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나는 스토리를 굉장히 중요시 여긴다.
여캠을 초대해 주물주물 하며 합방을 한다, 가 아니라 사연이 있는 이와 방송을 진행하는 방식.
'사실 결국은 여자 불러서 노가리 까는 거긴 한데.'
적어도 시청자의 시선에서는 다르게 느껴진다.
현재 진행되는 방송. 2부라는 명목으로 찾아온 이는 다름이 아니다.
“와~ 좁다!”
“야……, 자취방이야.”
“히히 알아요. 그래두~.”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꼬맹이가 아니다. 엊그제 만났던 돈까스녀. 그렇게 정의하긴 좀 그렇고 허벅지가 라인이 예뻤던 하율이다.
─아란만렙ing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헐 지금부터 보라 하는 거임?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술이나 한잔하자고 불렀습니다.”
―그게 보라지ㅋㅋㅋㅋㅋ
―와
―이런 건 예고 좀 하고 하라고!
―나간 새끼들 인생 절반 손해 봄 ㅇㅈ?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방송의 주시청자층은 단풍잎스토리다.
그리고 게임 시청자 입장에서 보라는 낯설다. 뭔가 좀 퇴폐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맛있게 요리해도, 먹는 사람이 안 먹으면 의미가 없잖아.'
그렇기에 세운 플랜이다.
방송 막바지에 피크를 찍고, 이를 고스란히 보라로 유입시킨다.
고깃집에서 냉면 서비스로 드립니다~ 하면 냉면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한 입 하는 것처럼.
─메창인생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실례인데……, 원래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인가요?
“100개 감사합니다. 그냥 친구? 정도 사이니까 편하게 물어보세요.”
“저 이 오빠집에 오는 것도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좁다고 하지.”
“왜요?”
―ㅋㅋㅋㅋㅋㅋ
―자존심 상하자너~
―이 나이에 어떻게 집이 있어ㅠㅠ
―자취방도 솔직히 금수저야!
8평이면 진짜 넓은 거야. 고시원에 짱박혀 봐야 정신을 차리지.
'발도 뻗을 수 없고, 조금만 부스럭거리면 옆방에서 쾅! 하고.'
요즘 애들은 곱게 커서 고생을 모른다. 물론 이런 생각 자체가 너무 꼰대 같긴 한데.
“근데 진짜 예쁜 거 많다.”
“그치?”
“다시 봤어요.”
“…….”
실제로 살짝 꼰대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인테리어에는 늘 공을 들인다.
'캠 각도상 평소 방송때는 안 보이는데.'
우리 봄이가 모자로 썼던 잔과 술병, 그 외 여러가지 기호품들이 즐비하다.
보통 남자방에 여자 부르는 걸 꺼려하지만 나는 오히려 자신이 있다.
─철빡이69호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우와 부자네 위스키도 있고ㄷㄷ
“무슨 부자에요. 그러고 보니 위스키 하니까 생각 나는데……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당연히 나죠.”
하이볼.
위스키로 만드는 칵테일.
그렇게 말하면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맥주랑 비슷한 도수와 가격대의 평범한 술이다.
'하이카라'라는 말까지 있다. 한국식으로 따지면 '치맥이란 의미다. 치킨을 먹으며 하이볼을 마시는 게 대중적인 일본에서 생긴 신조어다.
'근데 그런 하이볼을 비싸게 만드는 바보들이 있어.'
하율이가 일하는 돈까스집이 그러했다. 가볍게 마셔야 되는 술이 너무 비싸. 어떤 위스키를 써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생긴 문제다.
“그때 오빠가 엄청 꼬장 부려서 결국 바꿨잖아요 히히.”
“무슨 꼬장이야! 매니저랑 친하니까 조언 좀 한 거지!”
―손놈이었눜ㅋㅋㅋㅋㅋㅋㅋ
―아 그건 좀 ㅎㅎ
―사이 좋네
―피해자 : 사장
아니, 사장은 가장 이득 본 사람이지.
보통 하이볼에 산토리 가쿠빈이라는 일본 위스키를 쓰는데.
'이게 일본이랑 한국 가격이 3배 차이가 나.'
한 마디로 호구 잡힌 거라고.
마케팅의 노예다. 그보다 합리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는 하이볼용 위스키들이 새고 샜다.
“이마트에서 파는 금뇌조를 1~2주 정도 에어링하면 퀄리티는 더 좋으면서 가격은 반값이야.”
“우리 아빠도 그런 건 모를 텐데.”
―'틀'
―에어링이 뭐임?
―금뇌조는 또 뭐야
―오정환 이 새끼 알중이었누ㅋㅋㅋㅋㅋ
그냥 취미다. 보통은 말하고 다니지 않지만 가끔 답답해서 입이 간지러워질 때가 있다.
'외국인들이 소주를 한 병에 만 원씩 주고 마신다고 생각해봐.'
그 돈 주고 안 마셔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잖아?
갓직히.
내가 꼬장을 부린 게 아니다 절대.
“근데 진짜 오빠가 메뉴 조언해준 이후로 매상이 엄청 올라서 매니저 오빠랑 사장 언니가 엄청 좋아해요.”
“봐봐…….”
“오빠 삐진 거 되게 귀엽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삐졌어
―ㅅㅂㅋㅋㅋㅋㅋㅋㅋ
―위스키는 모르겠고 티키타카 귀엽네
그리고 나름 칵테일이기 때문에 만드는 순서와 재료 선택에도 차등을 둬야 한다.
사소한 팁까지 알려줬으니 당연히 매상이 오를 수밖에 없지.
“그런 의미에서 제가 그녀에게 칵테일 한 잔 대접하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기본적으로 여자들이 싫어할 수가 없다. 평소 칵테일에 대한 환상, 아니 잘 알고 있다면 더더욱.
“어머.”
“왜?”
“저도 알바할 때 매일 수십 잔씩 만들지만 하이볼이 이렇게 맛있는지는 처음 알았어요.”
“그야 당연히 비싼 걸 넣었으니까.”
―비싼 위스키ㅋㅋㅋㅋㅋㅋ
―역시 맛집의 비밀은……
―하이볼이 뭔데 그렇게 맛있음?
―이자카야 가면 한 번 마셔볼까
별 건 아니다.
맥캘란 18년.
기주를 존나 비싼 셰리로 쓰고, 탄산수는 조금만 넣은 후 사이다로 풀업 한다.
여자들이 좋아하는 달달함을 간직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기주의 고급스러움을 살리기 위해 레몬이나 민트 등은 첨가하지 않는다. 하이볼을 어느 정도 마셔본 그녀에게 적합한 레시피다.
'무심한 듯 시크하게.'
마음으로 통하는 게 있다고.
꼭 일일이 열거해야 진심을 느끼는 게 아니다. 알코올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이런 식의 적당한 잡담과 썸도 '보라'에 해당한다.
B급 영화.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느껴지는 감성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꼭 B급이어야 돼?
잘 만들어서 A급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하면 되지.
─보라인생3년차님, 별풍선 333개 감사합니다!
뽀뽀 가능?
“333개 감사합니다. 근데 그건……, 제가 결정하면 큰일 나요.”
“그럼 제가 결정하면요?”
그렇지 않다. B급이기에 의미가 있다.
특히 이런 인터넷 방송에서는 말이다.
'이미 잘 만들어진 영화에 너가 끼어들 수는 없잖아?'
부족하기 때문에 채우고 싶어진다. 시청자가 발언권을 가진다.
그러니까 대충.
쪽!
이런 느낌이다.
한 발짝 진도를 나가고 싶었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와ㄷㄷ
―이걸 해주네
―개부럽다……
―누가 봐도 마음 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
별풍선 333개. 보라계의 은어다. 입술 모양의 3이 늘어선 모양으로, 뽀뽀를 부추기기 위해 쏘는 개수다.
'뽀뽀 정도는 할 만하지.'
봄이랑도 하는 건데 뭐.
배우만이 존재하는 방송에서 시청자가 작가의 역할을 해주는 게 보라의 진짜 묘미다.
─Ejrclwk892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1000개 쏘면 키스 가능?
“그건 좀 선 넘었고요. 우리 아직 사귀는 사이 아닙니다.”
―키스는 X발ㅋㅋㅋㅋㅋ
―퀘이나 남삐끼는 해주던데
―우~~~
―그 와중에 '아직'
그 선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은 BJ의 역할이며, 재량, 그리고 책임이다.
분위기를 탔다는 핑계는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 주물주물 하는 거 보고 싶은 거면 콜팝티비를 가.'
VIP방 입장권만 사면 진짜로 주물주물 하고 물고 빠는 거 다 볼 수 있으니까.
물론 그래봤자 유사 섹스.
그런 한심한 짓이 정 보고 싶으면 차라리 야동을 보면 된다.
“그럼 우린 무슨 사이에요?”
“삼귀는 사이?”
“사? 삼? 아……, 헤헤.”
방송의 특성상 꼬추로 생각하는 애들이 있다.
별풍선으로 현혹해도 나는 내 신념에 어긋나는 방송을 하지 않는다.
나 오정환의 보라가 무엇인지 머릿속에 때려 박아준다.
* * *
개인 방송 갤러리.
그들만의 리그.
그렇기에 사건이 일어나면 전파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오정환 보라 감성 미쳤네ㄷㄷ
이건 처음 보는 감성인데 뭔가…… 애틋하다
└영화 한 편 때린 느낌임
└뭔데?
└오정환 또 보라했어?
└아니, 공지 본 적도 없는데……
피드백이 빠르다.
감상이 어땠는지. 어떤 점이 좋았는지. 특히 다른 BJ들에 비해 좋은 점이 무엇인지.
─남캠놈들이었으면 방송 끄고 볼장 다 봤다 개추ㄱㄱ갠방갤 민심 본다
└쭉쭉 올라가누ㅋㅋㅋㅋㅋ
└선 존나 깔끔하게 잘 지킴
└ㄹㅇ 갓정환
└아ㅋㅋ 내일 휴방하는 것까지 머릿속에서 그려지네
비교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이다.
본 것이 워낙 많기도 하다. 파프리카TV의 보라는 확실히 선정적이다.
BJ들의 사생활이 문란하다.
그런 뒷소문이 도는 건 예삿일이고, 실제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도 썩 신뢰가 가지 않는다.
“저 아직 안 취해써요~.”
“그래.”
“안 취해따니까요?”
일단 오빠 잡고, 택시까지만 걸어가자.”
―누가 봐도 취했는데
―취한 사람 특) 안 취했다고 함
―이걸 보내준다고?
―나 같으면 방송 끄고 엎어트렸닼ㅋㅋㅋㅋㅋㅋ
충신지빡이님이 강제퇴장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정환은 달랐다. 혹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전혀 사심을 안 비친다. 물론 그 정도라면 카메라를 의식한 행동으로 볼 수도 있으나.
─오정환 이 새끼 존나 쓸데없이 클린하네
택시 잡아서 집까지 배웅하고
다시 택시 타고 돌아와서 단풍잎 하고 있음
└??? 단풍잎을 왜 하는데
글쓴이― 일퀘 깨는 거 까먹었대
└아 일퀘는 ㅇㅈ이지
└떡이 된 여자보다 일퀘가 중요하다니……
그렇게 생각되지 않는다. 선정적인 보라에 익숙한 시청자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하다.
그리고 보라를 모르는 시청자들에게는 시트콤을 본 느낌을 준다.
─어제 보라라는 거 처음 봤는데
오정환 방송에서
그냥 술 마시면서 노가리 까는 거구나~
별거 없는 거 같은데 이상하게 재밌더라
넋 놓고 계속 보게 됨
└어떤 점이?
글쓴이― 설명하라면 잘 모르겠는데 그냥 시트콤 느낌 └크~ 이건 봐야 알지
└내가 썸 타는 거 같아서 설레게 됨ㅋㅋ
커뮤니티를 가리지 않고 빈번하게 언급된다.
기현상. 사태를 관망하던 보라BJ들을 긴장케 만들기 충분했다.
* * *
최근의 방송.
게임BJ로도, 보라BJ로도 주목 받고 있다. 차기 파프리카TV 대통령감이라는 요란스러운 수식어까지 올라온다.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딱히 스스로에게 엄격하기 때문이 아니다.
글자 그대로 어림도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갑자기 훅―! 치고 올라오는 신인은 종종 생긴다.
하지만 그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철꾸라지UP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정환이도 크루 들어가야 하지 않냐? ㅋㅋ
“아직은 제가 어떤 방송을 해야 될지 갈피를 못 잡은 상태라…….”
―다 잡은 거 같은데?
―이 새끼 언제까 신인이눜ㅋㅋㅋ
―그냥 하면 된다니까 그러네
―ㄹㅇ 개답답
그 이유.
파프리카TV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다른 플랫폼들과 달리 집단을 이루는 게 거의 강제되다시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살아나기가 힘드니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건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앞으로의 내 방송 인생을 판가름할 중요한 갈림길이다.
“헐~ 대박!”
“정환 오빠다. 하이!”
그리고 실제 갈림길을 건너고 있었다.
맞은편.
어디선가 한 번 보았던 얼굴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온다.
짝!
인사에서 끝내지 않고 하이파이브.
요즘 애들답게 텐션이 장난이 아니다. 돈슨 페스티벌에서 보았던 봄이의 친구들이다.
'이런 우연도 다 있네.'
아무래도 같은 상권에 속한 동네다. 시내 쪽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주칠 만도 하다.
하율이와 비슷하게 콘텐츠로 살릴 수 있나 고민이 들던 찰나.
'아니, 이건 영화가 아니야.'
한 편의 드라마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