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44화 (44/846)

44화

인터넷 개인 방송.

BJ로서 경력을 이어가다 보면 반드시 한 번은 찾아온다.

―철빡이74호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왜 보라 안 함? 보라 하면 크게 될 재능인데ㅋㅋㅋㅋ

“100개 팬 가입 감사합니다. 근데 이게 벌써 열 번째 중복 질문이에요. 방송 경력 익으면 어련히 시도해 보겠습니다.”

―정환이 방송한 지 세 달도 안 됨

―뭐 어때? 잘하는데

―방송은 재능이지~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지. 답답하네;;

천운. 마치 그렇게 느껴지는 기회 말이다. 뜻하지 않게 콘텐츠가 흥하면서, 시청자가 몰리고, 자신이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기라…….’

일을 크게 벌이면 잘될 것 같다. 민심도 지지해 주니 자신감이 무럭무럭 샘솟는다. 그것이 딱히 틀리다는 건 아니지만, 내가 BJ 생활을 하며 알게 된 것은.

“제가 돈슨 페스티벌에서 행사를 진행한 게 호응도 좋았고, 이슈도 되고, 돈슨 측에서도 다음에도 꼭 함께하자고… 아 이건 말을 안 했었나?”

―ㄹㅇ?

―은근슬쩍 폭탄 터트리네

―이런 새끼가 왜 보라를 안 하냐고ㅋㅋㅋㅋㅋㅋㅋ

―큰물에서 놀아야 많이 벌지 답답해 뒤지겄네~

그 어느 것도 정답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 번쯤 생각을 해봐야 한다. 큰물에서 노는 것이 과연 자신한테 맞는 건지.

‘단물과 이슈만 쪽쪽 빼먹히고 버림을 받는 경우도 많거든.’

캐릭터성이 소모돼서 재기가 힘들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큰물의 메리트만 생각하고, 리스크를 생각 안 했기에 빚어지는 참사다.

그럼 뭐 다시 하던 일 하면 되지. 세상 일이라는 게 그리 형편 좋을 리 없다. 큰물에 가서 논다는 것은 지금까지 놀던 작은 물에서 벗어난다는 뜻이기도 하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카쿰을 물리친 원정대여! 그대들이 진정한 설원의 수호자다!』

단풍잎스토리.

이제는 콘크리트 격 팬덤까지 보유한 내 방송의 주 콘텐츠다. 밥 먹고 하는 일이 게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자리 잡았다.

“두 번째 카쿰도 가볍게 격파했네요. 화력이 전보다 상승한 덕분에 50분 컷까지 나오는데요?”

―카오스 라테일의 목걸이가 개사기긴 함ㅋㅋ

―그래서 보라는 안 해요?

―여중생은…….

―정환이 원래 단풍잎BJ야 유입 새끼들아 ㅡㅡ

솔로랭크 돌리는 느낌으로 레이드를 돈다.

대형 보스 몬스터인 카쿰을 홀로 잡는 위엄을 실시간 송출하는 것으로 시청자 반응이 참 좋다.

―메이플초보 님, 별풍선 30개 감사합니다!

나나나나나나

―방학안에3차 님, 별풍선 50개 감사합니다!

띱!

―인생목표자투 님, 별풍선 30개 감사합니다!

올ㅋ ㄳ

이렇듯 쓰러뜨리자 주르륵―! 뜬다

주르륵 말이다. 별풍선 개수가 많고, 적고를 떠나 방송 분위기를 쉽게 살릴 수 있다.

보라 판으로 간다는 건 이 안정화된 텃밭을 버린다는 이야기다. RPG 게임이라는 게 해본 사람들은 알지만 설렁설렁 병행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비교를 하면 자영업 VS 공기업 같은 느낌이지.’

엄밀히 따지면 겜비도 자영업이긴 한데, 그래도 콘크리트층까지 생성될 정도면 나름 안정적이다.

BJ든 작가든 크리에이터든 나처럼 불안정한 분야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꿈만 같은 것이다.

그것을 이뤘다. 과거의 나에게는 없었던 것을 말이다. 그 가치를 알기에 더더욱 쉽게 저버리기 힘들다.

―간장마시는철꾸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보라 어려우면 팁 줌? 그냥 여캠 초대해서 노가리 까면 됨. 그 여중생팬 같은 애들 초대해도 되고 ㅇㄱㄹㅇ

“아 보라 아시는구나~! 근데 여기는 게임 방송이니까 보라 방송 가서 얘기해 주세요.”

―와 보라!

―진.짜.겁.나.어.렵.습.니. 다

―정환이 샌즈도 아누

―근데 진짜 걔네랑 하면 재밌을 거 같다ㅋㅋㅋ

방법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큰물에서 놀았을 때 얻을 수 있는 메리트도, 보라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빠삭하게 안다고 자부한다.

그런 만큼 당연히 있다. 보라 판에 뛰어들어 성공할 자신 말이다. BJ 업계가 정치판이고 나발이고 간에 내가 그 정도도 안 되진 않는다.

―오정환의심복 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보라면 그 이상한 놈이 간장으로 샤워하는 곳이잖아ㅡㅡ 정환이 그런데 끌어들이지 마라

“100개 감사합니다. 저도 그 이야기는 들었는데 과장된 측면도 있으니까 너무 선입견 가지고 바라보면 다른 BJ분들께 실례예요.”

―봐봐. 정환이도 마음 있다니까?

―있긴 십랔ㅋㅋ 철빡이 새끼들 X랄할까 봐 그러는 거지 ―미친놈들 왜캐 많냐 ―보라 판은 미치지 않으면 못 살아남는다^^ 한가하게 게임만 하니까 모르지ㅉㅉ

하지만 의미가 있을까?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몸에 피칠갑을 한 채 홀로 살아남아 봤자 그건 복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건 또 다른 철꾸라지, 김군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순간 나답지 않게 오디오가 멈췄다.

“오늘은 방송이 어수선하고 다른 BJ분들 언급도 많이 나와서 여기까지 할게요. 이러다가 싸움 날 거 같아서. 라테일요? 라테일은 방송 끄고 잡든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분탕 새끼들 ㅡㅡ

―내 하루의 낙을 이렇게

―그래, 차라리 그게 낫다

―한동안 어그로 좀 끌릴 듯ㅋㅋ

사실 회귀 전의 나는 굉장히 고독했다. 방송을 협업하는 크루가 없다,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그냥 메말랐다.

‘계기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인생의 목표가 사라졌다.

그 어떤 것을 이루고, 설사 대단한 사람이 되어도 나는 만족하지 못한다.

싱숭생숭한 머릿속. 다음 단계로 갈 기반이 잡히고, 목표에 가까워지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방송을 종료하고 붕― 떠버린 마음을 다 잡아볼 생각이었는데.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이 시간에 대체 누구인지?

헝클어진 머리를 넘기고, 복장을 대강 점검하고 현관문을 열어젖히자.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봄이.

최근 콘셉트를 한 소절 뽑는 것으로 바꿨지만 어림도 없는 짓이다.

“봄이가 왔구나.”

“꾸웨엑……. 너무 아파요.”

싱그러운 봄 향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흔히 시즌 행사나 화장품 등에서 널리 쓰는 표현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진짜로 봄이의 향기라는 점이다.

“왜 올 때마다 자꾸 물어뜯는 거예요!”

“귀여워서 그래.”

“그런 거예요?”

귀여워서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정말로 귀엽다. 봄이가 최근 인터넷상에서 괜히 이슈가 되는 게 아니다.

‘물론 진짜 깨무는 걸 전제로 만든 속담은 아니긴 할 텐데.’

그냥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인생 뭐 별거 있나. 하고 싶은 거 마음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게 제일 좋지.

“저 오늘 떡볶이 먹고 싶은 기분이에요!”

“그래, 떡볶이 사줄게.”

“진짜요? 진짜 진짜요? 저 치즈까지 추가해도 되는 거예요?!”

“그래.”

우리 봄이처럼 말이다. 잔뜩 흥분했는지 콧구멍을 벌렁벌렁댄다. 가끔 정도면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먹거리인 데다 오늘은 특별하다.

‘발연기긴 해도 결과가 좋았어.’

돈슨 페스티벌. 딱히 계획을 세우고 저지른 건 아니었다. 내 스토리텔링 스타일 자체가 상당히 즉흥적이다.

친구를 데리고 온대. 그 친구들은 분명 이쁘겠지.

방송에 한번 출연시키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때는 갑자기 일이 잡혀서 못 봤는데. 언제 한번 밥 사줄 테니 나오라 그래.”

“떡볶이요?”

“친구들도 떡볶이에 환장해?”

“저 정도로 환장하진 않아요~”

이러니저러니 수고를 끼쳤다. 물론 본인들이 한다고 했고, 방송 이후에 쏟아지는 반응도 좋아한다고 들었다.

‘요즘 애들이 원래 그래.’

특히 이쁜 애들은 자존감이 높아서 눈에 띄는 걸 즐긴다. 반대의 타입도 있지만, 거절을 했다면 출연시키지 않았을 테니 문제없다.

“그치만 싫어요.”

“왜?”

“그냥 싫어요.”

“오빠가 카드 줄 테니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을래?”

“그럴게요.”

“그래. 한 몇십만 원 써도 되니까 가격 신경 쓰지 말고 밥 먹고 쇼핑도 해.”

사실 몇십만 원이면 적자의 영역이다. 돈슨에서 받은 출연료와 그날 받은 별풍선을 합하면 상회하지만 방송 분량을 생각했을 때 말이다.

‘평소에 고마운 것도 있고.’

적적하다. 개인 방송이라는 게 딴 건 둘째 치고 외로움이 정말 큰 적이다.

BJ들끼리 어울리는 이유도 그렇고, 돈을 뿌리고 다니는 것도, 가끔씩 사고를 치는 이유까지 대부분 외로움에서 기인한다.

봄이가 와주는 덕에 엇나갈 일이 없다. 방송의 흥행이 생각보다 빠른 것도 그래서일지 모른다. 이 자그마한 행운의 요정은 어느새 각별한 존재가 되었다.

“근데 있잖아요.”

“없는데?”

“있어요! 저번에요. 거기 갔을 때요~”

거기. 돈슨 페스티벌. 아무래도 관람 목적으로 간 게 아니다.

‘방송 목적, 그것도 출연료를 받고 섭외된 것이지.’

그런 만큼 평소와는 다름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기합을 빡세게 넣고 갔다. 특히 외적인 치장 말이다.

연예인이 그러하듯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BJ도 결국 자신을 모델로 먹고사는 직업이다. 자신에 대해 투자를 하고, 꾸미는 것은 자연스럽다.

“평소에는 안 하잖아요.”

“안 하지.”

“친구들이 오빠 엄청 잘생긴 줄 알잖아요!”

“지금은 못생겼어?”

“제 입으로는 말을 못 해요.”

“이 자식이?”

“꾸웩…….”

물론 의아할 수 있는 일이다. 남자 BJ 중에 화장을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있다고 해도 뷰티 쪽 콘텐츠를 하는 극소수의 이들이겠지.

‘내가 화장을 잘하게 된 이유라…….’

스스로 생각해 봐도 특이하다. 어느 정도면 몰라도 어? 싶을 정도로 꽤 빠삭하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달라 보인다 싶을 정도까지 꾸밀 줄 안다.

그렇다고 대단히 특별한 변신도 아니다. 결국 본판 불변의 법칙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고작해야 이런 꼬맹s들의 환심을 사는 수준이다.

“저 충격이었어요.”

“뭐가.”

“오빠가 어째서 저보다 화장을 잘하는 거예요.”

“너가 바르는 건 BB크림밖에 없지 않아?”

“우씨! 아니에요.”

고작해야 올리브영 마일리지가 1, 000Point를 돌파한 정도겠지. 봄이도 그렇고, 그 친구들도 그렇고 내 눈에는 한없이 미숙하다.

‘남자가 하고 싶지 않은 걸 잘해지게 된 경우는 직업이 아니고서야 단 하나뿐이긴 한데.’

여하튼 마음속 정리가 된 것 같다. 봄이의 머리를 씹으니 싱숭생숭했던 머리가 가라앉는다.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때 비로소 마음의 평화가 찾아온다.

그렇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뭘까? 그 대답이 떠올랐다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다.

* * *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

흔히 사막이나 풀이 듬성듬성 나있는 초원 지대, 그러니까 윈도우 바탕화면으로 많이 쓰는 그 그림 같은 곳을 그리 부를 것이다.

‘이 정도는 아니지.’

정말 아무것도 없다. 나무나 호수는 물론, 풀이나 모래까지 전부 말이다.

그렇다고 새하얀 것도 아니고 뭐라 표현을 할 수 없는 게 내 시각 신경이 맛이 갔다는 느낌이다.

“오빠.”

그런 알 수 없는 장소 한가운데에 봄이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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