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떡볶이녀 Part. 完
방송 1시간 전.
이곳저곳에서 소문을 듣고 온 팬들로 방송국은 북적거린다.
─오늘 방송이 어떤 결말을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이어지던 이어지지 않던
제발
엊그제처럼 트롤만 안 했으면 좋겠다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게 다 자격지심 때문에 그래
글쓴이― ㄹㅇ
└자신감을 가지라고…… 오정환 너 좋대잖아
본방을 사수했던 이들. 본방은 못 봤지만 녹방은 본 이들. 대략적인 개요만 듣고 호기심에 이끌려온 이들.
그 모두가 이야기를 떠들기 최적의 장소다.
두 남녀에게 응원의 메세지를 던진다.
비록 원하는 결말이 다를지라도.
─그냥 나는 오빠, 동생 사이로 끝나면 좋겠다
만약에 사귀게 되면 그게 더 복잡해
무슨 드라마처럼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3이면 공부해야지, 주변 시선도 있지
정환이도 도둑놈이라고 욕 존나 먹겠지
└그것도 맞지
└왜 X랄임? 잘 돼가는 애들한테??
글쓴이― 아니;; 커플된 이후를 생각하라고 얼마나 장벽이 많은데 └정환이 연애 빠지면 방송 안 하자너ㅋㅋㅋ
사람의 생각은 여러가지다.
지극히 현실적인 사람. 이상을 바라는 사람.
어느 쪽도 정답은 없다. 그러니까 제 3의 생각을 하기도 한다. 때로는 사심이 섞인 방향으로도 말이다.
─그냥 차라리 유라도 BJ하는 건 어떰?
서로 윈―윈 아님?
방송도 도와주고 관계도 이어지고ㅋㅋ
└응 그래봤자 너한테는 기회 안 와
글쓴이― 들킴ㅎ
└근데 진짜 BJ 했으면 좋겠다!
└여캠 같은 거 절대 안 보는데 유라는 볼래ㅋㅋㅋ
어느 쪽이든 안될 것은 없다.
드라마의 결말은 시나리오대로지만 현실은 당사자들의 합의에 달렸다.
그리고 인터넷 방송은 드라마와 현실의 중간이라는 미묘한 경계선에 있다.
시청자의 목소리가 닿는다. 마음만 먹으면 스토리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결말을 위해 금일 방송에 몰려온 이들이 줄을 선다.
―와
―7시 딱 맞춰 키네
―응 어차피 또 검은 화면
―아니야 의미가 있어……
일련의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후원할 여유가 있는 사람도, 쌈짓돈을 꺼내온 사람도, 없어도 목소리를 외치고 싶은 사람도, 각자 가지고 있는 탄환은 달라도 좋은 결말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만은 한결같다.
「미워하는 마음 모두, 한순간에 사그라져, 꿈꾸듯이 너를 바라보고 있어…….」
그 서장이 울린다.
노래의 가사가 오늘 방송의 예고편이라는 사실.
이미 한 번 겪어버렸기에,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기에 와 닿는 정도가 다르다.
─오정환이 '편지' 틀어버린 이유 알아버렸다……
'우연일까, 인연일까'
'내게 날아온 작은 새'
어제 방송 공지랑 가사가 엮이네
└아 그게 가사였구나
└어쩐지 느낌 있더라ㅋㅋ
└그게 중요한 게 아님. 가사를 쭉~ 들어봐
└헐 ㅅㅂ
이미 커뮤니티 이곳저곳에 해석이 올라온다. 단편적인 것부터, 그 속뜻을 파고들은 것까지.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담긴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Best Comment]― 어째서 선을 긋는 판단을 했는지 가사를 듣다 보면 공감이 됨 ㅠㅠ└ㅁㅊ;;
└자유로이 날 수 없게 가둬 두는 건 아닐까……
└결국 정환이도 속으로는 좋아했다는 거네 애절하다
단순한 억측, 혹은 지나친 망상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아무 문제 없다.
국어 교과서 등에 나오는 문학 작품. '작가의 의도를 맞추시오' 라는 문제를 실제 작가가 못 맞춘다. 작품의 해석은 대중이 어찌 생각하냐에 초점이 실리기 때문이다.
마찬가지의 이야기다. 정답을 원하는 게 아니다.
그저 두 사람이 한 발자국 더 마음의 거리를 좁히길, 점점 커진 염원이 저마다 구체화되었다.
“안녕하세요.”
―키타ㅏㅏㅏㅏㅏㅏㅏ
―5252 믿고 있었다구!
―노래 잘 들었다
―오늘은 제발 실수하지 말자 ㅠㅠ
물론 모르는 일이다. 할 수 있는 건 등을 떠미는 정도.
영향을 주는 거지, 실제 방송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마지막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드라마가 막을 올린다.
그 기대를 방증하듯 벌써 4천이 넘어버린 시청자.
파프리카TV측에서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
“서버를요?”
“사장님 특별 지시야.”
“근데 그걸 하려면 다른 BJ걸 빼야 하는데…….”
방송이 원활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인터넷 스트리밍.
시청자 입장에서 당연한 것들을 회사측에서 실현시키는 건 사실 어렵다.
오늘따라 버퍼링 쩌네ㅋㅋ
영상을 내보내는 서버가 한정돼있는 탓이다.
동시 접속자가 몰리면 회사 입장에서는 선택을 해야 한다.
“요즘 철꾸라지, 김군 한가하잖아? 걔네 거 빼.”
“알겠습니다. 근데 미리미리 서버를 사주셨으면 이런 고민 안 해도 되지 말입니다.”
“쯔쯧, 원투 타임 일해? 서버가 한두 푼도 아니고.”
온라인 게임에서 1서버를 가장 크게 만들듯, 파프리카TV는 인기BJ의 서버를 특별 관리한다.
시청자가 몰려도 터지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오정환도 이제 그 한정된 자원을 투입할 가치가 생겼다.
「보라) 오정환. 우연일까? 인연일까?」
? 본방 : 1721 (PC: 725/ MOBILE: 784)
? 중계방 : 8, 584
? 누적 시청자 수 : 15, 459
방송 시작 15분이 안되어 1만 명.
우연으로 싹 터버린 드라마가 필연을 예고한다.
* * *
봄이가 왔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봄이가 아닌, 조금 성숙해진 봄이를 눈앞에 뒀다.
“잘 지냈어요?”
“잘 지냈을 것 같아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데 몸 상하면 안되죠.”
“오빠는 항상 그런 식이에요.”
“…….”
―미친놈앜ㅋㅋㅋㅋ
―또! 또!
―애 취급하니까 화내지
―누가 정환이 뒤통수 좀 한 대 때려봐!
다시 봐도 익숙해지기 힘든 변모다.
그렇기에 나도 집중할 수 있다.
그때 봄이가 나한테 한 말은 순수한 연기라고 생각할 게 아니다.
'예정에 없었으니까.'
평소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일지도 모른다.
오빠 동생 사이. 남녀 간에 우정이 없다고 하듯, 언제까지 그런 미묘한 관계가 유지될 수는 없다.
작은 계기였다. 그 용기를 웃어 넘기고 싶지 않다.
봄이가 나에게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면 나도 진정성 있는 대답을 해야 할 때다.
“근데 그전에……, 칙칙한 분위기로 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그래서 조금 준비를 했거든요?”
하지만 급할 필요는 없다. 무슨 심문하는 것도 아니고.
진솔한 대화가 오가려면 편하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크흠! 제가 노래를 한 곡 부를까 합니다.”
―아 제발
―또 X랄 예고하는 거야 뭐야!
―선물은 좋았는데 트롤은 좀
―엄마는 정환이 믿는다^^
같은 상황을 조성한다.
선물.
지난 방송의 메인이자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와는 다르다. 당연하게도 감정이 살아나기 힘들다. 때문에 이번에 하려는 건 혼자가 아닌 듀엣.
“놀라지 않네요?”
“그야 뭐……, 알고 있었으니까요. 냄새.”
그리고 음식.
뭐라도 먹으면서 이야기하는 편이 입이 쉽게 열린다.
“엄청 많네요. 무슨 뷔페도 아니고.”
“많이 먹어요. 많이 먹을 때잖아요.”
“진짜…….”
―화 내는 것 봐ㅋㅋㅋㅋ
―맛있으니까 참네
―진짜 귀엽다
―최후의 만찬이누
정말 여러가지 사왔다. 초밥, 족발 떡볶이…… 기타 등등. 하나둘 입에 들어가자 감정이 상해있던 것도 잊고 만다.
─메이플큰손님, 별풍선 1004개 감사합니다!
둘이 진짜 잘 어울려요!
“천사개 감사합니다. 제 옆에 있는 그녀를 말하는 것 같네요.”
―ㅁㅊ놈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달달하누
―눈치 보는 거 봐
―정말 천사처럼 예쁘세요!
자연스레 먹방. 그리고 Q&A 시간. 가지고 있던 고민은 잠시 접어둔다.
“리액션 한 번 해볼래요?”
“리액션이요?”
“춤 같은 거. 아니면 그냥 생각나는 거 아무거나 괜찮고.”
“저 춤은 절대 못 춰요.”
그렇겠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거부하지만 안 해봐서 그렇다.
'막상 해보면 의외로 괜찮아.'
특히 되는 여자가 하는 건 어지간하면 볼 만하다.
외모가 깡패야.
분명 그래야만 했는데.
─보라인생2년차님, 별풍선 486개 감사합니다!
댄스가 아니라 율동 같네요ㅎㅎ
“그래서 추기 싫다고 했는데…….”
“사랑해개 주셨잖아요. 그만큼 이뻤다는 거에요.”
―율동ㅋㅋㅋㅋㅋㅋ
―삐졌다 삐졌어
―그래도 귀여움ㅋㅋ
―BJ 데뷔하고 연습하자!
뭐 실패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기대도 안 했어.'
잘 췄으면 너무 놀라서 마시던 음료수를 질질 흘렸을지 모른다.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안심이다.
드디어 본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
“와……, 진짜 노래방 같아요.”
“코노 하는 느낌으로 가볍게 부르면 돼요. 제가 먼저 부를게요?”
노래 방송을 위해 오디오 장비를 샀다.
안 그래도 비싼 편이고, 개인 방송 초창기라 국내에서 구할 길이 없어 돈 몇백 깨졌지만 아깝지는 않다.
'난 방송에 돈 안 아껴.'
딱히 숭고한 신념 같은 게 아니다.
그냥 내 방송의 질이 고작해야 인방 수준이라고 평가되는 게 싫다.
개인 방송 특유의 장점을 잘 살릴 수만 있다면 케이블 방송에 꿀리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에게마아안~”
“준비된 선물 같아.”
“자그마아아안~.”
“모든 게 커져만 가.”
―달달하다
―당뇨 걸리겠네……
―진짜 잘 어울리는데!!
―근데 왜 이렇게 가슴이 멍하냐
그것은 착각이 아니다. 아무리 같은 노래라도, 가사가 달달해도 목소리라는 건 참으로 희한하다.
'사람의 감정이 묻어 나오거든.'
오늘 방송은 '선물'이 아니다. 잔인하더라도 고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은 상처가 될지라도, 나이를 먹고 다시 펴보면 소중한 추억이 되는 '편지'를 말이다.
“어제도 드렸죠?”
“네…….”
“혹시 이 장미의 꽃말을 알아요?”
사랑, 욕망, 절정, 기쁨, 아름다움.
꽃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그 정도는 일반 교양이다.
'근데 장미는 색깔마다 의미가 달라.'
하지만 그래봤자 같은 꽃이고, 극적인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단 하나의 색깔을 제외하면 말이다.
―아……
―이게 복선이었네
―X발놈아!
―제발 제발 그러지 마ㅠㅠ
이미 눈치를 챈 시청자들도 보인다.
노란 장미.
같이 장식했던 프리지아까지, 그 꽃다발의 의미는 우정과 이별이다.
“유라씨는 정말 매력적인 여성이고, 제게는 정말 과분한 사람이에요.”
“…….”
“앞으로 더 이 꽃처럼 만개하겠죠. 그 옆에는 제가 없겠지만.”
분명 아름다워질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하지만 그 옆에 있을 사람은 내가 아니다.
'이런 결말.'
그렇게 여운만 남기고 헤어진다.
그리고 여차저차 과정을 겪어 그녀가 봄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듀라한의 낙인을 성공적으로 벗으며, 제 2의 방송적 도약을 시키는 것이 내가 그린 플롯인데.
―관심 없나 본데?
―응 아니야
―ㅋㅋㅋ 김칫국 마셨네
―저 떡볶이 어디꺼길래 저렇게 맛있게 먹어요??
조금 예상하지 않은 상황이 일어난다.
내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열심히 해치우고 있다.
“저기 유라씨?”
“넹?”
“아니, 그…… 이 꽃다발의 의미가.”
“네, 넹. 듣고 있어요!”
“…….”
떡볶이를 포크로 콕콕 집어 엄청난 속도로 꾸역꾸역 볼따구가 미어터져라.
그 복스러운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그만 좀 처먹으라고 이 자식아!”
“꾸웨웩―!”
깨물어 씹어버리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