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57화 (57/846)

57화

사태는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크다.

“요즘 어때?”

“말도 마라……. 죽겄다.”

“하… 보고 어떻게 올려야 할지 힌트라도 줘봐 좀!”

대격변류의 패치.

수년간 이어져 온 게임의 기반을 전부 뒤엎는다. 이는 참신한 시도임과 동시에, 괜한 짓이라는 리스크도 껴안는다.

즉, 초기 반응이 반드시 좋아야 한다.

와우를 따라하다 망해버린 게임들과 같은 수순을 밟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도 반은 나오지?”

“반? 반이라도 나왔으면 전망을 더 지켜봐야겠습니다~ 라고 시간이라도 벌어보겠지.”

단풍잎스토리의 모든 부서들이 죽는 소리를 하고 있는 이유다.

돈슨은 체계가 잡힌 대기업이고, 각 패치는 확실한 계획과 전망 하에 진행된다.

이번 '빅뱅 업데이트'.

유저들의 반응이 어떨지 예상했다는 이야기다. 큰 예산과 기회 비용이 들어간 만큼 기대의 역치도 높게 책정됐다.

「돈슨」

4, 200 KRW ―310 (―7.39%)

거래량 3, 11, 800 거래대금 1, 189 백만

때문에 최근 돈슨의 주가는 오르고 있었다.

게임사가 대규모 패치나 신작 게임을 출시할 때 주가가 상승하는 건 스탠다드한 일이다.

그런데 만약 유저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면?

주식은 현재가 아닌 미래의 가치를 반영한다. 손을 터는 기관 및 개인 투자자가 생기고 만다.

이미 그 징조가 보이고 있다.

단풍잎스토리는 돈슨을 떠받치는 가장 큰 기둥. 문제가 생기면 고멘나사이로 끝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또 불미스러운 일로 뵙게 됐네요. 개발자로서 정말 낯이 뜨겁습니다 하하…….”

경기도 일산역의 한 카페.

장연수는 마른 침을 억지로 삼키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 자리에서 설득하지 못하면 책상을 뺄 각오를 해야 한다.

'진정해. 어차피 겜돌이야.'

본업이 BJ든 뭐든. 결국 본질은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다. 화 좀 식히고, 말빨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구워 삶을 수 있다.

“실수가 반복되면 그건 더 이상 실수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던데.”

“아, 그렇죠. 이번 사태는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근데 저희 개발진들도 사람이잖아요? 이런 얘기 사실 어디 가서 하면 안되는데 위에서 내려온 스케줄에 억지로 맞추다 보니…….”

일단 동정에 호소한다. 어쩔 수 없었다는 어필 말이다. 9할의 진실과 1할의 거짓을 교묘히 섞는다.

'게임사가 개발자 갈아 넣는 거 유명하잖아.'

물론 자신은 입장이 다르다.

부장이라는 직급. 회사 내에서의 파워는 어지간한 임원에 준한다.

스케줄 자체를 자신이 짜고 있다. 고생을 하는 것도 자신이지만, 성공을 시켰을 때 보상을 받는 것도 자신이다.

동정심 유도를 위한 작전이었는데.

“저번에는 치명적인 버그 때문에 내부 검토하고 있었다면서요?”

“…….”

이미 한 번 써먹어서 문제다. 오히려 자승자박.

고단수를 둘 수 있을 만큼 장연수의 머리는 맑지 않았다. 연이은 야근으로 피곤에 절어있다. 상부에서 내려오는 압박도 스트레스다. 그런 상황에서도 머리를 굴려 활로를 짜낸다.

“예! 그때도 사실 그랬던 게 맞아요. 하지만 알아주셨으면 하는 게, 그만큼 민감한 사항이라 말씀을 못 드렸건 겁니다. 정환씨가 지난 돈슨 페스티벌을 계기로 사실상 가족과도 같은 운명 공동체가 되셨다 보니 저희도 진실성 있게…….”

단풍잎이 휘청이면 네 방송에도 지장이 갈 거 아니냐? 단기적인 분노가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으로 봐라.

이를 공손한 말투로 돌려 말하는 것이 핵심이다.

'제발…….'

평소였다면 보다 여유가 있었을 것이다. 내키지 않아 할 경우의 수까지 상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구차하게도 현재의 장연수가 내밀 수 있는 카드는 이것뿐이다.

“그렇군요.”

“예……, 부디 너그럽게 이해를 해주시면 저희도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정환씨 같은 분이 저희와 유저들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해주시면 어? 그거 좋네요. 지금 이 자리에서 부탁을 드리고 싶을 정돈데요?”

다행히 설득이 통한다. 입도 풀려서 말이 술술 나온다.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내뱉은 거짓말도 아니다.

'내 권한을 좀 넘어서긴 하는데.'

상층부에서도 오정환을 눈여겨보고 있는 만큼 어지간하면 통과될 것이다.

무엇보다 오히려 좋다.

저만한 영향력을 가진 이. 특히 사고를 많이 치는 이. 자신들의 관리하에 둔다는 것은 실보다 득이 확실하게 많다.

“네, 네 아무래도 그렇죠~.”

합의점만 찾는다면 나머지는 간단하다.

불만 들어주기. 게이머들과 간담회를 가지면 십중팔구 나오는 그 내용 말이다.

'결국 겜돌이야.'

네네치킨 점주가 된 기분으로 수긍만 해주면 된다. 운영자에게 직접 하소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어지간한 것은 풀리기 마련이다.

“핑크린은 정말 깨라고 만든 게 아닌 거 맞죠?”

“방법이 있어요. 있긴 있는데……, 예를 들면 해적의 오크통으로 석상을 바보로 만든다던지.”

“막았잖아요.”

“…….”

그것이 씨알도 안 먹힌다.

게임 운영이라는 게 대학교 수강 신청 정도의 난이도가 아니다 보니, 당초 계획과는 갈수록 틀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당연히 못 알아낼 줄 알았는데.'

유저들이 생각보다 영악했다. 이러다 깨면 어떡하지? 위기감을 느껴 잠수함 패치로 막아두었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오른다.

“한국 유저들의 콘텐츠 소모 속도가 워낙 빨라서;; 이미 깨보신 만큼 아예 못 깰 정도는 아니지만 정말 어렵게 해둔 건 맞습니다.”

“그런 걸로 치죠.”

“…….”

간담회 때처럼 어물쩍 넘어가긴 힘들다. 그래도 대화가 아예 안 먹히는 것은 아니다.

“기존 유저들 입장에서 빅뱅 업데이트에 대한 걱정이 크시죠?”

“아뇨. 그렇지 않아요.”

“아, 그런가요?”

“사행성 부분만 적당히 선을 그어주면 재밌는 패치가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비록 유저들과 관점은 달라도, 단풍잎스토리를 아끼는 마음은 장연수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를수록 분위기도 풀어진다.

'제까짓 게 뭐 어쩌겠어? 대기업을 상대로.'

조금 깐깐할 뿐, 착안점은 비슷하다.

불만 좀 들어주고, 패치에 반영 좀 해주면 된다. 카페인의 각성 효과가 돌면서 흐렸던 정신도 맑아지던 찰나.

“그럼 여기에 사인 및 최종 허가까지 부탁드립니다.”

“네??”

“지금까지 말한 내용이요.”

공책 높이의 서류 뭉치가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인다.

* * *

핑크린 사태.

그로 인해 불거진 여론.

또다시 장연수라는 양반과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이번에는 좀 더 진득하게.'

내 목적은 딱히 돈슨을 겁나 까고 싶은 것이 아니다.

작정하고 까면 논문을 하나 발표할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의미가 없다.

지금까지 돈슨이 사고를 한두 번 쳤을까?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 나갔다.

내가 이번 사태의 중심에 서서 여론 몰이를 해봤자 효과는 한시적이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돈슨의 패치 방식 자체가 문제인 것도 아니야.'

날림인 대신 그만큼 패치 속도가 빠르다. 라이트 유저들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즉, 장·단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문제는 언제나 사행성. 돈슨이 괜히 돈슨인 게 아니다. 옆동네 NC에 비하면 약과라는 말도 있지만.

“그거는 비교 대상이 조금 잘못됐다고 봐요. 물론 그 회사도 진짜 개막장이긴 한데 그래도 아저씨들 돈 빼먹는 거잖아요.”

―린저씨?

―틀딱들이나 리니지 하지ㅋㅋㅋㅋ

―크~ 역시 갓정환

―하긴 연령층이 다르긴 해

어디까지나 성인, 그것도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주고객이다. 비싸게 팔아도 대우만 잘해주면 문제가 없다.

'설사 대우가 안 좋아도, 나이든 사람들은 새로운 거에 적응을 못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하게 돼있어.'

하지만 돈슨은 학생들이 주고객이다. 애들 코 묻은 돈을 어디까지 뺏어 먹으려고? 정도가 심해도 적당히 심해야 하는데 도를 넘어버렸다.

그러니까 앞으로 5년 후.

롤, 배그, 오버워치가 들어선 후로는 돈슨 게임을 안 하려 든다. 돈슨의 신작 게임들이 줄줄이 망하는 이유다.

“님들 솔직히 돈슨 신작 나오면 색안경 끼고, 한손에 팝콘 들면서 망하는 거 구경할 거잖아요.”

―ㄹㅇ

―내가 다시 돈슨 게임 하면 개돼지지

―질러 놓은 거 아까워서 함ㅋㅋ

―신작은 절대 안 하고 단풍잎이나 추억으로 간간히 할 듯

거 봐.

실제 미래도 그렇게 된다. 나는 돈슨이 회사의 미래를 팔아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한다.

'유저들과 타협점을 가졌어야 돼.'

이성적으로 서로 납득할 수 있는 선 말이다.

아, 이 정도까진 인정이지ㅋㅋ

내가 장연수씨와 대화한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핑크린에 대해서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실상 못 깨게 만들어 놓은 것이 맞아요. 근데 들어보니까 나름대로 사정은 있더라고요.”

―실드?

―크흠 설마……

―자본주의가 또

―??? : 라고 꾸짖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돈이었다

개발자들이 처한 현실. 그가 말한 것이 전부 사실은 아니더라도, 한국 유저들의 요구가 과한 것도 사실이다.

'원피스 오뎅처럼 막장이 되는 것보단 잠깐 멈춰가는 게 낫잖아.'

그런 맥락에서 봤을 때 이해의 여지가 있다는 소리다. 어디까지나 이해. 앞으로 잘한다는 보증을 받았기에 나도 한발 물러섰다.

“자세한 건 그 운영자분이 다음에 제 방송에 나와서 말씀을 해주기로 하셨고. 여하튼 지금 중요한 건 빅뱅 패치에 대해서거든요?”

―???

―아니, 돈슨 운영자가 온다고?

―운영자썰이나 더 풀어줘!

―스케일이ㅋㅋㅋㅋ

빅뱅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린다. 특히 플레이포럼을 중심으로 고인물 유저들은 결사 반대까지 나섰을 정도다.

'나의 스탠스도 같을 거라고 오해할 만한데.'

결론부터 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단풍잎스토리의 수명을 10년은 늘린 신의 한 수였다고 평가한다. 문제가 되는 건 언제나 하나.

“사행성을 크게 완화할 거라고 확답 받았으니, 핑크린 사태에 대한 노여움을 조금은 가라앉혀도 될 것 같습니다.”

―돈슨이 돈을 안 밝힌다고?

―진짜면 대박인데ㅋㅋㅋㅋㅋ

―많이도 안 바람. 정신 좀만 차리자

―음…… 약속을 지킬 돈슨이 아닌데

이래 봬도 준비를 많이 했다. 질문 내용과 예상 답변은 물론, 변호사와 상담까지 거쳐서 구속력 있는 계약서를 준비해갔다.

'물론 그래봤자 어느 정도지만.'

빅뱅 업데이트 자체가 애초에 돈X랄의 시작이다.

근본부터 싹 다 뒤집으라는 무리한 요구가 받아들여질 리 없다. 유저들이 납득 가능한 선을 유지시킨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한다.

─내꿈은먹튀왕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근데 이렇게 놀고 있어도 됨? 펑이조는 벌써 현질 하고 난리 났던데

“100개 감사합니다. 별풍선 왜 이렇게 씨가 말랐나 했네 크흠!”

―ㅋㅋㅋㅋㅋㅋㅋ

―쏠 타이밍이 없었음

―갑자기 대형썰을 펑펑 풀어서

―숨죽이고 지켜봤자너ㅋㅋ

물론 게임 내 상황은 만족해선 안된다. 핑크린을 잡았다고 끝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면 낙오될 뿐이다.

'돈X랄이 정말 콘텐츠가 돼버리는 웃픈 일이 생기지.'

BJ펑이조. 그 돈X랄을 메인 콘텐츠로 삼는 BJ다.

돈X랄 메타로 가장 큰 수혜를 보게 되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내가 돈슨과의 문제로 방송에 집중하지 못하기도 했다.

틈새시장을 노려 시청자 몰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기특하기 그지없는 재기이지만.

“빅뱅이 무엇인지는 제가 보여드릴게요.”

나도 이제 돈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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