런 꼬꼬마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콘텐츠에는 한계가 있다.
그 울타리 내에서 최고의 플랜을 구성했다. 1년 중 솔로들이 가장 울적한 날. 시린 옆구리가 동상에 걸릴 것만 같은 날.
내 방송의 주를 이루는 남자 시청자들이 하고 싶은 건 바로 데이트다.
“지금부터 봄이와 파티 퀘스트 할 분을 선착순으로… 하, 성격 급한 분들 많으시네.”
―군필여고생쟝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주량2L여고생 님, 별풍선 50개 감사합니다!
―오정환심복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
…
말이 떨어지기 무섭다. 생각 이상으로 호응이 알차다.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흐름이기도 하다.
‘담백하게 말하면 시청자 참여지.’
두 번째 콘텐츠. 그 내용은 사실 별거 없다. 봄이가 내 대신 앉아, 시청자들과 파티 퀘스트를 즐길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첫 단계에서 봄이의 매력을 어필했다. 이에 빠져든 시청자들이 관심으로 화답하는 것이다.
―Maple큰손 님, 별풍선 1, 000개 감사합니다!
헐 늦었다 ㅠㅠ
“먼저 쏘신 분들 죄송한데 한 분만 하이패스로 통과시켜 드릴게요. 큰손 형이 저번부터 봄이를 정말 애타게 찾았거든요.”
―하이패슼ㅋㅋㅋㅋㅋㅋ
―자본주의의 맛
―1, 000개는 ㅇㅈ이지
―환이방이 열혈 대우가 좋아… 나도 달까
물론 마음의 선물도 잊지 않는다. 방송에 도움이 되는 센스 있는 채팅도 중요하지만, 머니머니 해도 Money는 그보다 더 중요하다.
‘이게 단순히 내 지갑만을 위한 것도 아니야.’
사람들이 경마장, 카지노 등 굳이 도박에 맛 들리지 않았더라도 취미로 두는 이유가 있다.
엄청난 거금이 오가고, 그만큼 엄청난 열기가 현장에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안에 있으면 기분이 무척 뜨겁게 고양된다. 현재 진행되는 방송도 마찬가지다. 큰돈이 오가는 자리는 기본적으로 재미가 없을 수가 없다.
―빡대가리야 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오늘부터 열혈 달립니다
―율천고피바라기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난 학생이라 100개가 최선…….
―To그대에게 님, 별풍선 200개 감사합니다!
정환아 방송 항상 잘 보고 있다!
…
…
“오~ 빡대가리야 님 기대할게요. 피바라기 님도 통 큰 팬 가입 정말 감사합니다. 그대 님 방송 자주 와주시던데 오늘도 재밌게 봐주세요.”
―크~
―수금 보소
―정환이는 시청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짐
―아ㅋㅋ 그 Boom 생각나네
판이 조금 커진다. 이를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된다. 어지간한 상황은 전부 손바닥 위에서 조절 가능한 베테랑 BJ다.
―충신지빡이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어휴, 물소 새끼들 존나 많네ㅋㅋ
“물소가 뭐예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방송. 예상치 못한 상황은 종종 터진다. 어디서 여캠 좀 보신 듯한 분이 ‘아이는 어떻게 낳아요?’급의 고품격 퀴즈를 탄생시켰다.
“소의 일종인데 수컷과 암컷의 사이가 엄청 좋거든.”
“오~”
“그래서 이성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사람을 물소라고 불러.”
“어머, 어머~ 저도 시청자 오빠들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싶어요 하와와.”
―잊지 않는 하와와ㅋㅋㅋ
―이걸 이렇게?
―perfect explain
―동심 파괴하지 않는 참된 설명충…….
임기응변이라는 건 센스보다 경력이 가장 중요하고, 현재 시점의 그 누구보다 경력이 오래 쌓였다.
어지간한 상황은 다 대처한다는 건 빈말이 아니다. 정말 어지간한 상황은 말이다.
―하와와 여고생쨩 보러 왔습니다
―우왕ㅋㅋㅋ
―소문의 여중생쨩…….
―정말로 여고생이 하와와 하나요?
…
…
갑작스레 올라가는 시청자 수. 놀려 먹으려고 저지른 장난의 파장이 생각보다 조금 크게 번진다.
* * *
파프리카TV.
차후에야 인터넷 방송이라는 게 워낙 보편화되지만 2011년에는 그렇지 않았다.
―여중생쨩 방송한다고 해서 보려고 했는데
X발 뭐 이렇게 깔아야 될 게 많아. 그냥 나중에 클립 올라오는 거 기다려야지 └ActiveX 네 이놈…….
└진짜 복잡하긴 하더라
└파프리카TV 그리드 있어서 깔면 인터넷 느려진다던데 글쓴이―ㄹㅇ? 안 깔길 잘했네ㅋㅋ
일반인들에게 느껴지는 진입 장벽은 상당히 높다. 평소 안 하던 짓을 한다는 것 자체가 거부감이 이는 데다 프로그램도 최적화가 매우 안 되어있다.
어? 열받네……. 기껏 마음먹은 이들도 한두 번의 시도로 실패하면 그대로 마음을 접는다.
재미난 화제이긴 하지만 진입 장벽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중생쨩 방송 대박이네ㅋㅋㅋㅋㅋ
오정환? 남자 BJ가 하와와 시키는 중ㅋㅋㅋ
└하와와?
└하와와 여고생쨩인 거시야요~ 말하는 거?
글쓴이―ㅇㅇ 그거ㅋㅋㅋㅋ
└링크 안 걸고 뭐 함
그 높은 장벽이 와르르.
숱한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든다. 서브 컬처라는 건 당연히 수요에 의해 탄생한다.
귀엽고 앙증맞은 여자 고등학생? 그것이 상상 속의 동물이라는 사실을 안다. 알기 때문에 활자나 그림 쪼가리로라도 원하는 것이다.
“하와와… 파티 초대를 드리는 거시야요.”
“좀 더 생동감 있게 하와와 해.”
“잘 모르겠어요……. 허엉.”
―ㅋㅋㅋㅋㅋㅋ
―여고생이면 당연히 하와와를 해야지~
―지금이라도 여중생쨩 할래?
―오정환 이 잔인한 놈!
상상 속에서나 이루던 일이 현실에서 펼쳐진다. 심지어 여고생도 아니고 어리디어린 여중생이 말이다.
놀려먹는 광경이 맛깔나다는 사실이 커뮤니티를 통해 금세 전파된다.
이종격투기―「충격 근황… 여중생쨩의 화려한 변신?」
樂 SOCCER―「파프리카TV에 나타난 하와와 여고생쨩 ㄷㄷ」
도탁스(DOTAX)―「하와와 여고생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타임 어택!」
…
…
이미 숱한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자발적 홍보에 보다 탄력이 붙는다. 귀찮았던 이들도 솔깃한 소식에 움직인다.
부동이던 파프리카TV의 유입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긴다. 이는 無에서 有를 창조한 것이다. 다른 BJ의 시청자가 옮겨간 것이 아니니까.
『Maple) 오정환. 당신의 크리스마스에도 봄은 옵니다_Spring, My Christmas』
? 본방: 617 (PC: 331/ MOBILE: 286)
? 중계방: 3, 922
? 누적 시청자 수: 27, 274
그 결과, 빠른 속도로 시청자 수가 불어난다. 최초로 4천 명대를 돌파해 5천 명대를 바라보고 있다.
이른바 ‘대기업’이 되기까지 한 걸음 남았다. 반짝 콘텐츠로 인한 인기라 할지라도 의미는 크다.
작은 한 발자국이 메이저 BJ로 성장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영향은 당연히 현실 세계에 한정되지 않는다.
단풍잎스토리. 일반 유저들 사이에서도 소문이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초1고의표도vv: 어? 오늘 생각보다 자리 널널하네
상큼한칵테일: 아마 오정환 때문일걸…….
불량한담탱: 정환이 또 뭔 짓 하는데?
남은 걸음.
채워지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오정환의 영향력은 현실보다 게임에서 더 짙게 배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