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네, 네…….”
네네치킨을 시켰기 때문이 아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전화가 걸려와 받고 있다.
<혹시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셨어요?>
“어제 줄창 마시다가 지금 깨서 목이 아직 잠겼네요.”
<아, 그럼 들으시기만 해도 되는데~ 저번에 말씀드린 베스트 BJ 관련해서…….>
그 대상은 파프리카TV 운영자.
이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던 그분이다. 일전에 통화했던 내용에 대한 회신이 긍정적이다.
‘베스트 BJ라.’
BJ에는 크게 세 가지 등급이 있다.
일반 BJ, 베스트 BJ, 파트너 BJ.
그중에서 현재 내가 속해있는 등급은 일반 BJ다. 시청자가 그래도 천 명은 나오는데?
이게 어쩔 수가 없다. 베스트 BJ가 되기 위해서는 혹독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1. 시청자 수가 많아야 한다.
2. 방송을 꾸준히, 오래해야 한다.
3.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건전한 방송을 해야 한다.
그 외 각종 지표. 시청자들의 수많은 추천. 마지막으로 한 달에 일정 이상의 방송을 해야 하는 서약까지 뒤따르는데.
<내부 회의 검토 결과 자격 요건을 충분히 통과하셨거든요?>
“그래요?”
<예, 다음 달인 1월 베스트 BJ 선발 명단에 포함되는 게 거의 확실시되었으니 기대를 하고 계셔도 될 것 같습니다, 헤헤.>
일반적인 방법이 그렇다는 소리다.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기준과 실제 현장에서 적용되는 방식은 다르다.
‘파프리카TV에는 시크릿 방식이라는 게 있어서.’
매월 선정되는 베스트 BJ들.
정말 방송을 오래하고, 많이 하고, 콘텐츠도 알찬 이들도 있지만 반대로 대체 왜 쟤가 베스트 BJ인지 모르겠는 인간들도 적지 않게 포함된다.
그 이유가 바로 시크릿 방식 때문이다.
운영자들의 입김이 세게 들어간다. 이렇듯 잘 보이면 표면적인 심사를 건너뛸 수 있다.
“알겠습니다. 저도 그러면 전업 BJ에 대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정환 씨 방송 시청자 수도 많고, 별풍도 게임 BJ 중에서 톱급이시고, 어제는 또… 저희 운영진들도 난리가 났었거든요~!>
실제 베스트 BJ에 전혀 모자라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본래라면 거쳐야 할 진입 장벽. 귀찮지 않게 한 번에 패스한다.
‘이제부터가 문제지만.’
BJ들이 괜히 베비에 목숨 거는 게 아니다. 베스트 BJ가 되면 여러 가지 특혜가 생긴다.
지금까지는 60%였던 별풍선 환전율이 70%가 되고, 본방 시청자 수가 증대되며, 다시보기가 자동으로 영구 저장되는 등.
하지만 세상이 좋을 일만 골라서 일어날 리 없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의 좌우명은 한 번쯤 곱씹어 볼 필요성이 있다.
<시청자 1만 명이 진짜 잘나가는 BJ들도 이루기 힘든 꿈만 같은 목표잖아요.>
“운이 좋았죠.”
<어떻게 운만으로 다 되겠습니까~ 이게 다 방송이 잘 맞으시고, 끼가 있으시니 가능한 거죠. 이번 베스트 BJ가 계기가 되어 직업 BJ를 하신다면 저희 운영진 입장에서도…….>
주목을 받게 된다. 그리고 이는 어차피 피할 수 없다. 그런 김에 베스트 BJ까지 한 번에 똭―! 띄우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부터가 진짜 BJ고, 진짜 전쟁의 시작이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힘만큼 정직하게 이루고 정직하게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특히 BJ 업계에서는 공공연하다. 잡아먹는다는 개념이.
좋든 싫든 이 업계에 발을 담그면, 그리고 성장해 버리면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지금까지는 회피해 왔지만 언제까지고 ‘아무고토 몰라요~’ 하기는 힘들다.
“봄이야.”
“봄이에요…….”
“일어나야지.”
“일어나야 돼요…….”
아무고토 모르는 봄이도 내 침대 한편에서 뒹굴고 있다. 대가리를 톡톡 쳐주자 그제야 일어나 양치질을 하러 간다.
‘크루를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문제지.’
얘가 성장을 하려면 좀 심각히 많이 지나야 한다. 그렇다고 그 세월을 기다려주기도 힘든 노릇이다. 때마침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여보세요?”
<예, 안녕하세요, 정환 씨. 일전에 카페에서 인사드린 돈슨 개발부 부장 장연수입니다 지금 통화 가능하세요?>
할 말이 좀 많은지 속사포처럼 튀어나온다. 크리스마스의 아침부터 조금 바빠질 예정이다.
* * *
파프리카TV.
인터넷 방송을 볼 수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 하지만 시청자가 아닌, BJ들의 입장에서는 악귀가 숨어 사는 복마전(伏魔殿)이다.
아니, 숨어 살지 않는다. 대놓고 산다. 그 정도를 넘어 파프리카TV의 카스트 최상위에 군림한다.
―먹방은의진맨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의진이 ㅎㅇ 기운이 없어 보이네
“먹방은의진맨 님 10개 감사합니다. 기운이 없긴요, 뭐…….”
―그냥 말한 건데 진짜 기운 없어 보이네;
―요즘 의진이 힘들어
―왜?
―시청자 다 뺏겼잖아 ㅠㅠ
신인 BJ 의진맨.
그는 방송을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안 된다. 하지만 차별성 있는 콘텐츠를 내세우며 단기간에 네임 밸류를 쌓아 올렸다.
―와 요즘 의진맨 존나 재밌네ㅋㅋㅋㅋ
운식당 보는 사람 있음?
이거 콘텐츠 존나 기발하다
└뭔데? 어떻게 진행되는데?
글쓴이―음식 만들기→손님 초대하기→같이 먹기. 시청자도 가능함!
└나도 당첨돼서 가봤는데 완전 맛집이더라
└ㄹㅇ 정글러도 못 참지
독특한 콘텐츠. 그리고 피나는 노력.
두 가지가 결합되면 신인 BJ들도 놀라울 정도로 치고 올라올 때가 있다. BJ 의진맨의 경우가 그러하다.
본래부터 음식 자체는 맛깔나게 잘했다. 문제가 있다면 요리 콘텐츠의 시청자층이 얕다는 점이다.
이를 먹방과 결합하여 접근성을 높였다. 파프리카TV 최고의 맛집! 몇몇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며 대기업 BJ의 꿈이 현실로 다가왔는데.
『목요일 오후 10시, 쿤식당 오픈합니다.』
연예인 김군의 새로운 먹방 콘텐츠!
창의적인 요리와 신랄한 비평이 공존합니다
김군 마음대로~♪ 「쿤식당」
입장료 안내
☞그날의 MVP, 혹은 별풍선 100개로 룰렛 구입하여 김군의 요리를 맛볼 기회를 얻으십시오!
다른 BJ에게 자신의 콘텐츠를 강탈당하고 만다. 그것도 대기업. 무려 연예인 출신으로 평균 시청자 5천 명을 상회하는 김군이었다.
└오오!
└김군의 요리라니 먹고 싶다 ㄷㄷ 먹고 존나 까야지!
└이 집 장사 잘하네
└MVP는 무리고… 100개로 한 번 긁어볼까?
반응은 당연히 폭발적이다. 시청자의 수도, 인지도도 격이 다르다. 콘텐츠의 질은 이미 보증이 돼있으니 흥행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군대가는최씨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쿤☆회장 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쿤☆돼지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
…
방송의 수익성 또한.
대기업 BJ들은 콘텐츠 진행에 이골이 나있다. 방송의 진행 능력도, 별풍선을 받아내는 노하우도 압도적이다.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스페셜 게스트까지 초빙하자.
『먹방) 김군. 쿤식당 Open합니다^^ 연예인 게스트 출연 확정!』
_? 11, 049명 시청
『먹방) 의진맨. 운식당 오늘은 어떤 손님이 찾아올까요?』
_? 301명 시청
당연하게도 상대가 안 된다. 원래 음식점이라는 게 사람 많은 집이 더 바글거린다. 좌석 수가 한정돼 있는 것도 아니니 방송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뺏기기도 한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력한 신인상 후보로 거론됐던 BJ 의진맨. 시청자 수가 반의반 토막이 나며 성장세가 크게 꺾인다.
본인은 방송 슬럼프까지 찾아온다.
―이도둑놈아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아니, 운식당에서 앞글자만 바꾸고 콘텐츠 따라하는 게 말이 됨? 진짜 양심이란 게 없나
“말 참 잘했어요. 그러면 먹방 창시자는 윾신 형인데 왜 따라 해요? 이 도둑놈의 새끼야!”
―ㅋㅋㅋㅋㅋㅋㅋ
―말발로 찍어 눌러버리네
―어디 하꼬 새끼가 깝치고 있어~
―유료 강퇴 갑시다ㄱㄱㄱ
보다 못한 한 팬이 따져봐도 대화가 안 통한다. 재판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것은 파프리카TV에서 보편적인 개념이다.
콘텐츠 뺏기. 시청자 수를 깡패로 삼은 공격. 하꼬 BJ들은 대기업 BJ들이 먹어치우기 손쉬운 사냥감에 불과하다.
―님들 먹방 뭐 봐야 돼요?
어떤 BJ가 맛깔나게 잘 먹죠. 혼밥할 때 심심해서 보려고 하는데 └먹방은 당연히 당연히 윾신이지 └엽기 먹방은 철꾸라지!
└요즘 김군의 쿤식당도 재밌더라
글쓴이―다 유명 BJ들이네. 역시 재밌으니까 유명한 거겠지?
파프리카TV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이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진상.
일반 시청자들은 알 도리가 없다. 겉으로는 용맹하고, 귀여운 동물들이 사실은 얼마나 잔인한지 일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눈에 띄면 잡아먹힌다.
“의진맨 그 자식 멍청하다니까?”
“그러니까 내 말이!”
“우리 크루에 온다고 했을 때 왔어야지. 뭐? 생각해 볼게요?”
그렇기에 존재하는 것이 크루. 단순히 방송의 협업과 친목 도모를 위한 단체가 아니다. 말하자면 자신을 보호해 줄 뒷배와도 같다.
파프리카TV에서 크고 싶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반드시 속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의진맨처럼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된다.
“형… 혹시 저도 그 콘텐츠 해봐도 돼요?”
“그러지 말고 쿤식당에 게스트로 한번 나와. 그러면 스토리텔링 되니까.”
“아~ 그러면 되겠네. 역시 김군 형이야!”
김군과 아이들.
파프리카TV에서 가장 강력한 크루 중 하나다. 적지 않은 BJ들이 그의 산하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스토리텔링 같은 소리 하네. 공짜로 부려먹을 거면서.’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들어가는 것도 힘들지만, 들어가서도 고생이 따른다. 그럼에도 크루의 존재성은 너무나 중요해 절실한 이들이 줄을 선다.
“그러고 보니 요즘 오정환 너무 크지 않았어?”
“맞아. 그 새끼 때문에 진짜…….”
“왜?”
“크리스마스 때 별풍선이 씨가 말랐다니까.”
그런 자신의 크루에 들어오길 거부한 한 남자. 김군은 여전히 마음속 한 구석에 담아두고 있다. 크루원들의 대화를 들으며 그 불씨가 다시 지펴지려고 한다.
‘감히 내 제안을 거부하고 독자적으로…….’
얼마 전 무려 1만 명의 시청자를 달성했다. 그 정도야 김군도 이따금 대형 콘텐츠를 진행할 때면 어렵지 않게 이룬다.
하지만 오래 걸렸다. 연예인인 자신조차 말이다. 그 이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 안 든다.
크루원들의 생각도 마찬가지. 손을 봐준다면 지금이 적기다. 판단을 마친 김군은 자신의 가장 큰 인맥에게 전화를 건다.
“예, 접니다 아버지!”
<무슨 아버지까지, 하하하.>
“저에게는 정말 아버지 같은 분이죠~ 남수길 대표님 제가 다름이 아니라…….”
파프리카TV의 사장.
김군은 남수길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수길도 공인이라 할 수 있는 개그맨 출신 BJ인 그를 중용하고 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이러면 안 되겠다 싶은 녀석이 있어서요.”
<소란이 좀 날 것 같아?>
“아, 예. 뭐 별건 아닌데 그래도 좀 말씀을 드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하꼬를 먹어치우는 거야 상관없다. 파프리카TV 운영자들도 바보가 아니기에 안다. 대형 크루가 움직이는 일이니 눈치껏 사태를 방관하고 있자.
하지만 규모가 커진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오정환은 너무 컸다. 그냥 잡아먹으면 채할 수 있을 정도다.
김군은 그 문제를 자신의 인맥으로 무마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오정환은 가만히 둬. 괜히 일 일으키지 말고.>
“…….”
들려오는 건 정색한 아버지의 엄한 꾸지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