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72화 (72/846)

72화

돈슨의 거대한 신사옥

얼마 전 진행했던 대형 콘텐츠의 후폭풍.

당연하게도 언제까지 가진 않는다. 방송적 장치가 해명되며 점점 잦아든다.

그리고 좋은 쪽의 관심만이 남는다. 몇몇 대형 크루의 갑질도 줄어들며 방송은 돛 단 듯 흥행하고 있다.

그렇게 정상 궤도에 진입하자 무난하다.

무엇이든 시작이 어려운 거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나면 안정감이 생긴다.

'근데 거기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세상 대부분의 일은 올라가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특히 보라판은 사고가 좀 많다.

당사자가 되지 않도록 항상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저기요.”

“네.”

“제가……, 제가 그렇게 부탁 드렸잖아요? 저는 그냥 무시하는 거에요?”

“하하.”

신민하씨와 면담을 가지고 있다. 카톡을 수십 통씩 보내셨고, 워낙 성이 나있다 보니 상대를 안 해주기도 힘들다.

'특히 여자들이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커서.'

같이 ㅈ돼 보자!

그런 식으로 나오면 좋을 게 없다. 어쩔 수 없이 카페에서 만나 달래주고 있지만.

“왜 웃어요?”

“제가 말했잖아요.”

“뭘요.”

“사람마다 맞는 방법이 있다고. 저를 믿기로 했으면 끝까지 믿어야죠.”

“그, 그러긴 했지만…….”

그것이 요구를 다 들어주겠다는 소리는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이야기를 해온다.

듀라한은 그렇다 치고, 떡볶이녀 같은 합방은 자신도 할 수 있지 않겠냐며.

'결국 요점은 그게 아니야.'

애초에 결론을 정해놓고 하는 이야기다. BJ로 데뷔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굴뚝 같다.

당연하게도 어림도 없는 근자감에 불과하다.

“만약 실패하면요?”

“다음에 또 잘해보면…….”

“그런 게 안돼요.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기회 비용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한 번 실패했으면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는 주먹구구식의 도전이 먹히는 업계가 아니다.

'수많은 시청자 앞에서 주목받는 거잖아.'

내가 컨설팅을 해서 봄이나 하율이를 띄워준 것은 어디까지나 성공 사례다. 실패하게 되면 괜히 이미지만 소모된다.

쟤 어디서 뭐뭐 한 애 아님?

대중 앞에 선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이는 BJ뿐만 아니라 연예인들도 겪는 리스크다.

“제가 왜 기다리라고 했는지 납득이 되세요?”

“돼요…….”

“그럼 이제 됐죠?”

“그, 그게…….”

그렇기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첫 인상이란 것은 정말 중요한 거니까. 신민하씨도 이를 이해하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니다.

'이성이 아닌 감성의 영역이라 문제지.'

이성적으로는 답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세상에는 시간이라는 것이 있고, 이는 한없이 기다릴 수 있는 무한한 게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퇴색된다. 기껏 먹은 마음도 말이다.

이미 한 번 달랬던 적이 있기에 조바심을 곱씹게 된다.

“저를 못 믿겠죠?”

“아, 아니에요 그런 건 절대!”

“제가 기다리라고 했는데 못 기다렸잖아요.”

“그게 사실은……, 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이러다가 잊혀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SNS에 허언증까지 저질렀던 신민하씨는 더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기 딴에는 방법을 찾고자 머리를 굴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입조심을 하고 있으면 좋았는데.'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후회는 본인이 더 절실하게 하고 있겠지.

그렇다고 지금 당장 BJ로 데뷔시켜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국 요는 간단하다.

나를 못 믿어서 생긴 문제라면 믿게 만들면 된다.

초조하게 커피잔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손을 빼앗듯이 잡고.

촤압―

그대로 잡아당겨 테이블 너머에서 입을 맞춘다.

아메리카노로 뜨거워진 입술을 삼키며 입가가 번들거릴 정도로 한참을 탐하고 놓아준다.

“이래도 못 믿어요?”

“아! 아니, 저…….”

“싫어요?”

“그건 아니고요…….”

부끄러워하며 곁눈질로 주위를 살핀다. 매장 안에 사람이 많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짓는 얇은 미소에는 딱히 수치심 따위 녹아있지 않다.

'그렇겠지.'

하루이틀 알고 지낸 게 아니다. 어떤 타입인지 대강 파악을 마쳤다.

남자가 가진 직위를 상당히 신경 쓴다. 그런 타입.

하물며 이쪽 세계에 발을 담그고 싶어한다.

카톡을 통해 호감이 있다는 건 확인한 지 오래다.

“전 민하씨와의 관계 소중히 하고 싶은데.”

“저도 그래요.”

“잠깐 시간 있어요?”

“네. 상관없긴 한데……, 왜요?”

“쉬고 가게요. 느긋하게.”

대답은 들어볼 것도 없었다.

* * *

의존적이고 감정적인 여자.

보라BJ 생활을 하다 보면 정말 수도 없이 만난다.

타일러도 보고 설득도 해보고 여러 방법을 써봐도 뾰족한 해답이 안 나온다.

그 골치 아프기 짝이 없는 문제의 해결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남녀간의 연을 만드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몸정 말이다.

“밥 먹고 갈래?”

“…….”

“야.”

“히익!”

“나가게 빨리 옷 입어. 곧 체크아웃이니까.”

“조금만, 조금만 누워 있을게요…….”

본방이 끝난 후.

침대에 누워있는 여자의 엉덩이를 찰싹, 때리는 건 중독성이 있다.

'사실 우유통 때리는 게 더 재미있긴 한데.'

안타깝게도 신민하씨는 그 정도로 여유가 있지 않다. 카페에서 마음을 확인한 후 그대로 모텔에 왔다.

한바탕 뒹굴고 나니 모든 것이 바뀌어있다. 더 이상 칭얼대지도 않고, 바라보는 눈빛도 달라졌다.

“정환씨.”

“응?”

“저, 저 있잖아요. 원래 이런 여자 아니거든요.”

“그래서?”

“정환씨한테만 이런 거니까 오해하지 말라고…….”

몸을 겹치는 것만으로 상대에게 깊은 인연을 느낀다. 남자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여자들은 대개 그러더라고.'

감정적인 여자한테는 똑같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해답이다.

그런 타입인 신민하씨도 한동안은 괜찮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신경을 써줘야 하는 게 귀찮아서 문제지.

어차피 본인이 하고 싶은 BJ로 키워줄 생각이 있으니 상관없다.

“근데요.”

“응?”

“저……, 기다리면 되는 거죠?”

“뭘?”

“웃지만 말고요. 저 진짜 데뷔만 하면 정환씨가 하라는 거 전부 할 수 있어요.”

겸사겸사 관계의 주도권도 잡아온다. 물론 이렇게 쉽게 홈런이 가능한 건 전적으로 나를 의지하기 때문이다.

'진짜 나쁜놈한테 걸리면 단물만 빨아 먹히고 버려지기 딱 좋은데.'

실제 BJ업계에서는 드물지도 않다. 그래서 함부로 시작해도 될 직업은 아니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나는 선인은 아니어도, 악인도 아니다.

애초에 안될 거면 딱 잘라 거절했지. 내뱉은 약속은 웬만하면 지키는 편이다.

그것도 막무가내식이 아닌 한 명, 한 명의 스토리를 고려해서 말이다.

“근데 하려면 퇴사해야 되잖아?”

“정환씨 말대로 할게요.”

“야.”

“네…….”

“뭐, 책임져 달라고?”

“아앙……, 정환씨만 좋으면 전.”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손가락에 몸을 맡긴다.

허벅지를 쓰다듬던 손이 속옷 안쪽으로 이어져도 거부감은 커녕 다리 사이를 벌려온다.

'재미있긴 해.'

주도권을 잡는 건 말이다. 그냥 재미가 있을 뿐이다. 이거 가지고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건 내가 사양이다.

당연하게도 돈슨은 대기업. BJ도 일종의 프리랜서고, 겸업을 하는 건 불가능하다.

퇴사의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보다 이용하는 편이 합리적이며 내 방식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

“해볼게요. 반드시.”

“쉽지 않을 텐데 자신감이 넘치네?”

“저 기대기만 하는 여자는 아니에요.”

신민하씨의 스토리.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다.

* * *

<인증되었습니다.>

회사에 출근한다. 사원증을 출입구 단말기에 찍는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순간이다.

'하아…….'

젊은 나이에 부장이란 직급을 단 장연수도 예외가 아니다.

회사 생활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한없이 반복되는 일상의 과정에서 시간별 감정이 각인된 영향이다.

지금부터 나는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개고생을 할 것이다!

그 시작점에 있다는 걸 본능적으로 안다.

기분이 자연스럽게 다운돼버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안녕하세요 부장님. 좋은 아침이죠?”

“어, 어…… 민하 씨도 좋은 아침.”

그렇기에 더욱 간절하다. 예쁜 여직원의 아침 인사는 말이다.

작년부터 보이고 있는 안내데스크의 그녀는 참 마음에 든다.

'젠장, 목이 아직도 잠겨있네.'

풀리지도 않은 목으로 인사를 받아친 이유다.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에 다운됐던 기분이 원상복귀를 넘어 가슴이 두근댄다.

어느덧 30대를 훌쩍 넘었다. 출세를 목표로 하다 보니 여자가 없다. 아무리 최근 결혼 적령기가 늦어졌다고 해도 슬슬 눈치가 보인다.

'명절 때마다 성화고 진짜.'

인연이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것도 아니고, 게임 회사라는 사회적 편견도 여전히 있다.

같은 회사의 직원과 연애를 할 수 있다면 한 큐에 해결될 텐데.

은근한 마음을 품고 있던 장연수에게.

“무슨 힘든 일 있으세요?”

“아, 아니 갑자기 왜?”

“그냥 얼굴이 어두워 보여서 아니라면 예, 실례했습니다.”

대화의 기회가 찾아온다. 적어도 그로서는 그렇게 느낀다. 뭐라도 화젯거리를 이어나갈 게 없나.

'잠깐, 잠깐…….'

그런 센스가 있었다면 진작에 연애를 했을 것이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정말 일 이야기뿐이다.

“이번에 신사옥 이전 행사 준비를 하고 있는데…….”

“아……, 네.”

“미안, 미안. 주제가 너무 무겁지?”

“아니요. 저번 돈슨 페스티벌도 재밌었고 관심 있어요.”

실패했다고 생각하던 차.

관심 있어요, 라는 말이 너무나도 달콤하게 울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행사 계획을 5분에 걸쳐 설명한 후다.

“재밌겠다~.”

“그, 그래? 관심 있어?”

“저는 맨날 데스크에 앉아있어서 겨울에도 엉덩이에 땀띠가 날 것 같은데. 안내라도 좋으니까 하고 싶다. 너무 억지죠?”

다행히 반응이 나쁘지 않다. 그것도 생각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자신에게는 그 억지를 실현시킬 힘도 있다.

'내가 인사과에 추천을 하고, 동기한테 부탁을 하면 안될 것도 없지.'

엄청 무리한 부탁도 아니고 행사 인력 조달이다. 현장에서 부탁하는 쪽으로 편성되게 돼있다. 본인만 좋다면야.

“한 번쯤 기분 전환으로 필요한 거면 내가 민하씨 추천해볼게.”

“어, 정말요? 그게 돼요?”

“나 부장이잖아. 그 정도 권한은 있지.”

“그럼 연수 오빠만 믿고 기다릴게요.”

사석에서나 들을 법한 호칭에 한 번,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두근댄 장연수는 힘껏 고개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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