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46화 (46/846)

46화

이전부터 은근히, 아니 대놓고 올라오던 이야기다.

‘파프리카TV 측에서도 누누이 권유를 해오기도 했지.’

봄이의 BJ 데뷔. 아무래도 킹반인이고, 나이도 어려서 안 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거절하며 반려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괜히 일 벌였다 실패하면 뒷감당이 힘들어.

더 이상 변명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대충 어떻게 만지는지 알겠지?”

“모르겠어요!”

“…….”

봄이네 집.

컴퓨터 세팅을 도와주고 있다. 아무래도 내 집에 와서 가끔 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물론 진짜 난관은 그게 아니었지.’

인터넷 개인 방송. 시청자 입장에서는 아무렇지 않겠지만 가족 입장에서는 의아할 수 있는 일이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딸이 혼자 떠들어요!

시대 배경이 조금만 달랐으면 무당이나 엑소시스트를 불렀을지 모른다. 마치 배우와도 비슷하다.

혼신의 연기를 펼쳐봤자 상상의 친구와 노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절대 일반적이라고 보기 힘든 직업이 바로 BJ다.

“엄마랑 무슨 얘기 했어요?”

“여러 가지.”

“수상해요, 둘이~ 엄마가 이렇게 쉽게 컴퓨터를 사줄 리가 없는데.”

초기 투자도 은근히 거금이 들어간다. 처음 보는 장비도 들여놓아야 하고 선입견이 생기기 쉽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

봄이네 부모님께 설명을 드렸다.

요즘 개인 방송이라고 일반인이 하는 라디오 비슷한 게 있는데, 그걸 제가 하고 있고 시험 삼아 봄이를 출연시켜 봤더니 인터넷상에서 인기가 대단하다.

표현을 고른 건 맞지만 딱히 과장이나 거짓은 섞지 않았다. 진실된 호소. 무엇보다 친하다.

“봄이가 착하게 지내서 고등학교 입학 선물로 사주신 거야.”

“헉! 진짜요? 그럼 저 앞으로 더 착하게 지낼게요!”

“뻥이고 오빠가 산 거야.”

“힝……. 그래도 고마워요.”

한두 푼이 아니다. 빈말로도 부탁드리기가 뭣하다. 양해를 구하고, 내 돈으로 봄이가 쓸 것들을 구해왔다.

고사양 컴퓨터 한 대. 마이크와 캠 등의 방송 장비. 솔직하게 내가 쓰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것들이다.

‘물론 원컴 세팅이긴 한데.’

진짜 본격적으로 방송을 하려면 본체도 두 대, 모니터도 두 대, 캠도 두 대, 마치 홍진호처럼 폭풍같이 몰아쳐야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기합을 주는 것도 좋지 않다.

“저 이제 1채널 자유 시장도 렉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걸까요?”

“그건 확실해.”

이게 꿈인지 생신지. 더 이상 단풍잎스토리를 렉 없이 즐길 수 있다는 등, 신나 하면서도 조금은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본다.

‘딱 3초.’

언제 그랬냐는 듯 금붕어처럼 컴퓨터를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성능 좋은 컴퓨터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급식충들의 꿈이다.

“저 사실 노트북이나 아이패드가 좀 더 좋은 거 같아요.”

“닥쳐.”

“힝……. 그래도 좋아요.”

여자들은 작고 앙증맞은 걸 더 좋아하겠지만. 그런 패션 아이템은 방송을 할 수 없는 장난감이기 때문에 당연히 각하다.

‘너무 재밌는 걸 쥐어주면 마음도 붕 떠.’

어디까지나 연습. 분위기가 무거우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평소의 컨디션과 능력을 그대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저 당장 게임을 해봐도 되는 걸까요?”

“그래.”

“이 기세라면 저도 이번 주말에 3차 전직이 가능할 것 같아요. 친구들이 고확 띄워준다고 했어요~”

“…….”

그런 거 말고. 그건 너무 가볍잖아. 우리 봄이의 아기자기한 꿈은 존중하고 있고, 이루도록 도와주겠지만 무대는 내가 정한다.

‘시청자 앞에서 말이야.’

진정한 개인 방송. BJ로서 첫발을 내디딘다. 봄이의 작은 앞발이 파프리카TV라는 정글에서 먹힐 수 있을지 시험한다.

“제가 방송을요?”

“그래.”

“오빠집 갈 거예요?”

“아니, 여기서.”

“……?”

동그란 눈이 동공 지진을 일으킨다. 귀여워서라도 봐줄 만한 반응이지만 내 앞에서는 어림도 없다.

‘사람은 그 무언가의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그와 동등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것이 연금술에서 말하는 등가교환의 법칙이지.’

비록 세상이 손바닥을 짝―! 치면 벽이 솟아나는 강철의 연금술사는 아니더라도 일리가 있는 격언이라고 생각한다.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그치만 저 아무고토 몰라요.”

“지금부터 알면 돼.”

“그치만, 그치만……! 저 혼자서는 절대 못 해요.”

물론 그 길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봄이가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측은한 눈동자로 올려다본다.

‘이쁘고 참한 여캠들이 의외로 시청자 수가 낮지.’

게스트로 나오는 것과 홀로 방송을 진행하는 건 천지 차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예쁘고 귀여운 것.

그런 외모로 어그로는 끌 수 있을지언정 시청자의 관심은 유지할 수 없다.

그래서 존재하는 게 바로 나. 신인 BJ의 데뷔를 프로듀스하는 존재다. 최고의 소재와 최고의 컨설턴트가 만난 이상 성공은 보증된 수표다.

“저 저번처럼 게임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래.”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려울 것도 없다.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맛이 심심한 것도 사실이다.

‘BJ한테는 자신만의 색깔이 있어야지.’

특히 신인 BJ에게는 반드시 필요하다. 시청자들이 그 방송을 봐야 하는 이유 말이다.

나도 단풍잎스토리의 랭커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색깔을 봄이는 이미 가지고 있다.

* * *

파프리카TV.

개인 방송의 공화국답게 정말 여러, 그리고 유명한 BJ들이 셀 수도 없이 소속돼 있다. 그런 기라성들 사이에서도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이는 역시 한 명이다.

―오정환으로 파프리카 입문했는데 재밌네ㅋㅋ

오정환이랑 추천 뜨는 것 위주로 보고 있음. 돈슨 게임 주로 해서 ㄱㅊ은 듯 └ㅇㅇ 보라 쪽만 안 보면 괜춘함글쓴이―보라? 보라색? 그게 뭥미?

└보이는 라디오…는 개뿔이고 미친놈들이 간장 마시고 쇼하는 거 있음글쓴이―ㄹㅇ? 궁금해서라도 보고 싶네

대외적인 시선에서 말이다. 여러 가지 독특하고 유익한 콘텐츠를 진행하며 일반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졌다.

고작해야 단풍잎스토리. 일개 RPG 게임의 전문 BJ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었던 연유다. 그렇게 그의 이름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아쉬움도 함께 커져 간다.

―여중생쨩 요즘 뜸한데 뭔 일 있음?

학생들 방학 기간 아닌가. 심심하면 정환이 방송에 출연 좀 해주지 └그러게. 크리스마스 때 개재밌었는데 └어림도 없지 ‘인싸’

글쓴이―흑흑… 아싸 복학생은 우는 거시야요

└게스트로 몇 번 출연했을 뿐인데 인지도 ㅅㅂㅋㅋ

통칭 여중생쨩.

하나의 명사화가 되었을 정도로 커뮤니티에서는 자연스럽게 통한다. 모르는 사람보다 한 번쯤 들어본 사람이 더 많기에 일어날 수 있는 기현상이다.

한때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오정환보다 훨씬 이야기가 많이 오갔다. 최근에는 약간 뜸해지긴 했지만 그 인기는 여전하다.

방송을 인상 깊게 본 마니아층까지 생겼다.

“네, 네. 확정이에요. 물론 본격적인 건 아니고, 방학 기간 한정으로 잠깐 하는 거긴 한데…….”

―잠깐이 어디야ㅋㅋㅋㅋ

―구라면 폭동 난다

―대박이네

―여중생쨩의 BJ 데뷔라니!

그런 여중생쨩의 데뷔가 확정됐다. 지라시도 아니고 오정환의 개인 방송 오피셜. 여러 커뮤니티를 타고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게 된다.

이종격투기―「오피셜>> 여중생쨩 BJ 데뷔 확정!」

樂 SOCCER―「소문의(?) 여중생쨩 개인 방송 한다네요」

도탁스(DOTAX)―「감동실화) 여중생쨩 방송 데뷔 초읽기 임박 ㄷㄷ」

사람들은 작위적인 것을 싫어한다. 그리고 희소성이 있을수록 가치가 올라간다.

수천을 넘어 1만 명의 시청자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여중생쨩의 방송을 보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Best Comment]―드디어 여중생쨩 얼굴 볼 수 있는 거야?

[Best Comment]―오우 쉿 내일은 불타는 금요일 예약이네ㅋㅋ

[Best Comment]―진짜 ‘힐링’되는 여캠이 탄생하는 건가 기대된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쌓아 올린 인지도가, 마케팅으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수만에서 수십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정식 데뷔 이전부터 기대감을 조성하고 있다.

―아니, 여중생쨩인지 뭔지 걔를 왜 빠는 거임?

그 나이대면 통나무 허리에 젖살 때문에 절대 여자로 안 보이는데. 찐따 새끼들 급식 시절 환상에 젖어서ㅉㅉ└연예인들은?

글쓴이―ㄹㅇ찐인가? 연예인이랑 일반인을 비교하누ㅋㅋㅋ└현실 감각이 없는 거지

└나도 너무 과열됐다고는 생각했음

물론 그 반대의 여론도 있다. 지나친 과열, 거품이라는 측면. 그도 그럴 게 반짝 인기라는 현상은 분명히 존재한다.

인기가 많았고, 유명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새 쥐도 새도 모르게 잊힌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매년 몇 번씩은 일어나는 일이다. 슈니발렌, 벌집 아이스크림, 대만 카스테라, 흑당 등.

한 시대만 잠깐 풍미하고 거품이 사그라든다. 여중생쨩도 비슷한 한계점이 있을 수 있다.

―애초에 이제 여중생쨩도 아니잖아

본인 입으로 예비 고등학생이라며? 벌써 1월이니 이젠 진짜로 졸업했을 테고 그냥 남들이 귀엽다니까 봤는데 난 솔직히 모르겠다

└신선해서 봤었지

└ㅇㅇ 계속 보긴 좀

└파프리카TV 아직도 적응이 안 돼ㅋㅋ

└일단 보고 결정해야지

벌써부터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슈와 희소성으로 떴다면, 장기적인 흥행이 쉽지 않다.

어느 쪽의 예상이 옳을지 결국 포장지는 까보기 전까지 알 수 없다. 그 막이 오른다.

* * *

캐릭터성이라는 게 있다. 특히 여성 BJ들은 최소 한 번은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유통 기한이 있거든.’

잘 먹히고, 잘 팔릴 때 최대한 남겨 먹어야 한다. 장사로 비유하자면 이야기가 그렇게 된다.

BJ 업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야기다. 봄이는 여중생쨩이라는 이름으로 인지도를 올렸다.

그 즉시 데뷔를 했으면 효과를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헐~ 닼나 오빠 별풍선 100개 고맙습니다! 팬 가입도 감사드려요.”

“하와와를 해야지.”

“하와와~ 감사드리는 거시야요!”

―하와와ㅋㅋㅋㅋㅋ

―헐~

―아 목소리 졸귀탱

―정환이한테 교육 빡시게 받네ㅋㅋㅋ

어차피 내가 바라는 건 반짝 장사가 아니니 상관없다. 봄이의 첫 방송. 홍보 겸 맨투맨으로 방송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주고 있다.

‘백년대계까지는 아니어도 십 년이나 오년대계 정도는 이뤄야지.’

그 이상은 본인 하기 나름이지만 적어도 뼈대 정도는 튼튼히 만들어줄 요량이다 그럴 수 있는 발판 또한 이미 닦아두었다.

―참치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여중생쨩 방송 가서 별풍 쏘면 하와와 리액션 해주는 거예요?

“100개 이상만. 100개는 제가 걸어둔 거니까 원망하지 마세요.”

―원망을 왜 해ㅋㅋ

―압도적 감사……!!

―정환이 콘텐츠 존나 잘 짜

―봄이 방송만 자주 하게 해주십쇼 ㅠㅠ

여중생쨩을 제외해도 이미 캐릭터가 잡혀있다. 하와와 여고생쨩. 물론 봄이도 그렇게 빡대가리는 아니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이후로 눈치챘다.

‘친구들한테 물어보고 안 거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 캐릭터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시 방송을 본 시청자가 무려 1만 명. 본 사람도, 보지 않은 사람도 그리워하고 있다.

아니, 대한민국의 건장한 청년이라면 다 보고 싶다. 나만 해도 우리 봄이 놀리는 재미에 산다. 그것을 아주 조금 공유할 뿐이다.

“하와와!! 천 개를 받은 거시야요. 근데 이렇게 많이 주시면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아이디 불러 드리고, 감사하다고 하고, 열혈 팬 등극했으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고도 말씀드려.”

―천 원이라며ㅋㅋㅋㅋㅋㅋ

―그땐 10만 개 받아 놓고

―아 졸라 웃기네

―봄이 너무 귀여워!

고정적인 리액션은 아주 중요하다. 어떤 아줌마가 하는 구독냥이 같은 것처럼 시청자가 기대하게 만든다.

‘물론 유통 기한은 있겠지만.’

캐릭터성을 소모할 때까지가 한계다. 더 이상 여중생쨩이라 부르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그 점은 걱정이 없는 게 앞으로 3년은 확실하게 여고생이다.

꼬맹이가 BJ로서 진정한 데뷔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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