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62화 (62/846)

62화

보이는 라디오

보라. 보이는 라디오.

결론부터 말하면 별 건 없다.

'별 게 있겠냐고.'

별 게 있으면 개인 방송 안 하고 TV에 나왔겠지. BJ 한 명이 짤 수 있는 스케일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가능한 것도 존재한다.

─철빡이인생2년차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어디 감?

“일단 밖으로 나왔습니다.”

시청자가 방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것도 실시간으로. 공룡과도 같은 크기인 공중파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보라가 B급 영화 같은 거라고 생각해.'

블록버스터급 영화만 대작인 게 아니잖아.

예산을 적게 들여도 훌륭한 퀄리티가 나올 수 있다. 이를 찍는 감독, BJ의 역할이 받쳐준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여기가 어디냐면 저희 동네에요. 시내쪽.”

―정환이네?

―올~

―근데 별 거 없네

―진짜 '보이는라디오'로 찍고 있누ㅋㅋㅋㅋ

별거 없다.

별거 없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부터지.'

이 별거 없는 광경을 특별하게 만드는 능력.

모르긴 몰라도 영화 감독도 비슷한 고민을 할 것이다. 예산은 한정돼있고, 연출은 제한적인데 어떻게 좋은 영화를 만들지.

“제 단골 가게에 왔습니다. 왜 단골이 됐냐고요? 점원이 예뻐요.”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

―맛이 아니라?

―네??

―이 집 재밌네ㅎㅎ

물론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여하튼 좋은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거시적인 관점 하나는 대동소이할 거라고 생각한다.

─김군아쫌가라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그래서 점원은 어딨나요? 하앜하앜

“100개 감사합니다. 저도 보여드리고 싶은데……. 킹반인이잖아요 킹반인.”

―또 안돼?

―에휴……

―철수하자 철수해!

―점원도 듀라한이었누ㅋㅋㅋㅋㅋ

이런 상황에서 밀어붙이는 감독 혹은 BJ도 있을 것이다.

아니, 실제로 있다.

'그래서 사건이 많이 생겨.

강남역에서 헌팅하는 BJ 단속. 유튜버가 출입 불가능한 노튜버존.

기타 등등 안 좋은 사례가 셀 수도 없이 생긴다.

물론 현재는 초창기다. 사람들이 개인 방송 자체를 잘 모른다. 때문에 신경도 안 쓸 테지만 그건 알 바가 아니다.

“헐~ 오빠 또 왔어요?”

“그래.”

―진짜 단골인가 보네

―오 목소리!

―응 그래봤자 듀라한^^

―성대에 기름 낀 거 같은데 무슨ㅋㅋㅋㅋ

나는 내 나름의 선이 있다. 헌팅BJ 단속이나 노튜버존처럼 사회적 기준은 얼마든지 변한다.

남들이 한다고 옳은 게 아니고, 남들이 안 한다고 틀린 게 아니다. 스스로 판단해 틀리지 않은 행동을 해나간다.

“오빠 금수저에요?”

“갑자기?”

“맨날 이 시간에 와서 술 까잖아요. 난 일하는데~.”

“…….”

이런 거.

평일 대낮에 약주 한 잔 걸치면서 식사 좀 할 수 있는 거지.

'직업의 특수성이라는 게 있다니까.'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하는 직장인이 아니잖아.

남들 일할 때 논다는 건, 남들 놀 때 일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련의 사실을 이해받는 게 생각보다 많이 어렵다.

“나랑 노가리 까고 있어도 돼?”

“지금 손님 없어서 히히.”

물론 친하니까 하는 말이다. 방학 중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키는 대략 165±1 몸무게는 48±2, 바스트는 그럭저럭이지만 허벅지 라인이 예뻐서 참 좋은 점원이다.

―오

―허리 ㅗㅜㅑ

―허리는 꼴알못이지ㅋㅋㅋ 허벅지가 예술인 거신데

―얼굴이나 보여달라고 ㅡㅡ

그 진가를 알아본다.

초상권이 침해되는 위는 비추지 않아도, 아래쪽을 비추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친해.'

동의를 받지 않은 사람의 얼굴을 비추는 건 문제가 된다.

하지만 동의를 받은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즉, 친한 이라면 그 가능성이 현저히 올라간다.

“폰 보이지? 나 방송 중이거든?”

“지금요?”

“응. 시청자들한테 안뇽~ 해줘.”

권유하는 방법 또한.

이게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있다. 앞선 대화도 이 흐름을 이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오빠 진짜 방송하는구나. 막 채팅 올라간다!”

“말했잖아. 백수 아니라고.”

“구란 줄 알았어요.”

“대체 왜?”

“약간 허언증? 막 이래.”

“…….”

―개예쁜데ㄷㄷ

―안뇽!

―ㅆㅅㅌㅊ

―듀라한 드립 치던 놈들 쏙 들어갔죠ㅋㅋㅋㅋㅋ

아닐 수도 있고.

평일 대낮에 약주 한 잔 걸치는 남자의 신뢰도가 썩 높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근데 그거랑은 별개야.'

시시껄렁하고, 가벼운 분위기인 편이 방송을 진행하기 편하다.

괜시리 진지하면 마음을 먹는 게 어려워진다. 보라는 자연스러운 정도가 딱 좋다.

“여기요.”

“애정은?”

“제가 만든 거 아니거든요~.”

“하이볼은 하율이가 타줄 거지?”

“히히 그럴까요?”

―애정 ㅇㅈㄹㅋㅋㅋㅋㅋㅋㅋ

―와 맛있겠다! 물론 음식이

―근데 하이볼은 뭥미? Hi?

―이름이 하율이구나

솔직히 음식은 별 거 없다.

그냥 동네 돈까스집.

나름대로 본고장 느낌을 내려는 듯 이자카야 느낌의 메뉴가 추가된 정도다.

“여기 솔직히 다른 건 별론데. 돈까스가 두툼하면서 익힌 정도가 미디엄 웰던이라 씹는 맛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워요.”

―다른 건 별론뎈ㅋㅋㅋㅋㅋㅋ

―침 넘어간다

―맛깔나게 설명 잘하네

―오~ 먹방도 하는 거임?

적당히 썰어서 적당히 먹는다. 이것만으로도 적당한 방송이 된다. 이른바 '먹방'이란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그것이다.

“여기요.”

“땡큐.”

“어때요?”

“넣었네.”

“네?”

“애정.”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시트콤 찍고 앉았네

―오……

―이 새끼 보라 좀 할 줄 아는데??

그리고 술방.

단순히 '보라'라고 정의하기엔 여러가지가 섞인다.

'보라가 별 거 없는 건 맞는데.'

그 별 거 없는 것도 포장하기에 따라서는 특별해진다.

B급 영화도 감독 역량에 따라 충분히 대작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보라고인물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첫 야방부터 헌팅을 하는 그는 도덕책……

“100개 감사합니다. 헌팅 아니에요. 그냥 살짝 썸 타는 정도?”

―썸ㅋㅋㅋ

―평소에 뭘 하고 다닌 거야!

―보라 재능 보소

―궁금하다…… 이 남자의 일상

대충 이런 느낌이다.

얼핏 브이로그와도 비슷하지만, 보다 방송에 가깝게 살린다.

나의 홈스테이지로 돌아왔다.

* * *

개인 방송 갤러리.

최근 뜨거운 논란이 있었다. BJ오정환의 박쥐 같은 태도가 문제시된 것인데.

─오정환이 박쥐처럼 굴었던 이유 떴다!

「보라) 오정환. 오늘 썸 좀 타겠습니다」_ ?7, 191명 시청'보라킹의 본능을 주체하지 못했기 때문에'

└뭐임? 오정환 보라도 함?

└첫방에 7천 명을 넘었네

└기웃거릴 만하누ㅋㅋㅋㅋ

└보라의 떠오르는 샛별 빛정환!

까는 걸 좋아해. 쉽게 흔들려.

이는 단점임과 동시에 때로는 놀랄 만한 파급력을 만들기도 한다.

힘의 총량을 유지한 채 전환된다.

뜨거운 논란이, 뜨거운 이슈로 변해버린다.

오정환에 대한 관심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말이다.

『현재 시청자 순위』

1. 오정환_ ?7, 191명 시청

2. 예능인[김군]_ ?5, 274명 시청

3. 프제_ ?2, 921명 시청

오정환의 방송이 실시간 시청자 수 1위를 기록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게임 방송은 수익 대비 시청자 수가 많다. 자체적인 콘텐츠를 잘 짜내기도 한다. 그가 벌써 대기업 취급을 받게 된 이유다.

하지만 '보라'라는 새로운 날개를 단 건 전혀 다른 이야기다.

“뭐야 띠바? 오정환이 왜 보라를 하고 있는데?!”

“그게 그……, 어그로가 끌렸잖아요.”

“근데?”

“그때 홧김에 야방을 한 게 잘 먹힌 모양입니다.”

“뭔 개소리야? 그게 말이 돼!”

상위권BJ들의 밥줄이다. 쉽게 합석을 허락하지 않는다. 갑작스레 뜨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견제에 들어간다.

그 견제에 공백이 생겼다.

철꾸라지는 몸을 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김군은 아예 신경을 끄고 있었기 때문에.

“이 새끼가 뭔데 내 위에 있어?”

“이야기 못 들었어요?”

“난 방송에 집중하고 있었지. 당장 설명해!”

무엇보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났다.

평소처럼 방송을 끝낸 김군.

분명 좋은 느낌이었음에도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이런 ㅈ같은…….'

그 이유를 깨닫는다. 빼앗긴 것이다. 오정환의 방송이 자신을 제치고 시청자의 관심을 다 빨아들였다.

물론 잠깐이다.

최근 사태로 방송 어그로가 끌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해도 될 만큼 BJ업계는 만만하게 굴러가지 않는다.

─김군 오정환 그렇게 무시하더니ㅋㅋㅋ

시청자 따였네

퇴물 다 됐누?

└둘이 사이 안 좋음?

글쓴이― ㅇㅇ 겜비라고 무시하잖아

└오정환 보라 시작하자마자 따인 주제에ㅋ

└개쪽팔리겠다ㅋㅋㅋㅋㅋㅋㅋ

그가 예상하고 있던 반응은 이미 현실로 이루어졌다.

그도 그럴 게 개인 방송 갤러리에서 대기업BJ의 요주의 대상이다.

최근 누가 대세인지. 항상 실시간으로 거론이 된다. 이는 실제 민심과 인지도에도 영향을 주기에 무시하기 힘들다.

─군대나 가라 김군 븅신 새끼야ㅋㅋㅋㅋㅋ

─나 같으면 쪽팔려서 한강 감

─빛정환! 빛정환! 빛정환! 빛정환! 빛정환!

─젖군쉨 할 줄 아는 건 젖 주무른 것밖에 없죠?

커뮤니티 분위기가 가볍다. 이용자들도 생각이 깊지 않다. 재미있는 가십거리고, 깔 거리만 된다면 상관하지 않는다.

“아나 X발…….”

“알바 풀까요?”

“안 풀고 뭐했어 이 새끼야!”

보통은 이런 상황이 오기 전에 최대한 통제한다. 까임의 대상이 자신들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너무 지나치게 빠르다.

─갓정환 다음 방송 일정 떴다ㄱㄱㄱㄱㄱ

[오정환 방송국 공지. jpg]

다음 핑크린 레이드 일정 떴다 ㅇㅇ;

└X발련아!

└단풍잎 하고 있누ㅋㅋㅋㅋㅋ

└이 새끼는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법을 모르나?

└보라 하라고 보라!

그리고 예상을 벗어나 버렸다.

베테랑의 경력과 능구렁이의 속내를 가진 대기업 크루들조차 갈피를 잡지 못한다.

“오정환을 한 번 조져야 되는 거 아니야?”

“근데 요즘은 또 별 생각 없는 거 같던데…….”

“그냥 ㅈ대로 하는 거겠지. 이런 새끼들이 제일 컨트롤 안돼.”

얘가 야심을 드러냈다. 가만히 두면 안되겠다.

차라리 그런 거라면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기 쉬울 것이다.

근데 아닌 거 같아. 애매하게 건들 상대도 아니야.

망설이는 사이 오정환의 방송은 커져만 간다.

* * *

오랜만의 보라판.

이 짜릿한 긴장감이 그리웠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재밌어.'

여기저기 악의가 빗발친다. 조금만 한 눈을 팔면 등에 칼을 찔린다.

그런 장소에서 사고를 치고, 여론을 내 뜻대로 주무른다.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핑크린을 물리친 원정대여, 그대들이 진정한 시간의 승리자다!』

그것이 주콘텐츠를 포기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핑크린 레이드.

무사히 마무리된다. 빅뱅 업데이트로 평균 화력이 벌써 2배 이상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18인으로 했는데 오히려 더 빨라졌네요. 앞으로는 6인까지 가는 걸 목표로 하겠습니다.”

―6인 핑크린ㄷㄷ

―진짜 옛날이었으면 상상도 못할 데미지가 나오네

―근데 그래도 힘들어

―공대장이 잘하니까 깨는 거지 ㄹㅇ

할 건 다 한다. 애초에 그게 베이스다.

내가 지향하는 건 어디까지나 자연스러움이다.

'홧김에 나가서, 보라를 했는데, 무심코 잘돼버렸다.'

그런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말이다.

보라판은 행동 하나하나의 여파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아

―방장 게임만 하네

―보라 보러 왔는데……

―진성 겜덕후였누

물론 그것이 몸을 사린다를 의미하는 건 아니다.

자연스러움. 그 연장선상이라면 움직이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딩동―♪

기다리던 초인종이 울린다. 마침 시간도, 시기도 적절하다. 단풍잎스토리 끝나고 시청자가 슬슬 빠져나갈 때.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2부 시작하겠습니다.”

이제는 액셀을 밟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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