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새로운 패러다임.
일각에서는 그렇게 해석이 되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당사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거대한 태풍과도 같다. 휘몰아치며 마주치는 모든 것을 분쇄한다.
오정환의 방송은 기존 생태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다.
『현재 시청자 순위』
1. 오정환_ ?16, 974명 시청
2. 철꾸라지_ ?5, 143명 시청
3. 예능인[김군]_ ?3, 855명 시청
철꾸라지와 김군.
방송만 켰다 하면 당연한 듯 1위를 먹는 대기업이다.
그런 둘이 속수무책으로 밀리며 처참하리 만큼 차이가 벌어졌다.
─실시간 보라 삼국지 현황. jpg
2위와 1.1만 차이
3위와 1.3만 차이
오정환이 보라판 통일 직전ㅋㅋㅋㅋㅋㅋ
└거품은 철꾸라지와 김군이었누ㅋㅋㅋㅋㅋ
└응 그래봤자 철꾸라지보다 못 벌어
└시청자 발리니까 별풍으로 자위ㅋㅋㅋㅋㅋㅋ
└누구는 간장 원샷할 때 누구는 달달한 연애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초유의 사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개인 방송 갤러리. 보라 콘크리트 시청자로 이루어진 커뮤니티다.
평소에는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대기업들의 입김이 워낙 세게 부는 탓이다.
거대한 태풍이 잔바람을 모두 섭렵하며 존재감을 내뿜는다.
─오정환이 거품이라던 분탕들이 존나 추한. EU
즈그 주인이 거품인 건 곧 죽어도 인정 안 함ㅋㅋㅋㅋㅋㅋ└동시간 3배 차이 실화냐고ㅋㅋㅋㅋㅋㅋㅋ└자 이제 누가 거품이지?
└추꾸라지 철하다!
└김군 이 새끼가 제일 악질임. 방송 시간도 앞당기고
이렇게 알기 쉬운 비교군이 성립된 건 우연이 아니다. 필연.
오정환을 견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방송 시간을 조정했다.
콘텐츠가 다르면 모를까. 같은 보라라면 시청자층이 겹친다. 이는 실제로 효과를 보며, 오정환의 거품론에 힘을 실었다.
그것이 이제는 자신들의 목을 조인다.
시청자가 많은 쪽이 적은 쪽을 누르는 방식.
반대가 돼버리자, 커뮤니티의 민심도 공격 대상을 바꾼다.
─속보) 철꾸라지런ㅋㅋㅋㅋㅋㅋ
─속보) 김군 간 보다 런ㅋㅋㅋㅋㅋㅋㅋㅋ
─파프리카 삼대장들 이타치 해버렸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발 빠르게 도망가봤자 이미 늦었다 .화제글에 박제가 되며 조리돌림 당한다.
대기업이라는 고고한 위치에 있는 그들이 이토록 체면을 구기는 일은 흔치 않다.
“글 하나하나 신고해서 삭제시켜!”
“이걸 어떻게…….”
“삭제시키는 것보다 새로 올라오는 게 더 많은데요?”
평소 착실하게 여론을 관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몇 개의 손으로는 봇물 터지듯 밀려오는 새로운 물결을 도저히 막을 수가 없다.
『현재 시청자 순위』
1. 오정환_ ?21, 732명 시청
2. LetTheKillingBegin_ ?명 1, 018명 시청
3. 꿀템은뒤졌다_ ?812명 시청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그나마 있던 경쟁자들도 사라지자 독주 체제. 무려 2만 명이라는, 대기업BJ들조차 인생에 몇 번 이룩한 적 없는 수치다.
파프리카TV의 세력 구도가 다시 써지는 게 아니냐?
그런 이야기까지 나오며 시청자들의 기대치가 최대치로 부풀었는데.
─오정환 민심 조졌다……
썸녀가 고백했는데
오정환이 단칼에 잘라버림 ㄷㄷ
└???
└아니, 왜?
└화장실 갔다 왔는데 곱창나 있네
└오정환 이 새끼 방송할 생각이 없음??
조금 예상치 못한 결말이 예고된다.
* * *
착각.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다.
'평소보다 다정하게 대해준 정도지.'
코찔찔이 시절부터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데. 기저귀 갈아주는 것 빼고는 거의 다 해준 수준이다.
그때는 나도 순수했고.
봄이는 여전히 순수하고.
인연이 계속 이어지다 보니 그렇게 별일은 아니다.
오늘부터 별일이 될지도 모른다.
연기를 하며 감정이 싹 텄다던가. 실제 배우들 사이에서 흔히 있는 일화라는 걸 들은 적은 있다.
─철빡이22호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아니, 좋게 달랠 수도 있는 건데 그따구로 말해야 했음?
“몰라요. 말 걸지 마세요…….”
―^^ㅣ발련ㄴ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삐슝빠슝! 말 걸지 말라는 BJ가 있다?
―지금이라도 튀어 나가라고!
―아 지금 뛰어가면 잡는데
성공적인 이벤트. 그리고 방송의 흥행.
두 마리의 토끼를 전부 잡았음에도 방안의 공기가 쌀쌀하다.
'원래 혼자 있으면 그래.'
체온이 유난히 따듯한 봄이가 방금 전까지 머물렀다 보니 체감되는 변화가 더 크다.
그렇다. 방송은 분명 잘되었다.
달달한 썸.
분위기가 조성된 시점에서 그 이상의 악센트를 줄 필요는 없다.
그런데 연기에 너무 몰입해버린 건지 의도치 않은 상황이 생겼다.
─내꿈은먹튀왕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몇 개 쏘면 썸녀 붙잡으러 감? 3천이면 콜?
“무슨 썸녀에요. 아직 애인데.”
―그러니까 빡치지
―아 혈압
―몇 개 쏘면 정환이 뒤통수 가능?
―명존쎄 마렵네 ㅂㄷㅂㄷ
고백.
그런 흐름이 돼버리고 말았다. 그것도 상당히 디테일한 과정하에 말이다.
《저 오빠 좋아해요.》
《나도 너 좋아해.》
《그렇게 얼버무리지 말아요.》
《…….》
《저를 한 명의 이성으로 봐줄 수 없는 거에요?》
불과 5분도 채 되지 않았다.
대답은 거절이었고, 피드백은 바로 이루어졌다.
조금 울먹거리는 목소리의 인사를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님들 다 나가주세요. 저 혼자 있고 싶으니까.”
―거 신박한 BJ네
―지금 시청자가 2만 명이야 미친놈아!
―어쩔 건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왜 그렇게 말했지? 이해가 안되네??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이리도 복잡하게 얽힌 감정선을 연출할 생각은 없었다.
보라.
인터넷 방송.
예측 불가능한 흐름과 자유도는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하지만, BJ에게는 성난 야생마를 모는 듯한 시련을 내려주기도 한다.
지금 같은 상황 말이다.
여러 명의 작가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다음 주 이 시각의 촬영까지 골머리를 싸매도 답이 나올까 말까 한 막장 전개를 실시간 방송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재밌어.'
고민은 마쳤다. 이 꼬인 실타래를 어찌 풀어가야 할지. 나라는 인간은 막다른 골목에 몰릴수록 포텐셜을 끌어내는 DNA를 가지고 있다.
“저 오빠 좋아해요.”
“너 학생이고, 나 올해로 스물 넷이야.
“그럼 안 되는 거예요?”
“되, 되나?”
―미친놈아ㅋㅋㅋㅋㅋㅋㅋㅋ
―되나는 X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혼자 연기하고 앉았네
―그때 그렇게 했어야지!
나는 BJ다.
혼자가 안된다면 시청자의 힘을 빌리면 된다. 보라는 과몰입을 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콘텐츠다.
─정환이밥값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나이 먹고 보면 5살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야……
“네 밥값 형님 말씀도 맞죠.”
나와 같은 감정을 수천, 수만 명이 공유하고 있다.
묵묵히 보고 있던 열혈들이 입을 연다.
연애 훈수.
─메이플아재님, 별풍선 1000개 감사합니다!
거 좀 사이 좋게 좀 지내지……
“근데 회장님. 제 좁은 식견으로는 사이가 좋은 사람은 친구는 몰라도, 연인은 될 수 없어요. 그래서 저는 그녀를 화나게 만든 걸지도 몰라요.”
―리액션 안 해?
―지금 리액션 하게 생겼냐
―이 새끼 개소리 존나 잘함
―합리화 만렙 X발롬앜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응원풍. 남일 같지가 않은 것이다.
나도 정말 인생에 후회가 많지만, 나이를 드신 열혈들도 다 비슷하다.
동병상련, 통하는 게 있다.
자신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물론 이는 막 연애에 눈을 뜨게 된 20대도 예외가 아니다.
─오정환환환님, 별풍선 500개 감사합니다!
형 때문에 알바 시작했음…… 시급 다 털었는데 제발ㅠㅠ 이렇게 끝나면 나 잠 못 자
“고맙다. 못 지킬 약속을 할 수는 없지만 나도 내가 주인공인 이 드라마가 비극으로 끝나길 원하지 않아.”
―아ㅏㅏㅏㅏㅏㅏㅏ
―제발……, 이건 아니야
―이대로 보내면 100% 후회한다
―한 번만 더 만나보고 생각하자 좀!
속편이 결정된다.
* * *
대내외적으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있다.
개인 방송 갤러리는 물론, 일반 커뮤니티도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충격에 뒤숭숭하다.
─금일 오정환 방송 떡볶이녀 2화 요약. txt
<카페 데이트>
시청자들한테 스벅 메뉴 추천 받고 달달각
<시내 데이트>
돌이켜 보면 가장 별 거 안 했는데 가장 달달했음
<방구석 데이트>
그냥 야외 데이트 하지 왜 좁은 원룸에 오나 했는데 오정환이 씹캐리함<떡볶이녀 고백>
썸녀에서 그녀로 가는 줄 알았는데…… 캐리하던 새끼가 씹트롤링 해서 던짐<후회 술방>
오정환도 지가 무슨 짓을 한지 깨닫고 술 까면서 조언 구함└썸녀에서 그녀로ㅋㅋㅋ 이 새끼도 오지게 빠졌네
└본 사람은 그 맘 알지
└미친 새끼가 후회할 짓을 왜 하냐고!
└뭔데 이게? 요즘 나온 드라마임?
결말이 애매한 드라마를 보고 나면 그 후폭풍이 이루어 표현하지 못할 지경이다.
고작 남 일인데, 내 일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멘탈이 깨지는 게 잘 만든 드라마의 감정선이다.
그에 미치지 못한다. 방송의 규모도, 준비도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남 일 같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인터넷 방송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오정환도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봄
솔직히 너무 예쁘잖아
덕분에 방송도 엄청나게 떡상했고
이대로 사귀면 본인도 좋고, 방송적으로도 도움 됐겠지 그래서 더 스스로 납득을 못한 거야
└뭔지 알겠다
└?? 다 좋은데 왜 안 하는 거임?
글쓴이― 나 좋아해주는 예쁜 여자랑 결혼하면 좋겠지. 근데 그게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을 하겠냐고 └어휴; 인생 존나 피곤하게 사네
실제 배우처럼 잘생길 리가 없다. 극적인 성장 배경을 가진 것도, 배 다른 형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평범하기에 싹틀 수 있는 공감대가 존재한다.
친구의 연애사는 유난히 귀가 기울어진다.
마찬가지로, 호감을 가진 BJ의 연애사도 궁금하다. 그 과정을 처음부터 지켜 봐온 시청자들은 이미 흠뻑 빠져있다.
─오빠, 동생 사이부터 하면 되지 왜 선을 긋냐고ㅡㅡ─사겼어야 했다고 하는 애들 대가리는 굴림?
─아니, 그냥 1년만 기다리면 되는데
─그래서 3화 언제 나오냐고!
…
…
커뮤니티에는 여러가지 추측이 오간다.
논픽션, 실제 드라마가 아니기에 뻔한 결말을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음 화가 나오지 않는다는 최악의 가능성까지 열려있다.
그것만큼은 안된다. 여론이라는 것은 힘을 가진다.
파프리카TV 오정환의 방송국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들락거린다. 그 결실을 맺은 건지.
공지― 『우연일까, 인연일까?』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이기적이에요.
날아온 작은 새를 놓아주고 싶지 않습니다.
SEE 2012. 02. 08 PM 07:00
익일 새벽에 올라온 공지 하나.
수많은 팬들이 학수고대 하던 그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시작한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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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Comment]― 주요 커뮤니티에 다 돌림…… 화력 지원 제발
[Best Comment]― 우리가 응원을 해야 이 커플이 이어질 수 있어요
해피 엔딩을 만들 수 있는 건 당사자만이 아니다.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시청자들이다.
원기옥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