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떡볶이녀 Part.1
방송을 유난히 일찍 끝낸 날이었다.
“오빠 봄이에요 봄이!”
“그래.”
“꾸웩!”
“됐으니까 빨리 와.”
집에 봄이를 불렀다. 평소였으면 현관문 통과 의례가 이어졌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없다.
머리를 음미하는 걸 포기한다. 대신 다른 곳을 찬찬히 살핀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이즈가 대충 잡힌다.
“저 요즘 사는 게 너무 힘들어요.”
“왜.”
“학원, 학원, 학원……. 정말이지 떡볶이 먹을 시간도 없어요.”
“그래, 힘들겠네.”
작업을 하며 이야기도 들어준다. 봄이는 방송을 쉬고 있다. 악플에 시달려서?
'아니, 애시당초 정해져 있었어.'
인생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나이다.
학창 시절. 공부에 푹푹 찌들어야 한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한국에서는 상식이다.
봄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는 소리다.
방학 초만 잠깐 놀기로 부모님과 합의 봤다. 그 반동으로 최근 빡세게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저 요즘 똑똑해진 기분이 들어요!”
“그렇구나.”
이번 기회에 많이 해두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은 꼭 공부를 잘하는 것만이 미덕이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살리는 길도 존재한다.
내가 봄이에게 하고 있는 짓. 바로 어린 티를 벗기기 위한 치장이다.
'진짜 티 말고.'
딱히 불가능할 것도 없는 일이다.
중·고등학생 아이돌들. 분명 봄이와 비슷한 나이임에도 남성팬들이 좋아할 만한 매력을 뿜어낸다.
봄이와 달리 성장이 우수해서?
그것도 솔직히 좀 있지만 화장과 의상으로 커버하는 비중이 높다.
그 점을 착안해 코디를 하고 있다.
'가리려는 게 아니야.'
보통 화장이라고 하면 속인다, 속았다! 그런 선입견이 있고 실제로 틀린 말도 아니다.
특히 한국 여자들은 화장 전후의 역변이 너무 크다.
“눈을 좀 더 땡그랗게 떠봐.”
“땡그랗게!
“죽자고 뜨지 말고.”
“꾸웩!”
그런 걸 미성년자한테 하면 오히려 역효과다. 아무리 잘해도 위화감이 생긴다.
'그러니까 속이지 않고, 살리는 거지.'
성숙미를 드러낸다. 그녀의 안에 잠자고 있는 포텐셜.
솔직히 없을까 봐 좀 불안하긴 했는데.
“음……, 가능.”
“뭐가요?”
“그런 게 있어.”
생각보다 훌륭하다.
얼굴만 놓고 보면 스무 살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물론 그 이상은 때려죽여도 불가능하지만 애초에 목표치가 그쯤이었다.
'그 이상은 본인의 매력이 죽잖아.'
청순한 컨셉으로 밀 생각이다. 그러면서도 뿜을 것은 뿜어야 한다.
뽕… 아니 소도구를 사용해 체형을 보정키로 마음 먹었다.
“아~~~~”
“아!”
“아~ 라고 이 자식아.”
“꾸웩!”
그리고 발성법. 엔터에 들어가면 여자 스트리머들은 기본적으로 받는다.
남성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취향의 목소리를 내는 트레이닝 말이다.
'특히 듀라한들이 집중적으로 받지.'
보통 여캠들은 당연히 얼굴이 주무기다.
그렇다면 얼굴이 없는 듀라한들은?
자연스럽게 목소리가 가장 튄다.
차별화되는 장점을 가져야 한다. 얼굴이 없다는 단점은 승화시킨다. 그래서 일반적이지 않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무슨 애니메이션 성우도 아니고.'
요상한 하이톤.
신경을 쓰면 그런 트레이닝도 가능하다. 하지만 현재 봄이에게 필요한 것은.
“아~~.”
“그래, 그렇게 차분하게 말해봐.”
“봄이에요 봄이~. 봄이가~ 왔다구요~!”
“……그거 말고.”
뇌세포도 살짝 교정이 필요할 듯싶다. 하루이틀 걸릴 일은 아닌 문제. 실행일까지 빠듯하게 맞춰야만 한다.
'갈구면 어떻게든 되겠지.'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이판사판으로 시작한 게 꽤 괜찮은 느낌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완성은 다른 이야기다. 외모, 연기, 코디, 장소 세팅 기타 등등.
각각을 완벽 이상으로 준비해도 성공은 보장할 수 없다.
시너지가 안 날 수도 있다. 쓸데없이 화려한 비빔밥이 될지도 모른다.
성공과 실패를 예측할 수 없는 게 B급 드라마의 묘미이기도 한데.
“오빠?”
“어? 어……. 어, 그래.”
―이 새끼 당황했네ㅋㅋㅋㅋㅋ
―말잇못
―정환이 이러는 거 처음 봄
―진짜 이쁘다……
가끔 의도한 바 이상으로 믿기지 않는 완성도가 나올 때도 있다.
차려 입고, 꾸몄으며, 조명과 분위기까지 받쳐준다. 알고도 사람이 달라 보이는 기적이 일어난다.
'내가 봄이의 강력함에 진짜로 전율할 날이 올지는 몰랐네.'
여하튼.
정신을 차려야 한다.
지금 나는 컨설턴트가 아닌 배우, BJ의 입장에서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니까.
─철빡이의환생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번호 따면 1000개 미션 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ㄱ
“알겠습니다. 미션 접수했어요.”
반응도 오고 있다.
자연스럽게.
지금 내가 취해야 할 최선의 행동을 취한다.
“실수로 카메라를 비쳤네요. 얼굴 부분은 제가 책임지고 삭제하겠습니다.”
“오빠.”
“네.”
“저 몰라요?”
“어, 응?”
그렇게 말하면 헷갈리잖아.
봄이와 눈을 마주치는 게 이리도 어색했던 경험이 있는지 참 신선하다.
“우리 어디서 만났던가? 헷갈린 건……, 아니죠?”
“히~.”
…갑자기 몸에 좋고 맛도 좋다고 하는 거 아니겠지?
히죽 평소와 같은 미소지만 흘러나오는 매력은 생판 다르다.
붉은 혀를 삐죽 내밀자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만다.
“돈페때 만났잖아요.”
“돈페? 진짜?”
“네. 저 오빠 방송에 출연도 했는 걸요.”
―헐
―여고생 걔네인가?
―저런 애가 있었어???
―아니, 설마……
그것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집단 지성이라는 걸 얕보면 안된다. 채팅창에 명탐정 코난들이 출동하며 순식간에 정체가 밝혀진다.
* * *
개인 방송.
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건 개인 방송 갤러리만이 아니다.
──떡볶이 묻힌 1번 여고생 근황 떴다. Real
[오정환 생방 캡처짤. jpg]
미안하다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오정환 보라 콘텐츠 수준 ㄹㅇ 실화냐?
그 찐따 같던 떡볶이녀가 맞나?
진짜 오정환은 전설이다
└왜 진짠데
└그 찐따 같던ㅋㅋㅋㅋ
└저게 진짜 떡볶이녀라고??
└내가 알던 꼬맹이가 아닌데
최근 잠잠했을 뿐이다. 오정환의 본진은 오히려 그 밖이다. 단풍잎스토리는 물론, 일반 커뮤니티에서도 명성이 자자하다.
돈슨 페스티벌. 그리고 여고생팬들.
두 가지 화제는 한 번쯤은 무의식적으로 클릭하게 돼있다.
─아니, 이 베이글녀가 떡볶이녀라고?!
[오정환 카페 썸녀. jpg]
미안하다 이거 질문하려고 어그로 끌었다
베이글녀는 아닌데 진짜 느낌 있지 않냐?
떡볶이녀 본인 아니고 언니 같은데;;
└자기 입으로 본인 맞대
글쓴이― ㄹㅇ??
└몰라보게 예뻐졌긴 함
└진짜 세계관 최강자의 방송이다ㄷㄷ
그런 떡볶이녀의 근황.
단순히 올라온 정도로 불이 지펴질 만큼 사람들이 한가하지 않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분명 아이 같았다. 이쁘긴 이쁜데 연애 대상은 아니야. 드라마로 치면 아역 느낌으로 귀여웠다.
그 아역이 그렇듯 성장한다고 반드시 이쁜 게 아니다.
마의 16세.
이를 넘어선 이후에도 미모를 유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데.
─갓볶이녀 근황. jpg
─'성장기'의 위엄!
─내 학창 시절 ㅇㄷ? 내 학창 시절 ㅇㄷ? 내 학창 시절 ㅇㄷ?
─화장하니까 무슨 연예인급이네;
…
…
커뮤니티의 반응이 폭발한다.
객관적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의 미모를 자랑하게 됐다.
심지어 1 대 1.
돈슨 페스티벌 당시와 달리 집중 조명된다.
초근접에서 얼굴도, 몸매도, 심지어 피부까지 모든 것이 드러난다.
─떡볶이녀 진짜 연예인급 아님?
[커피 마시는 떡볶이녀. jpg]
아니 와
얼굴이 무슨 머그잔만 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비교해서 보니 미쳤네
글쓴이― 그치?
└본판은 원래 좋았긴 한데 어떻게 두 달만에 달라지냐
감히 말을 걸기 힘들 정도로 황송해졌다. 어떻게 그런 극적인 변화가 가능했을까?
“저 오빠 다시 만나고 싶어서 온 거에요.”
“그, 그래?”
“근데 용기가 안 나서……, 창밖으로 보고만 있었는데 와줬어요. 오빠가.”
그 이유.
두 사람의 대화에서 유추할 수 있다.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까지 모두 말이다.
─진짜 여자는 사랑을 하면 변하는구나
성장기도 성장기지만
두 달만에 저렇게 변한 건 사랑 말고는 설명이 안되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
└화장빨도 있지. 그때는 얼굴에 바른 게 떡볶이 국물밖에 없었잖아글쓴이― ㅅㅂ 웃으면 안되는데ㅋㅋ└진짜 정환이 엄청 좋아하는 듯! 둘이 잘됐으면 좋겠다
갑작스레 달라진 이유.
그녀와 만나게 된 이유.
다음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이유까지.
설사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돼도, 감성적으로 납득이 간다.
그럼에도 영 풀리지 않는 의문은 명탐정 코난들이 출동하여 샅샅이 찾아낸다.
─떡볶이녀 올해 고3인가 보네
『수학의 정석― 미적분과 통계』
테이블에 이거 올려져 있는 것 보니 맞는 거 같은데?
└갓학의 킹석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정석 보는 거 보면 공부 잘하는 건 아닌가 봐
└또! 또! 인생 오지라퍼 새끼들
└그래서 SKY는 가고 아가리 터는 거겠죠?
그녀의 나이. 연애에 있어 중요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중학생처럼 생긴 게 아니라, 진짜 중학생이면 여러가지 난감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고등학교 고학년이면 알 거 다 안다. 그리고 할 거 다 하는 나이다.
다섯 살 차이라는 걸 생각하면 연애 대상으로 성립하지 못할 것도 없다.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샘솟는다.
그런 풋풋한 커플.
'인터넷 방송'은 이를 실시간으로, 그것도 리얼리티 있게 시청할 수 있다.
공지― 『작은 선물을 하려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오정환입니다.
얼마 전, 저의 부족한 방송을 좋아해주는 한 여성팬과 만남을 가졌습니다.
그날은 유난히 우울했고, 몸에 힘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어요.
그녀를 마주쳤을 때, 저는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방금 그 보답을 허락한다는 답장을 받았습니다.
저의 작은 선물을 같이 지켜봐 주세요.
2012. 02. 06 PM 07:00
오직 파프리카TV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오정환의 개인 방송국.
그 예고편의 성립과 함께 트래픽이 조금 과부화된다.
* * *
방송 막바지.
소문을 듣고 온 시청자들로 가파른 포물선을 그렸다.
채팅창이 북적거리며, 방송의 연장을 직접적으로 요구까지 했다.
보통은 시청자 수가 아까워서라도 진행한다. 어중간한 BJ들이라면 그럴 것이다.
예고를 칼같이 지키며 커피를 마신 직후 집으로 돌아와 방종각을 잡았다.
'맛있는 음식일수록 뜸을 들일 필요성이라는 게 있어.'
방송도 마찬가지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하는 것도 있지만. 이처럼 기다림의 미덕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있다.
이미 여러 커뮤니티에서 원하는 반응이 터져 나온다.
모자란 부분을 상상력으로 채우고 있다.
내가 드라마를 가장 재미있게 즐기는 방식이기도 하다.
─최단퇴한테 또 속는 병신들 있네ㅋㅋㅋㅋㅋㅋㅋ
바로 방종한 거 보면 모르겠음?
이 새끼 판 깔리면 감당할 능력 없음
그렇게 속고 또 속는 놈들 능지 수준 처참하다^^
└아 ㄹㅇ이네
└그래서 방종한 거였음?
└하긴 시청자 그리 많은데 나 같았어도 그냥 했지
└ㅊㄲㅇ
하지만 기대감이 무르익을수록 훼방 또한 더해지고 있다.
개인 방송 갤러리에서 정말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나를 퇴물, 거품으로 취급하는 글들 말이다.
'그런데 인방은 원래 다 퇴물이고, 원래 다 거품이야.'
인위적인 비방이 없어도 원래 듣는 소리다.
시청자 1위를 찍든, 대세가 돼버리든 뭐든 말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거품 취급 받지 않는 BJ를 본 적이 없다.
그렇기에 내가 되려고 한다.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정점.
두 번째 인생의 진정한 시작 날짜가 정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