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40화 (40/846)

40화

대형 행사.

당연하게도 찾아오는 이들은 나뿐만이 아니다.

‘진용준 캐스터라…….’

e스포츠계의 고조할아버지. 그 탁월한 진행 능력은 자타 공인 인정을 받는다. 그가 돈슨 페스티벌의 메인 진행자라는 사실은 특별히 놀랍지도 않다.

“저 아조씨는 목이 아프지도 않나 봐요.”

“시끄러웠어?”

“고막이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제아무리 화려한 이력과 진행 능력을 자랑하는 진용준 캐스터라 할지라도 여중생 앞에서는 한낱 아저씨에 불과하다.

봄이와 손을 잡고 행사장을 거닐고 있다.

‘원래 그래.’

처음 들을 때는 너무 오버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팬이 돼버린다.

매 시즌 e스포츠 결승전.

진용준 캐스터가 없으면 허전하다. 김치 없이 밥을 먹는 느낌이라는 나이 드신 분들이나 쓸 법한 표현이 와닿게 된다.

“오빠, 엄청 맛있는 냄새가 나요.”

“그래.”

“제 몸을 주체할 수가 없어요!”

물론 얘는 맨밥도 잘 먹을 아이다. 축제답게 먹거리도 제법 알차게 준비돼 있는 모양이다. 콧구멍 레이더가 벌렁거리며 작동하자 입가에서 침이 줄줄 흐른다.

‘한창 먹고 싶은 게 많을 나이지.’

그래서 데리고 나온 것이기도 하다. 스위스 목동들이 연한 풀이 나는 곳에 양 떼를 풀어놓듯 나는 오늘 이곳 돈슨 페스티벌에 봄이를 풀어놓을 것이다.

“길 잃지 말고.”

“안 잃어요.”

“모르는 아저씨가 맛있는 거 사준다고 따라가지 말고.”

“저 그 정도로 어린애 아니에요!”

“관계자 카드 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스태프 오빠, 언니들한테 해결해 달라 하고.”

“할인돼요?”

조금 심각히 불안하긴 한데 별일은 없을 거라 믿는다. 혹시 몰라서 한 바퀴 안내도 해줬고.

‘굳세게 살렴.’

일이 끝나는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자기 친구들이랑 약속도 있다고 하니 외로울 일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문제가 되는 건 나. 놀러 온, 먹으러 온 봄이와 달리 일이 있다. 금일 페스티벌은 적당히 즐기고 갈 생각으로는 버티지 못한다.

「단풍잎스토리 부스에」

「정환 씨 말고도 한 명 더 진행자를 섭외한 것 같아요.」

「확실한 정보예요.」

신민하 씨의 카톡.

얼마 전, 돈슨 사옥에서 연락처를 교환한 이후로 자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쏠쏠한 정보원이지.’

회사 내 모든 사람들이 드나드는 교차점이다. 업무 특성상 밀도 높은 정보는 접할 일이 없겠지만, 반대로 가벼운 정보는 귀만 기울이면 들을 수 있다.

이번 이벤트에 관련된 정보. 특히 단풍잎스토리에 대한 건 수고해서라도 부탁한다고 전했다.

그러자 아주 큰 걸 물고 왔다.

「다른 부스는 다 한 명씩 섭외한 것 보면 이상한 감이 있어요.」

「그래요?」

「그냥 제 설레발일 수도 있지만요.」

「아니에요. 무척 큰 도움이 됐어요. 고마워요.」

「정말요? 저 그럼…….」

물론 맨입은 아니다. 성격이 굉장히 야망 있어 보인다. BJ라는 직업을 꽤나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이 정도로는 턱도 없지만.’

솔직히 어렵지 않다. 여캠 하나 데뷔시키는 일 말이다. 빽이 돼준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다 방법이 있다.

하지만 아무한테나 해주는 일은 아니다. 앞으로도 한동안 수고를 해줘야 한다. 일련의 정보는 큰 도움이 됐다.

“여보세요?”

<확인차 전화드렸습니다~ 시간 아시죠?>

“예, 오후 두 시부터.”

<준비 과정도 있으니 30분 전까지는 반드시 도착해 주셔야 합니다?>

전화가 걸려왔다.

장연수 씨.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것 보면 나를 대신해 섭외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더블 캐스팅이라.’

있을 수 있는 이야기다. 단풍잎스토리 부스의 이벤트. 혼자 진행하는 게 벅차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른 부스는 안 그렇다는 것. 결정적으로 언질을 해주지도 않는 것. 이 두 가지에서 비추어볼 때 의도가 순수해 보이기 힘들다.

「다른 진행자가 누군지 알아냈어요.」

「아싸비라는 여자던데… 혹시 아시나요?」

사흘 전에 온 카톡.

신민하 씨는 캐스팅 대상이 누군지도 조사해 왔다. 나와 그럭저럭 스토리텔링이 있는 스카니아의 비선 실세 아싸비라는 분이었다.

이조차 우연일 수도 있다. 정말 몰랐어도 이상하진 않다. 그러나 이 정도로 겹치고 겹치면 킹리적 갓심이 들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운영자 양반이랑 사이가 안 좋을 일이 있었나.’

고민을 하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과한 지레짐작은 판단 착오를 불러일으킨다.

그보다는 내가 할 일을 보다 명확히 하는 것이 옳다. 단풍잎스토리 부스의 홍보와 팬 사인회.

나에게 하달된 업무들이다. 하지만 이것에 집중할 만한 상황이 도저히 아니다.

‘이대로 정직하게 이벤트에 참여해 봤자 들러리밖에 안 돼.’

이러니저러니 해도 아싸비의 인지도는 엄청나다. 10여 년 전부터 단풍잎스토리의 랭커였으며, 가이드북과 웹툰 등으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다.

온라인이면 모를까. 오프라인은 아예 팬층이 다르다. 아무리 나라도 없는 것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끼익―

일반적으로는 그렇다는 이야기다.

사흘.

그 정도 시간이면 대책을 세우기에 차고 넘친다. 가지고 나온 장비의 조립을 마친다.

‘오프라인 팬층이 없어서 문제라면.’

지금부터 만들면 될 뿐이다. 간단한 이야기다. BJ가 어째서 BJ인지 나는 아직 보여주지 않았다.

* * *

돈슨 페스티벌.

돈슨 굿즈, 팬 아트 등을 전시, 판매하고 코스튬과 돈슨 OST 콘서트가 열리는 행사이다.

♪♬♪∼♪∼♬♪♬∼♬♪∼♩♪∼♩♬♪∼

게임 OST? 그것도 외국도 아니고 국산? 우습게 볼 만도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캬~ 이건 인정이지.”

“BGM 하나는 갓게임 맞아.”

“BGM 하나만 갓게임이라 문제지, 크크큭.”

텔즈 위버.

저명한 소설을 원작으로 한 게임으로, 훌륭한 스토리텔링과 RPG 요소가 결합하여 한때는 돈슨의 대표 게임 중 하나로 손꼽혔다.

하지만 스토리 작가를 잘라버리고 알바생을 대신 앉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며 유저 수가 급감하더니, 차후에 이르러서는 어중간한 모바일 게임보다도 뒤처지는 신세다.

♪♬♪∼♪∼♬♪♬∼♬♪∼♩♪∼♩♬♪∼

그럼에도 BGM 하나는 인정받는다. 호랑이는 죽어도 가죽을 남긴다는 말처럼, 게임이 X망 해도 BGM이 미쳐 날뛴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갈리지 않는다.

그냥 틀어도 좋은 원곡이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섬세한 조율로 더더욱 빛이 난다.

그 외에도 많다. 각 게임의 대표 BGM이라 할 수 있는 곡들 말이다. 돈슨 페스티벌 콘서트장의 공연은 성황리에 이어지고 있다.

“여기는 콘서트장, 문제없다고 알림~”

한 스태프가 무전기를 입에 대고 보고를 한다. 행사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이를 현장에서 직접 확인하기 위해 파견된 것이다.

‘개꿀띠.’

일이 잘 안 되면 고되다. 여기저기 연락도 해야 하고, 관계자도 불러야 하고, 그 사람들 하나하나가 자신보다 상사고.

감정 노동 플러스 육체노동의 풀코스가 예약되지만 반대로 잘 풀리면 이것만큼 쉬운 보직이 없다.

혜연은 룰루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지금까지 확인한 곳은 전부 대성황.

앞으로도 이러한 흐름이 계속된다면 반쯤 축제를 즐기는 느낌으로 재미있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는데.

“여기는 신작 게임 부스…….”

<뭐?>

“사람이 많이 없다고 알림.”

<정확히 몇 명? 이유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말하자면 중개역. 현장에서는 이러저러 변명을 대고, 본부에서는 울지 말고 또박또박 말하라고 그러고.

그 중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정신이 혼미해질 때쯤이 되어서야 끝난다. 아직 전체 부스의 반의반도 못 돌아서 문제다.

“여기는 던전앤파이팅 부스…….”

<왜? 또 사람이 없어?>

“사람은 엄청 많은데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알림.”

<크흠!! 거긴 원래 그러니까 바로 다음으로 이동해.>

한 소리 들을 줄 알았다. 의외로 싱겁게 끝나자 혜연은 서둘러 숨이 턱턱 막히는 부스 안을 벗어난다.

‘원래 게임 페스티벌이 이러나?’

없던 선입견도 생길 만큼 임팩트 있는 광경이었다. 이제 막 20대 초반. 페스티벌의 아르바이트생으로 고용된 혜연에게는 자극이 지나쳤다.

“직원 언니 안녕하세요.”

“그래, 안녕~ 무슨 일이야?”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거 혹시 음식점 할인되는 거예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정화가 된다.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이쁘장한 여자애가 귀여운 질문을 던져온다.

“이거… 관계자 카드 아니니?”

“그렇다고 들었어요!”

“혹시 이벤트 관련해서 오…셨어요?”

페스티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여러 유명 인사들이 초청됐다. 눈앞의 아이도 그중 한 명이라면 가볍게 대해도 되는 대상이 아니다.

“이벤트가 뭐예요?”

“…혹시 아빠 카드니?”

“아빠는 아니고 오빠 카드예요! 이걸로 떡볶이 할인 가능한가요?”

“아마 안 될 거야.”

노상 음식점은 돈슨의 사유물이 아니기에 임직원 할인이 적용되는 것은 한정적이다. 시무룩해진 아이에게 자신도 모르게 떡볶이를 사준 혜연은 다음 부스로 향한다.

‘사람이 많네?’

단풍잎스토리 부스. 혜연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는 인기 게임이다. 던전앤파이팅의 선례 때문에 걱정부터 들었지만 금세 기우였다는 걸 깨닫는다.

“꺼져어!”

“즐이셈~”

“꺄르르르! 깔깔깔깔!”

파릇파릇한 초글링들이 넘쳐나고 있었으니까. 이건, 이거대로 기괴하긴 해도 딱히 실망스러운 요소는 없다.

돈슨 하면 초딩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있고, 특히 단풍잎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이다.

“수고하십니다!”

“현장 시찰 오신 거예요?”

“예… 뭐 시찰이랄 게 있나요. 저는 상황만 보고 올리고 있습니다.”

“어때 보여요?”

“사람도 엄청 많고, 호응도 엄청 좋은데요? 제가 지금까지 둘러본 부스 중에서 최고예요.”

인자한 물음에 혜연은 솔직하게 대답한다. 가뿐한 마음으로 보고를 마치고, 다음 부스로 이동하는 그녀를 보며 연수는 히죽―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당연한 결과지. 이 이벤트 준비를 누가 했는데.’

본의든 아니든 프로젝트를 추진한 게 자신이다. 가장 목 좋은 자리를 선점했음은 물론, 입지가 가진 조건도 120% 활용했다.

“다음!”

“제 이름은 세윤이고요. 영민이 바보라고도 써주세요!”

“세윤이 바보. 됐지?”

“아앙~ 그거 말고요~!”

주위에 학교가 많다. 그리고 아싸비는 급식충의 우상. 단풍잎스토리 부스에서 열린 그녀의 팬 사인회는 발 디딜 틈 없이 성화다.

오정환? 오지 않아도 이미 흥행은 보장되었다. 이것이 그가 벼르고 별러 준비한 작은 복수였다.

‘날고 기어봤자 결국 기생충이야. 너의 가치와 주제를 알고 가는 자리가 되겠지.’

인터넷에서 조금 이름이 알려졌다고 한들 현실에서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깨닫게 만들 것이다.

그 시간은 앞으로 곧이다. 녀석이 도착하는 건 두 시. 아싸비는 한 시에 불러 기나긴 줄을 세웠다. 인터넷 팬이 몇 명 찾아온다고 해봤자 이 격차를 좁힐 수는 없다.

“근데… 왜 이렇게 안 와.”

두 시가 지났다. 10분, 20분……. 처음에는 뭐라고 면박 줄지 신나는 상상을 했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자 조바심이 든다.

“여기야?”

“여기 맞는 거 같은데.”

“지금 폰으로 보고 있는데 여기 맞아! 우리가 먼저 기다리고 있자.”

그러한 와중,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처음에는 줄을 잘못 섰거나, 다른 행사를 기다리는가 했지만 그 규모가 점점 감당이 안 되게 커져 간다.

‘뭐야, 대체……?’

쫓아내야 하나?

고민하던 것도 잠시였다. 어느새 자신도 그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오정환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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