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49화 (49/846)

49화

나는야 강태공

나만을 위한 콘서트.

여자들이 징징대며 원하는 것이긴 하지만, 남자들도 내심 그런 순간이 오면 좋겠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건 여자만이 아니야.’

얼마나 편해. 가만히 있으면 돈다발을 바치는데. 그런 속물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감동적인 이벤트를 마다할 사람은 없다.

“길었던 겨우내 줄곧~ 품이 좀 남는 밤색 코트~!”

봄이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우리 집에 올 때마다 하는 짓이다. 최근에 와서는 노래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한 소절로 끝나지 않는다.

“그제야 둘러보니 어느새 봄이!”

“왔구나.”

“꾸웨엑…….”

물론 결말은 언제나 같다. 잘근잘근 씹어 두피까지 제대로 맛본다.

‘봄이 16년의 맛도 15년과 그리 다를 건 없구나.’

숙성 연수는 올랐더라도 실상은 몇 달 지나지도 않았으니 당연하다. 미숙하다는 건 숙성의 가능성을 지닌 것.

언젠가 최고의 대가리가 될 것이라 믿는다.

“머리가 너무 아파요. 깨질 것 같아요…….”

“그 아픔을 이겨내야 어른이 되는 거야.”

“그런 거예요?”

최근 인기가 급상승한 대단하신 BJ 나으리가 오셨다. 집에 친히 모시며 영접하고 있다. 때마침 방송 중에 말이다.

―ghkrWlswk123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헐 여친?

“네, 제 여친인 봄이입니다.”

“헐~”

―헐~

―캐릭터성 ㅅㅂㅋㅋㅋ

―(까임)

―아청법 철컹철컹!

2008년 이전까지는 만 16세부터 여성의 결혼이 가능했다. 현재는 안타깝게도 남녀 모두 18세로 고정되고 말았다.

“이래 봬도 제가 봄이와 약혼을 권유받은 적도 있습니다.”

“헐!”

―?

―네?

―선 넘네

―본인은 전혀 모르는 거 같은데요?

봄이는 당연히 모르지. 봄이네 어머님한테 들었는데.

‘장난식으로 자주 물어봐.’

딸 데려가라 이런 식으로. 당연히 반놈담이지만 은근하게 압력이 느껴질 때도 있다.

아무래도 어머님들끼리 친하기도 하거니와, 내 이미지가 꽤 좋게 박혀있나 보다.

“하지만 어림도 없죠. 저는 가슴은 D컵 이상, 목은 하얗고 가느다랗게 길며, 그만큼 허리가 얇고, 팔뚝과 어깨가 아담해 품에 쏙 안기면서도, 멀리서 봤을 때 호리호리해서 반할 것같이 멋있는 여성을 선호합니다.”

“저도 결혼은 로맨스 있게 하고 싶어요.”

“이 자식이?”

“꾸웩―!”

―대체 뭘 한 겨

―캠 켜면 개재밌을 거 같은데ㅋㅋㅋㅋㅋ

―지금도 꿀잼임!

―그 와중에 원하는 거 존나게 많네. 랩 하냐 X발놈아?

이상형은 어디까지나 이상형이기 때문에 욕심이 많아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봄이가 그 정도로 성장할 확률이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맞을 만큼은 있긴 한데, 그걸 이미 보고 왔으므로.

‘됐다.’

이상형에 대해 생각하면 괜스레 머리만 복잡해진다. 여하튼 최근의 일상은 평화롭다.

“봄이 설날에 떡국 맛있게 먹었어?”

“먹었어요. 엄청 맛있게 먹었어요.”

“몇 그릇 먹었어?”

“두 그릇 해치웠어요!”

“그렇구나.”

―그럼 이제 18살이네

―떡국 두 그릇은 ㅇㅈ이지ㅋㅋㅋㅋㅋㅋ

―나도 세 그릇씩 먹고 그랬는데

―힐링된다…….

방송적 흥행은 둘째 치고 그냥 즐겁다. 내 인생에 이렇게 마음 편안한 날이 있었던가 싶다.

‘나태한 것도 나쁘지는 않아.’

방송이라는 건 일상이다. 매일매일이 버라이어티할 수는 없다. 물론 그것이 정체되어도 된다는 소리는 아니다.

당연히 준비했다. 내가 주축이 되는 새로운 콘텐츠. 그것도 기존의 판을 발칵 뒤집을 수 있는 거대한 녀석으로 말이다.

이래 봬도 굉장히 자신 있는 영역이다. 특히 이번 것은 심혈을 기울였기에 기대가 된다. 이를 실행할 시기만 기다리는 중인데.

―Zl존힘법사S2 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요즘 핑크린 잡는다고 떠들썩한데 아세요?

“핑크린?”

흥미로운 소리가 들려온다.

* * *

핑크린.

단풍잎스토리 역사상 최강, 최악의 보스 몬스터로 기록된다.

그토록 플레이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든 카쿰, 라테일 등도 반년 내에 공략법이 보였고, 1년 반이면 전 서버에서 격파 메시지가 울렸으며, 현재는 동네북으로서 매일매일 일용할 양식을 제공한다.

그런데 핑크린은 벌써 2년이다.

―님들 핑크린은 언제쯤 돼야 격파가 가능하죠?

라테일도 이제 ㅈ밥 되고

카오스 카쿰은 나오자마자 허벌이고

카오스 라테일도 주류 서버는 전부 격파한 걸로 아는데…….

핑크린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네요

└카텔은 오정환 덕분에 깬 거자너

└오정환 아니었어도 시간문제긴 했을걸?

└핑크린은… 그냥 사이즈가 안 나와

└브라운아이즈도 2년은 못 기다리지ㅋㅋ

새로운 보스 몬스터.

RPG 게임의 고인물들에게 이만큼 신바람이 나는 콘텐츠는 없다. 도전 정신 때문에라도 반드시 시도해 본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깰 수 있다느니~

자기가 달빛조각사 위드가 된 것처럼 떠들어 댄다. 핑크린도 출시 1년 차까지는 왕성한 공략 활동이 이어졌다.

―인증☜ 핑크린 공략 Ver17.1입니다!

<핑크린 전체 구성>

1단계: 할배 석상(넉백)

2단계: 1단계+할매 석상(언데드화)

3단계: 2단계+비둘기 석상(공격 반사)

4단계: 3단계+독수리 석상(단체 유혹)

5단계: 4단계+여신 석상(전속성 반감+etc)

6단계: 핑크린 본체

―1단계―

큰 문제는 없습니다. 스턴과 넉백이 아주 자주 옵니다.

성직자가 디스펠을 적재적소에 걸어준다면 공략 시간을 크게 단축할 수 있습니다.

―2단계―

근거리팀: 할배 석상 공격 (1단계처럼 하면 됩니다.)

원거리팀: 할매 석상 공격 (성직자는 공대원의 언데드화를 유의합시다!)

―3단계―

1~2단계를 반복합니다. 문제는 비둘기 석상의 공격 반사인데요.

근거리는 풀피 상태라면 죽지는 않으나, 격수들은 때리는 순간 자기 대미지에 비석 꽂습니다.

현재 여기까지가 저희 공대가 경험해 본 곳입니다.

3단계에서 공격 반사 때문에 비석이 우수수(R.I.P.) 떨어지는 바람에…….

4단계 초입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다음 도전 때는 호흡을 맞춰서 격파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약간의 팁을 드리자면

1. 물약을 엄청 많이 싸가세요. 언데드화가 잦아서 물약 쓸 일이 많습니다.

2. 자세한 건 말씀드릴 수 없는데(공대 기밀…) 스킬을 안 맞을 수 있는 자리가 있습니다!

핑크린 원정 성공의 날을 위하여 핑크린 도전은 계속됩니다~^^*└와~ 대단하시다 응원합니다!

└5, 6단계가 관건이긴 하지만 벌써 이 정도 온 것 보면 시간문제 같네요└4단계 이상은 가본 것도 아닌데 스킬을 어케 알아요?

글쓴이―친구 중에 프리 메이플 운영자가 있어서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프메 운영자는 ㅅㅂ 생각도 못 했넼ㅋㅋㅋㅋㅋㅋㅋ

└오~ 이제 곧 깨겠네 그럼

이 글이 올라온 지가 벌써 1년 전. 그보다 훨씬 전부터 수많은 랭커들이 도전했다.

일부는 아예 수단과 방법까지 가리지 않았을 정도다. 그만큼 RPG 게임의 랭커들은 열망한다.

특별한 사람. 주위에서 띄워주는 존재.

제2의 타락파워전사가 되는 것을 말이다.

단풍잎스토리 최초의 만렙 유저. 아싸비나 기타 네임드들처럼 자잘한 활약이 쌓여서 유명해진 게 아니라 한 방에 겜생을 역전했다.

게이머들의 로망이 아닐 수가 없다. 명예욕, 금전욕, 경쟁 심리 기타 등등. 한때는 전 서버에서 유행을 이뤘다.

누구도 격파하지 못한 난공불락의 핑크린을 최초로 때려잡는 원정을 말이다.

―만렙 입장에서 쓰는 핑크린 절대절대 못 깨는. EU

1. 몬스터 레벨이 180이라 175 이하는 명중률과 대미지 페널티 때문에 시도도 못 함

2. 요구 체력도 높아서 메창 빼고는 원정대원 넣을 사람이 없음

3. 4단계부터 걸리는 단체 유혹은 사실상 대응이 불가능함

4. 5단계부터 떨어지는 메테오는 격수가 맞는 순간 복불복으로 뒤짐

5. 이 모든 난관을 다 돌파해도 체력 77억을 1시간 안에 잡아야 함.

그냥 돈슨 X발 새끼들이 관상용으로 내놓은 ㅈ같은 핑챙년임└막줄이 핵심이네

└대줄 것처럼 안 대줌? ㅋㅋ

└팩트) 핑챙은 무조건 X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지…….

└우리나라 ㅇㅈㄹ

└오우 정치 좀 할 줄 아는 놈인가?

그런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고지를 보지 못했다. 시도를 하고, 정보가 모일수록 알게 된 건 아예 사이즈가 안 나온다는 사실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희망적인 성과를 낸 서버도 있었다.

―핑크린 격파하는 상상함ㅋㅋㅋ

어림도 없지! 돈슨이 말하기라도 하듯 수차례 잠수함 패치로 강화까지 시켜버렸다.

포기를 하는 게 당연하다. 깨라고 만든 보스 몬스터가 아니다. 그럼에도 일련의 이야기가 나오게 된 이유는.

아싸비: 우리가 다시 스카니아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는 이 방법뿐이야

라프레 마을의 촌장집.

한때 베르사유와 핫세팸을 중심으로 형성된 스카니아 최대 카르텔이었던 이들이 모여있다. 과거가 우습게도 인원도, 참여도도 저조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만만히 볼 단체는 아니다. 아싸비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동조한다.

올비핫세: 그 싸가지 없는 놈 때문에 이게 모야 ㅡㅅㅡ

쫌노는뇬s: 원래 우리가 깬 건데 진짜…….

연순니: 오정환 고 새끼가 분명 첩자 심어놓은 게 맞다니까요?

한번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그 공기, 느껴본 사람은 더 이상 어중간한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지난 카오스 라테일 사태.

그들과 베르사유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다시 주워 담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수단을 강구하는 수밖에 없다.

‘오정환을 떨어뜨린다라…….’

필연적으로 이 자리에 있다.

카오스 라테일 레이드가 대실패로 끝이 나며 아싸비와의 사이가 서먹해진 스카니아 1위 길드 베르사유의 길드마스터 소연도 여러 생각이 맴돈다.

협력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길을 추구할 것인가?

당연히 베르사유도 핑크린 원정을 시도 안 해본 게 아니다.

대참사. 길드의 랭커들이 고개를 휘휘 저으며 무산됐다. 얼마 전 사태까지 있는 마당에 또 무리한 도전을 하는 게 타당한지.

아싸비: 가능성은 있어. 인맥들에게 의견도 구해봤고 무엇보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다. 1년이 지난 만큼 많은 변화가 이루어져서? 그 이전의 이야기다.

‘무작정 맡기려는 것도 아니야.’

아싸비 본인이 열성적이다. 게임은 거의 친목의 수단으로만 이용하던 그녀가 본격적이고, 진지하게 레이드에 임하고 있다.

항상 행동 대장을 떠맡는 게 싫었다. 같은 눈높이에 서게 됐다는 사실이 싸늘했던 마음을 동하게 만든다. 결정적으로.

『운명의 수레바퀴』

캐릭터 사망 시 사용하면 현재 있는 맵에서 부활할 수 있다.

단, 일부 파티 퀘스트나 이벤트 맵, 이동수단 등에서는 이용이 불가능하다.

제안도 제법 현실성이 있다. 신규 캐시 아이템이 하나 추가됐기 때문이다. 레이드에서 치명적인 ‘죽음’의 리스크를 크게 줄일 수 있는 효과를 지녔다.

일각에서는 성직자가 필요 없어진 게 아니냐? 그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물론 돈슨의 상술이지만 이들은 그것을 모르고, 안다고 해도 딱히 상관이 없다.

중요한 건 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힘을 합친다면 가능하다는 판단이 선다.

무엇보다 원한을 가진 건 아싸비만이 아니었다.

‘오정환만 몰아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아.’

끈끈한 정이 아닌, 이해타산을 위해 서로의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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