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끼익!
택시가 멈춰 선다. 창밖으로 보이는 장소. 내 목적지인 것은 분명 틀림없다.
“4만 7천8백 원 나왔습니다~”
“3만 원만 드릴게요.”
“네에?”
조금 착오가 있던 모양이다.
택시 요금. 많이 내는 것은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140원씩 오르던데.”
“그게 시외 할증 때문에…….”
“그러면 120원일 텐데.”
“…….”
피곤한 나머지 눈을 붙이고 있다 보면 가끔 후려치려는 기사들이 있다. 자세한 요금을 알고 있기 때문에 문제는 안 된다.
“따당 하지 마세요.”
“그게 내가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삼진 아웃 제도 아시죠? 저 여기까지 요금 알고 있으니까 윈윈 합시다.”
사납금이라는 더러운 제도가 있어서 택시 기사는 일정 금액을 반드시 모아 회사에 바쳐야 한다.
그 액수가 너무 많다 보니 어떻게든 채우기 위해 양심을 어기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렇다고 그것이 내가 사정을 봐줄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안타깝긴 한데 뭐 어쩌겠어.’
나는 안 당해주거든.
당해주는 멍청이들도 꽤 있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업계 쪽 이야기다.
BJ들의 가장 대중적인 교통수단이 바로 택시다. 윗대가리들이 그러다 보니 정착이 돼버렸다.
이른바 연예인병. 돈을 펑펑 쓰는 걸 자랑으로 여긴다. 물론 나는 그걸 굉장히 멍청하고 띨빵한 짓이라고 본다.
“경비 처리해야 하니까 영수증 반드시 끊어주세요.”
“4만 7천8백 원이 나왔는데 어떻게…….”
“그건 알아서 하시구요.”
자신이 싼 똥은 자신이 처리하는 거지. 예상 요금은 항상 체크한 후에 가기 때문에 헛돈을 쓰는 일은 없다.
‘그마저도 내 돈이 아니고.’
나를 부른 사람이 있다. 그 사람 앞으로 하달을 할 것이다. 도착한 목적지에 살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저 도착했습니다.”
<예, 예! 저도 내려가고 있긴 한데 혹시 기다리시면 안내 데스크에서 친절하게 알려줄 겁니다.>
분당구 판교.
으리으리한 빌딩의 앞에 서있다. 한 번쯤 와보고는 싶었는데 그날이 오늘이 될 줄은 몰랐다.
『DONXON』
큼직하게 박힌 팻말이 이곳이 어디인지 말해준다. 돈슨코리아의 사옥이다. 지하 5층, 지상 10층 빌딩의 위압감은 실제로 보니 더욱 새롭다.
‘이게 다 급식충 유저분들의 코 묻은 현질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런 농담을 여기서 던진다면 분위기가 유쾌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농담을 던지기 위해 온 것이 아니기도 하다. 굳이 따지면 협력하는 쪽이다.
“안녕하세요. 오늘 이벤트 미팅으로 온 오정환이라고 하는데요.”
“예, 연락받았습니다. 7층에서 기다리고 계시거든요?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안내 데스크.
여직원이 정말 친절하게도 동행을 자처한다. 익숙지 않은 장소에서의 보행이 조금은 재밌어질 전망이다.
“혹시 제가 누군지 아세요?”
“게임 홍보 모델로 오셨다고 들었어요.”
“에이, 모델을 할 만큼 대단한 사람은 아니고 그냥 파프리카TV에서 BJ 하는 사람인데…….”
가는 길.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냥 별거 없는 일상적인 회화다.
“신민하?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너무 뻔한 멘트네요.”
“그게 아니라 여캠들이 가명으로 많이 쓰거든요. 예쁜 이름이 잘 먹혀서.”
“아, 그래요……?”
BJ한테는 말이다.
일반인. 그렇게 선을 긋기는 뭣하지만 정말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일이 드문 것도 사실이다.
“여캠이 그거죠? 편하게 앉아있으면 시청자들이 돈 주는 거.”
“별풍선.”
“예, 별풍선요. 사실은… 그것도 힘든 일이겠지만.”
“이런 얘기 어디 가서 하기 뭣한데, 사실 핀트가 그렇게 엇나간 이야기는 아니에요.”
사무적인 태도도 잊고 귀를 기울인다. 인터넷 썰도 아니고 진짜 BJ에게 업계 사정을 듣는다. 특히 반반한 여자들은 관심이 없을 수가 없는 내용이다.
‘여자들은 다 병을 가지고 있어.’
신데렐라 콤플렉스. 자신의 인생을 180도 바꿔줄 왕자님을 기다린다. 사전적 의미가 그렇다는 거고, 실제로는 돋보이고 싶은 심리다.
우리나라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하다. 10대, 20대 학생 때 주위에서 워낙 떠받든다. 그러다가 사회에 나가니 달라진 현실에 괴리감을 느낀다.
“그래도 그런 건 얼굴이 돼야 할 수 있는 직업이잖아요.”
“하하…….”
“뭐가 그렇게 웃겨요?”
“웬만한 여캠 뺨치는 분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
돈슨이 암만 욕을 먹어도 준대기업이다. 게임 기업 중에서만 큰 게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에서도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규모를 자랑한다.
‘그런 곳에서 얼굴로 내세우는 직원이 못생길 리가 있겠냐고.’
소위 말하는 ㅍㅅㅌㅊ는 된다는 소리다. 그리고 여캠은 ㅍㅌㅊ 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여캠, 글자 그대로 캠을 통해서 보면 달라 보이기도 한다.
“영상이면 보정도 안 될 테고 거의 본판 아니에요?”
“너무 순진하시다.”
“네?”
“다 방법이 있어요.”
그것이 진실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실에서 화장발, 사진에는 뽀샵발이 있듯 캠에도 첨단 과학 기술이 적용된다.
‘심각한 경우에는 토이치TV의 그분 같은 경우도 있고.’
그 이상도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 그렇게 남용하여 쓰는 사람은 당연히 소수다. 하지만 98%의 여캠은 쓰고 있고, 영향이 절대 작다고 보기 힘들다.
“그런 이야기를 저한테 하는 이유가 뭐예요?”
“뭘 거 같아요?”
“지금 저랑 퀴즈라도 하세요?”
자신의 얼굴이 반반하다는 사실. 모르고 사는 여자는 없다. 눈앞에 있는 신민하 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실은 영화도, 소설도, 드라마도 아니거든.’
약간 반반한 정도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드라마처럼 대기업 2세와 갑자기 부딪힐 일은 없다.
이 세상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다. 나이를 먹다 보면 깨닫게 된다. 만약 그 가능성이 있다면.
“길가에 예쁜 꽃이 있다고 줄 서서 구경하진 않잖아요.”
“뭐… 그렇겠죠.”
“근데 향기가 좋은 꽃에는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죠. 사람에게는 그것이 매력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어느샌가 발걸음도 멈춘 채 듣는다. 남자들한테는 때려죽여도 이런 이야기를 절대로 늘어놓지 않지만, 여자들한테는 제법 잘 먹히는 스토리텔링이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가 데뷔시킨 여캠이 좀 됩니다.”
“잘나가시나 봐요. 시청자가 많아요?”
“저번에 1만 명 정도 보더라고요. 물론 그때는 콘텐츠가 좀 대박을 치긴 했는데.”
눈빛이 달라진다. 잊고 살았던 꿈에 현실성이 부여된다. 물론 그것이 나이도 잊고 주책을 부린다는 건 아니다. 그저 관심이 조금 생겼을 뿐이다.
만에 하나 혹시. 세상의 모든 관계는 그렇게 시작이 된다.
“원래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딱딱하시네.”
“회사 규정이라 그래요. 비밀이에요?”
연락처.
딱히 BJ 인재를 구하기 위함은 아니다. 이곳 돈슨코리아, 아군이 될지 적군이 될지 아직 알 수 없다.
‘만나봐야 알겠지.’
어딜 가든 내 사람을 만들어두는 건 중요하다.
* * *
인터넷 방송.
그 성장세는 해가 갈수록 탄력을 받는다. 차후에는 정말 어지간한 케이블 방송 못지않은 규모로 커버린다.
그렇기에 더욱 의아한 일이다. 파프리카TV는 그 중심에 서있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대외적인 이미지는 항상 바닥이다. 지금은 물론, 5년 후에도, 10년에도 쭈욱― 그것이 인터넷 방송이 가진 한계점이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2등, 3등을 달리는 업체들은 잘만 한다.
방송사와 협업해 온갖 콘텐츠를 기획하고 다닐 정도다. 파프리카TV가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음지라는 개념에 갇혔기 때문이다.
“돈슨?”
“예, 그렇습니다.”
“돈슨 괜찮지. 홍보와 이벤트에도 적극적이고, 특히 학생층에 대한 영향력은 절대적인 수준이니까.”
분당구 판교.
파프리카TV의 본사도 이곳에 있다. 사장실에서 사장과 비서의 은밀한 대화가 오간다.
‘양지로만 진출할 수 있다면…….’
남수길 대표 이사.
그가 가진 평생 숙원이다. 케이블 방송에서 파프리카TV가 가볍게 화두가 되는 광경 말이다.
이는 사업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하다. 시장의 규모가 최소 두 자리는 달라진다. 일련의 목표를 위해 쏟아부은 투자와 노력은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안 돼. 넌 여기까지야.』
하지만 안 된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막고 있는 것처럼 파프리카TV의 양지 진출을 차단해 버린다. 마치 사회적으로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듯이 말이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겠지.”
“맞습니다. 우리 파프리카TV의 BJ가 대기업의 홍보 모델로 활동한다는 건 의미가 있는 일이죠.”
세상에는 돈만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 있다. 그 사실이 남수길로 하여금 광적인 집착을 하게 만든다.
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유망한 인재 오정환을 눈여겨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 * *
‘젠장…….’
그리고 김군. 같은 이유로 그는 남수길과 돈독한 사이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파프리카TV에서는 극히 드물게도 연예인 출신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남수길이 오정환에 대한 견제를 그만두라 했는지. 사건의 정황을 듣고 분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자식 미꾸라지 같네.”
“어떻게 못 혼내줘?”
“방법이 없지. 대표님이 건들지 말라고 했으면.”
독사처럼 간사하고 간악하다. 크루원들도 김군의 이런저런 짓을 도와왔다. 신인 BJ 하나 엿 먹이는 방법은 차고 넘치게 꿰고 있다.
“콘텐츠를 뺏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봄이? 걔는 방송도 안 하는 일반인이라며.”
“애초에 그 노가다 게임은… 절대로 하기 싫어.”
그것이 안 돼서 문제다. 오정환의 방송 콘텐츠. 단풍잎스토리라는 콘크리트가 너무 단단하다. 자신들이 그 게임을 시작한다고 뺏어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입 장벽이 높아도 너무 높다. 그렇다면 남은 수단은 본인이나 주위 사람을 공격하는 건데.
“이번만큼은 형님이 참으셔야겠는데요?”
“뭐?”
“아니, 그… 형님이 상대할 수준의 놈팡이가 아니다, 그걸 말하는 거죠~”
본격적으로 전쟁을 하려는 게 아니다. 파프리카TV가 누구의 나와바리인지, 그리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각인시켜 주려 했을 뿐이다.
‘두고 보자, 오정환.’
그 계획이 시작하기도 전에 무산됐다. 자의든, 타의든 김군은 또 마음에 담아둘 수밖에 없었다.
* * *
‘드디어 만났다, 오정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개발부 부장 장연수.
자신의 크리스마스와 이브를 뜻깊게 만들어버린 장본인을 눈앞에 두고 아무런 생각이 안 들기도 힘들다.
동시 접속자가 저조한 이유를 판명해야 했으며, 이를 광고사와 상사에게 납득까지 시켜야 했다.
흔히 말하는 흰머리가 늘었다, 주름이 세 개는 더 생긴 것 같다는 표현이 경험담이 돼버렸다.
“제가 내려가려고 했는데 괜히 엇갈릴까 봐~”
“괜찮습니다.”
“민하 씨가 안내를 잘해주셨거든요.”
“예, 뭐 일이니까…….”
“그거 다행이네요~ 민하 씨 성격이 꼼꼼해서 걱정은 안 했는데.”
일련의 사태를 일으킨 오정환. 그에 대한 원망이 없을 수가 없다. 더욱이 BJ란 직업에 대해 한참 무시를 하고 있었다.
역으로 눈치까지 보게 된 현 상황이 무척 마음에 안 든다. 때문에 연수는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고심했다. 어떻게 해야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까.
‘돈슨의 정문을 지나온 걸 후회하게 해주마.’
지나치게 불타 버린 복수심. 평소였다면 느꼈을지도 모를 묘한 공기를 알아채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