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36화 (36/846)

36화

여성이라면 누구나 술에 대한 환상이라는 게 있다. 소주, 그리고 맥주. 그런 거 말고.

“오빠, 신기한 게 엄청 많아요.”

“이번에 새로 마련했지.”

“와~ 그릇이랑 병들이 엄청 예뻐요!”

입을 헤~ 벌리며 감탄할 만도 하다.

지난 한 달. 변한 것은 당연히 봄이만이 아니다. 집 안의 인테리어. 좁디좁지만 그렇기에 더욱 신경을 쓴다. 줄을 쓱 당기자 벽걸이 선반의 커튼이 올라간다.

“근데 저 손이 안 닿아요.”

“일부러 높은 곳에 설치한 거야.”

“힝…….”

누구누구가 깨지 못하도록 말이다. 장난감으로 쓰기엔 가격이 만만치 않다. 지난 번 유리잔도 새 걸로 보충해 뒀을 뿐만 아니라.

「The Macallan 25 Years Old―Sherry Oak」

「The Macallan 18 Years Old―Gran Reserva」

「The Macallan No. 6」

「The Macallan 1946」

코인을 샀다. 흔히 코인 하면 비트 코인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세상에는 꼭 0과 1로 된 코인만 있는 게 아니다.

‘알코올로 된 코인도 있거든.’

모든 싱글 몰트의 절대적 평가 기준이라 불리는 셰리 위스키의 황제 맥캘란이다.

이곳저곳 발품을 팔아 살 수 있는 것은 전부 긁어모았다. 고작 술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진다고? 문외한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마지막의 맥캘란 1946 같은 경우.

“이게 얼만지 알아?”

“얼마예요? 저 한 입 마셔봐도 돼요?”

귀여운 질문을 던져온다. 한 입에 대충 20만 원 정도 한다. 호텔이나 바에서 마시면 병당 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차후에는 그의 열 배가 넘는 가격이 책정된다. 말이 열 배지. 사실상 돈이 있어도 못 구하는 희소품 신세다.

‘무조건 떡상 예정이야.’

비트 코인도 당연히 탐이 난다. 하지만 술꾼인 내 입장에서는 지금 아니면 못 구하는 물품들이 더 간절하다.

무엇보다 이건 내 돈이 아니다. 봄이의 첫 방송 때 터진 10만 개의 별풍선. 수수료를 제한 600만 원가량으로 구입한 것들이다.

“이거 다 술이야.”

“왠지 그럴 것 같았어요.”

“봄이가 나중에 커서 마실 수 있게 되면 오빠랑 마시자.”

“진짜요? 진짜 진짜요?”

당연히 얘는 술맛을 모른다. 안쪽에 대충 김빠진 소맥을 채워놔도 그런갑다 할 것이다.

방송이라는 게 내 덕도 있기 때문에 나의 사리사욕을 반영한 결과이기도 하고.

눈이 초롱초롱 빛난다. 병이 진짜로 예쁘게 생겼다. 46년산은 아는 사람만 아는 거라 병이 스탠더드 하지만 No.6 같은 경우.

‘진짜 예뻐.’

무슨 향수병처럼 생겼다. 봄이가 크게 관심을 보일 만하다. 여성들이 양주에 흥미를 보이는 경우의 열에 아홉은 그냥 병이 예뻐서다.

실제로는 대부분 싫어한다. 솔직히 고도수의 술은 남자들의 취미다. 즉, 오늘 봄이에게 권하고 싶은 건 따로 있다.

“봄이 칵테일 알아?”

“들어본 적 있어요. 하와와.”

눈을 더욱 초롱초롱 빛낸다. 봄이의 손이 절대로 닿지 않는 선반 위에서 전용 잔을 몇 개 꺼냈기 때문도 있지만 그전에 여자들은 칵테일에 대한 환상이 있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 같은데 보면 꼭 등장한다. 화려한 파티, 혹은 분위기 있는 바에서 예쁜 잔에 담긴 알록달록한 액체를 마시는 광경 말이다.

샤카! 샤카!

그 칵테일을 만드는 과정이다. 셰이커(shaker). 재료를 혼합하기 위해 쓰는 스테인리스로 된 텀블러 모양의 통이다.

“섞고 있는 거예요?”

“그래.”

“저도 콜라랑 사이다랑 섞어본 적 있는데 꿀맛이었어요.”

웃을 일이 아니다. 사람들 생각하는 게 다 비슷하다. 실제 대부분의 칵테일 유래도 그냥 마시기는 밋밋해서 여러 가지 섞다 보니 생긴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만드는 건 당연히 다르지.’

칵테일을 만드는 기법. 이 셰이커에 재료를 넣고 흔든다. 단순하게 섞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도출한다.

샤카! 샤카!

이 안에서 섞이는 건 재료들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로 공기. 특정 동작으로 셰이커 안쪽이 파도치는 것처럼 흔들면 그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

‘레이디 킬러가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거든.’

레이디 킬러(Lady Killer).

여자들 꽐라로 만들기 위한 작업주 말이다. 하지만 골똘히 생각해 보면 의아하다. 아무리 주스를 섞는다고 한들 취하게 하려면 도수가 2~30도 정도는 나와야 한다.

마시면 크~ 소리 나오는 소주도 17도 안팎인데 말이다. 소주보다 훨씬 센 술을 어떻게 먹일까?

여자가 멍청하고 띨빵해서 속은 것일까?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이 셰이크란 기법이다.

공기를 먹인 알코올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워진다. 과장 조금 보태면 물이랑 별 차이가 없다. 부재료로 향까지 속이면 진짜로.

주르륵―

완성된 칵테일을 잔에 따른다. 그냥 둬도 아름다운 원뿔 모양의 마티니 잔에 핑크빛 액체가 가득 담긴다.

“엄청 예뻐요. 제가 마셔도 되는 거예요?”

“널 위해서 만든 거야.”

“감사합니당!”

난생처음 봤을 칵테일.

그것도 직접 만들어준 스페셜 원. 이 감성에 넘어가지 않는 여자는 없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감상하더니 곧이어 맛을 본다.

‘정말로 여자를 어떻게 하고 싶으면 바텐더랑 짜고 치면 쉬워.’

작정하고 셰이크 해서 공기를 불어 넣으면 어지간한 양주급으로 무거운 칵테일도 이슬톡톡처럼 술술 들어간다.

수준급의 바텐더라면 그보다 더 가벼운 느낌으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정말 주스처럼 달달해요!”

“그래, 진짜 주스거든.”

“힝…….”

물론 이건 진짜 주스다.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일을 벌려봤을 뿐이다.

‘칵테일은 칵테일인데 논 알코올일 뿐이야.’

복숭아 주스―1oz

크렌배리 주스―2oz

오렌지 주스―2oz

그리고 얼음.

꽤 오래 흔들었기 때문에 맛도 순하고, 신맛도 덜할 것이다. 주스처럼 꿀떡꿀떡 잘 넘어가는 비결은 정말 주스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저는 만족해요.”

“왜?”

“어른의 세계를 맛본 기분이에요~”

기본적으로 칵테일이든 양주든 별게 아니다. 한마디로 갬―성이다. 이런 특별한 날에는 한 잔쯤 즐겨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봄이는 당연히 할 수가 없다. 평소에는 흔히 하기 힘든 경험. 동심을 지키는 선에서 시켜주는 게 보호자로서의 역할이다.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칵테일 이름은 안 말하길 잘했네.’

저 레시피에 보드카를 섞으면 이렇게 부른다.

섹스 온 더 비치(Sex on the Beach).

조금 남사스러운 이름이 돼버린다. 그리고 알코올을 뺀 칵테일에는 보통 ‘버진’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굳이 풀네임을 명명하자면 ‘버진 섹스 온 더 비치’쯤 될 것이다.

“한 잔 더 마실래요!”

“…다른 거 해줄게.”

왠지 모르게 양심이 찔려서 칵테일 종류를 변경했다. 봄이에게 어울리는 ‘신데렐라’.

레몬 주스―20ml

오렌지 주스―20ml

파인애플 주스―20ml

‘레이디 킬러가 아니고 꼬꼬마 킬러지.’

같은 주스라도 섞어서 맛있게 만들어준다. 그것도 아기자기한 예쁜 잔에 담아서 말이다. 본인이 대만족하고 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인데.

“오빠 건 진짜 술이에요?”

“그래, 진짜 술이야.”

“냄새 맡아봐도 돼요?”

“안 돼. 너 훅 가.”

내가 마시는 술에 관심을 가진다.

아벨라워 아부나흐.

맥캘란처럼 가격은 비싸지 않지만 제주도 특산품이라서 구하기도 쉽고, 자주 마셔서 입에도 잘 맞는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막걸리 같은데.’

캐스크 스트랭스의 원주다. 기본 도수가 60도 전후. 특히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33번 배치는 역대 아부나흐 중에서도 가장 도수가 높은 61%다.

그렇게 도수가 높은 만큼 맛있다. 캐스크가 아래쪽에 있어서 증발량이 적은 덕분이다. 과거로 돌아온 덕분에 구할 수 있었다는 술주정은 그렇다 치고.

“하아~”

“꾸웩! 아빠 냄새 나요.”

“그런 거야.”

온더록스도 아니라서 미성년자는 코만 갖다 대도 진짜로 취한다. 소독용 알코올과 비슷한 도수이니 과장이 아니다.

봄이와 조촐한 파티. 시켰던 배달 음식도 도착한다. 한 입씩 물어뜯자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는다.

“저 사실 아빠 소주 조금 마셔본 적 있어요.”

“어땠는데?”

“달달했어요!”

“이년이?”

술맛을 안다고? 우리나라 소주는 감미료를 많이 넣기 때문에 달달하다.

‘그래서 숙취가 심해서 별로 안 좋아해.’

소주가 싫다기보다는 숙취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브랜디와 진도 별로 안 좋아한다. 뭔가를 많이 섞을수록 숙취가 심해지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너가 술을 못 마시는 것도 세상의 이치. 그것이 못내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미성년자다. 한 번쯤은 믹스 주스가 아닌 진짜를 마셔보고 싶을 것이다.

달그락!

그 소원을 이루어주기로 했다. 원기둥 모양의 하이볼 잔에 얼음을 채운다. 네모난 모양. 마치 블록처럼 차곡차곡 쌓인다.

꼴꼴꼴―

재료를 넣는다. 찧은 민트 잎과 시럽. 그리고 탄산수로 풀업을 마친다.

“이게 뭔지 알아?”

“저 이거 알아요. 몰디브예요!”

“그래, 잘 맞혔어.”

“모히또 가서 몰디브 한잔하는 거예요~”

물론 몰디브는 나라 이름이고 칵테일 이름은 모히토다. 자른 라임 조각으로 장식해 주자 신기한 듯 눈동자를 굴린다.

‘가끔 지인한테 이런 걸 해주면.’

정확히는 여자한테만.

반응이 좋을수록 나도 흥이 난다. 마지막으로 얼음 위에 향이 강한 다크 럼을 소량 플로트한다.

“제가 이걸 마셔도 되는 걸까요?”

“오빠가 보호자니까 괜찮아.”

“그럼 저 한번 도전해 볼게요!”

“그래, 뭐든 경험이지.”

플로트.

한마디로 말을 하면, 네모난 얼음 위에 술을 바른 것이다. 향이 물씬 올라오긴 해도 실제 도수는 0.5%도 나오지 않는다.

‘기분 내긴 딱 좋지.’

한국의 주세법상 알코올이 1% 이하인 음료는 술로 취급하지 않으므로 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오늘 같은 특별한 날. 미성년자라도 한 번쯤은 충분히 마셔볼 만한데.

꾀꼬닥.

“…….”

훅 가고 말았다.

* * *

크리스마스.

대한민국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한 날이다. 그리고 이는 파프리카TV의 BJ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오늘 X발 만 개는 무조건 땡길 줄 알았는데!”

“만 개도 못 받았어? 하꼬 새끼 낄낄!”

“아, 닥쳐! 나는 간장은 안 마셨어.”

이른바 수금 기념일이다. 크리스마스, 자신의 생일 등. 특별한 날은 명분을 내세우기 쉽다.

한마디로 돈 달라고. 그 앵벌이가 잘 먹혀야 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기대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현재 시청자 순위』

1. BJ철꾸라지_? 15, 742명 시청

2. 곽팡우_? 12, 169명 시청

3. 오정환_? 10, 074명 시청

4. MC윾신_? 8, 209명 시청

그 이유.

갑작스레 치고 올라온 한 방송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탓을 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

카테고리가 다르거니와 시청자층도 겹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원래 책임을 전가하고 싶다. 자신의 목표에 미치지 않았다면 더더욱.

“이 새끼 견제해야 하나.”

“너무 크긴 했어. 신고도 없이 보라 판에 끼어들고 말이야.”

“뭐지? 오정환 엄청 컸는데?”

“말했잖아. 이 자식 끼가 있다고~!”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주목받게 된다.

1만 명. 설사 천운(天運)이라 할지라도 아무나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정환이 대체 어떤 BJ인지. 그리고 얼마나 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파프리카TV라는 BJ들의 총본산에서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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