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오빠 봄이에요 봄이!”
“그래?”
“봄이가 왔지만 물지는 마세요.”
완강히 거부한다. 오랜만에 본 봄이는 안타깝게도 전혀 성숙해있지 않았다.
'언제 크려고 그러니.'
요즘 애들은 성징이 빠르다.
로리콘 그런 게 아니라 아이돌들 평균 데뷔 연령이 중학생이야. 봄이 나이대에 이미 클 만큼 다 큰다.
근데 봄이는 참 세월을 느리게 먹는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림도 없지.”
“꾸웨엑…….”
머리라도 먹는 거지. 단단한 식감과 향긋한 봄 냄새. 치아에 느껴지는 두피의 쫀득한 식감은 역시 중독성이 있다.
“봄이 찹쌀떡.”
“찹쌀떡!”
부드럽고 탱탱한 볼살도.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살을 밀어 올리는 행위로, 일부 지역에서는 동그랑땡이라고도 부르지만 봄이의 경우 부드러운 식감과 하얀 외관 탓에 찹쌀떡이라 명명했다.
“안 아파?”
“안 아파요.”
“이래도?”
“꾸웩―!”
나도 젊었을 때는 그랬다. 살을 진짜 어지간히 늘려도 안 아파.
'귀를 두 번씩 접어도 아무런 느낌이 안 들었다니까?'
마치 고무고무 열매처럼 타격계 공격에 내성을 가진다. 물론 루피와 마찬가지로 날카로운 것에는 한없이 약하다.
“손톱자국 났어요.”
“문질러.”
“제 볼따구는 탈부착이 아니에요!”
“그래.”
저번에는 탈부착이더라고. 하도 잘 늘어나길래 당겨봤다. 꿈과 달리 톡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탄성은 정말 고무고무 열매에 준한다.
“잘 지냈어?”
“잘 지내고 있었어요.”
“왜 과거형이야?”
“머리랑 볼이 너무 아파요.”
“게보린 먹을래?”
세 가지의 효과가 있는 만능약이다. 두통에도 치통에도 특효약이라고 한다. 물리적인 아픔에도 듣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봄이는 방학을 맞이해 살 판이 났다. 중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도 아니야. 학창 시절 방학 중 유일하게 여유가 있는 시기다.
개인 방송.
현재 시점에서는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행위. 특히 어른들에게는 노는 걸로밖에 보이지 않을 텐데도 허락받을 수 있었던 연유다.
“방송은 어때?”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래도 은근히 재밌어용~”
본인이 재밌어 하기도 하고.
일이라는 게 보통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그렇지, 자신한테 잘 맞는 일이 가장 좋은 법이다.
'까놓고 말해서 쉽기도 하잖아.'
특수한 직업답게 말 못 할 애로사항이 있는 건 맞는데, 기본적으로 개꿀 직업인 것도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다.
아직 방송 초기인 만큼 평생 직업으로 확신할 단계는 아니지만 말이다.
“오빠.”
“응.”
“저 혈중 떡볶이 농도가 부족해요!”
“그래, 그럴 것 같았어.”
순수하게,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가장 좋을 나이다.
먹고 싶은 것도 꾸역꾸역 먹고.
딩동―♪
신전 떡볶이에 치즈 추가. 봄이의 단골 메뉴가 도착한다. 교이쿠상이 보면 기겁할 만한 광경이 삽시간에 펼쳐진다.
“봄이가 왔다 가서 늦었습니다. 뭐했냐고요? 같이 떡볶이 먹었어요.”
―지각 사유 ㅇㅈ
―근데 봄이 귀여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던데
―얼마나 귀여워야 깨물어주고 싶은 거야ㅋㅋㅋ
그리고 방송.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다.
하는 것도 같은 단풍잎이지만 한 가지 특별함이 추가되었다.
『빅뱅 업데이트』
단풍잎스토리판 대격변 말이다.
단풍잎스토리를 주콘텐츠로 삼고 있는 만큼 그냥 넘어가면 섭하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세 가지가 있었죠. 근데 그건 큰 틀에서고, 게이머한테는 디테일한 것도 중요하거든요?”
'빅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일단 모든 맵이 뜯어 고쳐진다.
헐, 대박!
와우처럼 지형이 싹 다 바뀌는 거임?
'그런 건 아니고.'
그냥 맵 자체가 편의성을 띄게 된다.
???
게임을 늦게 시작한 유저들은 이해가 안 될 수 있지만, 원래 단풍잎스토리의 맵들은 심각한 수준으로 불친절했다.
─S2지존표도S2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사냥터 많아진 거 하나는 갓패치 맞음!
“인정이죠. 이제 개미굴 명당 자리 말고도 초보 사냥터가 많아졌다고 하니까.”
―개미굴ㅅㅂㅋㅋㅋㅋㅋ
―근데 개미굴이 망함
―갈 필요가 없으니까 망하지
―나 부캐 키우는데 짱 좋더라
단풍잎스토리는 '전맵 순례'라는 문화가 존재할 정도로 맵이 엄~청나게 많다.
평소에는 잊고 지내는 지역들을 쭉 돌아보면 며칠씩도 걸려서 은근히 재밌다.
'근데 잊고 지내는 이유가 있어.'
제대로 된 사냥터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한정적이다.
각 레벨대별로 한 손이 부족하지 않은 정도? 맵이 불편하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냥터인지 미로인지 구별이 안 가거나, 초보 사냥터에 고레벨 몬스터(초보 킬러)가 나타나거나.
탐험적으로는 재밌지만, 실용성은 거의 바닥에 가까워서 문제다.
“소외 직업군의 밸런스 패치도 잘 됐고, 저는 전체적으로 방향성을 정말 잘 잡았다고 봐요.”
―ㄹㅇ
―성기사 이제 덜 병신 직업됨?
―덜병신ㅋㅋㅋㅋㅋ
―해적이 상향돼서 그렇게 말하시는 거 아닌가요!
솔직히 그것도 있고.
RPG유저들은 원래 자기 직업 상향되면 갓패치라고 부른다.
'물론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지.'
핑크린 사태.
장본인이 내가 직접 돈슨의 사죄를 받아들였다. 그로 인해 여론이 다소 누그러지긴 했지만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불씨가 남아있다.
─오정환 입장 발표 듣기는 했는데
아직 명쾌하게 풀리지 못한 부분이 많음
유저들의 분노가 풀릴 때까지 돈슨은 사회적 비난을 감수해야 함└아직도 불편함? 대체 니가 원하는 게 뭐임?
글쓴이― 돈슨이 지금까지 캐시로 번 돈 모두 사회에 헌납하고, 돈슨 사장이랑 임원들 전부 무기징역 때리면 좋겠음└아 ㅇㅈ이지ㅋㅋㅋ
└마약범보다 더 세게 때리누
돈슨을 까는데 이유가 왜 필요해 대체? 그냥 까고 싶으면 까는 거지. 쿨타임 돌면 돈슨 까는 건 스타크래프트와 함께 민속놀이로 자리 잡았다.
쌓이고 쌓인 게 많아서 그렇다. 전쟁이 오래되면 싸우는 이유를 잊는 것과 마찬가지다.
돈슨과 유저들의 합의점은 한·일 관계에 준할 만큼 꼬이고 꼬였다.
“그 악순환의 고리를 이 자리에서 끊지는 못하겠지만, 언제까지 과거에 갇혀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으로 모셨습니다.”
얼마 전 카페에서의 미팅.
이야기를 나눈 것은 핑크린 사태와 요구 사항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들어오면 되는 거예요?”
“여기 편하게 앉으시면 됩니다.”
―???
―뭐야
―웬 남자
―봄이도 아니고 남자를 왜?
그녀는 이미 2시간 전에 떡볶이 향기만 남기고 떠나갔다.
집구석이 좁아서 그런지 환기를 분명 했음에도 쿰쿰하게 코끝을 간지럽힌다.
'그리고 그 후에 와서 대기 중이지.'
적절한 등장 타이밍이 올 때까지 말이다. 앞선 빅뱅 패치의 평가로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안녕하세요. 돈슨 개발부 부장직을 맡고 있는 장연수입니다. 주로 단풍잎스토리 관련 업무를 처리하고 있고, 이번 빅뱅 업데이트도 저희 부서가 주도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죠.”
―와 이걸 진짜로 오네
―뭐임? 공개 처형?
―참아 잔다르칸!
―끼얏호우!!
물론 그런다고 유저들의 분노가 어디 갈 리 없다.
운영자와의 합방은 예고를 하기도 했거니와.
공지― 『단풍잎스토리 운영자와의 합방이 확정되었습니다』
침 질질 흘리던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돈슨 게임을 즐겨온 사람은 저만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화날 때마다 항상 외쳤죠운영자는 대체 뭐 하는 새끼일까?
너무 궁금해서 모셨습니다
내일 금요일 오후 4시 기대해주세요
공지를 띄웠다. 오늘 합방을 진행할 거라고 말이다.
당연히 반응은 폭발적이고, 댓글란에서 민심을 살펴보자.
“솔직히 말하면 좋지는 않아요. 아무래도 제 방 시청자들은 카텔도 그렇고, 핑크린도 그렇고 그 꼴이 나는 걸 다 봤거든요.”
“하하…….”
“어설프게 아~ 그건 제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순간 폭동 일어날 수 있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미 일어났는데?
―장연수 메모……
―학살의 현장에서 난, 피어오른다. 붉은 여명에 피어나는 꽃처럼
벌써부터 채팅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그도 그럴 게 당연하다. 유저들이 처음부터 돈슨을 증오한 게 아니다.
<돈슨은 다람쥐를 뿌려라!>
90년대생이라면 한 번쯤은 진심으로 외쳐보게 된다. 속고, 안 속고 이전에 운영자를 믿는 것이다. 믿은 만큼 배신감도 쌓이고 쌓였다.
─돈슨본사폭탄마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X발련아!
“욕은 하지 마시구요. 이제부터 욕하면 블랙 드릴 수 있습니다.”
내 속이 다 시원하네.
여하튼 욕받이 하라고 이 자리에 부른 게 아니다.
여러가지 궁금한 거 많잖아?
선만 지킨다면 과격해도 괜찮다. 그런 게 바로 인터넷 방송의 묘미다.
─성직자200유저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성직자 왜 개쓰레기 만듬? 이 ㅅㅂㅍ;ㅏㄴ퍼ㅏ;ㅣ
“키보드에 때가 많이 끼셨나 보네.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시면 돼요.”
“솔직하게요?”
“네.”
“지금까지 해먹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게 방송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코건 ㅇㅈ이지!
―성직자들 남둥쩔로 존나 벌었잖아
―ㄹㅇ 적폐 직업 1순위였는데
해먹는다는 개념이 있다. 다른 게임은 몰라도 단풍잎스토리에서는 굉장히 스탠다드하다.
'특히 법사 직업군에서 썬콜과 불독이 서로 물고 물었지.'
속성 마법이라는 특성 때문에 사냥터마다 효율이 현저히 차이 났다.
이전 사냥터에서는 썬콜이 다 해먹었잖아?
이번에는 불독이 해먹을 차례가 됐지!
어디까지나 커뮤니티에서 오가는 이야기다. 운영자의 입에서 직접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성공이 보증된 레전드 콘텐츠는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약간 인터뷰하는 느낌으로 왔는데 생각보다 재밌네요. 특히 채팅창이.”
“시청자들이 짓궂긴 해도 나쁜 느낌은 아니죠?”
“예, 그리고…….”
“네?”
“생각보다 수입이 많네요.”
시청자들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BJ의 모니터에는 조그마한 창이 하나 더 있다.
「선물 받은 개수」
? 별풍선 : 2, 141
오늘 받은 별풍선의 수. 하나당 100원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띨빵한 사람은 우리 봄이밖에 없다.
“제가 돈 진짜 쉽게 벌 수 있는 방법 가르쳐드릴까요?”
“BJ하는 법이요?”
“아뇨. 별풍선 천 개에 운영자 싸대기 미션 걸면 돼요.”
“하하하.”
“대신 살아서 못 돌아가요.”
“…….”
└당연히 쏘지ㅋㅋㅋㅋㅋㅋㅋㅋ
└엄마 지갑 훔쳐온다
└딱밤 가능?
└지건은??
누군가 만개 쏘고 육식 비기 오의(? 義) 육왕건! 해달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돈슨 게임 하는 유저들이 떼거지로 몰려올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나도 마음 속에서는 이미 벽력일섬 갈겼다고.'
하지만 분노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지금부터라도 손에 손을 잡고 Win―Win의 미래를 만들어간다.
겸사겸사 내 방송 콘텐츠로도 잘 살려 시청자와 별풍선을 오지게 빨아보려던 찰나.
봄이의삼촌팬[CH 01] : ★─┐★─┐★─┐
봄이의삼촌팬[CH 01] : │하││와││와│
봄이의삼촌팬[CH 01] : └─★└─★└─★
봄이열혈[CH 01] : ★─┐★─┐★─┐★─┐
봄이열혈[CH 01] : │3││차││전││직│
봄이열혈[CH 01] : └─★└─★└─★└─★
안뇽[CH 01] : ┌─┬─┬┐┌─┬┬┬─┬┬┐
안뇽[CH 01] : └┐┃봄│││─┛││─┛││
안뇽[CH 01] : *│┃이│└┤─┛*│─┛│└┐
안뇽[CH 01] : *└┴─┴─┴─┴─┴─┴┴─┘
봄이사냥개[CH 01] : ─┐┌┓**┌┐│봄○│는
봄이사냥개[CH 01] : *│││││┣┘│L●VE
봄이사냥개[CH 01] : *│┗┘┗┘│*★입니다♡
…
…
방송 진행상 켜두었던 단풍잎스토리. 게임 내 채팅창이 갑작스레 들끓는다.
'X랄 났네.'
심상치 않은 메세지가 화면을 가득 메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