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너무 대놓고 쌩까는 거 아니에요?>
“쌩까다뇨.”
신민하씨. 지난 돈슨 페스티벌 당시 계약을 위해 갔던 돈슨 사옥에서 친해져 연락처를 교환한 직원이다.
쏠쏠한 정보원으로 이용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연락을 나눴다. 사람은 일을 하면 대가를 받고 싶기 마련이다.
“하와와라는 BJ…, 정환씨가 키웠다면서요.>
“아~ 난 또. 틀린 얘긴 아니죠.”
<저도 그렇게 해주면 안돼요? 정환씨한테는 쉬운 거 아니었어요?>
그녀를 나의 편으로 꼬드길 수 있었던 이유.
한 가지 떡밥을 던졌고, 그것을 물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쉬워요. 제가 무슨 비선실세도 아니고.”
<뭐가 어렵다는 거에요? 그냥 목소리로 아양만 떨면 되는 거잖아요?>
“네?”
<그 듀라한.>
“…….”
듀라한.
최근 몇몇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는 은어.
얼굴 없이 방송을 하는 여캠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무래도 쉽게 연상이 되니까.'
나에게는 상당히 익숙한 단어다.
때문에 놀랍지는 않지만, 그녀가 알고 있다는 것은 조금 예상 외다.
그도 그럴 게 그런 사이트들이 일반적으로 접할 곳은 아니다. BJ에 대해 어지간히 관심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말이다.
“BJ마다 맞는 방법이 달라요. 그게 절대 마스터키가 아니에요.”
<하지만 제가 보니까 요즘…….>
“저기요.”
<…….>
“BJ는 저에요. 진정하세요."
<그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그래요?>
“네? 저한테 하는 말이에요?”
글들이 굉장히 자극적이다. 처음 보는 사람은 선동되기 쉽다. 그녀가 어째서 격앙돼있는지 짐작되는 바가 있다.
'여자와 남자는 한 가지 차이점이 있어.'
허세.
심한 정도를 따진다면 당연히 남자들이 더하다. 미친 짓 하다가 사고 치는 일이 괜히 인생에 한두 번씩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자존심이다. 그 허세를 남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안 하게 된다.
여자의 경우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럼 저 어떡해요…….>
“뭐가요.”
<정환씨랑 저 요즘 분위기 분명 좋았잖아요.>
“아~ 톡요?”
망상. 또 다른 자신을 그려낸다. SNS에 보면 그냥 일상처럼 일어나는 일이다.
'여자들이 음식 사진에 광적인 집착을 하잖아.'
됐어, 이제 먹어도 돼^^
음식을 먹고 싶은 건지, 음식 사진을 찍고 싶은 건지 분간이 안 간다.
정확히는 '이런 음식을 먹는 나'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음식 사진」
「헬스 사진」
「감성 사진」
…
…
SNS를 쭉 내려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지 그려진다. 예쁘고, 화려하고, 감성적인 사진만 골라서 올린다면?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보이게 된다.
물론 그것이 잘못이란 소리는 아니다.
사회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적든 많든 하게 돼 있다. 문제는 언제나 한발 더 나아가 뇌절을 하는 순간이지.
<금방 데뷔할 수 있을 줄 알고 친구들한테도 말을 했어요.>
“허허허.”
<웃지만 말고 대답해줘요. 저 희망고문 한 거에요? 가지고 논 거에요? 원래 이런 식이에요?>
사람들이 좋아요도 눌러주고, 친구들이 부러워하고, 댓글란에도 언니 어쩌고저쩌고 하니까 우쭐해지면서도 아차 싶다.
SNS의 나는 분명 이런 삶을 살고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거지.'
그냥 허세 좀 부린 거야, 라고 하면 된다.
이걸 인정하지 못하는 순간 자가당착에 빠진다. SNS의 자신을 계속 만들어간다. 내뱉은 거짓말이 쌓여만 간다.
현재 신민하씨가 처한 상황도 큰 틀에서 마찬가지일 거라는 게 보인다.
“진정해요.”
<제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BJ 하고 싶은 거 아니었어요?”
<그게……, 네. 솔직히 너무 하고 싶어요.>
알고 있는 만큼 대처법도 안다. 이런 상태인 여자를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솔직하게 잔인한 일이긴 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아이돌 연습생들 데뷔에 평균 5년 걸리고, 그나마도 확률이 0.1% 이하에요. BJ가 훨씬 만만한 직업인 건 맞는데 그렇게 만만한 직업은 또 아니거든요?”
<아, 아니에요. 만만히 본 건…….>
“민하씨.”
<네!>
“쉬운 일 아닌 걸 아니까 하고 싶은 거잖아요.”
<……맞아요.>
“그럼요. 저랑 약속해요. 감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 고쳐줘요. 제가 민하씨를 데뷔시켜도 이렇게 작은 일 하나하나에 울고 웃으면 BJ생활 오래 못해요.”
나를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간단하고, 현실적인 해결책이다.
'물론 부작용도 만만치 않지만.'
애매하게 설득을 하는 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저런 상태가 된 시점에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는 직업 특성상 자주 겪어봤다.
멀쩡한 여자들이 왜 나쁜 남자한테 속지?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기도 하다. 속는 게 아니라, 그냥 거의 신앙과도 같은 개념이 돼버린다.
<정환씨…….>
“네.”
<혹시 지금 만날 수 있어요?>
“제가 선약이 있어서요 오늘은.”
<네……, 기다리고 있을게요. 꼭요.>
말끝을 흐리는 의미 없이 요염한 목소리가 고막을 간지럽힌다.
통화 종료.
그와 거의 동시에 초인종이 울린다.
딩동―♪
딱히 없는 말을 지어낸 게 아니다. 정말로 선약이 있다. 두꺼운 철문이 열리며 반가운 얼굴이 고개를 들이민다.
“오빠 봄이에요 봄이! 날이면 날마다 오는 봄이가 아니에요~.”
“그래?”
“꾸웨엑…….”
나의 사냥감. 톰슨가젤은 반항을 포기했다. 어차피 물어뜯긴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는 얌전히 두피를 맡기고 있다.
'딜리셔스.'
물론 머리나 뜯자고 부른 봄이가 아니다.
최근 봄이의 방송.
이슈가 될 만큼 급물살을 타고 있고, 집중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오빠, 오빠, 저 시청자한테 선물 받았어요.”
“어떤?”
“제 그림을 그려줬어요~ 엄청 예뻐요~!”
컨설팅 말이다.
BJ란 직업은 뜨는 것도 어렵지만, 그걸 유지시키고 자신만의 방송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더 만만치 않다.
'다른 BJ들의 공격은 둘째 치고.'
순수하게 크는 것만 해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반짝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나름대로의 노력이 필요하다.
“괜찮네.”
“그쵸, 그쬬~?”
“오늘부터는 방송 화면에 이걸 띄워 놔. 여기부터 여기까지 잘라서.”
그 길을 인도해주는 것이 바로 컨설턴트, 내가 해줘야 할 역할이다.
듀라한이라는 게 얼핏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도 쉽지만.'
어중간한 수준이 아닌, 탑급BJ에게는 노하우가 요구된다. 요즘처럼 '유행'이 번지고 있는 시국이라면 특히 말이다.
* * *
최근 파프리카TV는 때 아닌 소란으로 들끓고 있다.
『요즘 Hot한 신인BJ」
1. 하와와 ―
2. 사과뭉 ↑3
3. 탱탱버린 ↑7
4. 악년 ↓1
…
…
신인BJ.
누적 방송 500시간 미만의 새싹들이 자라날 기회를 주기 위한 카테고리다.
청정구역이어야 할 그 텃밭에서 문제가 일어났다.
─요즘 신인BJ 랭킹 실화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듀라한들이 1위부터 10위까지 다 먹고 있네
아니, X발 적당히 좀 하지
└조센이 조센했는데 문제라도?
└하와와 뜨니까 다 따라함ㅋㅋ
글쓴이― 하와와도 역겨워 ㅡㅡ
└얼굴도 안 까고 귀척하는 년들 딱밤 마렵다
다름 아닌 '듀라한' 때문이다. 얼굴이 없는 여캠.
한 명이 한다면 개성이지만, 여러 명이 한다면 위화감이 생긴다.
특히 기존 시청자들에게 엄청난 반발을 사고 있다.
왜 여캠이 얼굴을 까지 않는 거야?
그런 불만이 무색하게도 장사 자체는 너무 잘된다.
“목소리 더 귀엽게 좀 내봐.”
“이케요?”
“좀 더 간드러지게!
“이케요~?”
“그래, 얼굴도 못생긴 년이 목소리라도 잘 내야지.”
대형 크루들이 작정하고 듀라한을 데뷔시키는 이유다.
수익이 짭짤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젓겠다는 듯, 적극적으로 개입해 컨설팅과 홍보를 아끼지 않고 있다.
「Maple) 하와와. 봄이에요 봄이! 봄이가 왔다구요!」
_ ?3, 891명 시청
「종겜) 탱탱버린. 신입여캠/소통/팬구합니당 ?3?」
_ ?374명 시청
「종겜) 악년. 신입여캠/섹드립/누나랑 놀래?」
_ ?269명 시청…
…
물론 원조의 위상을 넘보진 못한다. 팬층이 단단하게 형성됐을뿐더러, 이미 하와와를 본 시청자들에게는 감흥이 없다.
무엇이든 처음에나 신선한 법이다. 아무리 꼬고 꼬아도 결국 카피캣. 압도적인 1위로서 도전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하와와 팬아트 졸귀넼ㅋㅋㅋㅋㅋㅋ
내가 상상한 봄이 이미지랑 딱 맞음!
└그린 사람 봄잘알 ㅇㅈ
└캠 대신 써도 되겠더라ㅋㅋ
└나도 예대생인데 그려볼까……
글쓴이― 제발 ㄱㄱ
남들이 생각 못한 콘텐츠를 앞세우며 말이다. 귀여운 목소리와 이미지가 딱 맞아 떨어진다.
캠을 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웠던 시청자들에게 BJ를 상징하는 팬아트가 생겼다는 사실은 큰 환영을 받고 있다.
그녀의 방송을 넘보는 건 힘들다. 하지만 2위, 3위만도 여캠 치고는 시청자 수가 엄청나다.
성공 사례까지 나오자 수많은 크루들이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듀라한을 대체 왜 보는 거야? 이해가 안되네……. 이거 다 씹덕 새끼들만 보는 거 맞지?”
―맞습니다 김군 형님!
―감이 날카로우시네요
―얼굴 안 까는 년들 싹 다 퇴출시켜야 합니다!
―옳소! 옳소!
일련의 상황을 마음에 들어하는 이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재미를 보지 못한 크루. 혹은 그냥 듀라한이 싫은 BJ.
아예 대놓고 듀라한을 까내린다.
듀라한을 키우고 있는 쪽은?
당연히 반대의 여론을 형성한다. 파프리카TV의 여론은 크게 둘로 분열되었다.
─듀라한들 때문에 대기업BJ들 전쟁 났네ㅋㅋ
철꾸라지가 대가리인 친듀라한파
김군이 대가리인 반듀라한파
이러다 진짜 한 판 붙을 분위기인데
└누가 이길 것 같음?
글쓴이― 팽팽하지!
└양쪽 다 천외천 크루라……, 싸우면 파프리카 뒤집어짐└운영자들도 눈치 보고 있겠누ㅋㅋㅋ
일촉즉발.
한쪽이 한마디 하면, 반대쪽도 한마디 한다.
그러다 어느 한쪽이 선을 넘는 순간 사태는 돌이키기 힘들어진다.
'진짜 X랄하진 않겠지?'
'적당히 좀 하자 적당히 좀…….'
물론 그건 양측 다 원하는 바가 아니다.
전면전이 되면 결국 손해 보는 건 자신들이고, 그 사이에 다른 크루들이 어부지리를 노릴지 모른다.
그렇다고 물러서기도 싫다. 막대한 이권과 자존심까지 걸려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결론을 내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철꾸라지UP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듀라한 꿀잼인 거 ㅇㅈ? 봄이도 꿀잼인 거 ㅇㅈ? 앙 기모띠~
“100개 감사합니다. 철꾸라지님 팬이신 거 같은데 아무튼 감사해요.”
―말투 존나 역겹네
―닉 보니 철꾸라지 팬인 듯
―봄이가 꿀잼인 건 맞는데……
―철꾸팬들은 원래 저럼?
중립 세력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막대한 발언권을 가진 이. 그것은 바로 괴물신인 하와와를 키워낸 오정환이다.
─철꾸라지의검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김군이 니 욕 준내 하더랔ㅋㅋㅋㅋㅋ
─철꾸개뛔끼야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이 기회에 철엔터ㄱㄱㄱ 너 킹능성이 보인다
─철빡이22호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ㅊㄲㅇ!
…
…
이 사태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아직까지 이렇다 할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를 꼬시는 쪽이 여론의 지지를 얻을 가능성이 크다.
친듀라한파인 철꾸라지쪽이 당연히 유리하다. 자신의 팬들을 보내 적극적인 여론전에 나서고 있다.
오정환도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테니 사실상 시간 문제다.
“진짜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듣고서 나중에 실망이다 그러지 말고.”
―절대 안 함
―ㅋㅋㅋㅋ
―철꾸라지편 들라는 게 아니잖아. 그냥 니 소신 발언 하라구~―정환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결국 못 이기는 척 입을 연다.
아무 말도 안 할 수 있을 만큼 사태가 작지 않다. 당연히 실드쪽의 발언을 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도 않았는데
“듀라한들……. 다 나가 뒤졌으면 좋겠어요.”
작은 핵폭탄이 하나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