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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42화 (42/846)

42화

흔히 BJ 하면 ‘캠 앞에서 떠드는 개인 방송인’을 생각한다. 장연수가 가지고 있는 지식도 딱 그 정도였다.

그리고 이는 실제 틀린 말도 아니다. 현실 행사는 인지도도, 경력도 더 높은 아싸비가 우세할 수밖에 없다. 배팅을 했던 그의 판단도 분명 타당하지만.

‘뭐야, 저건?!’

한 가지 몰랐을 뿐이다. 오정환의 뒤를 수많은 관람객들이 따라오고 있다. 마치 피리 부는 소년처럼 줄줄이 말이다.

BJ란 직업. 입으로 떠드는 말발은 빙산의 일각이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밀어붙이고, 진행하는 과정까지가 전부―

“어디가 줄이야?”

“저쪽인 거 같은데.”

“저긴 그 아줌마 줄이잖아!”

방송이다.

몇몇 관람객은 새치기까지 하고 있다. 그렇게 서로 부둥키고 싸우면서도 목표가 명확하다.

오정환의 팬 사인회 줄. 미리 가서 선점하기 위함이다. 일부러 입구에서 떨어진 외진 곳에 자리를 잡아뒀음에도 인산인해를 이룬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바로 일 시작할게요.”

“벌써 30분…….”

“벌써 30분이나 줄 섰다고요? 빠르게 빠르게 할 테니까 통제 좀 부탁드릴게요.”

30분이 왔는지는 몰라도, 30분이나 지각해 버린 건 사실이다.

어느새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사인을 시작하는 오정환을 눈앞에 두고도 연수는 턱밑까지 차오른 말을 내뱉지 못한다.

‘X발…….’

현장이 엄청나게 북적인다. 그것도 어른, 아이가 한데 뒤섞여서 말이다. 서둘러 통제하지 않는다면 사고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울며 겨자 먹기.

지각에 대해 질책을 할 여유조차 없다. 관람객들의 질서 유지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가 아니긴 한데… 왜 그러니?”

“여기 떡볶이 엄청 맛있어요!”

“그, 그래?”

중학생쯤 돼 보이는 이쁘장한 여자애가 말을 걸어온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는 안 되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대를 하게 된다.

“감칠맛이 대단했어요. 비결이 뭘까요?”

“미원 아닐까?”

“그런 걸까요…….”

“아, 아닐 거야! 수익성 높은 체인점들과 계약을 했고 다 평판도 좋은 곳이니까 내가 뭔 소리 하는 건지, 참.”

큼지막한 눈으로 똘망똘망 바라보니 뭐라고 말을 안 할 수도 없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상황이 또다시 급변해 있다. 사람의 수도, 그 치우침도.

“뭔데 저렇게 많이 서?”

“다 어른들만 있네.”

“나도 저기 서야징~”

“꺼져어! 내가 먼저임!”

초딩들.

줏대가 있을 나이와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걸 전혀 모르는 나이도 아니다.

자기들 주위에는 비슷한 또래들밖에 없다. 그런데 바로 옆에는 형들도 있고, 어른들도 있고, 예쁜 누나들도 있다. 사랑은 움직이는 법이다.

“오정환이 누구임?”

“헐~ 그것도 모르셈~?”

“오정환이 대세잖아.”

“아싸비는 퇴물인 거 인정하는 부분이죠~”

“인정합니다.”

“엌 키키킼! 인정하는 부분인 각 인정?”

금세 아싸비의 줄 상당수가 반대쪽으로 이동한다. 그 여파가 상공에서 본다면 명확할 테지만 어림짐작으로도 티가 난다.

‘젠장…….’

지금 이 이벤트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파악하지 못할 만큼 장연수는 어리석지 않다. 알고 있기에 더더욱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오정환이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걸까? 자신은 왜 얌전히 줄 정리를 해야 할까? 완벽한 계획이 무산된 억울함까지 사무친다.

‘이렇게 된 이상 지각을 사유로 뭐라도.’

꼬장이라도 부려야 직성이 풀리겠다. 아니, 불이익을 줄 만한 정당한 사유다. 계약서에도 명시돼 있을 테니 명분도 충분하다.

이벤트 취소. 위약금. 기타 여러 가지 제재 방안에 대해 머리를 굴리려던 찰나.

“네?”

<오정환 당장 내보내!>

“아! 안 그래도 지금 제 선에서 처리를 하려고…….”

전화가 걸려온다. 그것도 상당히 윗선. 이미 보고가 들어가 처리되고 있구나! 회심의 미소를 지었던 것도 잠깐이었다.

<그래? 그럼 빨리 써든어텐 부스부터 돌려.>

“네? 갑자기 무슨…….”

<아니, 말귀를 왜 이렇게 못 알아먹어? 답답해 죽겠네. 당사자 바꿔!>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으니까.

* * *

나는 돈슨을 싫어하지 않는다.

‘돈도 싫어하지 않아.’

딱히 자본주의의 노예가 된 게 아니다. 정말이다. 돈슨이 X랄만 한다는 이미지가 있고 실제로도 맞지만, 다른 대형 게임사들을 보면 선녀 효과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보니 선녀 같다! X랄을 하되, 상당히 다채롭게 한다.

한 게임만 20년째 우려먹고 린저씨 등골까지 쪽쪽 빨아먹는 어떤 게임사와 달리, 빨아낸 돈으로 공격적인 투자를 서슴지 않는다.

“아~ 네, 네. 듣고 있습니다.”

<저희가 단풍잎스토리 이벤트 홍보로 초청드린 게 맞는데 지금 진행하시는 방송의 반응이 너무 좋다 보니까…….>

돈슨 페스티벌.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아보는 콘텐츠를 진행했다. 하지만 시간문제도 있고, 따라오는 사람도 많다 보니 절반에서 멈췄다.

그것을 다시 해달라고 한다. 단풍잎스토리 부스보다 우선시해서 말이다. 그럴 만도 한 게 나조차 상정하지 못할 만큼 반응이 뜨거웠다.

‘원래 군중 심리라는 게 그렇긴 해.’

야외 방송을 한두 번 진행해 봤을까? 비슷한 인기, 똑같은 장소라 할지라도 그때그때 반응이 다르다.

처음엔 나도 왜 그러지 싶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군중 심리다. 유명해서 유명하다는 말을 실제로 경험하고 느껴보았다.

“그럼 제가 단풍잎 부스 진행을 여기까지만 하고 다른 곳을 돌아달라는 소리죠?”

<예! 그래 주시면 감사할 것 같거든요?>

“근데 그러면… 저는 초과 근무를 하는 셈인데.”

실제 연예인들도 많이 하는 경험이다.

와! 연예인이다! 갑자기 소란이 일어나 사인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 중 대다수는 사실 잘 모른다.

팬도 아니고, 심지어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유명하다고 하니까 사인부터 받는 것이다. 내가 진행한 방송의 흐름도 큰 틀에서 마찬가지라는 이야기다.

“제가 돈 때문에 이러는 건 아닌데 그래도 추가 수당 같은 건 나오겠죠?”

<당연하죠! 믿고 해주시면 저희도 그 믿음에 보답을 드릴 테니까…….>

솔직하게 거품이 생긴다. 그 거품을 만드는 방법을 난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당당하게 야방을 진행하는 것은 물론, 여성 팬들의 호응이 있을 때 최대치로 살아난다.

‘근데 그것도 인기야.’

연예인 인기가 거품이라고 안 하잖아? 마찬가지로 이슈가 되고, 영향력이 있다면 그것도 곧 인기다.

행사장을 방송 무대로 삼은 건 문제의 소지도 있기 때문에 흔쾌히 받아들인다. 서로 간에 Win―Win이다.

나는 돈도 받고, 콘텐츠도 생기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을 수락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써든어텐 부스에 도착했습니다.”

“이이잉~ 앗살라말라이쿰~!”

―오 파키맨이네

―대체 무슨 뜻이지?

―알라! 알라! 알라! 알라!

―알라! 알라! 알라! 알라!

BJ 파키맨.

수많은 광적인 신도를 거느린 BJ다. 신묘하길 넘어 기묘할 정도의 사격 능력으로 써든어텐의 최상위 랭커로 군림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파키맨 님을 보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거든요? 사실… 아시잖아요. 핵 쓰는 거 아니냐? 너무 잘하다 보니까 그런 이야기도 나오더라고요.”

“Fuck You Man.”

이를 현장에서 목도한다. 그의 사격률을 볼 수 있는 이벤트. 10m 밖에 둔 현실 표적물을 조잡한 장난감 총으로 전부 쏘아 쓰러뜨린다.

“오마에와 모오 신데이루!!”

“와, 이게 K2처럼 맞히기 쉬운 총이 아닌데 대박이네요.”

―K2ㅋㅋㅋㅋㅋㅋㅋㅋ

―실전이었으면 죽은 겨…….

―당연하지 AK―47을 쏘고 다녔는데

―나니 마렵네

기괴한 소리와 함께 말이다. 밀고 있는 유행어라고 한다. 킬각을 미리 예고하며, 때로는 상대의 단말마를 대신해서 외치는 섬뜩한 콘셉트를 잡고 있다.

“결국 다 맞히셨어요. 혹시 총을 잘 쏘는 비결을 들을 수 있을까요?”

“나에게 서든은 살인이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서든=살인

―각오가 남다르네 ㄷㄷ

―역시 실전 경험은 못 속이지!

파키맨은 실제 파키스탄 국적의 사람이다. 살벌한 분쟁 지역에서 길러낸 실전 감각은 평화에 젖은 일반인들과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굉장하네.’

현재 한국의 №. 1써든어텐 랭커일 만도 하다. 표적을 전부 쏘아 맞히며, 자신이 어째서 프로페셔널인지 증명한다.

덕분에 써든어텐 부스의 시청자 반응은 매우 좋았다.

“일부는 시즈가 됐고 일부는 퉁퉁퉁퉁! 해주실 수 있을까요?”

“해줄 수는 있는데 뭐 그런 걸…….”

“팬분들이 너무 원하고 계셔서!”

“음~ 이걸로 시청자들이 보고 있는 거야?”

그리고 다음 부스로 지나가던 길, 반가운 얼굴을 만난다. 진용준 캐스터. 모르는 e스포츠팬이 있다면 간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현재는 물론 차후에도.’

스타크래프트뿐만 아니라 롤판에서도 쭉 왕성히 활동하신다. 그 스타크래프트의 유행어. 하지만 내가 듣고 싶은 건 LoL 쪽이다.

“혹시 땡기여도 해주실 수 있나요?”

“땡기여~!! 어? 신기하네. 해본 적이 없는데…….”

―땡기여는 뭐야ㅋㅋ

―설마 블츠 땡기는 거 말하는 거 아님?

―뭐야 그 듣보겜은

―롤 같은 동접 134명 ㅈ망겜 얘기를 왜 해. 그걸 누가 한다고

물론 시청자들의 취향은 다를 수도 있다. 그냥 내가 듣고 싶었을 뿐이다. 겜돌이계의 대선배이신 진용준 캐스터와의 인터뷰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보라) 오정환. 첫 야외방송) 돈슨 페스티벌 왔습니다! (Feat. 진용준 캐스터)」

? 본방: 710 (PC: 304/ MOBILE: 406)

? 중계방: 5, 711

? 누적 시청자 수: 37, 892

어느새 시청자 수가 5천 명을 아득히 돌파했다. 방송을 시작한 지 다섯 시간 가까이 되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일 정도로 텐션이 고공행진을 밟고 있다.

“이것으로 마지막 부스까지 전부 돌았습니다. 여고생팬들도 만나고, e스포츠 레전설 진용준 캐스터도 만나고… 정말 흔히 하기 힘든 뜻깊은 시간 보냈네요. 함께해 주신 시청자분들 재밌는 시간 되셨나요?”

―ㄹㅇㅋㅋ

―대박이었다

―오늘 방송 씹레전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X발 방금 왔는데!

하지만 모든 일에는 항상 끝이 있다. 전문 용어로 방종각. 방송도 오래했고, 몸도 슬슬 피로하고.

‘무엇보다 더 할 것도 없고.’

금일 방송의 주 콘텐츠는 바로 각 게임 부스를 돌아보는 것이다. 회사 측의 부탁을 받아 듣도 보도 못한 신작 게임까지 가봤다.

그것이 끝났다. 더 갈 만한 곳이 한 곳도 없다. 억지로 이어나가면 텐션만 죽는 만큼 여기까지가 적절한데.

벨소리―「우리 함께했던 날들~ 그 기억들만 남아~♬」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불과 몇 시간 전에 받았던 그 사람이다. 수고 인사 정도로 생각했던 통화 내용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아… 그러니까 야근이 추가되었다는 소리네요?”

<저희가 돈슨의 밤이라고 야간 행사와 콘서트를 진행하는데 수고하시는 김에 헤헤… 부탁드리겠습니다.>

―오

―어림도 없지 야근 500배!

―용준좌 만난 게 복선이었어?

―가지 마. 가지 마~ 가지 마~♪

해가 저물며 각 게임의 부스들은 예정된 이벤트를 마친다. 하지만 그것이 돈슨 페스티벌의 폐막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모름지기 축제는 어둡고 컴컴한 밤이 될수록 더 타오르는 법이다. 주요 행사가 야간에 예정돼 있다.

그것까지 전부 방송으로 간접적인 중계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여기까지 이미 해버린 이상 거절을 하기도 참 난감한 상황이다.

‘용준 해버렸네.’

아무래도 과학은 거스를 수 없는 모양이다.

#용준한다_알 수 없는 신묘한 힘으로 일정이 연장되는 현상을 뜻하는 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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