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돈슨은 게이머들에게 애증의 존재다. 대한민국 청소년, 청년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학창 시절의 추억이 새겨져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그 추억으로 캐시템 팔 생각밖에 안 한다는 거지.'
돈슨이란 두 글자를 볼 때마다 지건이 존나 마려워진다.
지건 이 새끼야!
그래도 때려줄 정이라도 있을 때가 그나마 낫다.
─급·학식들 이 악물고 돈슨 욕하는 거 웃기네ㅋㅋㅋ응 그래봤자 돈슨 게임 잘 나감학교 일찐들이 죽자고 할 텐데 넌 안 하면 진짜로 죽음└―찐―
└삼도수군통제사
└본문과는 별개로 결국 돈슨 게임 하게 되긴 하지……
└친구들 다 하는데 혼자 안 할 수는 없잖아?
물론 그래봤자 대한민국 50대 기업이다.
커뮤니티에서 이러쿵저러쿵 따지는 게 민망하리 만큼 엄청나게 잘 나간다.
'근데 뭐 어쩌라고.'
블리자드가 대형 게임사인 거 모르고 욕하는 거 아니잖아. 블리자드는 그래도 신작 나오면 관심이라도 가지고, 퀄리티 좋으면 사기라도 한다.
하지만 돈슨은 관심도 안 가고, 재밌어도 한 번 더 고민한다.
차후에는 그렇게 된다는 이야기다. 미래 가치가 죽었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돈슨이 중국에서 돈을 쓸어담아도 주가가 냉랭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게임사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한 부분이야.'
현재 돈슨은 당연히 10년 후의 돈슨보다 매출이 훨씬 작다.
그럼에도 시가 총액, 시장의 평가는 엇비슷하다.
그것이 바로 미래가 있는 기업과, 미래가 죽어버린 기업의 차이다.
대형 게임사가 가진 이미지.
이는 고작 한두 푼 정도로 볼 가치가 아니다. 최소한 조 단위를 거론해야 하는 천문학적인 스케일이다.
“저희도 이미지 쇄신을 위해서 내부적으로 많은 변화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음~.”
또다시 돈슨 본사에 찾아오게 된 연유다. 두치와 뿌꾸의 마빈 박사처럼 생긴 장하권 이사가 직접 따라붙어 설명을 해주고 있다.
그 탓인지, 아니면 소문이 단단히 난 건지. 스쳐 지나치는 사원들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몸 둘 바를 모르는 장소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추구하는지 말씀을 해주셔야 납득이 될 것 같은데요? 특히 시청자분들은.”
“그렇겠죠~. 안 그래도 다음 장소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익숙하기 때문에 문제될 요소는 없다.
숙제 방송.
돈을 받고 홍보를 해주는 행위 말이다.
'별 건 아니고.'
방문 전에 한 차례 통화를 나눴다.
아무래도 굉장히 재밌는 사태가 계기가 됐다 보니 돈슨쪽에서 안심하기 힘들다.
수고비 명목으로 받았다. 원활한 방송 진행을 부탁한다.
그렇다고 당연히 봐주는 일은 없다.
“지스타를 준비하고 있는 부서입니다.”
“오~.”
“참고로 올해 슬로건이 돈슨의 역습이거든요.”
“돈슨의 역습이요??”
“돈을 밝혀서 돈슨이라 불리는 건 올해가 마지막이 될 겁니다.”
―돈슨의 역습ㅋㅋㅋㅋㅋ
―지들도 아네
―주작은 아니죠?
―주작 : 유식 막겠다ㄷㄷ
역습은 통념을 깨는 변화와 반전을 의미하는 말로 어쩌고저쩌고~ 설명이 이어진다.
봐주는 일은 없지만, 방해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귀찮게 왜.'
딱히 돈슨을 멸망시키고자 벌인 일이 아니다.
철꾸라지는 간장을 잘 뿌리고, 김군은 병역 기피를 잘하듯, 나는 사고 치는 걸 즐길 뿐이다.
“피파 온라인3도 이번 지스타에서 공개가 됩니다.”
“그렇군요.”
“한국 선수들이 가성비 좋게 나왔기 때문에 국내팬분들도 기대를 하셔도 좋습니다.”
―크~ 국뽕
―안정환 가성비 괜찮지
―헤딩도 잘하고
―몸 싸움도 잘함!
백문이 불여일견.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태 수습을 위한 빈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럴 수도 있겠지.'
어차피 판단은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역시 돈슨은 엄청납니다! 오늘부터 돈슨 사옥을 향해 하루 세 번씩 절 하십시오! 이런다고 여론이 수긍할 리가 없지 않은가?
사태가 이 정도로 커진 이상 내 손은 떠났다.
있는 그대로의 돈슨을 방송으로 내보냈고, 돈슨이 진정성이 있었다면 그에 합당한 평가를 받을 뿐이다.
“돈슨은 너무나도 아픈 단어입니다. 사랑 받는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청춘을 불사르고 있는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저번에 그 직원분 있잖아요.”
“예?”
“사옥을 안내해주신 여직원분이 계신데, 시청자분들이 엄청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어? 걱정을 왜요?”
“혹시 잘린 거 아니냐고.”
“하하하; 제가 인사과가 아니라 일일이 보고를 받진 않지만, 그런 일이 있었으면 저의 귀에도 넌지시 들어왔을 텐데 일단 없었습니다.”
본래와 같은 결말을 맞을지.
평타 치는 게임사가 될 수 있을지.
그 갈림길에 서있는 돈슨의 미래는.
'솔직히 모르겠고, 알 바도 아니야.'
지 알아서 잘하겠지.
내가 돈슨 주식을 매입할 것도 아닌데 과한 관심을 쏟고 싶지는 않다.
─헌팅박님, 별풍선 100개 감사합니다!
여신 강림ㄷㄷ
―눈나 나 죽어ㅠㅠ
―정장 ㅗㅜㅑ
―핏 봐……
―살아 계셨군요!
썸이나 적당히 때려야지.
* * *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놀이.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보며 이태백도 울고 갈 시 한 편을 읊은 오정환의 행태는 엄청난 스노우볼로 굴러갔다.
─생각보다 시시하네
왜 이렇게 돈슨답지 않게 대응이 빨라?
└ㄹㅇㅋㅋ
└고객센터는 2주씩 걸리면서
└장작이 너무 타니까?
└기다리면 또 병크 터트리게 돼있음
돈슨이 회사 차원의 대응에 나서고, 신속하게 해명 영상이 올라오고, 그것이 2차·3차로 다시 퍼지면서 가까스로 진화에 성공한다.
커뮤니티의 반응은 우리 돈슨이 달라졌어요.
당연히 믿는 건 아니다. 하루 이틀로 쇄신될 기업 이미지가 아니다.
그래도 미운 정이라는 게 있어 사태는 일단락되었지만.
「'오정환 소신 발언'에 대한 연관 검색어」
오정환 썸녀
돈슨녀
하늘에서 캐시값
.
.
.
대신 다른 화제가 떠오른다.
연관 검색어.
그 첫 번째와 두 번째를 항상 차지한다.
─돈슨 직원분 넘모 이쁘네ㄷㄷ
왜 이렇게 수준 높음?
무슨 방송국 아나운서도 아니고
└진짜 눈정화됨ㅋㅋㅋ
└저분이 방송도 캐리했어
└안내 쪽인 듯. 회사 간판이니까 이쁘겠지
└아무튼 이쁨!
방송에 출연한 여직원이 누구냐?
주화제가 진정되자,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여자와 관련된 화제는 기본적으로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저기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그런 건 그냥 안 하시면 되는데.”
“남자친구 있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있으면 달달각 잡는 게 실례일까 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미 잡곸ㅋㅋㅋㅋㅋㅋㅋ
―있으면 NTR
―남친 통곡하겠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없었다.
그 합법적인 광경이, 돈슨 이사의 허락까지 떨어지며 눈치 볼 것도 없이 진행된다.
다른 화제 때문에 엄근진 하며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기립 박수.
위쪽도 아래쪽도 기뻐하며 자연스레 콘텐츠가 된다. 관심사가 형성된다.
─솔직히 돈슨녀가 캐리한 게 맞지
돈슨이 해명을 하든 안 하든
이 악물고 돈슨 깔 사람들 많은데 이 중 반은 돈슨녀 때문에 교화됨└ㅇㄱㄹㅇ└사무적으로 대처하면서 은근히 넘어오는 게 진짜ㅋㅋㅋ└정환이한테 마음 있는 듯 └진짜 사심 있다니까?
보라 또한 자연스레 진행된다.
열성팬이 아닌 이들은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말이다.
마치 사내 연애를 하듯 연애 감정이 싹튼 것처럼 느껴진다.
「보라) 오정환. OL누님과 함께 하는 돈슨 탐방」
? 본방 : 1536 (PC: 767/ MOBILE: 769)
? 중계방 : 14, 886
? 누적 시청자 수 : 120, 111
하루라면 우연이지만, 이틀이 되고, 다음 약속까지 성사되자 콘텐츠가 아닌 썸이 돼버린다.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존재가 된 것이다.
─오정환 개부럽네……
주위에 여자가 몇 명이야
어떻게 돈슨을 가도 여자가 생겨 ㅅㅂ
└능력이지
└저 정도면 진짜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율이한테나 잘해주지
└봄이는?
오정환 주위의 여자들과 스타일이 다르기도 하다.
성숙하고, 직장인이며, 업무 관계로 만났다는 것이 성인 남성들을 불타오르게 만든다.
무엇보다 섹시미. 경험해보지 못한 매력에 빠져든다.
특히 공석과 사석에서 느낌이 다르다는 점이 설레게 한다.
“남자 앞에서 너무 취하는 거 아니에요?”
“왜요? 저한테 관심 있어요?”
“아니, 잠깐만요. 왜 그래요.”
―진짜 취했네
―침대 ㄱㄱ씽
―방송만 아니었으면!
―아니면 뭐? 미친놈들아ㅋㅋ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직장인도 고충이 있다.
하물며 겉으로 완벽해 보이는 미인이라도 고민거리가 없을 수가 없다.
그 갭(Gap).
인간미라 일컬어지는 그것이다. 실망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반대로 빠져들어 개인팬이 되기도 한다.
* * *
방송은 스토리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컨셉을 살리는 것이 먼저다.
신민하씨의 경우 후자에 보다 초점을 두었고 그 과정은 딱히 어려울 것도 없었다.
'좀 까놓고 말하면 대한민국에서 반반한 여자로 태어난 것 자체가 이미 성공이야.'
굳이 남들과 차별화될 만큼 엄청나게 이쁘지 않아도 된다.
적당한 외모와 적당한 능력.
이 두 가지만 겸비하면 성공은 자기 하기에 달렸다.
대부분은 깨닫지 못할 뿐.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 컨설턴트인 내 역할이다.
게임 회사에서 일한다는 스펙은 충분히 이용이 가능하다.
<페북 팔로워가 1만 명이 넘었어요! 댓글이 쏟아져서 요즘 하루종일 핸드폰만 붙잡고 있어요.>
“지금처럼요?”
<혹시 바빠요? 좀 더 통화할 수 있죠?>
큰 그림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두 번째 방송 출연까지 자연스레 이어졌다.
이사급 임원의 보증까지 받아 간접적인 방송 활동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저 진짜 너무 떨려서……. 그때는 이것도 방송인가? 했어요.>
“제가 원래 그래요.”
<사실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정환씨만 믿을게요. 다 생각이 있으셔서 한 걸 테니까.>
“…….”
물론 성공을 한다는 보장은 없었다.
최악의 경우, 경찰이 출동하고 민하씨는 잘리고 돈슨과 전쟁에 가까운 기나긴 싸움을 펼쳐야 했을지도 모른다.
'그건 그거대로 플랜이 있지만.'
잘리면 잘린 대로 동정 여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적어도 민하씨의 BJ데뷔에는 차질이 없다. 지금의 루트는 조금 더 길게 걸리는 대신, 안정적이며 확실한 성공이 보장되니 가장 좋은 길이다.
<정환씨.>
“…….”
<정환씨?>
“네?”
<지금 혹시 한가해요? 전 한가한데.>
“페북 본다면서요.”
<아니, 그건 나중에 해도 되니까 식사 어때요? 제가 쏠게요. 그리고…….>
뭐, 마음의 빚 같은 건 당연히 없다.
내 인생 먹고 살기도 팍팍한데 남 인생을 왜 걱정해.
'최소한 내가 할 일은 다 해줬지.'
그 이상으로 엮이는 건 내가 사양이다. 사람 관계에 쓸데없이 관심과 신경을 쏟아붓고 싶지는 않다.
<혹시 저…… 귀찮아요?>
“네.”
<대답이 빠르네요. 전 아닌데.>
“할 일이 많아서요.”
<또 다음 방송 준비하시나 봐요. 저 절대 귀찮게 안 할게요. 편하게 대해셔도 돼요.>
“그래서 뭐?”
<저 진짜 살면서 이런 말한 적도 없고 이런 말할 거라고 생각도 해본 적 없는데……, 정환씨가 차갑게 대하면 너무 가슴이 먹먹해지고 진짜 어떻게 돼버릴 것 같아요. 가끔이라도 좋으니 만나주면 안될까요? 시간은 제가 맞출게요 꼭.>
그래서 보통 그렇지 않은 관계만 열어둔다.