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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J로 산다는 것-56화 (56/846)

56화

참된 돈슨

사실 원래부터 그런 건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2년 전. 핑크린이 세상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해도, 돈슨은 '돈슨'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정말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단풍잎스토리는 원래 갓겜이었다.

심지어 약관에 이런 조항이 명시돼 있었다.

1. 기본 운영정책

단풍잎스토리의 캐시 아이템은 게임 내 플레이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존나 믿기지 않고, 설마 그런 일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당시 트렌드였던 싸이월드의 아바타 꾸미기 수준으로, 외관을 치장하는 게 캐시 아이템이 가진 역할의 전부였다.

엄밀히 따지면 펫 정도는 존재했다.

근데 편리하기도 하고 돈슨도 먹고 살아야지~

유저들이 오히려 돈슨을 두둔하는 기현상이 펼쳐졌다. 얼마나 관대했냐면, 캐시템을 지르지 않은 유저를 찐따로 간주했다.

옷이랑 펫은 기본으로 사야 하는 거 아님?

게임에 돈 쓰는 걸 이상하게 봤던 시대상을 감안하면 놀라운 민심이다.

부화기가 출시됐을 때 돈독 올랐다고 까이기는 했지만, 이렇다 할 반발 여론까지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유저들과 함께 성장하던 돈슨. 어느 날을 기점으로 크게 바뀌었다.

'저 조항이 사라진 거지.'

그래도 민심이 워낙 좋아서 유저들이 신경을 안 썼다.

안타깝게도 폭풍 전 고요에 지나지 않았고 결과는 '돈슨.'

나는 그 분기점이 바로 핑크린의 출시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게임사가 소통의 문을 걸어 잠갔다. 자신들 마음대로 여포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절대 격파할 수 없는 거짓 보스로 유저들의 눈을 가린 것이다.

더 이상 그런 미래가 반복되지 않는다. 돈슨의 행보에 브레이크를 확 걸어버렸다.

그런 골치 아픈 문제는 잠시 접어두고.

─인생메이플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윽…… ㅇㅈ

─내꿈은먹튀왕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치킨각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안전자산 떡락했누 ㅠㅠ

방송의 물 흐르는 듯한 진행을 위해, 후원 기능은 진작에 활성화해 두었다.

미션풍. 걸린 게 좀 많은 게 아니다 보니 리액션 하는 것도 고역이다.

“인생님 천 개 정말 감사합니다! 먹튀왕님도 열혈 도전하실진 모르겠지만 천 개 감사하고, 치킨각님 아시잖아요. BJ계의 삼전 오정환.”

―삼전ㅋㅋㅋㅋㅋ

―우량주였누

―기다리면 반드시 떡상하지~

―우리는 오정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오정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오정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나에게 있어서는 식후의 입가심 정도밖에 안되지만 말이다.

리액션을 한 명 한 명 잊지 않는 건 기본이고, 개개인별로 차별성을 두어야 쏘는 입장에서 서운하지 않다.

기껏 거금을 들였는데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으로 기억되면 김이 빠진다.

이러한 시청자의 심리도 BJ는 생각해야 한다. 물론 이는 꼭 좋은 쪽의 자극만은 아니다.

─내꿈은먹튀왕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먹튀 안 해 새끼야!

“믿고 있었다고 쥐엔장!! 이렇게 먹튀할 것처럼 아이디 지은 분들이 역으로 먹튀를 안 해요. 열혈 입성 미리 축하해도 되죠?”

살살 심기를 긁는 것도 필요하다. 분명 고민을 하고 있을 거거든. 한두 푼도 아니고.

'내 열혈컷이 꽤 높아졌어,'

옛날의 오정환이 아니다.

대략 3천대 중반. 지금도 여전히 낮은 편이지만 방송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괄목상대한 성장이다.

애피타이저를 시작으로 줄줄이 꿰인다. 지금까지 받은 것만 1만 개를 훌쩍 넘는다. 메인디쉬는 아직 도착도 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메이플아재님, 별풍선 25000개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대단혀

“후……, 이번 핑크린 격파도 회장님이 대주주신데 제가 역으로 축하를 받으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늘 감사합니다.”

―와

―미쳤다 미쳤어

―2만 5천개면 250만? ㅅㅂ

―정환이 표정 관리 안 되는 거 처음 보네ㅋㅋㅋㅋ

항상 표정 관리가 안 되는 사람은 싸보이지만, 가끔 안되는 사람은 도리어 진실성을 나타낸다.

나와 회장님과의 관계가 오늘을 계기로 보다 끈끈해질 거라고 믿는다.

수금. 미션을 깨고 약속된 별풍선을 받는 시간을 그렇게 부른다.

인생이 아무리 돈이 전부가 아니라도 이런 시간이 가끔씩 있으면 살 맛이 난다.

『FAIL』

쓴맛 또한 함께 맛보고 있으니 말이다.

예상대로, 지난 카오스 라테일 첫 격파 때와 마찬가지다.

'원래는 CLEAR라는 메세지와 함께 보상 맵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보상 맵을 구현하지 않았기에 일어난 결과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는 물론이고 내 애청자들도 구태여 놀라지 않는다.

돈슨이 돈슨 했을 뿐인데 뭐 어쩌라고?

“이번 사태에 대해서도 돈슨측과 긴밀한 대화가 필요할 듯하네요.”

―역시는 역시 역시군

―구현해 놨으면 감동할 뻔했자너~

―못 깨는 걸 억지로 깨는 그는 도덕책……

―근데 어디 감?

이미 한 번 겪어봤고, 사후 처리의 경험도 있다.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제법 재미는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당장 볼 재미를 잊어서는 안된다.

무적그리고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곰승민 : 소문이 진짜였구나

T없E해맑은Lr : 어이가 없네;;

자리삽니다 : 핑크린을 부쉈으니 만족

원정대원들.

어처구니 없는 사태에 즉석 만담회가 열렸다. 막대한 재화가 떨어질 줄 알았는데 안 떨어지니 돈슨이라도 까는 것이다 나도 그 만담회에 끼고 싶지만 보다 급한 일이 있다. 빠르게 밖으로 나와, 캐시 아이템을 사용해 이동한다. 핑크린을 최초로 격파한 사람은 나 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핑크빈 슬레이어의 훈장[특급 칭호]』

├ 제한 : 無

├ 조건 : 핑크빈을 가장 많이 사냥한 자에게 주어지는 명예로운 칭호 ├ 훈장 옵션 : STR +8, DEX +8, INT +8, LUK +8, 명중률+5, HP +10└ 기타 : 1위가 바뀔 경우 훈장을 빼앗김

모두가 1등이라면 순위를 정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한마디로 먼저 먹는 놈이 장땡이다.

“안녕하세요. 최초의 핑크린 슬레이어 오정환입니다.”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

―이 와중에 훈장 챙길 생각을 하네

―대단하다

―너 가져라ㅅㅂㅋㅋㅋㅋㅋㅋ

사실 옵션은 특별히 탐을 낼 정도는 아니다.

어차피 만렙때 주는 공격력+3 훈장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아이템이 으레 그렇듯.

'간지거든.'

최초의 원정대장으로서 갱신만 하면 되니 경쟁으로 골머리 썩을 일도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핑크린 원정이 성공리에 마쳐진다.

풀어야 할 과제는 많이 남았지만 말이다.

나 말고.

* * *

무려 2년에 걸쳐 준비한 '빅뱅 업데이트'.

홍보 또한 철저하게 이루어져, 패치와 함께 엄청난 파급 효과를 가져다 주어야만 했다.

“전체적인 상황을 봤을 때 아무래도 잠잠해지길 기다리는 건 최악의 수가 될 공산이 높아 보입니다.”

“"……."”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돈슨 사옥.

단풍잎스토리 팀장급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 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패치와 관련된 사안이 아니다.

핑크린이 격파됐다. 빅뱅 업데이트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말이다.

그로 인해 불붙은 논란이 잠재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빡침주의] 지금 우리가 돈슨에게 분노해야 하는. EU 핑크린 최초 격파한 오정환曰

“2년 전과 화력 차이 2배 이상”

“스카니아 고인물만 30인 엄선했다”

“이보다 좋은 방법? 있으면 공개 해달라”

최고 서버의 최고 공대가 온갖 방법 동원해서 3초 남기고 깼는데 돈슨은 2년 전부터 깰 수 있다며 유저 우롱하고 있었음└갓정환은 ㅇㅈ이지 └어케 깼누 X발련ㄴ아!

└핑크린이 드디어 깨졌나 와……

└취지는 알겠는데 돈슨이 그걸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음? 무시하면 장땡 아닌가

그 의무가 있다.

자신들이 직접 내뱉은 말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이맘때쯤, 돈슨은 성난 여론을 달래기 위해 질의응답을 받았다.

【단풍잎스토리 유저 간담회 中】

Q. 핑크린의 난이도를 하향할 계획은 없는가?

A. 핑크린은 격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게임사에서 전체 격파를 해본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 아직까지 격파 소식이 들리지 않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오픈 후 4개월 이내에 분명 깨질 거라고 내기까지 했는데 깨지지 않았다. 아직까진 하향할 의사가 없다. 조금 더 지켜보고 내부적으로 했는데도 격파가 안된다면 그때 조정을 할 생각이다.

Q. 결정적인 격파 팁 하나를 알려준다면?

A. 나중에 공개가 안되면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Q. 핑크린을 격파하라고 만들어 놓았다면서, 입장 제도가 너무 까다롭다. 원정대가 입장하기 힘드니까 격파 시기가 자꾸 미뤄지는 측면이 있다.

A. 핑크린이 고레벨 콘텐츠 중 하나고 보상템도 높으며 상당한 하드코어 콘텐츠라서 입장 조건을 까다롭게 해 두었다. 이 부분은 아직까지 변경할 계획이 없다.

늘어만 가는 캐시 아이템. 옆으로만 확장되는 콘텐츠.

이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만큼 유저들은 바보 멍청이가 아니다.

예전 같지 않은 모습에 실망했다. 커뮤니티의 민심이 겉잡기 힘들 지경이다.

그러자 돈슨은 유저 간담회라는 특단의 대책을 취해왔다.

─돈슨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네ㅇㅇ

게임사쪽에서 한 번에 모든 것을 수정하면 리바운드(역효과)가 날 수 있대잖아돈슨이 얼마나 유저들을 생각해주는 회사인데 믿고 기다리자 └돈슨은 믿을 만하지!

└대답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좋더라

글쓴이― 신뢰의 돈슨이잖아

└고렙 새끼들이 핑크린을 못 잡으니까 새 콘텐츠가 안 나오는 거지ㄹㅇ

자신들의 사정을 솔직하게 밝힌 것이다.

어, 그래?

성났던 여론은 그렇게 한 번 사그라졌다.

그런데 다시 불이 지펴졌다.

핑크린을 격파할 방법이 있다면 말해봐.

가을철 갈대숲에 불붙듯 삽시간에 번져 나간다.

이종격투기 ― 「2년간 유저들을 우롱해온 돈슨의 만행」

樂 SOCCER ― 「현재 단풍잎 유저들이 돈슨에게 분노한 이유」

도탁스(DOTAX) ― 「카텔에 이어 또……, '돈슨' 해버린 핑크린 사태」

이미 떡밥이 진행되던 일반 커뮤니티에까지 말이다. 돌고 도는 선순환.

더 이상 돈슨에서도 좌시하지 못할 만큼 커져 버렸다.

빅뱅 업데이트의 흥행이 문제가 아니게 됐다. 성난 유저들을 또다시 달래야만 한다. 그것도 전과는 다른 방법이 요구된다.

'일이 어쩌다 이 지경이…….'

장연수의 눈꺼풀에 다크 써클이 가득하다. 벌써 일주일째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하는 중이다. 결과가 좋으면 인상이라도 펴고 있겠지만.

“부장님.”

“…….”

“부장님?”

“어?”

“저희 운영팀에서 모니터링한 내용을 토대로 내부 토의를 거친 결과 정면 돌파가 그나마 낫다고……, 여기 보고 내용 보시죠.”

책임자로서 한시도 사태를 방관할 수 없다. 빅뱅은 물론 핑크린도 그의 손에서 태어난 결과물이다.

'X발…….'

이번 사태를 진화하지 못하면 자신은 꼬리 자르기로 내팽개쳐진다. 유저들의 화를 달래기 위한 제물이 돼도 이상하지 않다.

승진은커녕, 재취업조차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돌파구는 하나뿐이다. 한 번 겪어봤던 일이기에 오히려 홀가분하다.

사태의 중심이 되고 있는 해당 BJ와 직접 담판을 짓는다.

'오정환.'

자신이 그토록 눈 아래로 깔보던 일개 기생충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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