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방송의 시작.
―오
―0명때 들어왔다ㅋㅋㅋㅋ
―응 내가 더 빠름
―BJ 어딨어!
본방이 열림과 함께 쏟아져 들어온다.
관심이.
금일 7시에 분명 예정돼있다.
─뭐임? 지금 오정환 방송 하는 거 맞음?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나도 검은 화면만 보임
글쓴이― 렉인 줄 알았네;;
└원래 그런가?
└화면 조정 중인가 봐!
시청자 모두가 평소 오정환의 방송을 즐겨보던 이들이 아니다. 커뮤니티에서 글을 보고, 호기심에 이끌려온 이들도 있다.
아니, 평소 보던 이들이라 하더라도 당황스럽다.
여기서 보는 거 맞음?
근데 왜 아무것도 안 보임?
「빛이 들어오면 자연스레 뜨던 눈~ 그렇게……, 너의 눈빛을 보곤 사랑에 눈을 떴어~.」
대신 흘러나오는 건 나지막한 노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귀는 더 열려있고 고막은 더 민감하다.
그것이 하나의 연출이란 사실을 깨닫는 건 힘들다. 일반 방송에서는 쓰일 수가 없는 기법이니까.
하지만 노래가 끝날 때쯤 되면 싫어도.
―와
―BJ 맞냐? 작가 아님?
―선곡 느낌 있네
―항상 평범했던 일상도 특별해지는 이 순간……
안달이 나게 돼있다. 불쾌하지 않은 기다림이 기대를 서서히 데운다.
노래가 완전히 끝나자, 까맣기만 하던 화면에 변화가 생긴다.
“조금 어둡죠? 하지만 곧……, 빛이 들어올 테니 그때까지 우리 얘기나 해요.”
―똥폼 잡고 있네
―오늘은 봐줘라……
―설렌다ㅋ
―썸녀 만나러 가는 거 맞죠??
평범한 야방. 보라에 익숙한 이들이라면 그렇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처음 보는 시청자들에게는 다른 기억과 겹친다.
드라마의 한 장면 말이다.
어두운 골목을 홀로 걸어가는 주인공의 감정선에 몰입하게 된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보라 처음 보는데 생각보다 재밌네
실시간 드라마 보는 느낌임ㅋㅋ
└ㄹㅇ
└중계방이라 채팅을 못 침 ㅡㅡ
글쓴이― 본방 사수 못 한 흑우 없제?
└내 채팅이 뜨니까 개재밌는데? ㅋㅋㅋㅋ
개입할 수 있다. 화면 너머의 주인공에게 말이다. 시청자의 심정이 필터도 없이 전달된다.
물론 당연하다. 인터넷 방송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하지만 평소와 전혀 다른 콘텐츠가 진행된다는 것은.
“보이시죠? 카톡. 지금 그녀가 오고 있어요. 그런데 곤란하네요. 전 아직 그녀의 취향을 모르는데.”
―난 아는데
―떡볶이!
―오뎅 국물 못 시키잖아 카페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요즘 스벅 신메뉴 달달하고 맛있어요!!
평소 오정환의 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에게도 다른 감상을 갖게 한다.
내가 만약 드라마의 작가였다면, 혹은 소품 담당이었다면 그녀에게 다른 음료를 쥐어줬을 텐데.
─메이플왜함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그린티 프라푸치노에 자바칩이랑 휘핑크림 추가하면 꿀맛입니다. 강추!
“아~~ 제가 스벅 거의 안 가서 몰랐는데 한 번 점원한테 물어볼게요.”
―저거 여자들 환장하긴 함
―아니, 겨울이잖아 ㅡㅡ
―프라푸치노는 아이스만 돼요!!
―훈수 두고 싶으면 돈 내라고야ㅋㅋㅋ
할 수가 있다. 약간의 돈만 낸다면.
고작 천원으로 드라마의 내용을 좌지우지 한다는데 아까워할 이유가 없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다는 건, 남도 할 수 있다는 소리다.
자연스레 경쟁이 붙는다. 그 경쟁의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메이플큰손님, 별풍선 300개 감사합니다!
슈크림 라떼에 휘핑 많이 크런치 추가ㄱㄱㄱㄱㄱㄱㄱㄱ
“가즈아~!!”
―자본주의는 ㅇㅈ이지ㅋㅋㅋㅋㅋㅋㅋ
―근데 저거 JMT 맞음
―졌다ㅠㅠ
―아직 디저트가 남았다!!
드라마에서 고액 스폰서의 입김이 가장 세듯 마찬가지다.
개인 방송의 수익 비결. 그것이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딸랑♪ 딸랑♪
다음 장면을 캐리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방울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민감해진 고막은 그 작은 소리를 놓치지 않는다.
“여기에요.”
“네……, 안녕하세요 정환 오빠.”
“제가 적당히 시켜 놨는데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네.”
여주인공이 음료수를 받아 마시는 순간.
일반 드라마였다면 별 감흥이 없을 것이다. 스폰서느님이 타주신 건데 당연히 맛있어 하겠지.
“어.”
“어때요?.”
“헐, 너무 맛있어요!”
“……그래요?”
―얼마나 맛있으면ㅋㅋㅋㅋㅋ
―눈을 땡그랗게 뜨네
―보람 있다ㅎㅎ
―왜 이렇게 귀엽냐
정말 리얼리티 있는 반응이 터져 나온다.
추천해준 쪽도, 이를 보고 있던 시청자들에게도 소소한 즐거움을 제공한다.
물론 이는 방송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주인공.
실제 드라마 주연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외모의 소유자다.
“안경 벗었네요.”
“네.”
“저 의식한 거라고 생각해도 돼요?”
“그게…….”
“저 안 보고 있을게요. 만약 맞으면 라떼를 두 번 홀짝여 주세요.”
그런 그녀의 솔직한 반응을 볼 수 있다. 그것도 시청자만.
남주인공격인 BJ는 모른다는 사실이 약간의 희열까지 느끼게 해준다.
“역시 사심 있었죠? 그렇죠?”
―물어보면 어카냐고ㅋㅋㅋㅋㅋㅋㅋ
―그건 반칙이지
―응 아니야
―내가 봤는데 두 번 맞았음 (속닥속닥)
개입은 물론 대화까지 나눈다.
오직 보라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보라? 라는 거 미쳤는데……?
내 인생 드라마 이렇게 집중해서 본 적 처음임
└드라마 아니야ㅋㅋㅋㅋ
글쓴이― 아무튼 비슷한데 재밌다
└생방송 드라마 느낌이긴 함
└ㄹㅇ 딱 그거
무르익은 기대. 부응하는 퀄리티.
흥행의 주요소가 계단을 밟으며 상승 효과를 낳는다.
온갖 커뮤니티에서 이미 주된 화제로 부상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보일수록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불어난다.
그도 그럴 게 궁금해.
─떡볶이녀가 하와와라는 새끼 나와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떡볶이녀 근황. jpg]
아니
니 눈엔 이게 매칭이 되냐??
└저 얼굴로 하와와ㅋㅋㅋㅋㅋㅋ
└저 얼굴로 루디브리엄 파티 퀘스트ㅋㅋㅋㅋ
└갓볶이녀 그는 도덕책……
└존나 예쁘네. 오늘부터 하와와 말고 떡볶이녀 빤다
여러가지 풀리지 않던 논란거리. 그 모든 것이 방송의 어그로로 직결된다. 관심이 없던 사람조차 궁금함이 수고스러움을 넘는다.
「보라) 오정환. 그녀에게 보답하는 작은 선물」
? 본방 : 1509 (PC: 725/ MOBILE: 784)
? 중계방 : 13, 326
? 누적 시청자 수 : 90, 239
그 결과물.
파프리카TV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들이닥친다.
* * *
방송은 착착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하나의 챕터라고 할 수 있는 시내 데이트를 마치고.
“조금 좁죠? 불편하면 말해요.”
“아뇨, 정말…… 좋아요.”
“어떤 게요?”
“오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됐다는 사실이요.”
―크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달하네
―당뇨병 걸리겠다 으아아아아악
집으로 왔다.
내 집.
좁디 좁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8평 원룸 말이다.
'그래, 이 자식아.'
생각보다 엄청나게 잘해주고 있다. 완전히 몰입한 듯 평소와는 딴 사람이다.
그 덕에 나도 썸을 타듯 진지한 진행이 가능하다.
“조금 뜬금없긴 한데 제가 유라씨를 위해서 노래를 한 곡 불러도 될까요?”
“상관없긴 한데…….”
“겉옷은 저한테 주시고, 여기 앉아주세요.”
방송의 카메라를 옮긴다. 핸드폰에서 컴퓨터로.
일부러 어둑하게 해두었던 조명도 환하게 켜며 방송의 2막을 시작한다.
“빛이 들어오면 자연스레 뜨던 눈~ 그렇게……, 너의 눈빛을 보곤 사랑에 눈을 떴어~.”
나는 솔직하게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한다. 음치는 아니지만, 찬사를 받을 정도도 아니야.
하지만 한 가지 전제 하에 포텐셜이 나올 때가 있다.
―오
―괜찮네
―복선 오지게 깐 거 보소
―방송 공지부터 예고를 한 거지ㅋㅋㅋㅋㅋㅋㅋ
그럼에도 그저 그렇다. 귀에 거슬리지 않는 정도다.
딱 그 정도만 되면 나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감사합니다. 어……, 또 있어요?”
노래와 함께 미리 준비해둔 선물을 하나씩 안긴다.
먼저 무릎 담요. 아직 난방이 되지 않은 실내에서 그녀가 춥지 않도록 덮어주며.
꼴꼴꼴
와인잔을 꺼내 음료수를 따른다.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조금 맛있는 주스에 불과하지만.
―음식까지?
―와 원룸이라 이게 되네
―오정환 이 새끼……
―레스토랑을 차려놨누ㅋㅋㅋㅋㅋㅋ
음식과 조화를 이룬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작은 레스토랑. 원룸이기에 가능한 이벤트도 존재하는 법이다.
가스레인지가 손만 뻗어도 닿는다. 후라이팬을 흔들어 큐브 스테이크를 볶고, 접시에 담아 테이블 위에 놓는다.
'그래봤자 컴퓨터 책상이지만.'
그렇게 보인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적어도 캠 너머의 시청자들에게는 말이다.
노래는 클라이맥스에 접어들고,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조금 선정적인 행위가 용납되는 때다. 두 손으로 어깨를 마치 백허그를 하듯 감싼다.
그 탓에 노래를 속삭이듯 부르는 것처럼 되었지만 잠깐이다.
―아니ㅋ
―갑자기 뭔 짓 하나 했네
―오 목걸이
―진짜 나에게만 준비된 선물이네
노래의 선곡에는 의미가 있다. 그것은 곧 방송의 주제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거기에서 끝난다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선물'이라 할 수 없다.
“노래 가사처럼 평범했던 일상이 조금은 특별해진 것 같아요?”
“네……,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공부 때문에 많이 바쁠 텐데, 오늘이 숨 고르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준비한 거예요.”
마지막으로 꽃다발을 안겨준다. 프리지아와 노란 장미.
그 외의 선물들을 한가득 안고 밝게 미소 짓는다.
─메이플때려침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정환아 장미라니……, 그러다 너 철컹철컹 한다.
“100개 감사합니다. 절 뭘로 보시고 그래요.”
―고등학생ㅋㅋㅋㅋㅋㅋㅋ
―고3이 왜 안돼!
―ㅇㅇ 부모 허락 하에 가능함
―1년만 기다리면 성인인데 뭐
조금 손발이 오그라지긴 하는데, 그런 것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특히 이성.
정신 나간 이벤트일수록 오히려 잘 먹힌다.
'너무 잘 먹혀도 곤란하긴 한데.'
어차피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서 괜찮다.
봄이잖아. 봄이가 왔다고 외치는 귀엽고 앙증맞은 봄이어야 했다.
“어때? 입에 맞아?”
“네, 근데요…….”
“응?”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는 이유가 뭐에요? 정말 방송 때문이에요?”
사태가 조금 묘하게 흘러간다.
…라고, 알고 있는 건 나뿐이다. 그도 그럴 게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그냥 드라마.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반픽션, 반리얼리티 느낌이다. 일어나는 상황 자체를 즐긴다.
나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그러니까 그게 기뻐해줬으면 해서…….”
“왜 저를 착각하게 만들어요?”
―오오
―감성 미쳤냐고!
―가나요? 가나요? 가나요? 가나요?
―방송 천재 오정환 ㄷㄷ
방송 천재 같은 소리하네.
봄이의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물론 연기라고 생각하지만 폭주의 가능성을 도저히 배제할 수 없다.
어째서?
갑자기 신내림이라도 받았나?
어제 감동적인 드라마라도 한 편 때리고 잤나?
“제 눈 똑바로 봐주세요.”
“야, 야…….”
“오빠는 저를 어린 애로만 봐요? 연애 대상으로는 절대 성립 안돼요?”
“…….”
한 가지 솔직하게 걸리는 게 있다.
아무래도 봄이고, 잠깐이면 몰라도 장기간 농밀한 씬은 소화하기 힘들다.
그래서 약간의 보험을 들어두었다.
별 건 아니다.
말하자면 도핑? 평소보다 텐션을 높이기 위한 장치?
방송 전에 착각을 시켜두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