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로 산다는 것-75화 (75/846)

75화

나름대로 근엄한 행사였다.

돈슨, 돈슨 하니까 만만해 보이지, 대한민국 재계 서열 50위 안에 드는 대기업이다.

대충 네이버, 카카오, 대우건설 등과 비슷한 급에서 논다.

심지어 2012년.

'돈슨 주식은 프리미엄을 받아야 한다'는 증권사 분석까지 나올 정도로 입지가 탄탄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쏟아부은 캐시값이 하늘에서 터지고 있습니다!>

그 새로운 시작에 창의적인 축사가 쏟아진다. 엄근진해야 할 자리가 개그콘서트로 변하고 만다. 현장은 없던 일처럼 수습이 됐지만, 대중들의 반응까지 주워 담지는 못했다.

[Best Comment]― 오정환이 자본주의의 노예라면 오늘은 노예 해방의 날입니다 └노예 해방 선언ㄷㄷ└에이브러햄 오정환……

└수백만 돈슨 노예들을 해방시킨 그는 도덕책 ㅠㅠ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파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면 커졌지, 잠잠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이머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담고 있던 귀싸대기 한 방을 시원하게 갈겨줬으니 당연하다.

SNS, 유튜브 등으로 영상이 전파된다. 네이버 뉴스에 오르며 우스갯거리로 전락한다. 그 낯 뜨거운 광경은 돈슨코리아의 본사에도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사락, 사락

벌레 기어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조용한 사무실.

보고서의 서류가 넘겨지는 소리가 긴장감을 자아낸다.

장연수는 눈치를 보는 것조차 포기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파악!

어느 정도 예상되는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날아온 것이 머그잔이나 재떨이가 아닌 서류 뭉치라는 사실에 안도를 표할 따름이다.

“재밌지?”

“아닙니다.”

“재밌잖아? 하늘에서 캐시값이 터지고 있다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할 짓을 왜 했을까? 난 도저히 이해가 안되네.”

“……죄송합니다.”

회사에서 처음 실수를 저지른 신입사원처럼 무미건조한 짧은 단답밖에 하지 못한다.

아무리 잘 정리해서 말해봤자 화만 돋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아니…….'

물론 장연수도 억울하다. 내가 한 게 아니다. 그리고 니도 하라고 했는데.

책임자라는 명목으로 덤터기를 쓰게 생겼다.

《여러분이 쏟아부은 캐시값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일평생 잊혀지지 않을 법한 광경을, 돈슨의 모든 임직원과 회장님까지 계신 자리에서 목도했다.

머릿속이 하얘지며 사고가 끊긴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 뒤처리.

당연히 순탄할 수가 없다.

회사는 발칵 뒤집혔고, 올 것이 오며 모든 발언권을 잃은 채 욕먹는 하마가 되어 서있다.

“주가에 영향이라도 가는 순간 넌 모가지가 문제가 아니야. 알아?”

“예, 예…….”

“뭘 아는데?”

“지금, 일단……, 당사자와 접촉하여 발언의 진의 파악과 사태의 원만한 수습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 장연수! 너 대가리 없는 놈 아니잖아. 지금 내가 너 갈구려고 이런 말하는 거 아니잖아?”

“무슨 말씀하시는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죄만 반복해서는 안된다.

싸이코패스로 소문난 장하권 이사가 그런 도망을 허락해줄 리 없다.

돌파구는 분명히 있다. 정확히는 여파를 최소화할 방법. 비슷한 사태를 일전에 한 번 겪은 적이 있기도 하다.

'씨발…….'

회상해보면 첫 만남부터 정말 꼬이고 꼬였다. 예상에서 벗어난 기행으로 사람 곤란하게 만드는데 도가 텄다.

그래도 사람이 상식이 있지. 적어도 자리는 가려가면서 하던가.

그런 짓을 저지르면 곤란한 건 본인도 마찬가지일 텐데.

“게다가 뭐야? 깽판을 쳐놓고 데이트나 하고 앉았고…….”

“네?”

“못 봤어? 그 오정환이란 자식의 방송.”

체념을 한 건지, 아니면 알 바가 아닌 건지 더 한가한 짓거리를 저지르고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탓에 방송을 확인할 생각은 하지도 못했던 장연수로서는 벙찐다.

'뭐, 뭐야…….'

사옥을 안내해주고 있는 직원이 그녀다.

물론 방송 진행상 필요할 수 있고, 우연히 배정된 걸 수도 있지만, 둘의 사이가 보통 가까워 보이지 않다.

“식사는 왜 하는데? 요즘 애들은 이해를 할 수가 없어.”

“맞습니다.”

“엉?”

명백히 필요 이상의 행위다.

머릿속이 터질 듯한 상황에서도 장하권 이사가 노트북으로 보여주는 동영상에 눈이 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그 의문을 해결할 찰나조차 없다. 오정환의 망발로 불거진 여론을 어떻게든 진정시켜야 한다.

“어, 나다. 뭐? 대체 왜? 아니……, 문제라는 건 아니고 일단 알겠네.”

“혹시 또 무슨 안 좋은 일이…….”

“장부장.”

“네! 이사님.”

“진정하고, 오해하지 말고 잘 듣게.”

사태는 심각하다. 회사 차원에서 신경이 곤두서있다.

실시간으로 임원급에게 보고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만 봐도 보통 일은 아니다.

게임사는 여론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유저들이 뿔이 나면 매출에 지장이 가고,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면 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흔히 말하는 병신짓 크리티컬.

병크가 터져서 회사가 휘청이는 경우가 게임 업계에서는 그렇게 드물지도 않다.

눈치를 보며 서있는 와중에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던 이유인데.

“주가 전망이 괜찮은 모양이야.”

“네?”

“자네도 당분간 본업에 집중하고 있어도 문제 없을 것 같네.”

“아니, 그래도 지금 사태가……”

“아 얼른! 가서 일이나 해. 일이나!”

“…….”

갑작스럽게 종결된다.

* * *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사고도 쳐본 놈이 잘 치는 법이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그런 뉘앙스다.

'대충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머릿속에 그려져.'

숱한 경험을 바탕으로 말이다.

돈슨의 신사옥 이전을 비꼬는 축사. 상당히 해볼 만한 도박수라는 확신이 섰다.

단순한 직감이 아니기도 하다. 실제로 차후에는 제법 보편화된다.

'셀프디스'라 불리는 마케팅 기법 말이다.

─sodehdqkq12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페북에서 보고 팬갑해요! 돈슨 돈 너무 밝혀요

“팬가입 감사합니다. 확실히 그건 맞말이죠.”

―ㅋㅋㅋㅋㅋㅋㅋ

―'돈슨'

―말조심해야 되는데

―그러다 명예훼손으로 고소 당하면ㄷㄷ

물론 일이 안 풀리면 ㅈ될 리스크도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웬만하면 괜찮다.

왜냐?

명예를 훼손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훼손할 명예가 있어야 당하지.'

법에서 말하는 명예훼손은 회사의 손해? 악의적 표현?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어떻게 느꼈냐가 중요하다.

돈슨이 돈을 밝힌다!

이 말을 듣고 '세상에……, 돈슨이 그런 회사였다니 실망이네요ㅠㅠ' 라고 느낄 사람이 게임 유저 중에 있겠냐는 이야기다.

내가 축사를 하기 훨씬 전부터 돈슨의 이미지는 진작에 10창이 나있었다.

그것도 자신들이 저지른 탐욕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고소의 위협은 없다.

─오링컨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돈슨 법무팀 존나 셀 텐데ㅋㅋ

“…….”

물론 실제 재판에 들어가면 많은 것이 다르다.

특히 대기업 법무팀은 장난 아니야. 페이커가 강제 캐리하듯 진 게임도 역전시키는 경우가 왕왕 나온다.

'진짜 괜찮아.'

내가 무슨 변호사도 아니고.

법적인 문제에 확신까지 가졌을 리 없다. 명예훼손을 상기한 진짜 이유는 유저들의 생각을 재확인하기 위함이다.

─돈슨도 지들이 돈슨이라 불린다는 걸 알아야 하는데 제발 사행성 캐시템 좀 그만 팔지 ㅅㅂ

└그만 파는 건 바라지도 않음. 작작만 팔아도

글쓴이― ㄹㅇ

└돈슨이 돈을 안 밝히면 돈슨이 아니지ㅋㅋㅋㅋ

└게임이라도 잘 만들면 후;;

돈슨이 돈을 밝힌다는 건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즉, 이번 사태로 특별히 이미지가 나빠지진 않는다. 중요한 건 그 사실을 돈슨이 알았다는 부분이다.

─메이플151썬콜님, 별풍선 10개 감사합니다!

돈슨 회장 어제 어떤 기분이었을까? 인터뷰 마렵네

―돈슨이 욕 먹는 거 처음 알았을 듯ㅋㅋ

―알고는 있지 않을까?

―직원들이나 알겠지

―확실한 건 이번 기회에 모르는 사람이 없어짐 ㄹㅇ

커뮤니티는 물론 내 방송에서도 떠들 만큼 기대에 차있다.

돈슨의 반응.

과연 어떠한 양상으로 나올지 말이다.

'기업 이미지고 나발이고 유저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냥 단순하게 궁금할 뿐이다. 뒤에서 흉보던 애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의 반응.

유저와 게임사의 소통이 없다시피 하던 시절이기에 더더욱 궁금하다.

기업 철학을 담았고~

이런 의도가 있는 패치고~

평소처럼 뻔히 보이는 거짓말로 넘어가려고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힌다.

「우연히 내게 오나 봐~ 봄 향기가 보여. 너도 같이 오나 봐~ 저 멀리서 니 향기가~!」

그렇기에 의미가 있다. 돈슨의 입장을 직접 듣는 건.

울려오는 전화의 당사자는 딱 한 번 이야기를 나눴었다.

<예, 안녕하세요 오정환씨. 저 혹시 기억 나시나요? 페스티벌때 전화 드렸는데.>

“아~~ 연장 근무 해달라고 하신 분 맞으시죠?”

<하하하; 맞습니다.>

두 번이었던가?

여하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이렇듯 통화가 직통으로 연결되었다는 사실이지.

<어제 행사때 해주신 뼈있는 말씀. 회사 차원에서는 물론, 저희 임원진들도 굉장히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임원이요?”

<예, 부족하지만 이사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ㅁㅊ

―돈슨 이사라고?

―돈 존나 많겠다 ㄷㄷ

―당연히 돈 존나 많겠지 '돈슨' 이사인뎈ㅋㅋㅋㅋㅋㅋㅋ

돈이 존나 많은 게 문제가 아니다.

그 정도로 높은 사람이 사태를 대응한다.

유저들 입장에서 진정성이 확실히 와 닿는다.

─돈슨 이사가 전화 걺ㅋㅋㅋㅋㅋㅋㅋㅋ

─오정환은 진짜 전설이다……

─와! 돈슨 대응 처음으로 마음에 드네

─아니 니들 뭐 보냐? 같이 좀 보자;

.

.

.

커뮤니티를 슬쩍 F5 해보자 반응이 괜찮다. 유저들이 원하는 건 딱히 대단한 게 아니다. 조금만 마음을 열어도 기립 박수를 치게 돼있다.

'평소에 잘하면 얼마나 좋아.'

돈슨 소리 안 듣고 말이야.

거기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소 잃고 외양간만 잘 고쳐도 개념 기업 소리 듣는 곳이 한국이다.

헬적화라는 신조어가 있듯 기업들이 워낙 소비자를 막 대한다.

애초에 기대치가 낮으니 조금만 잘해도 감동을 하게 돼있다.

─돈슨도 여론 보고 아차 싶긴 했나 보네ㅋㅋ

바로 꼬리 내리네

그것도 이사라는 사람이

└개웃김ㅋㅋㅋㅋ

└진짜 어지간히 해먹었어야지

└다른 기업이면 개념 없다고 BJ가 역풍 맞았을 텐데 돈슨이라 └제발 지금부터라도 잘해라

셀프디스 마케팅이 잘 먹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웃음보가 터진다는 게 포인트다. 분위기부터 긍정적으로 조성된다.

<작년에 셧다운제 파동 때문에 업계 사정이 밝지만은 않았거든요. 유저분들의 희생을 강요했다고 느껴질 수…….>

“솔직히 맞잖아요. 캐시템 엄청 나왔는데.”

<예! 사업적으로 욕심을 부린 부분이 있었습니다. 신사옥 이전을 계기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올ㅋ

―이걸 인정 한다고?

―셧다운제 때문에 참는다^^

―셧다운제는 힘들 만하긴 했어

여기에 솔직한 인정이 더해지면 유저들의 화도 가라앉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미운 정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혹시나 하는 기대도 생기고.'

그 기대가 역시가 될지, 정말로 새로운 도약이 될지는 돈슨이 하기에 달려있다.

아무튼 이제 가슴을 졸이고 있을 시기는 지났다.

여론이 부정적이지 않았던 건 돈슨의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쌓이고 쌓인 만큼 더 강력하게 폭발하게 된다.

<한 번 더 방문해 주시면 돈슨의 비전에 대해 시청자분들께도 자세하게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요?”

<모쪼록 부디. 저희도 결자해지 해야죠~! 해명도 못하고 그냥 넘어가면 솔직히 억울합니다.>

그리고 나는 유일한 중재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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