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52화 (52/846)

52화

빅뱅 패치.

롤로 따지면 야스오를, 오버워치로 따지면 한조를 상향한 것보다 훨씬 더 큰 파급력을 가져왔다.

그만큼 현재 '단풍잎스토리'가 가진 위상은 어마어마하다.

「PC방 점유율 종합게임순위」

1. 단풍잎스토리 RPG △1

2. 아이온 RPG ▼1

3. 써든어텐 FPS

4. 파파온라인2 Sports

5. 리그 오브 레전드 AOS △5

잠재적 유저의 수가 가장 많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해본 사람이 많고, 접근성도 높다 보니 이슈가 생길 때마다 자연스럽게 흥행한다.

─단풍잎 뭔 일 있음??

PC방 랭킹 1위로 치고 올라갔네

우리 반 애들도 갑자기 다 단풍잎 하고

└그건 니네 반 애들한테 물어보고

글쓴이― 친구가 없어서……

└앗 ㅠㅠ

└토요일에 PC방 몰려가는 게 꿀잼인 거신데

한 달에 한 번 꼴로 기획되는 경험치 2배 이벤트만 해도 난리가 난다. 동시 접속자가 곱절의 곱절로 껑충 뛰는 기현상이 펼쳐진다.

이번 '빅뱅 패치'는 그 영향이 더할 수밖에 없다.

「사상 최대! 대격변이 온다! 단풍잎스토리 ‘빅뱅 업데이트’ 실시」

「[동영상] 단풍잎스토리의 진화, 9년만의 최대 업데이트 `빅뱅`」

「국민 RPG ‘단풍잎스토리’, 1월 15일부터 확 바뀐다!」

방학 기간, 단풍잎스토리의 시즌 이벤트와 신규 직업 출시는 없으면 더 의아할 정도의 연례 행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의 개념이지 아예 판을 뒤엎는 패치는 지금까지 없었다.

단풍잎이 확 바뀐다고?

게임을 접었던 유저들의 귀가 솔깃해진다. 주요 플랫폼에 기사로 올라오자 모든 사람들이 일련의 소식을 알게 된다.

「Maple) 네글자. 빅뱅 패치? 테섭 한 번 조져봅니다」

「Maple) 펑이조. 현질로 세지다니ㅋㅋㅋ 내 시대가 왔구나!」

「Maple) 구해조. 전재산 털겠습니다. 빅뱅 시대를 섭렵하는 자」

이미 유저 수가 폭등했으며, 그 영향은 날이 갈수록 더 지대해질 전망이다.

최근 단풍잎 유저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자리 잡은 파프리카TV. 인기BJ들도 빅뱅 패치를 콘텐츠로 시청자 몰이에 나섰는데.

─아니 솔직히 어그로지ㅋㅋㅋㅋㅋㅋㅋㅋ

애초에 깨라고 만든 보스가 아닌데

그걸 이제 와서 깬다는 것 자체가

└딱 봐도 '명예로운 죽음' 할 듯

글쓴이― 그거네

└크윽……, 패치만 안 했어도

└앞으로 돈슨 본사를 향해 하루에 세 번씩 절할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화제가 되는 일은 따로 있다. 단풍잎스토리 커뮤니티는 현재 토론으로 달아올랐다.

그 주제가 지금까지 상상도 못 해본 것이기 때문이다.

핑크린 깨는 상상함ㅋㅋ 어림도 없어야 함이 옳다.

─그냥 카텔, 핑크린은 돈슨식 패치가 맞음

카텔 보상맵 안 만든 거 보면 모름?

애초에 유저가 깰 거라고 생각을 안 했다니까?

└근데 깼잖아

└핑크린은 2년 전에 만들었는데 ㅄ?

글쓴이― 아니, X발 오정환 아니었으면 깼겠냐고

└핑크린은 ㄹㅇ 깨라고 만든 게 아니긴 하지ㅋㅋㅋㅋㅋ

쓰러지는 모습이 상상이 안 간다. 일각에서는 관상용 보스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대체 깰 수 있는 놈이 맞냐며.

“앜 들킴!”

“근데 어쩔 수 없어.”

“우리도 숨은 쉬면서 일해야지…….”

그리고 이는 실제 보여주기식 패치가 맞다.

유저들 입장에서는 대충 이렇게 저렇게 하면 패치가 슝슝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과정은 복잡하며 시간과 인력도 엄청나게 소요된다.

약소 게임들이 1년에 한 번도 제대로 된 패치를 내놓기 힘든 이유다.

그런데 단풍잎스토리는 거의 달마다 하며, 1년에 2번 이상 빅―패치를 해버린다. 이는 돈슨에서 대놓고 밀어주는 막대한 지원과, 약간의 뻥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번에도 깨버리면 어떡하죠?”

“아니야. 이번만큼은 아니야…….”

개발부 부장 장연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빅뱅 패치는 무려 2년이나 공을 들인 거대한 프로젝트.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며, 그 책임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X발……'

자신이 밀어붙인 것이니 당연하다. 성공시킬 자신도 충분하지만 문제는 변수다. 오정환이 또 어처구니없는 기행을 저지르려고 한다.

─메이플아재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핑크린을 깬다고? 그럼 받아야겠지?

“미션이요? 핑크린은 진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세간의 인식이긴 한데 단가를 좀 기대해봐도 되려나~.”

―역시 회장님!

―오우 흥정 좀 하는 놈인가?

―근데 이건 진짜 힘들어

―응 엔화급 안전 자산^^

능글맞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정말 방송 목적의 콘텐츠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장연수는 가볍게 흘려들을 수가 없다.

“커뮤니티에서도 이목이 쏠려서, 만에 하나라도 격파가 되면 어물쩍 넘어가기 힘들어 보입니다.”

“나도 알아. 안다고!”

그 누구보다 잘 아는 입장이다. 지난 카오스 라테일 당시 그랬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중요한 시국에 똑같은 사태가 한 번 더 터진다면.

'X발…….'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팀을 꾸려서 마무리 작업을 하고 싶다. 특수 근무 체제에 돌입하면 반나절 내에 부족한 부분이 메꿔진다. 물론 버그 피드백을 뺀 시간이지만 급한 불은 끄는 셈이다.

그조차 불가능해서 문제다. 빅뱅 패치에 모든 인력이 매달리고 있다.

긴급 작업이 가능한 핵심 인원을 빼는 건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밖에 안된다.

“다시 한번 확인을 해봤지만 핑크린은 확실히 못 깨.”

“확실한 거……, 맞겠죠?”

“나 장연수야.”

그 한 번의 실수가 커보일 뿐이다.

게임 내적인 부분까지 완벽히 컨트롤 하여 프로젝트를 세운다. 핑크린이 2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동안 격파되지 못한 건 우연이 아니다.

'단풍잎스토리에 진짜 스토리를 부여할 첫 단추야.'

어째서 핑크린이 말도 안 되게 센 건지.

그런 핑크린을 조종하는 검은 마법사는 누구인지. 유저들의 심층 의식에 존재감을 서서히 심어주었다.

그리고 장장 2년간의 개발을 거쳐 드디어 내놓았다.

빅뱅 패치!

단풍잎스토리라는 게임의 수명을 10년은 늘려 놓을 획기적인 걸작이다. 그 중대한 프로젝트에 변수가 생겨서는 안된다.

장연수는 개발부 탑의 직권을 이용하고자 마음먹었다.

* * *

자연스럽게 흐름이 연결됐다. 다음 패치까지 예정된 시간이 나흘. 그 사이에 핑크린을 격파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말이다.

'뭐, 사실 진지한 건 아니야.'

굳이 사서 고생을 할 필요가 있나? 파워 인플레가 되면 난이도도 떡락할 텐데.

하지만 그 필요성이 생긴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지금 회장님이 미치셨거든요? 어떻게 하시려고 그러지 깨면.”

―응 못 깨

―절대 못 깨니까 건 안전자산이지ㅋㅋㅋㅋㅋ

―카텔은 깼는데?

―핑크린은 다르지 핑크린은……

무려 3만 개.

아니, 혹시 몰라서 2만 5천 개로 삭감한 미션이 걸렸다. 그것도 지금까지 미션풍으로 방송을 리드하신 위대한 회장님께서 말이다.

─인생메이플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절대 못 깸ㅋㅋ 깨면 나도 천 개 쏨

─내꿈은먹튀왕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진짜 깨면 한 번에 열혈 달림ㅋㅋㅋㅋㅋㅋ

─치킨각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솔직히 에바지. 안전자산 500개 투자합니다

회장님을 시작으로 줄줄이미션이 납부된다. 그렇게 싸인 게 4만 개가 넘는데 오기로라도 깨야 한다.

“님들 너무 저를 우습게 보시면 안되는데? 제가 이틀 안에 격파 못하면 봄이 꿀밤을 때리겠습니다.”

―봄이 꿀밤을 왜 때려ㅋㅋㅋㅋㅋㅋㅋ

―봄이 꿀밤 ㅇㅈ이지

―하긴 님 대가리는 별거 없죠

―어차피 못 깰 텐데 ㅋㅋ;

물러설 수 없는 공약까지 걸며 맞서기로 했다.

핑크린. 그 같잖은 핑챙년을 따먹어 주기로 말이다.

'물론 쉽지 않지.'

쉽지 않기를 넘어 ㅈ같을 수준이다. 돈만 아니었어도 이 짓 안 했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 하거니와, 사전 준비도 제법 건실히 해왔다.

트라이할 거라고 계속 뻥카를 쳐왔으니까. 어그로를 위해 하던 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여하튼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한 번 저질러볼 생각이다.

『알사탕k님이 원정대 입장을 선언하셨습니다. 원정대 조직 시간이 종료되기 전에 맵에 입장해 주세요.』

원정대를 구성했다. 지체할 것 없이 들어간다. 보통은 창기사가 원정대장을 맡고 먼저 입장하는 게 관례이지만.

“핑크린 데미지가 워낙 세서 성기사가 필요하긴 한데, 핑크린이 다중 속성이라서 데미지가 반감 돼요. 한 마디로 딜이 안 박힙니다.”

―그래서 원정대장?

―아 병신 직업ㅋㅋㅋㅋㅋㅋ

―그래도 요즘 환골탈태했는데

―응 그래봤자 위협 셔틀~

여전하누. 성기사의 취급이 조~금 바뀌긴 했는데 여전히 한 명 이상은 필요 없다.

서버에서 가장 위엄 있는 성기사와 친분이 있어 초대했고, 속된 말로 위협 셔틀이 되셨다.

'그래도 중요하지.'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제한돼있다. 한 명, 한 명을 엄선된 랭커로 골라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잡을 수 없을 만큼 핑크린의 최대 관건은 화력이다.

두두두두두―!

파바바박―!

그 점에 관해서는 일단 걱정이 없다.

정확히는 걱정을 해봤자 의미가 없다.

“이 멤버로도 못 깨면 그냥 못 깨는 거에요.”

―ㄹㅇㅋㅋ

―스카니아에서 제일 센 랭커들만 모였는데

―카텔 때보다 더 셈?

―훨씬 세지!

내 인맥으로 모인 공대원들도 당연히 세다. 스카니아의 랭커들 중에서도 엄선된 인재들이다. 하지만 나의 손이 미치지 않았던 이들도 적지 않다.

'베르사유 따까리들 말이야.'

그 베르사유가 무너졌다. 영향력을 잃게 되었고, 나의 공대에 의도적으로 참여하지 않던 이들이 러브콜을 보내왔다.

평소였다면 모를까. 핑크린은 어중간한 각오로 넘어설 수 없다.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그들에게 선심을 베푼다.

정예 of 정예 중에서도 한 번 더 거름망을 치자 때깔이 아주 고와졌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틀림없이 스카니아에서, 아니 단풍잎스토리에서 가장 강력한 랭커들이다.

─할배 석상이 무너지며 핑크린의 종속에서 풀려납니다!

─1단계가 끝났습니다. 곧 2단계가 시작됩니다!

카쿰 한 마리 분량의 체력인 할배 석상이 3분이 안 되어 무너진다.

내가 혼자 잡으면 45분이나 걸리는 녀석이 말이다.

'꽉꽉 욱여넣은 풀파티의 힘이지.'

무려 30인.

풀버프까지 화려하게 둘렀다.

1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춰왔다.

물론 그럼에도 역부족이다. 핑크린이 지금껏 괜히 난공불락이었던 게 아니다.

딜로스를 유발하는 패턴이 심각하게 많다는 게 난관 중 하나인데.

“아이젠을 착용하면 넉백에 크게 밀리지 않아서 딜을 무난하게 넣을 수 있습니다.”

―오~

―와 연구 오지게 해왔네

―아이젠을 이런 데 쓰다니……

―저거 인내의 숲 깰 때도 개꿀임ㅋㅋ

눈길이나 빙판길에서 미끄럼 방지 효과를 주는 아이템이다. 핑크린의 넉백 스킬에도 유효한 판정을 가졌다. 때마침 구하기도 쉬웠다.

'그냥 아이젠 말고 작이 된 거.'

노가다 목장갑과 마찬가지로 한 시대를 주름잡았다.

하나 곧 폐기 처분이 될 거란 소식에 휴지 조각이 돼버렸다. 싼값에 대량 구입해 공대원들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물론 그럼에도 비싸다. 한두 푼이 드는 투자가 아니다.

핑크린을 잡기만 한다면 만회를 하고도 남기 때문에 투자한 거금이다.

─아군이 당했습니다!

─핑크린이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비석이 우수수 떨어진다. 난이도가 있는 만큼 예삿일이다. 전멸에 가까운 상황도 상정을 하고 왔지만.

―정환이 죽음ㅋㅋㅋ

―헐

―와 방장님 죽는 거 처음 봤어요

―님이 죽으면 어캄나이트!

내가 죽는 것은 생각을 안 했다. 실수라면 모를까, 영문도 모르게 말이다. 유혹에 걸린 것도, 공격 반사나 언데드화에 당한 것도 아니다.

'뭐지?'

조금 예상치 못했던 사태가 일어난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