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45화 (45/846)

45화

“오빠.”

기괴한 광경. 기괴한 장소 한가운데 봄이가 있다. 얼핏 겁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무해한 생물이다.

성큼 발걸음을 내디딘다. 봄이의 앞까지 걸어가 선다. 그리고 내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취한 행동은.

아그작!

머리를 깨무는 것이다. 겉은 바삭하며 속은 촉촉하다. 평소와 다를 거 없는 식감이지만 무언가 흘러나온다.

“오늘은 딸기 맛이에요.”

“그래.”

마치 호빵맨처럼 두개골의 일부가 뜯어진다. 그 틈에서 철철 흐르는 빨간 액체는 익숙한 맛이었다.

“꿈이구나.”

“꿈인 거예요.”

꿈이라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다. 그로테스크한 광경도 몽상의 세계에서는 용납된다.

“맛있네.”

“꾸웨엑…….”

한 입 더 아삭 베어 물어 밸런스를 맞춘다. 어린 시절 투니버스에서 별생각 없이 보았던 호빵맨에 대해 고찰의 시간을 가진다.

‘너의 몸을 희생해 나의 배를 부르게 해주었구나.’

호빵맨이 전하고 싶던 진실이 무엇인지. 지금에 와서는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더 먹으면 듀라한이 돼버릴 것 같아서 입을 떼었다.

“봄이 찹쌀떡.”

“찹쌀떡!”

한 입만 더 먹고. 탄력 있게 늘어나는 볼따구니가 꽤나 간단히 떨어져 나온다. 꿈에서는 통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미각에 한해서는 정상 작동하는지 쫀득하고 달콤한 식감이 입 안 가득 머문다.

“그런데 봄이 왜 여깄어?”

“왜 여깄을까요?”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자 뚫린 구멍을 따라 딸기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혹시 얘가 뇌수가 부족해서 맹꽁이를 닮았나.

그런 고민을 하기엔 이곳은 꿈이다.

‘그것도 내 꿈.’

재생이 되지 않는 신체 구조상 진짜로 먹지 못했던 게 한이 되어서 이런 개꿈을 꾸게 된 걸까?

그렇게 넘기기에는 최근 나는 고민이 많았다. 꿈보다 해몽. 지금 상황도 분명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렝게티 초원의 톰슨가젤처럼 똘망똘망한 눈망울을 바라보고 있자.

“거긴 식용이 아니에요.”

“그래?”

꿈이어도 모든 것이 다 되진 않는 모양이다. 어디까지나 상식선의 이야기. 내 머릿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한도 내였다.

그렇다. 나는 이 녀석으로 무엇을 하고 싶을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이 꿈을 꾸게 된 걸지도 모른다.

‘이따다끼마스.’

샅샅이 알아볼 시간이다.

* * *

인터넷 방송은 매년 급속한 성장세를 이어간다. 2011년에서 2012년으로 넘어가는 현재도 변화의 씨앗이 싹 트고 있다.

―[안내] 파프리카TV 1월 베스트 BJ 선발

안녕하세요.

파프리카TV의 스타! 베스트 BJ 담당자입니다.

2012년 첫 베스트 BJ를 선발하여 안내드립니다.

★보이는 라디오 *

뿌잉(vxcvd)

프제a(tlqkf)

연예인21호(park7755)

여신캠(flals9592)

오정환(ojh6974)

★게임

래퍼드ㅋ(Killingbegin)

해물파전(goanf159)

꿀템은뒤졌다(rkssktorl)

민족의 대명절 설날을 앞두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스타BJ 승격 심사.

매월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발표한다. 이는 시청자와 BJ를 막론하고 파프리카TV의 주된 관심사다.

별풍선 환전 우대, 본방 시청 인원 확장, 방송 화질 지원, 방송 리스트 상단 노출 등 온갖 특혜가 따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까리하다. 어디 가서 BJ를 한다고 말하기에 부끄럽지 않아진다. 경쟁이 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과연 이번에는 승격을 할 수 있을지. 매달 초의 발표를 손꼽아 기다리는 것도 당연하지만.

―오! 이번 달 베비 13명이나 승격했네

신년맞이 기념인가? 올해는 신인 BJ들이 팍팍 치고 올라가면 좋겠다 └그럴 리가 └보라 쪽 베비 전부 대기업 똥받이인 거 보면 모름?

글쓴이―X발ㅋㅋ

└라인 안 타면 베비 다는 데 한 세월이야…….

그것은 표면상의 이야기다. BJ 본인, 혹은 그 팬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베스트 BJ의 등용문은 언제나 바늘구멍이다.

정정당당한 경쟁으로는 올라가는 것이 매우 힘들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한국 사회의 뒷면에서 쉽게 해답지를 찾을 수 있다.

“형님 저 프제입니다. 베비 달았습니다!”

<내가 말해뒀는데 당연하지.>

“평생 충성 맹세하겠습니다, 헤헤…….”

바로 낙하산.

영향력 있는 BJ가 밀어준다. 대기업쯤 되면 파프리카TV 측에도 영향력을 끼친다.

운영자와 알고 지내는 덕분이다. 우리 누구누구 슬슬 베비 달아야 하지 않아? 아, 그렇습니까? 그럼 제가 최대한 알아보겠습니다 하는 식으로.

“어, 나야. 프제가 감사 인사 좀 전해 달라더라고.”

<형님 부탁인데 당연하죠~>

“축하 파티라도 해야겠어. 언제 한번 봐야지?”

<알겠습니다. 근데 그러고 보니 어제 방송 재밌게 봤는데 말입니다…….>

심지어는 사적인 친분이나 팬심이 반영된 경우도 적지 않다. 운영자가 하는 일의 9할이 BJ 관리와 모니터링이다 보니 일반 시청자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이 BJ 방송 재밌네? 그런데 내가 운영자네? 권한이 있으면 이용해 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심리다.

―헐 오정환 베비 달았네

얘도 어디 크루 소속됐나? 방송 시작한 지 반년도 안 된 놈이 어떻게 ㄷㄷ└누구 똥꼬 빠나 보지 뭐 └요즘 인맥 없이 베비 다는 게 가능은 함?

└한 2년 ㅈ뱅이 구르면 씹거눙ㅋㅋ

└걔 크루 없지 않나

시청자들도 바보가 아니다. BJ들도 그리 철두철미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고인물 시청자들은 다 눈치를 챈다.

그런 이들이 모인 커뮤니티가 있기도 하다. 개인 방송 갤러리. BJ들에게 과몰입 증상을 보이는 이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오정환 베비 승격이 대단할 수밖에 없는. EU

1. 방송 시작한 지 4개월 차

2. 대기업 BJ랑 엮인 적 X

3. 최고 시청자 만 명 찍음

└시청자는 다른 보라BJ들도 많은데?

글쓴이―몰아주기로 빨대 꽂은 것도 시청자로 침? ㅋ

└엥? 얘 진짜 생신인이었어?

└어떻게 혼자 저런 성장이 가능하지 대단하네…….

BJ의 행적을 장본인들보다 더 자세하게 알 정도다. 최근 뜨고 있는 신인 오정환.

그에 대한 스토리도 집단 지성에 의해 정리가 된다. 사이트 특성상 보라 BJ를 추종한다.

하지만 오정환의 행적이 워낙 기가 막히다. 베스트 BJ 승격을 도화선으로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갠방갤 공식) 오정환이 칠무해에 올라섰음을 선언합니다!

누구는 간장 마시고

누구는 우유통 주무르고

누구는 연예인 코스프레할 때

홀로 도도하게 왕좌를 향해 올라가는 그 이름…….

갓 정 환!

└우유통은 인정해야 하지 않음?

└보통 신인이 아님ㅋㅋ

└파프리카 대통령 먹을 소질이 보인다

└벌써 칠무해? 그건 이르지 않나

파프리카TV BJ계의 서열 명칭.

시청자들이 임의로 나눈 비공식이다. 시청자 수와 영향력, 그리고 콘텐츠 창의력을 기준으로 본다.

시청자 수는 물이 올랐다. 영향력은 파프리카TV를 넘어서고 있다. 콘텐츠 창의력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다.

―오정환 요즘 보라 간 보고 있는 거 맞음ㅋㅋㅋ

끼는 ㅈㄴ 충만한데

이 새끼 크루 들어가는 순간 미쳐 날뛰는 거 확정이야 └솔직히 탐내는 크루 개많다 ㅇㅈ?

글쓴이―코건 맞지ㅋ

└오정환 보라… 기대된다!

└근본도 없는 놈을 칠무해로 밀다니 ㅈ망갤 다 됐네 ㅉㅉ

그렇기에 항상 알력 싸움이 오간다. 유명해서 유명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어, 얘가 대세라고? 어, 얘는 퇴물이야?

순위표는 최근의 트렌드를 한눈에 알아보기 편하다. 상위권 BJ들은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민심이라는 이름의 여론전을 물밑 지원까지 하며.

―?: 니가 새로운 칠무해라고?

[좀비 병사 없는 겟코 모리아 처맞는 짤. jpg]

단풍잎스토리? 크루도 없어? 우. 습. 구. 나!

└겜비 새끼 기웃거리다 처맞았누ㅋㅋㅋㅋ

└ㄹㅇ 급이 다른데

└최소 퀘이급은 돼야 칠무해지~

└뭐지? 뭔데 갑자기 추천 50개가 다다닥 박힘?

자신의 팬덤, 혹은 엔터에서 아르바이트생까지 고용해 여론을 조성하는 건 공공연하다.

상대 BJ에 대한 공격 또한 예삿일이다. 파프리카TV에서 주목받는 것, 유명해진다는 것은 결코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태풍의 눈. 대기업 BJ들도 이제는 대놓고 주시한다. 오정환이 자신들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적’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된다.

* * *

파프리카TV의 여캠.

남성 시청자들에게 애교를 떨며 별풍선을 받아내는 것이 직업이다.

―참치 님, 별풍선 10, 002개 감사합니다!

우리 지수 빼빼 말랐네. 만두 먹고 살 좀 찌자^^

“어머, 참치 오빠 만두 개~ 나 완전 감동인 거 있지? 리액션 뭐 원해? 뭐 해줄까 웅?”

└허허허

└와 큰손이다! 만 개 처음 봄!

└저런 분들은 건물주인가 개쩌네ㄷㄷ

└역시 클라스가 다르십니다 회장님 ㅎㅎ

한 여성 BJ에게 열혈 팬이 별풍선을 쏜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액수. 섹시 댄스를 추며 격한 리액션으로 보답한다.

말이 보답이지. 100만 원과 섹시 댄스의 등가 교환이라니? 어딘가 VS 글을 올리면 밸런스 붕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방송이 종료되었습니다!』

무려 1만 개의 별풍선을 받았다. 그 외에도 쌓인 양이 한두 푼이 아니다. 그럼에도 지수의 얼굴은 전혀 웃고 있지 않다.

“여, 여보세요?”

자신의 돈이 아니기 때문이다.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경색된 어조로 받자 스피커에서 불똥이 튀긴다.

<야! 너 오늘 많이 받았더라?>

“네……. 좀 그랬어요.”

<그게 다 누구 덕인지 알지?>

“다, 당연히 알죠. 김군 오빠.”

인기 BJ인 김군. 그와 합방을 진행한 이후 시청자 수와 관심이 급증했다. 솔직하게 덕을 본 게 맞다. 고작 그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한테 상납금 내는 게 억울해?>

“아뇨…….”

<그럼 어떤데?>

“오빠 덕분에 제가 있을 수 있는 거잖아요. 잘 알고 있어요.”

<음~ 알면 됐고.>

그런 짓도 안 할 수 있게 되었고요.

뒷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하아, 하아…….’

그것까지 했다면 자존심이 뭉개졌을 테니까. 하지만 거칠게 흩어지는 숨소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요즘 엇나가려는 애들 때문에 오빠가 골치가 아파.>

“…….”

<빚 청산하고 싶으면 오빠 말대로 해야지. 어디 다른 데 가고 싶은 거 아니잖아?>

“…네.”

입 안이 바싹 말라 떨어지지 않는 한 마디를 간신히 내뱉는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지. 그 처참한 미래를 알기 때문이다.

‘내가 미쳤지.’

지수는 인지도 낮은 기획사의 연습생이었다. 연예계. 그 화려한 세계에 취해 자신도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래서 큰돈을 빌렸다. 성공만 하면 그 정도는 쉽게 갚잖아?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인생 수업료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연습생 출신이라 외모도 되고, 끼도 있어서 잘 버네. 콜팝TV 같은데 보내지 않아도 되겠어.’

개그맨 출신인 BJ 김군. 그는 자신의 연예계 인맥을 활용해 여캠 후보를 모집했다.

그녀들을 통해 막대한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고, 이것은 그의 주 사업이기도 하다. 단순히 여캠 끼고 우유통 주물주물하는 정도로 벌리는 건 푼돈이다.

진짜는 그 여캠을 키우고, 팔아 매달 쏠쏠히 꽂히는 목돈이다. 이른바 ‘여캠 브로커’는 파프리카TV의 뒷면이다.

“여보세요? 아 최 실장님!”

오가는 액수는 최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대형 여캠을 키울 수 있으면 그 이상도 굴러 들어온다. 김군은 브로커로서의 능력을 자신하다 못해 자만하고 있다.

“지수 보셨습니까? 얘가 아주 똘망똘망해요. 영업도 좀 굴리면 목돈 충분히 나올 것 같습니다.”

<지수 잘하긴 하지. 근데…….>

당연하게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러저러 연결된 구석이 많다. 그중 한 곳에서 걸려온 통화.

<베이스도 좋은 애 쓰면서 성적이 그게 뭐야?>

“네?”

혀를 차는 소리가 김군의 고막을 때린다. 소문의 여중생이 본격적인 방송 데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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