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51화 (51/846)

51화

메이플 역사상 최악의 보스

베르사유는 역사와 전통이 있는 길드다.

고작 게임 주제에?

그런 소리를 하기에는 단풍잎스토리 자체가 하루이틀된 게임이 아니다.

출시 날짜가 무려 2003년.

베르사유는 그 이듬해에 구성되었다. 올해로 9년 차를 맞이함에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REAL꼬마법샤 : 저는 길드마스터로서 필요한 지출이라고 생각합니다.

오정환과 대립하기 이전에는 말이다.

길드 회의.

평소보다 엄숙해진 자리에서 소연은 담담하게 의견 표명을 마친다.

눈꽃빙수a : 헐

n시프1 : 내가 끼고 있는 것만 해도 부위당 50만원인데

상아12 : 감당 되겠어요?

은인 : 핑크린이 아무리 중요해도 그렇지……

반발 여론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길드 자금을 전부 사용한다니?

길드의 위상을 되찾고, 핑크린을 정복한다는 흥분에 찬 길드원들의 정신조차 번쩍 들게 만든다.

베르사유는 오래되었다. 단순히 역사가 길뿐만이 아니라 힘을 가졌다.

스카니아의 카쿰과 라테일 등 보스 몬스터 시간을 최장으로 보유하고 있다. 그 길드 레이드의 수익 일부가 길드 금고에 고스란히 저금돼왔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접은 길드원들도 자산을 선뜻 기부했다.

그렇게 쌓인 골드의 양이 어마어마할뿐더러.

REAL꼬마법샤 : 그 무게를 알고 하는 말입니다. 비록 몸은 떠났지만, 마음은 함께 하고 있는 명예 길드원들도 이런 위기라면 발 벗고 나서 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아요.

하나의 추억이기도 하다.

아무리 길드장이라도 개인의 판단으로 움직일 수 있는 액수에는 한계가 있다.

―광진이형이 써도 된대?

―아 써도 되면 ㅇㅈ이지

―그래도 너무 많은데;;

―누나 난 찬성이야!

그렇다면 허락을 받으면 될 일이다. 무슨 돌아가신 분도 아니고, 게임을 접었을 뿐이다.

대부분은 카톡 등으로 연락망이 이어져 있어 사정을 말하자 흔쾌히 허락했다.

'길드 여론도 이 정도면 강행할 만하고.'

자신이 생각해도 어처구니 없는 일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필요하다. 그 남자, 오정환을 추월해 핑크린을 격파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무엇보다 수습이 가능하다. 아이템이란 건 당연히 거래가 된다. 빌려주고, 돌려받은 이후 처분을 하면 그만이다.

시세 변동이나 수수료 등. 다소의 손해는 생길 수 있겠지만 상관없다.

그만큼이나 핑크린이 가진 유무형의 가치는 엄청나다.

i즐꺼려i : 제가 대충 드랍템 분석해보니까 깨기만 하면 떼돈 벌겠는데요?

n시프1 : 얼마?

i즐거려i : 농담 아니고 한 판에 천만원도 거눙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억 골드를 호가하는 최고 레벨제 무기가 흔한 잡템 마냥 우수수 떨어진다.

최근 23억 골드에 경매가 된 용사30이 최대 3개까지 나오며, 그 외에도 온갖 고가의 드랍템이 즐비하다는 사실이 유저들의 데이터 분석으로 밝혀졌다.

최소 수백 만원의 안정적인 수익이 가능하다.

오정환과 달리 클리어 비결도 공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몇 달은 독점하다시피 할 수 있다.

수익적인 측면만 봐도 충분히 해볼 만한 도박이다.

'그래, 깨기만 하면 돼.'

이미 눈이 돌아가버린 소연에게 다른 길이 보일 리가 없었다.

베르사유와 아싸비라는 이름값과 대규모 투자가 합쳐졌는데 실패할 리가 있겠냐는 자신감에도 차있다.

i즐꺼려i[스카니아―11]>> 우리가 템 싹 쓸어서 오정환 울상ㅋㅋㅋㅋㅋㅋㅋ REAL꼬마법샤[스카니아―05]<< ㅇㅋㅇㅋ i즐꺼려i[스카니아―11]>> 답답한데 이제 길드말로 해도 돼요? ㅋㅋ REAL꼬마법샤[스카니아―05]<< 음……

REAL꼬마법샤[스카니아―05]<< 그래, 이쯤 되면 상관없겠지

경쟁자도 한동안은 없을 예정이니 마음도 놓인다.

카오스 라테일의 목걸이는 하루에 몇 개씩 얻을 수 있다고 쳐도, 지존템은 구입하고 싶다고 구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제는 돈이 있어도 못 구해.'

자신들이 웃돈을 주고 물량을 싹쓸이해왔다. 적게 잡아도 최소 한 달은 여유가 생긴 셈이다.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격파할 수 있다는 자신이 선다.

REAL꼬마법샤[스카니아―05]<< 근데 알사탕 오빠는?

REAL꼬마법샤[스카니아―05]<< 뭐래?

i즐꺼려i[스카니아―11]>> 하시겠다고 했어요! 길드에 도움되는 일이라면

보스 몬스터의 데미지를 줄여주는 성기사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앞으로 나올 모든 신규 보스의 해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몇몇 길드는 전문적으로 육성까지 하고 있다. 명문 길드인 베르사유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육성에는 당연히 시간이 걸리고, 최상위 랭커급은 반년 가까운 시간이 필요하다.

서버 최고의 성기사를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다행이지…….'

그때는 길드 탈퇴라도 하려는 분위기였다.

정이라는 게 어디 가는 게 아니다 보니 일단락이 되었다.

물론 이전만큼의 결속력은 없어도 핑크린 원정은 차질 없이 진행된다. 모든 준비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길드의 명운을 건 모험을 성공시키는 유능한 길드장이 될 것이란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는데.

REAL꼬마법샤[스카니아―05]<< 언니 큰일 났어요;;

아싸비[스카니아―11]>> 뭐?

일주일 후,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 * *

근 2년 가까이 고고한 위치에서 유저들을 희롱하던 핑크린의 최후는 참 얄궂었다.

'얄궂었다기보다는 사실 피해자지.'

개발자 입장에서는 몰라도, 핑크린 입장에서는 유저들을 성대하게 맞이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데이터 쪼가리의 사정 따위 알 바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돈슨이돌았어요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테섭 패치된 거 봄? 미쳤던데 이번에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봤죠 당연히. 기대도 되고, 실망도 있지만 한 명의 유저로서 지켜보는 수밖에 없겠죠.”

―저대로 패치되면 진짜ㄷㄷ

―뭔데? 무슨 일인데?

―그냥 이건 보고 와야 함

―빅뱅 패치라고 아예 뒤집어 놓음

대규모 패치가 갑작스레 예정됐다.

그 내용.

유저 입장에서 업데이트가 돼서 재밌는 거 많이 생기겠네~ 하고 순수하게 좋아하기만은 뭣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파워 인플레 패치인데.'

기존의 아이템에 '잠재 능력'이라는 요소가 추가됐다.

그럼 좋은 거 아니야? 세지겠네!

문제는 기존 아이템의 시세에 변동을 준다는 부분이다.

─zl젼트lol러z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지금 자시에 공15 노목 10억에 올라옴ㅋㅋㅋㅋ

“10억이요? 와~ 벌써 반토막이 넘게 났네.”

―공15가?

―헐

―저거 부르는 게 값이었는데

―공노목들 다 똥값 되겠누ㅋㅋㅋㅋ

노가다 목장갑.

단풍잎스토리 유저들이 선망하던 꿈의 아이템이었다.

군대에서 작업용 목장갑을 끼며 꿈을 이룬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길 만큼 말이다.

'공격력이 10 이상 붙은 것들은 정말 비쌌지.'

그중에서도 Maximum인 공15 노목은 한 서버에 하나나 둘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서버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충 현금으로 100만원 이상을 호가했다. 1렙부터 착용할 수 있으며 만렙에게도 좋으니 비쌀 만도 하다.

그런 꿈의 아이템이 진짜 꿈으로 끝나버리는 분기점이다.

단풍잎스토리의 빅뱅 패치는 말이다.

─도곡초3학년4반김철민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저렙 아이템은 잠재력이 낮아서 쓰레기 된 거라고 보면 되나요??

“그렇게 딱 잘라 말할 수 있는 건 아닌데 확실히 가격 저하가 예상되긴 해요.”

초―대규모 업데이트. 와우 대격변 이후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단풍잎스토리도 하나쯤 없으면 서운할 것이다. 그것이 대체 무슨 내용인지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후원 메세지가 숨 고를 시간도 없이 터져 나오는 이유다.

『빅뱅 패치』

? 메인 스토리가 없는 샌드박스 게임에서 스토리 지향 RPG로 변화함? 파워 인플레의 시초가 됨

? 기존 아이템 밸런스에 지각 변동을 가져옴

자본주의가 좋기는 해도 내 성대에는 한계가 있다.

메모장을 켜고 정리한다. 빅뱅 패치가 대략 어떤 것인지 말이다.

“굵직한 것 3개만 정리하면 이런 느낌이에요.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으니 현명하신 분들이라면 현물 자산을 가지고 있는 편이 좋겠죠.”

―현물 자산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주식하는 것 같누

―아 저번 주에 공노목 샀는데 ㅡㅡ

―진짜 단풍잎판 대격변이네

기존 아이템의 서열을 싹 갈아엎었다. 과장 조금 보태면 짐바브웨 달러 사태가 일어났다. '잠재 능력'이라는 시스템이 아이템의 가치를 새로이 정립시키고 있다.

'단풍잎은 빅뱅 전과 빅뱅 후로 나뉜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까.'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커뮤니티는 물론 본서버까지 난리가 났다. 특히 기득권인 고레벨들 입장에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진짜 단풍잎 ㅈ망겜 다 돼가네요

공노목, 아이젠 똥값 된 거 보셨나요?

돈슨 패치 하나 때문에 이렇게 격변하는 게 말이 되나 전 서버 다 합치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증발한 셈입니다 진짜 단체 소송이라도 해야 하나……

└그러게나 말입니다

└저는 다행히 직업 장갑 쓰고 있었는데 부캐템은 쓰레기 됐네요└돈슨 씹새끼들 ㅠㅠ└고소하죠. 플포 유저들의 힘을 보여줍시다!

그런 고레벨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플레이포럼. 격불한 게시물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ㅈ망겜이 됐다는 등 별별 이야기가 다 나온다.

─정환아형왔다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잠재 능력 유니크 만들면 ㅈㄴ 세지는데 좋은 거 아닌가요?

“확실히 그런 장점도 있죠. 그게 제가 기대를 하고 있는 부분이고.”

하지만 그것이 안 좋은 패치라는 소리는 아니다. 무엇이든 장·단점이 있는 법이다. 일단 유저들의 평균적인 능력치가 크게 향상된다.

'핑크린도 사실 그래서 깨진 거거든.'

5배에서 10배 가량 계왕권을 쓴 것 마냥 강해지니 아무리 기존 최강의 보스라도 돈슨 ㅈ같네ㅡㅡ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일련의 미래를 알고 있기에 특별한 준비 없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자리삽니다[스카니아―12]>> 님 그거 들으셨어요?

오정환[스카니아―15]<< 아 그거?

오정환[스카니아―15]<< 모른다니까

자리삽니다[스카니아―12]>> ㅋㅋㅋㅋ;;

자리삽니다[스카니아―12]>> 베르사유 핑크린 준비하다가 파산하게 생겼다는데요?

특별한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날벼락이다.

베르사유가 과한 원정 준비를 했던 탓에 고생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너무 열심히 하니까 그렇지.'

사람이 가끔은 힘을 좀 빼야 한다. 지금의 내 모습처럼 말이다. 가만히 있으니까 알아서 복이 찾아오잖아.

「Maple) 오정환. '빅뱅'은 갓 패치일까? 확인 들어갑니다.」

? 본방 : 1074 (PC: 599/ MOBILE: 475)

? 중계방 : 4, 719

? 누적 시청자 수 : 36, 974

단풍잎스토리의 대형 업데이트!

롤로 치면 새 시즌이 시작되는 임팩트다. 신규·휴먼 유저들의 관심까지 사로잡고 있다. 때 아닌 시청자 특수를 맞게 되었다. 반쯤 대기업BJ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유입들을 붙잡기 위해 간만에 텐션을 끌어올린다.

─7년차메이플유저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단풍잎은 오정환이래서 왔는데 인맥 쩌네요ㄷㄷ 아싸비랑도 친추?

“100개 팬가입 감사합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모를 수가 있는데 제가 그분이랑 사이가 썩 좋지 않아요.”

―썩ㅋㅋㅋ

―썩소

―그 적폐는 이제 꺼질 때가 됐지

―길드도 ㅈ망했다매?

이번 기회에 베르사유분들도 휴식을 취했으면 싶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그 휴식이 평생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시대가 대린 해답이야.'

개인의 힘이 강해진다는 건, 집단의 결속력이 약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빅뱅을 기점으로 단풍잎스토리는 정말 많은 것이 변화하지만.

─오정환환환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그래서 결국 핑크린은 아무도 못 깨네ㅋㅋㅋ

―난 공 불 락

―돈슨이 미쳤어요!

―패치 후에는 개나 소나 깰 듯

―지금 깨야 진짜지ㅋㅋ

내 전설이 끝난다는 의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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