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39화 (39/846)

39화

돈슨 페스티벌

먼 발걸음.

돈슨코리아의 사옥까지 찾아가 들은 이야기는 당연 시시콜콜한 이야기일 리 없다.

“돈슨 페스티벌 아시죠? 그게 오는 30, 31일에 예정돼 있는데…….”

어지간한 게임사가 아니다. 돈슨은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대형 게임사다.

‘믿기지 않지만 정말로.’

게임성은 둘째 치고 매출만 따지면 어마어마하다. 그렇게 거대한 게임사의 대표작이 어디 한둘일까?

단풍잎스토리를 제외하고도 수많은 게임들을 서비스하고 있다. 돈슨 페스티벌은 그 모든 게임을 망라하는 행사장이다.

말하자면 블리자드의 블리즈컨과 비슷한 개념이다. 물론 급이 다른 만큼 그렇게 성대할 순 없어도.

저희 마케팅팀에서 강력하게 추진했습니다. 단풍잎스토리 부스의 홍보에 오정환 님을 섭외하면 어떠냐? 만장일치로 결정이 났죠~!!

규모도, 위상도 만만하진 않다. 돈슨에서도 가장 대표작으로 꼽히는 게임. 단풍잎스토리 부스의 홍보를 맡는다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

‘차후에야 BJ 마케팅이 보편화가 되는데.’

현재 시점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로서도 조금 놀랐을 정도다. 현재 BJ라는 직업이 가진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파격적인 결정이다.

―돈슨지옥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오오! 갓정환 단풍잎 공식 모델 된 거임?

“100개 감사합니다. 자연스러운 팬클럽 가입도 감사드리고.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한번 기회가 온 거죠.”

―기회 ㄷㄷ

―기회는 잡아야지!

―와, BJ가 게임 모델을 하다니 최초 아님?

―근데 ㄹㅇ 이건 돈슨도 선택 잘한 거야

일련의 사태.

나 혼자 꽁꽁 숨기고 있을 이유가 없다. 기쁜 소식을 방송을 통해 시청자들과 공유하고 있다.

‘기껏해야 온라인 이벤트 정도 맡길 거라 생각했거든.’

돈슨이 원래 그런 회사긴 하다. 적폐라는 이미지가 뿌리 깊게 박혀서 그렇지, 새롭고 창의적인 시도를 은근히 거리낌 없이 한다.

그걸 감안해도 이례적이다. 어중간한 것도 아니고 돈슨 최대의 연례행사에서 핵심 부스에, 핵심 중책을 맡게 된 것은 말이다.

―돈슨현질5년차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돈슨 정신 차린 거 ㅇㅈ?

“인정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돈슨 맞지

―거부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다 읍읍

―ㄹㅇㅋㅋ만 치라고!

대립하고, 대척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Win―Win.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합의점을 찾는 것도 좋은 해결책이다.

지난 카오스 라테일 사태도 그렇게 해결이 됐다. 보상은 택배로 보내주었다. 그리고 개개인에게 위로성 아이템을 증정했다.

‘같이 뛴 공대원들은 좋아 죽더라고.’

사실 나로서는 큰 상관이 없다. 무슨 달빛조각사 같은 판타지 소설 게임도 아니고. 현실의 RPG 게임은 최초 격파를 했다고 인생 역전급 득템이 나오진 않는다.

BJ로서 가장 큰 보상은 화제성. 이를 차고 넘치게 충족시켰다. 오히려 돈슨이 사고를 쳐줘서 좋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런데 그 이상의 제안이 왔다. 대규모 행사 자리에 나가면 인지도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의 가치 또한 상승한다.

―rhrlajrrhtlvdj12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단풍잎 부스 가면 정환 님 만날 수 있나요?

“저도 대략적인 일정과 스케줄만 듣긴 했는데… 팬미팅도 있다고 하니 시간 되시면 꼭 와주세요.”

인터넷 방송.

BJ는 시청자와 정말 가깝고도 멀다. 거의 맨날 만날 수 있음에도 현실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

‘물론 찾아보면 방법은 있어.’

이를테면 야외 콘텐츠의 진행 말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BJ의 입장. 시청자들로서는 항상 아쉽다.

그것이 BJ란 직업의 한계를 만드는 걸지도 모른다. 이렇듯 공적인 자리가 마련된다는 건 의미가 깊다.

―팬미팅 ㄷㄷ

―정환이 출세했누

―크~ 단풍잎스토리의 대표

―하와와 군필 여고생쨩 페스티벌 가는 거시야요!

보다 친근하게 다가간다. 낯설 수 있는 BJ란 직업 외에도 명함이 생긴다. 단풍잎스토리의 확실한 유명 인사가 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초글링이 몰려온다고 생각하면 부담스럽기도 한데.’

일류 BJ를 목표로 한다면 그런 부담감도 짊어질 줄 알아야 한다. 과거 나에게 부족했던 콘크리트층. 이번 생에서는 더할 나위 없을 예정이다.

하지만 인생사 새옹지마.

일이 잘 풀릴수록 한 번쯤 곱씹어 봐야 한다. 정말로 놓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를 말이다.

‘롤로 치면 솔킬을 딴 직후에 꼭 갱이 오는 것처럼.’

스스로는 알기가 힘들다. 아군이 미아핑을 찍어줘야만 한다. 그럴 수 있는 ‘아군’을 한 명 만들어두었다.

「정환 씨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요.」

민하 씨에게 카톡이 온다.

* * *

대한민국 3대 게임사 중 하나로 손꼽히는 돈슨. 하나 정도는 차별화되는 장점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마케팅이다.

“와~ 돈슨 신작 나왔네.”

“뭔 또 캐시템 존나 팔아먹겠지.”

“그래도 해보고 싶지 않아? 하앜하앜!”

돈슨 게임의 주 이용자인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의 학생들. 그들의 눈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것이 바로 마케팅이 가진 효과다. 돈슨 게임 중 서비스 날짜 대비 그래픽이 뛰어난 게임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렇다고 스토리가 뛰어난 게임도 없다. 원작이 있는 게임조차 스토리가 뭔지 모르겠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던전앤파이팅’ 귀검사(여) 각성 이벤트 최초 공개!」

「‘서든어텐’ 피날레 이벤트 및 김민아 캐릭터 출시」

「‘마디노기’ 눈을 뜨세요 용자여! 두근두근 아일랜드 Open!」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나간다. 그 이유는 소위 말하는 ‘뽕맛’을 이용할 줄 알기 때문이다.

게임 회사도 보통 양심이라는 게 있다. 인게임과 지나친 괴리감이 느껴지는 이미지는 쓰지 않는다.

하지만 돈슨은 거칠 것이 없고, 그것이 학생 유저들에게 직빵으로 먹힌다.

“아니 씹! 그래픽 봐.”

“X발 광고에서는 존나 예뻤는데…….”

“어차피 할 거 없잖아~ 그냥 해.”

먹음직스러운 포장지를 제조하는 능력 하나는 단연코 대한민국 최고!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는 마케팅 능력을 자랑한다. 이는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니다.

LG전자가 제품이 뛰어나도 전설적인 마케팅 능력 탓에 욕을 먹듯, X같이 만들어도 X같이 잘 팔 수 있다면 만사 오케이인 법이다.

그리고 돈슨은 트렌드를 읽는 능력도 굉장히 뛰어나다.

「게임 유저를 위한 페스티벌… 오는 30일 ‘돈슨 페스티벌’ 개막!」

「[이슈] 돈슨 초강수?! 제5회 돈슨 페스티벌 ‘특별 게스트’ 출연한다」

「[인터뷰] 돈슨코리아 김돈슨 대표曰 모두가 돈슨 게임 즐기는 세상 꿈꾼다」

이미 기사까지 띄우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돈슨 페스티벌.

돈슨이 주최하며, 돈슨이 주관하며, 돈슨이 후원까지 하는 글자 그대로 돈슨을 위한 페스티벌이다 개최 시기는 매년 12월. 올해는 월초의 사고로 인해 미뤄졌다. 숙성이 된 만큼 기대도 한층 무르익었을 뿐만 아니라.

―돈슨 정신 차렸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

―BJ 초청하는 거 실화냐고~

―믿고 있었다고 쥐엔장!

특별한 게스트들을 초청하기로 했다. 각 게임별로 유명한 인터넷 방송인, 혹은 네임드.

일반 대중들에게는 조금 낯설지 몰라도, 학생들은 환장해 마지않는다. 돈슨 게임의 주된 유저층이기도 하다.

그 화끈한 결정에 커뮤니티에서는 찬사가 쏟아진다. 지난 사태로 깎아먹은 이미지를 만회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번 기획 반응이 아주 좋아! 아이디어 낸 사람이 누구라고?”

“장연수 부장님입니다.”

“장연수, 믿고 맡기는 엘리트지. 개발부에도 한번 들러야겠구만.”

대형 행사를 눈앞에 두고 분주하다. 직접 이사급 임원이 내려와 마케팅팀을 독려한다. 불안의 먹구름이 드리웠던 연말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다?

성과급이 지급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에 가장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얼마 전 일으켰던 실책을 상회한다는 평가까지 듣고 있다.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가 되긴 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연수의 속은 가라앉지 않았다. BJ를 초청한다. 얼마 전까지 벌레보다 아래로 보았던 그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결정이다.

그런 물불을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했고, 마케팅팀의 추가 기획안이 통과되면서 스케일이 커졌다.

단풍잎스토리 뿐만 아니라 다른 게임에서도.

“섭외비도 합리적이고, 무엇보다 반응이 좋아. 행사의 품격이 떨어지는 게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 점은 각 부서에 이미 공문을 보내 해결책을 찾고 있습니다.”

“좋아, 좋아! 시키기도 전에 해놓는다는 점이 참 마음에 들어.”

보통은 연예인을 섭외한다. 혹은 여느 회사가 그러하듯 짬찌들이 하거나. 전자는 효과는 좋지만 비싸고, 후자는 사실상 구색만 갖추는 수준이다.

BJ 혹은 네임드급 유저.

평소의 중간 지점 밸런스를 잘 찾았다. 반응을 보기 위해 띄운 기사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오정환이라는 친구가 주축이 됐다지?”

“…….”

“시청자도 만 명이나 된다고 하고, 영향력도 있다면 앞으로 그 친구가 해줄 일이 많아지겠구만.”

일련의 사실은 전부 보고가 올라갔다. 당초에는 이 정도로 반응이 뜨거우리라 당연히 몰랐다.

있는 그대로 전달해야 기획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 바람에 오정환의 평가도 높아져서 문제다.

이 실험적인 기용이 성공을 한다? 차후의 단풍잎스토리에서 오정환을 빼놓기가 힘들어질 지경이 될 것이다.

‘그 꼴은 절대로 못 보지.’

성공은 해야 한다. 실패라도 하면 복수는커녕 자신의 목이 간당간당해진다. 하지만 오정환이 활개 치는 꼴도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보기 싫다.

「잘 준비하고 계시죠? 아싸비 님」

고심 끝에 짜낸 비책. 그것은 바로 맞불이다. 단풍잎스토리의 전설적인 네임드이며, 이미 수차례 이벤트 진행 경험이 있는 아싸비에게 공동으로 행사를 맡겼다.

「재촉 안 해도 알아서 해요.」

「정말 중요한 일이라서요 ㅎㅎ」

「알고 있어요.」

「아무쪼록 잘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개인적인 앙금이 남아있는 건 그녀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오프라인은 게임이 아니라는 걸 가르쳐줘야지.’

지난 카오스 라테일 사건 이후, 베르사유가 스카니아 서버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떨치는 건 옛날 일이 돼버렸다.

그뿐만 아니라 아싸비 본인의 길드 내 입지도 애매해졌다. 그 모든 원흉은 오정환이다.

직접 레이드를 뛰지 않았던 것이 화근이 됐다. 하지만 게임이 아닌 현실, 특히 이벤트는 자신의 홈 스테이지라 할 수 있다.

각자의 사정. 각자의 목적. 옳고 그르고를 떠나 페스티벌의 흥행을 위한 준비가 착착 마쳐진다.

* * *

나흘이 지난다.

2011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무대. 돈슨 페스티벌이 열리는 현장은 벌써부터 시끌벅적 북적거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여기저기 세워진 부스들은 이목을 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차디찬 아침 공기를 타파하기 부족하다.

“어, 저 사람?”

“설마…….”

“진짜 같은데? 진짜면 그것도 하나?!”

지나가던 관람객들.

한 남자를 보고 발걸음을 멈춰 선다. 게임을 좋아하는 이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목소리가 고막을 따갑게 찌른다.

<제5회 돈슨 페스티벌을 지금부터! 여러분의 뜨거운 환호! 함성과 함께 시자아아아아아아악~ 하겠습니다!!>

익숙한 외침이 진정한 막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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